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수기
제목 : 마음이 따뜻한 사회, 희망이 넘치는 청주를 꿈꾸며
어느 날, 내가 물품배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청주사랑나눔기초푸드뱅크」 소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충청북도사회복지협의회에서 사회공헌활동지원사업 희망자를 모집하는데 참여해 보라고...
「청주사랑나눔기초푸드뱅크」는 작은 봉사단체이다.
잉여식품 등을 공급자로부터 수집하여 그것을 필요로 하는 수혜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60여 명의 봉사자들이 하고 있다.
사회공헌(社會貢獻)이란 말을 듣고 나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뜨거워졌다.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면서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기는커녕 빚만 지고 살아온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0여 년 전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국가와 민족 앞에 헌신하고자 공직을 시작했지만, 공직생활 33년의 세월 속에 만족스러운 일은 고사하고 후회스러운 일만 남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장님의 권유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부족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며 복지사각지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동고동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제1화 : 외국인 임금체불(賃金滯拂) 사건 송무(訟務) 지원
내가 살고 있는 복대2동 지역은 40여 년 전에 건축물 등이 세워진 낙후된 곳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니 건물은 노후 되어 초라하기 그지없고, 입주민들의 생활도 그리 넉넉하지 못한 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거의 날품팔이와 심지어는 폐지를 수집하여 생계를 유지하시는 분들도 있다.
버려진 종이 박스 등 폐지를 수거하는 서너 가정이 있어 정말 그 분들 앞에서는 숨도 크게 못 쉬고 먼발치에서라도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말 한마디라도 신경을 써서 하며, 나도 길에 버려진 폐지를 보면 보관했다가 전해드리곤 한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주거형태도 낙후될 수밖에 없다.
경제력이 조금 나은 분들은 방 한두 칸을 전세로 얻어 살고, 그렇지 못한 분들은 방 하나짜리 사글세나 월세로 생활하고 있다.
2014. 10. 말경 평소 안면이 있는 동네 주민으로부터 그 중 한 가정에 대한 억울하고 기가 막힌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분노했다.
당장 그 사연의 주인공을 찾아가 어처구니없는 억울한 사연을 들었다.
1년 전부터 우리 동네에 방 한 칸의 월세방에서 70세 부부와 30세 딸이 함께 살면서 직장도 없이 폐지를 수집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였다.
수십 년을 중국에서 살다가 조국의 품에 안기고 싶은 일념으로 코리안 드림(korean dream)을 꿈꾸며 조국을 찾아 수년 전에 입국하여 살았는데, 1년 전에 나머지 식구인 처와 딸이 입국하여 같이 살고 있으며, 가장인 정 모씨는 3년 전부터 모 환경업체에서 월 100만원의 보수를 구두로 약정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1년 365일 중 설날이나 추석명절은커녕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업체 창고에서 숙식하며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심지어 일이 없는 날은 환경업체 사장의 가족이 운영하는 목욕탕과 식당에서 일을 시켰다고 한다.
차일피일 미루는 임금체불과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근무한 것은 밀린 임금을 받아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 분은 업체 사장으로부터 2년여 동안 월급 한 푼 받지 못하고 2천 5백여만 원의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이웃 주민과 말도 잘 안 통하고, 어디에다 이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해야 되는지 조차 몰라 고민하였다고 한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일이라 남의 일 같지 않은 사건이라 판단하고 이런 분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분과 나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수십 년 만에 그리운 조국을 찾아 왔지만, 자나 깨나 그들이 꿈꾸던 그 조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버려진 인생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나는 공직생활 중 법제(法制), 송무(訟務), 행정쟁송(行政爭訟) 등 법무행정을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밀린 임금을 받아내기 위한 송무 업무 추진을 돕기로 했다.
나는 그 분과 같이 그 이튿날부터 청주출입국관리사무소, 노동청 청주사무소, 검찰청, 대한법률구조공단, 외국인노동자인권복지회,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등을 수차례에 걸쳐 찾아다니면서 해결방안을 찾고자 식사도 제 때에 하지 못하고 동분서주하였다.
알고 보니 업체 사장은 청주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정도로 부와 권력(업체 사장의 죽은 아버지)을 지닌 사람이었다. 글자 그대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실추시키고 나라를 좀먹는 악덕업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사장은 회사를 부도(不渡) 처리하고 돈이 없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답변을 하며 마음대로 하라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사람은 순리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할 것이므로, 부득이 법에 의하여 처단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찾았다.
일반 노무사나 변호사에게 의뢰하면 쉽겠지만 그 분은 변호사 수임료는 물론 식대조차 없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은 것이다.
고소장 일체를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작성하여 소송을 진행하였으며,
물론 변호인도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여 소송을 진행하도록 선처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일을 착수한지 4개월만인 2015. 2. 4. 청주지방법원으로부터 판결(判決) 선고(宣告)를
받았다.
그 날 우리는 법원 주차장 뜰에 주저앉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재판장님, 담당변호사님, 법률구조공단 계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힘과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으로부터 판결에 터 잡아 집행절차를 진행하라는 연락도 받았다.
그 분은 전화도 없어 내 전화번호를 연락처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모든 연락은 내가 송수신하여 전달하고 있다.
입춘(立春)도 지나갔다.
경비, 재활용품 분리수거 등 70세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자리도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70대 조선족 노부부는 우리 가족에게도 꿈과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다.
사회공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성현의 말씀을 상기해 본다.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이 사건에 관련하여 실마리를 풀어 주시고 수고하여 주신 대한법률구조공단 담당계장님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제2화 : 뽁뽁이 사업
어느 날, 소장님으로부터 가경동을 중심으로 뽁뽁이 사업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동사무소에서 재료를 지원받아 추진하기로 하고, 남성 4명, 여성 1명으로 구성된 5인조 특공대(?)를 임시로 조직하였다.
특공대원 연령분포는 60대가 2명, 50대가 1명, 40대가 2명이었다.
혹시 여성들만 거주하는 주거에 들어갔을 때를 대비하여 만에 하나라도 성 관련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판단에서 여성봉사자는 필수요원으로 편입하기로 했다.
드디어 가경동주민센터로부터 지시받은 40여 가정을 목표로 이른바 뽁뽁이 사업이 시작되었다.
뽁뽁이 사업이란 유리창에 사이다를 분사한 후 비닐 뽁뽁이를 부착하여 난방효과를 내는 한 방법이다.
2014. 11. 17. (월) 10 : 00 가경동주민센터.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을 수 있으며〔二人(2인)이 同心(동심)하니 其利斷金(기리단금)이라〕,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同心之言(동심지언)이 其臭如蘭(기취여란)이로다〕는 말이 있다(出典 : 「周易(주역)」, 繫辭上傳(계사상전) 第8章).
우리 다섯 명의 봉사자들은 처음 만나는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마음을 같이 하여 이웃을 도우며 이웃과 함께 한다는 기분에 마음을 같이 하는 말을 하며 그저 흐뭇하고 행복에 넘치는 표정들이었다.
우리 팀(team)은 청소담당 2명, 재단담당 1명, 부착담당 1명, 재료담당 1명으로 임시조직을 결성하였다.
독거노인, 장애인 등 정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분들을 찾아간다는 부푼 희망도 있었지만 평소 하지 않던 노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교차한 것도 사실이다.
차치(且置)하고, 드디어 봉사활동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4-5가정을 추진하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며칠이 지나자 기술도 향상되고 일에 탄력이 붙어 7-8가정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적이 증가하였다.
재단담당은 재단담당대로, 부착담당은 부착담당대로, 재료담당은 재료담당대로 마치 체계적인 기술훈련을 받은 조직적인 사람들처럼 손발이 척척 맞아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사랑하며, 협동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추진했다.
농담까지 해가며.
“우리 실력이 약 30년 정도의 노하우(know-how)는 될 정도야. 안 그래?”
“내친 김에 사업체 하나 만들어 뽁뽁이 사업을 시작합시다.”
“어이 재단사! 일을 이 정도밖에 못하겠어? 당장 해고시킬지도 몰라...”
“뽁뽁이 사업 기술은 우리 따라 올 사람 없을 거야.”
“뽁뽁이 기술전수를 위한 학원 하나 차립시다.”
“우리 뽁뽁이 계(契) 하나 만듭시다.”
“내년에는 가을부터 시작합시다.”
“시간당 2천 원짜리 일 치고는 너무 쉬운데.”
봉사활동을 마치고 수혜자 가정을 나올 때 우리는 인사를 한다.
“어르신! 지금 저희들이 뭐 더 할 일이 없나요?”
“어르신! 앞으로 더 시킬 일 있으면 꼭 연락하세요. 즉시 달려오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일을 추진했다.
뽁뽁이 사업은 물론 수혜대상자들의 집 찾는 기술도 날로 발전하여 거의 우체부 아저씨 정도는 될 것이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면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사무실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을 함께 나누며 근로의 참맛을 느끼기도 했다.
목표로 한 가정 수보다 인근 경로당 등 추가 사업까지 추진하며,
15 일에 걸친 기간 동안 당초에 계획했던 목표를 추가로 달성하고 서로 정이 들어 헤어지기가 아쉬워 인근 식당에서 조촐하게 소주 해단식을 했다.
우리는 비록 작은 힘이지만 우리가 희망 청주의 밀알이 될 것과, 여생(餘生)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자고 다짐하고, 이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함께 기도했다.
“수혜자 분들이 모두 마음이 따뜻한 겨울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