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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여 운동장에 내리자, 웬일?
마을 방송을 통해 유명한 대중가요 가수가
"사랑은 아무나 하나"며 신나는 노래를 불러제낀다.
누가 마을 방송을 잘못 틀었겠지
상그레 웃으며 현관을 들어서는데,
아무나 못한다는 사랑은 미쓰고를 불러대더니
미쓰고는 대답이 없어서 포기했는지
이제 상하이 어쩌고 하면서 트위스트를 추는 모양이다.
트위스트를 추러 가기에 상하이는 너무 멀다.
긴 가죽 장화 지퍼를 내리면서 난 쿡 웃는다.
-오늘 무슨 일이래요? 아침부터
학교 버스를 주차시키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이기사님께 내가 묻자
껄껄 웃는다.
-정월 대보름 아닌교?
아,
난 아득하게 웃는다.
상동역에는 은사시나무가 있을까?
그는 오늘 상동역에
은사시나무의 싱그러운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을 거라고 했어.
포플러 비슷한 여름나무라고 가르쳐 주면서도 그렇게 말했어.
반나절을 정신 차릴 수 없었다.
신입생 가입학식.
가입학을 한 어린이는 모두 스물 네 명.
학생 수가 조금 늘어나겠다.
열 아홉 명이 졸업하고 스물 네 명이 들어오니.
해마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가입학식만 되면 늘 씁쓸했는데
늘 그러하듯 아침을 굶은 뱃속은 황소라도 한 마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을 칠 시간임인데도 든든하다.
교실과 교무실을 오가면서 정신차릴 수 없는 일과 속에서도
목욕을 끝낸 여인이 맑은 햇살에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내듯이 서 있을 은사시나무를 떠올린다.
-보름밥 묵으러 가입시더.
김주사님께서 장난삼아 말씀하신다.
우리 학군에서도 가장 깊은 산골 도곡 마을이 고향이신 분이시다.
우리 학교 학군이지만 그 마을 학생이 끊긴 지는 오래 되었다.
김해 김씨, 삼현파라는 이유로 유난히 내게 살갑게 대하시는 분이시다.
언젠가 로변한담을 나누던 날에 촌수와 항렬을 따져 보았더니 내겐 할아버지뻘이 된대나?
후배 교사와 나는 장난 삼아 말씀하신 김주사님을
정말로 따라 나선다.
첩첩산골 마을에 보름밥을 먹으러 간다.
강 모래밭 곳곳에 달집이 세워지고 있다.
제법 큰 규모의 학교였다지만, 이십년 전에 분교로 바뀌고,
십여년 전에 폐교가 된 "도곡 분교"가 현판도 그대로 붙어있는 채로 무너져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건물의 외양은 남아있다.
앞산, 뒷산으로도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첩첩 깊은 산골의 산자락에 자리한
어느 촌가에서 우리는 보름날의 성찬을 마주한다.
집주인은 마을회관에서 마을 남자들과 회의 중이고,
안주인은 동네 여인네들과 모두 몰려서 절에 가버려서
그야말로 온 마을의 집이란 집들은 모두 비어 있다.
우리는 그 어느 한 집에 들어가서.
우리 손으로 음식을 담아서.
머슴밥을 담는 그릇만큼 커다란 밥그릇에 가득 담긴 오곡밥을 맛있게 먹는다.
냉이국에 나락냉이 나물같은 봄 나물에, 지난 봄과 여름에 캐와서 갈무리해둔 여러 가지 산나물.
그야말로 시장에서 사온 종류는 단 한 가지도 있을 수 없는 식탁.
밥을 모두 먹었을 때, 집 주인이신 김주사님 형님께서 오셔서
그 어른에 비해 너무나 어린 우리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한다.
우리가 떠나려고 골목을 벗어나니,
마을 회관 앞에는 온 마을 할아버지들이 다 모여 있다.
그리고 절에 갔다는 마을 여인들도 모두 도착해 있다.
와 주어서 고맙다고
봄이 되면 다시 꼭 찾아주라고.
남의 집 밥 몰래 훔쳐먹고 가는 우리들에게 상상하지도 못할 과분하고 따스한 인사.
동네 밥 훔쳐먹고 그대로 가는 사십 대의 두 여자가 무에 그리 고마울까?
찾아주어서 그저 고맙단다.
도저히 우린 이해할 수가 없다.
막 당황이 된다.
우리도 막 허리를 굽혀서 보름밥 맛있게 먹었다고 그저 수 없이 인사를 한다.
처음엔 변화되지 않는 산골 마을의 토담집같은 모습만 그려졌던 삽화.
그 삽화 속에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스민다.
-이선생,
우리 영화 찍었지? 만약 오늘밤에 일기를 쓴다면 난 열 장도 더 쓸 것 같아.
연필에 침 묻혀 꼭꼭 눌러서.
-그래요, 진짜 영화같았어요. 그리고 그 일기 꼭 보여줘요.
내 말에 그녀는 입을 오무리며 맑디 맑게 웃는다.
이선생에게 보여 줄 수 없는 일기도 난 어쩌면 쓰게 될지 몰라.
난 지금 상동역에 은사시나무가 햇살에 반짝이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해.
운전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아득하게 웃는다.
상동역에는 은사시나무가 그 푸른 잎을 반짝이고 있을까?
내가 자주 찾던 ,
그리고 휴일과 방학을 빼고는 지난 삼 년 동안 따스하게 바라보던 동천강은 늘 아름다웠지만,
그 강을 바라보는 나는 늘 적막하였습니다.
동천강은 우리 학교 앞을 흐르는 강입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그 강을 취한 듯이 걸었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강을 건너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 강이 오직 나만을 위해 흐르고 있다고
작은 착각이라도 하였던 적 역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천강은 어느 하루를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흘러주는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지요.
늘 기적 소리만 들었던 상동역이었습니다.
기적 소리를 들으면서 그 기차에 타고 있을 모습들을,
상동역을 떠나고 도착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혼자서 따스하게 상상하면서도 기적 소리를 듣는 저는 늘 적막하였습니다.
그 역에 날 찾아오는 누군가를 마중 나가게 되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하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언젠가 아주 절친한 여고 선배언니가
아무런 연락도 아니 취하고 날 만나기 위해 그 역에서 내린 적은 있지만.
전국에서 가장 큰 달집이라는 청도의 달집.
높이가 20M라던가?
달집 태우는 것도 처음 보았지만, 그렇게 큰 불기둥도 처음 보았습니다.
불길 속에서 목이 말랐습니다.
"불의 딸"
첫 발령을 받았던 학교는
하동 읍내에서 완행버스를 타면 삼십 분 거리에 있었습니다.
읍내를 막 벗어나는 가장 끝 지점에 대장간이 있었습니다.
대장간에는 대장장이가 사시사철 웃통을 벗고
시뻘겋게 달구어진 쇠붙이를 들여다 보거나 내려치고 있었는데,
화덕에는 늘 불이 이글거리고 있었지요.
때로 그는 화덕에 풀무질을 하고 있기도 했지요.
그 때 타오르던 불길의 아름다움이란......
난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대장간을 환히 볼 수 있는 버스의 오른 쪽 창가에 앉곤 했습니다.
그 쪽에 자리가 없으면 설혹 다른 쪽이 비어 있더라 해도
그 대장간의 풍경을 훔쳐보기 위해서 버스 천정의 손잡이에 매달려서 갔습니다.
대장간의 풍경은 학교에 도착하는 삼십분 동안
늘 저를 어떤 갈증에 시달리게 만들었습니다.
"불의 딸"이란 소설 속의 여인처럼
나도 물 한 사발을 들고 대장장이 뒤에 서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도시 학교로 발령을 받아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난
소설 속의 여인처럼 물 한 사발을 들고
대장장이의 등 뒤에서 그의 풀무질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서 보지는 못했지요.
달집에 빼곡하게 매달린 여러 가지 소원들.
그들의 소원이 왜 그리 정겹고 따스하던지요.
그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으면 하고 잠깐 생각했지요.
그 소원을 작은 종이 조각에 다 말할 수 없어서 어쩌면 너무 탐욕스러울 것도 같은,
탐욕스럽기에 어쩌면 너무나 순박해서 어처구니 없는
"소원 성취"라는 소원마저도 저에게는 정겨워지더라구요.
저는 아무런 소원도 빌지 못했습니다.
오늘 달집 태우기 구경을 하러 간다고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데,
난 빌어야 할 소원을 미리 준비하여야 했었음에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빌어야 달집이 타오르던 그 시각의 격에 맞을 것 같았지만,
그저 내 두 아이 이름만 잠깐 기억났을 뿐이지요.
그 두 아이의 건강도 행복도 공부도 아무 것도 빌지 못했습니다.
이제 또 다른 소원을 빌 만큼 저는 뻔뻔스럽지 못한 여자였을 겝니다.
달집은
구름같은 연기로 몽실거리면서
신에게 도전한 인간의 욕망에 의해 무너져 내린 바벨탑을 다시 재건하려는 듯,
하늘 끝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자욱한 솔가지 향기를 내뿜으면서
주홍빛 불기둥을 만들면서 달집이 타오르던 그 시각.
내 삶에서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던
한 번도 감히 욕심부려 본 적이 없었던
날 위해 준비되어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믿었던 적마저 없었던
과분한 행복에 휩싸여 있었기에.
이승의 시간을 걷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실감할 수 없었기에.
다만 "불의 딸"이란 소설이 생각났고,
작가가 한승원?
작가 이름이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아 자신이 없었지만
작가 이름이 아무려면 어때?
라는 생각을 했으며
.
.
.
오늘 밤, 어쩌면 부질 없는 욕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동천강이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한 단 하루였을지도 모른
마흔 일곱살의 정월 대보름.
9시가 채 되지 않는 시각의 늦지 않은 귀가를 서두르면서
비록 달을 볼 수 없었지만 이미 난 달빛에 감기어 천상에서의 시간을 보냈었나 봅니다.
(2003년 2월)
글 속의 사진은 다음 블로그 <무식한 촌놈>의 오솔길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무딤이 들판에서
2005년 정월 대보름날에 열린 달집 태우기 행사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행사 사진을 소개해 주신 오솔길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