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유대교 혹은 기독교식 우화에 다름 아니다. 필사적으로 희망을 찾아 헤매지만, 구원을 위해서는 무언가 기적이 필요한 그런 시대에 <매트릭스>는 새 천년을 위한 새로운 성서, 또다시 인류를 찾아오는 메시아에 대한 종교적 우화가 되는 셈이다.
- 리드 머서 슈셔드(매리마운트 맨하탄 대학 언론학 교수)
매트릭스2는 퓨전영화
현대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퓨전(Fusion)이란 용어는 어쩌면 매트릭스란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재즈에 록음악이 섞인 복합장르 음악을 일컫는 말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퓨전은 음악뿐만 아니라 각종 무대공연이나 음식 그리고 의상에 이르기까지 전문화적인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만큼 현대문화의 특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한가지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보다는 다양한 것들을 한군데 집어넣어 새로운 형식과 감각을 창출하려는 실험적인 시도로 출발했다. 특히 예술의 경우에 있어서 항상 창작은 새로움과 깊이 관여할 때 그 가치를 인정받곤 했는데 퓨전은 창작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하는 예술가의 현실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이미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되풀이하기 보다는 좀 서툴더라도 이전것과는 다른 것을 생산해내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 속에서 서로 다른 것들의 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일은 귀하게만 여겨지고 것이다. 바로 서로 다른 것의 융합이란 의미에서 퓨전은 비교적 손쉬우면서도 효과만점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퓨전 형식을 이루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간상의 전후(前後)에 있는 것들의 결합일수 있고, 다른 한가지는 공간상의 상이(相異)한 것들의 접합일수 있다. 전통적인 클래식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현대의 팝음악을 함께 공연무대에 올리는 것이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면 인도의 시타악기 연주가와 미국의 재즈뮤지션들이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두 번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매트릭스는 이와 같은 시공간상의 서로 다른 것들이 조목조목 결합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까닭에 가히 퓨전양식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먼저 시각상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동차 추격신으로 대표되는 서양 액션과 주인공 네오가 그를 잡으려는 스미스 일행과 싸울 때 벌이는 현란한 쿵푸동작이 의미하는 동양 액션이 영화 <매트릭스2>의 깊은 인상을 좌우로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무려 14분에 이르는 자동차 추격장면은 극히 서구적이며 할리우드적인 액션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질주할 수 있는 도로여건과 자동차산업의 발달은 근본적으로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새로운 땅을 정복해왔던 미국 문화의 요체인 까닭이다. 아울러 할리우드는 이미 1930, 40년대에 갱스터무비나 서부극에서조차 질주하는 자동차나 말위에서 벌이는 액션이 얼마나 관객들을 긴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손이나 발을 써서 춤추듯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쿵푸동작은 우리가 중국영화에서 익히 보아왔던 것에 다름아니다. 아예 주인공 네오는 중국 스타일의 옷차림으로 나타나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복제된 스미스 요원들을 제압한다. 그때 그때 위기에 몰릴때마다 즉흥적으로 주변의 기구들을 이용하여 싸우는 모습은 성룡이나 이연걸 그리고 그전에 이소룡이 서구인들에게 주었던 가장 동양적인 모습이었다. 아마도 최근에 <와호장룡>이 아카데미시상식에 진입하고 홍콩의 배우와 감독들이 대거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미국 영화계는 중국무술인 쿵푸를 동양인의 전유물에서 끄집어내어 식상한 서구의 액션영화에 변화를 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동양과 서양의 액션은 이제 한 영화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게 된것이다.
매트릭스는 어떤 세계관을 옹호하는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장점은 관객으로 하여금 뭔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데 있다. 이 영화가 액션이나 SF, 그리고 스릴러 등의 여러 장르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 외에 철학적이며 과학적이고 심지어 신학적인 사고가 또한 함께 얽혀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매력이자 뭔가 의미있는 다양한 해석과 시도를 가능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트릭스 2-리로디드>는 전편에 이어서 네오와 그의 동료들이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기계이자 시스템인 매트릭스와 그가 만들어낸 일당과 대결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온다. 매트릭스는 인간 자신의 진실된 삶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환영의 가상세계 속에 몰아넣고 아울러 인간의 생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움직이는 기계를 말한다. 1편과 다른 점이 있다면 화려한 액션이 추가되었고 실제 세계인 시온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등장했다는 정도일 것이다. 매트릭스의 소스가 공개되었지만 예언처럼 그것이 파괴되고 그로인해 인간이 해방되어 자유로운 현실세계를 맞게될런지는 오는 겨울에 개봉될 <매트릭스 3>에서 밝혀질 것이다. 오히려 <메트릭스 2>는 네오가 맡은 인류 구원의 거대한 사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네오와 여성전사인 트리니티와의 사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즉 로맨스라는 장르가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이 때문에 일부 매니아들은 1편에서처럼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에 2편을 그저 다른 영화들처럼 통속적인 영화로 흘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의 제작 스타일을 볼 때 3편에서는 충분히 이 문제가 해결될거라 전망할 수 있다. 영화제작 현장에 철학자를 대동하고 동서양의 사상을 넘나들며 토론하는 감독은 워쇼스키 형제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래도 <메트릭스>를 단순한 오락영화로만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지닌 세계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영화와 가장 근접한 세계관은 기독교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의 설정과 인간의 위기, 그리고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의 출현이란 구도는 성경의 맥과 상당히 유사하다. 메시아의 출현을 예언한 오라클이 등장하고 예수의 사역을 준비한 세례 요한으로서 모피어스가 존재한다. 1편에서 네오를 돕는 ‘탱크’와 ‘도저’형제는 예수님의 12제자중에 형제였던 야고보와 요한을 연상시킬수 있다. 야고보와 요한은 ‘천둥의 아들들’이라 불리웠는데 근대 기계문명에서 탱크나 불도저의 움직임에서 나는 소리나 역할을 볼 때 가히 천둥에 버금갈만하다. 그런가하면 이 영화에는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 유다의 역할로 사이퍼가 존재한다. 사이퍼는 모피어스가 말하는 ‘네오가 바로 그 분(The One)'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어서 배신을 결심하고 말았다. 1편에 나타난 네오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설정에 다다르면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패러디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불교계에서 역시 영화 <매트릭스>를 불교의 철학이 담긴 자신의 영화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비록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오랫동안 기독교 전통이 남아있는 서구문화인 것을 고려하면 그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매트릭스>를 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체인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바로 이 점이야말로 불교가 그토록 주장하는 공(空)의 세계를 가르쳐주는 것이란 해석이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이 세상의 바른 모습이고 사람들은 세상이 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눈에 보이는 세계(色)에 너무 집착해있기 때문이란 것이 <매트릭스>에 대한 불교적 해석이다. 그렇다면 주인공 네오는 불교식으로 접근하자면 당연히 깨달은 자 즉 부처가 되는 셈이다. 대승불교에서 깨달은 자는 어떤 세계도 자신의 의지대로 오갈 수 있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깨달음을 위해 돕는 보살의 도를 실천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해석 차원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1편에서 네오가 오라클을 찾아갔을 때 오라클의 아파트에서 명상수행하는 영화 속 이미지도 이러한 불교적 해석을 가능하도록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 역할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는 독실한 불교 신자로 알려져 있고,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리틀 부타>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 바로 석가모니였다는 점 또한 나름대로 <매트릭스>가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하겠다.
그러면 <매트릭스>를 어떻게 봐야하는가?
첫째, 영화 <매트릭스>는 한가지로만 이해할 수 없는 퓨전영화라 할 수 있다. 즉 중층해석이 가능한 다양한 모티브들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나 불교 그리고 신화나 과학등에서 언급하는 실존의 문제들을 필요에 따라서 다각적으로 빌려다 쓰고 있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매트릭스>의 유명한 대사를 한가지로만 해석할 수 있을까?
“네오, 너무나 현실같은 꿈을 꾸어본 적이 있나? 만약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럴 경우 꿈 속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겠나?”
이 대사는 불교적인 해석의 근거로도 사용될 수 있지만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처럼 나비가 된 장자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난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세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게 만든다. 그런가하면 과학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모피어스가 한말 그대로 우리가 '느끼거나', '냄새 맡거나', '맛을 보거나' '눈으로 보 는' 걸 말한다면 '현실'이란 너의 뇌가 해독(解讀)하는 전기부호일 뿐이란 접근도 허용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매트릭스>는 인간의 고전과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상업적인 영화라 볼 수 있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는 이야기가 필요했고 그 이야기를 인류의 다양한 문화유산에서 찾았던 것이다. 종교가 가진 풍부한 서술양식은 영화 이야기로는 가장 안성맞춤인 까닭이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 여러 종교의 세계관을 혼합하고 있지만 어느 특정 종교가 옳다 혹은 진리다라고 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의 세계관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직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푸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셋째, 그럼에도 <매트릭스>는 관객이라는 수용자의 능동성을 요구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즉 관객이 이 영화를 생각하면서 본다면 얻을게 많다는 뜻이다. 예를들어 인간을 지배하는 기계문명이라는 영화의 오래된 플롯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설 수 있다. 특히 인터넷없이는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오늘날 상황에서 우리가 기계문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또 한가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어도 우리가 세상을 알려면 이 세상안에서는 그 존재의 실체를 알수 없다는 정도는 가르치고 있다고 봐야한다. 가상현실에 불과한 매트릭스 안에 있는한 매트릭스의 실체를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전 우주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시각이다.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 만큼 세상에 대해서 더 잘아는 분은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38:4)
첫댓글 나도 '매트려쓰' 보고 싶당. 비디오 언제 나오냐... 참, 우리집에 비디오플레이어 없지?
전도사님.. 읽을라고 하다 포기했습니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가볍게 보면 안될런지요.;; 시간이 시간인만큼.. 눈에 안들어오네요. 자고 일어나 다시 시도해보겠습니다만...
나름대로, 줄줄줄 내려가며 읽었습니다-_-; 저는 영화 볼 때 워낙에 생각없이 보는 편이라서, '생각하면서 본다면 얻을게 많다'라는 말에 상당한 부담감이 가네요. 오늘도 그냥 생각없이 보려는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