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필설로 역설하는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의 ‘통찰과 예견’(생명의 말씀사)을 보면, 그의 비성경적인 교회관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셀프 매니지먼트, 부패를 향해 달리는 자본주의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회적 기관은 비영리 단체이고, 교회는 대표적인 비영리 기관입니다. 체제가 못하는 사회적 자정을 교회가 해줘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 행동(social action)을 해야 하고 사회적인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자임해야 합니다. 건강한 복음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 외국인의 인권,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 자체가 부패하고 붕괴합니다. 사회가 없으면 교회가 어디에 설 수 있겠습니까?(p.15)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성경은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하늘로 들림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 휴거 이후에 지상에 닥칠 전무후무한 대환란에 대해 예언해 놓으셨다.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21절). 이 일은 주님이 공중 재림하시어 교회가 휴거되고 적그리스도가 땅을 통치하는 기간에 일어난다. 이것은 여인의 “산고”로 비유되는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6,7)로서 유대인들이 받는 “고난의 때”(단 12:1)이며, 이 때 지상에 남아 있는 이방인들도 대환란을 함께 겪게 된다. 유대인들에게는 대환란이 그들을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정련 과정”이지만, 그것을 함께 겪는 이방인들에게는 그들의 죄에 대한 땅에서의 심판의 성격을 지닌다. 오목사가 ‘교회가 사회적 행동을 해야 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자임해야 합니다.’라고 한 현 세상 사회의 결말은 7년 대환란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너희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들을 것이라.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이는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겠지만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이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으며,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여러 곳에서 있을 것이니 이 모든 것들이 고통의 시작이니라』(마 24:6-8).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여섯째 봉인을 여실 때, 보라, 큰 지진이 나며 해가 머리털로 짠 천같이 검어지고 달은 피처럼 되었으며, 하늘의 별들이 마치 무화과나무가 강한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듯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같이 말려서 쓸려 가고 모든 산과 섬도 각기 제자리에서 옮겨졌으니』(계 6:12-14). 현 세상 사회는 7년 대환란을 기점으로 하여 그 말미에 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교회라면 주님의 지상재림과 함께 도래할 천년왕국(계 20:1-6)을 바라면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데 온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오정현 목사는 교회를 대표적인 비영리 기관이라고 하였다. 교회에 대해 영리와 비영리를 논하는 것은 교회를 세상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교회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엡 1:22,23),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며(고후 11:2), 세상에서 불러냄을 받은 모임이고(에클레시아; 마 18:17, 고전 14:19,35),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유일하게 인정하시는 하늘에 속한 영적 기관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복음을 통해 거듭나게 하여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십자가가 걸린 교회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정현 목사의 교회관은 ‘사회가 없으면 교회가 어디에 설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에 응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폈듯이, 죄인들의 사회는 대환란으로 들어가고, 교회는 그 이전에 공중으로 들림 받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선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이다(롬 14:10, 고후 5:10). 사회가 성경의 예언대로 사라질 수순을 밟게 되면 교회는 이미 셋째하늘의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 있을 것이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교회(고전 1:2; 10:32)라면 사회가 없어질 것에 대해 조금도 염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건강한 복음주의적 시각’이란 사회적 약자, 외국인의 인권, 여성과 어린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의 징조로 보아 휴거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죄인들을 복음으로 이겨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 마지막 때에 가져야 할 건강한 복음주의적 시각이다.
교회의 사회적 행동, 사회적 책임과 같은 후·무천년주의적 사회복음을 가르칠 때에는 십자가의 피흘린 복음을 통해 죄와 죽음과 심판을 경고하여 죄인들을 구령할 수도 없고, 교회의 휴거와 대환란과 주님의 재림에 대해 설교할 수도 없게 된다. 대환란 후 지상에 천년 동안 있게 될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성경의 8,90%를 믿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관을 갖추지 않으면 지역교회를 성경대로 운영할 수 없다. 그 사역은 하나님께 전혀 인정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