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가족
마가복음 3:31-35
성도는 구원받은 백성들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 관계는 어떠한가 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남편과 아내, 부모 형제들이 천국에서도 계속되어 한 가족으로 사는가 하는 것이 궁금합니다. 만약 이 세상의 가족 관계가 천국에서 계속된다면 좋은 것 보다는 문제가 더 많을 것입니다.
재혼한 사람은 천국에서 부인이나 남편이 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역시 천국에서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 대부분이 구원받지 못하고 혼자 천국에 갔다면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는 하나님 나라의 가족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김씨의 시조 김알지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지금의 경주 계림 숲속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금으로 된 작은 궤짝이 나무 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 울고 있어서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에 사내아이가 있어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고 ‘알지’라고 불렀답니다.
박씨의 시조 박혁거세는 우물가에 박 같은 알이 있어 이를 깨어 보니 잘 생긴 사내아이가 나와서 그 아이를 박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박혁거세라고 이름을 짓고 박씨의 시조라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처럼 예수님도 하늘에서 구름타고 이 세상에 오시든지 하지 않으시고 창조의 질서를 따라 한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부부로 짝이어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조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짝지어 가정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이란 공동체를 만드신 것은 자녀를 낳아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정을 떠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자녀를 낳을 수 없습니다. 오직 가정이라는 제도에서만 자녀를 낳고 키울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으므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가정을 통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속주로 오셨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입니다. 만약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 관계로 태어났다면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과 같은 죄인이시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으므로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 외에는 모든 사람들과 똑 같이 나고 자랐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을 키운 육신의 아버지입니다. 요셉은 목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가 계속하여 낳은 동생들과 함께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누이들이 있었습니다(마13:55-56). ‘누이들’이라고 한 것을 보아 여동생이 둘 이상이 있었다고 봅니다.
예수님도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가족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30세가 되어 어느 날 예수님은 집을 떠나 갈릴리와 유대로 돌아다니며 구속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도 가출하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가출하셨다는 말은 없지만 실상은 가출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모여 들었습니다(20). 귀신들린자와 병든자들이 고침 받고자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무리들을 고치기에 바빠서 식사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하셨습니다.
이렇게 식사할 겨를도 없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자들을 고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말했습니다(21). 하물며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지폈다고 했습니다(22). 예수님을 정신 나간 사람으로 또는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 들린 사람으로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소문들이 나사렛까지 퍼졌습니다.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가 미쳐 돌아다니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할 때 천사가 들려준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상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동생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으려 왔습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은 사랑과 염려에서 예수를 찾으려 온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32).
예수님이 밖에서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찾는다는 말을 듣고 “누가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이냐”라고 말했습니다(33).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세상의 가족에 대한 의무를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행위를 책망하셨습니다(막7:10,11). 그리고 자신이 직접 효를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 나사렛에서 부모님께 순종하여 받들어 섬기셨습니다(눅2:51). 누구보다도 부모를 섬기며 형제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앞둔 시간에도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신 후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므로 어머니의 남은 생애를 더 이상 아들로서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요19:26,27). 예수님은 자신이 효를 실천하므로 세상의 가족에 대한 의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맺어지는 영원하고 참된 가족관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영원하고 참된 가족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모친이나 형제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원하고 참된 가족 관계가 세상적인 가족관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동생들이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된 가족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내 어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고 하셨습니다(34). 밖에 찾아온 어머니와 동생들이 아닌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이미 예수님과 참된 가족관계가 맺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둘러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 뿐 아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 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35).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요6:29).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6:28,29). 그리고 자기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요1: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나라에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에게도 사랑하는 부모나 형제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가족들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하며 함께 한 남편이나 아내, 부모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가족이 될 수 없습니다. 속히 예수 믿도록 해서 하나님 나라에 함께 가족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적으로는 혈육간에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이라도, 인종이 다르고 흑인이나 백인이라도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최대 강국의 수상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에 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죤의 원시족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던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맏아들이 결혼하고 자식이 없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워야 한다는 모세의 율법을 주장하면서 둘째가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을 때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세상의 남편과 아내 관계가 부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면 모순이 되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고 한 것입니다. 죽은 후에도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 관계가 계속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2:25).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관계가 어떠한가를 잘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천사와 같은 부모도 형제도, 남편과 아내와 같은 가족관계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하나님 나라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있다면 자녀를 낳고 키우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는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있고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 세상에서만 유효한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더 이상 자녀를 낳고 키워서 번성하고 충만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태어나고 자라고 늙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조카와 같은 촌수가 없습니다. 만약 촌수가 있다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전에 사람은 엄청 높은 촌수의 어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수천 년 전에 사람이나 수백 년 전에 사람이나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셨던 것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는 수백 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촌수가 있다면 모세는 엘리야에게 아주 높은 조상이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감히 모세 앞에 고개도 들 수 없을 정도로 굽히며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형제로서 예수님과 대화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나 엘리야와 함께 형제가 될 것입니다. ‘형제’라는 말 자체도 선과 후라는 모순된 말입니다. 형이 있고 동생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어느집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많은 구박을 받았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가신 천국은 가지 않겠다’고 하였답니다. 시어머니는 신앙은 좋은 분이신데 며느리를 미워하여 시집을 많이 살렸던가 봅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도 시어머니를 만나 시집 살까 봐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북한에서 빌린 돈을 갚지 않으려고 남한에 왔더니만 그 사람을 남한에서 만나 빌린 돈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세상에서 남의 돈 떼먹고 갚지 못해 숨어 다니던 사람이 천국에서도 숨어 다녀다 잡히면 내 돈 내놔라고 할까요?
한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해도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혹 나를 비웃고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속여 내 돈을 사기를 친 사람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천국에 가니까 그 사람이 먼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그 사람을 내 돈 떼 먹은 사람이라고 하며 미워할까요?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와 같은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하지 않는 완전한 거룩한 백성으로 성화됩니다. 세상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세상에서는 잊어버렸던 것까지도 지식이 발달되어 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다 덮어줍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이 충만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도 다 덮습니다. 더 이상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서로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세상의 부모와 형제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 나라에서도 한 가족으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함께 영원히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있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