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을 리모델링한 연도가 2006년이다. 13년 정도 지나고 보니 벽지의 색이 퇴색되었다. 그래서 장식 전문업체에 의뢰하여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도배를 하면 어차피 생활 도구를 한 번씩 옮겨야 하므로 이 기회에 오래된 옷장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붙박이장을 새로 설치했다. 이렇게만 해도 집이 새집처럼 변했다. 자녀들의 관심이 높아 다투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안달이다. 환경이 새로워지니 집사람이 흐뭇해한다.
2. 짐을 옮기면서 서가를 정리했다. 교원 생활을 하면서 구입했던 교육학 서적, 논문 작성을 위해 구입했던 서적, 문학서적, 생활 잡지책은 모두 정리했다. 나와 관련된 책 중에 남겨둔 책은 퇴직 후에 공부하고 있는 한문서적과 조상에 대한 기록, 족보, 의례에 관한 책이다. 책꽂이에 남겨진 대부분 서적은 딸의 책이다.
상패, 상장, 앨범은 몇 년 더 두었다가 정리할 예정이다.
3. 내가 양산 중부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할 무렵 서남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할 때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께서 기념으로 만들어 준 앨범 ‘보고 또 보고’를 발견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옛일이 머릿속에 스쳤다. 나도 모르게 옛 시절이 회상되었다.
서남초등학교 선생님들과의 일화는 지금도 양산교육청 관내 가십거리로 회자된다고 한다.
내가 양산관내 교감으로 발령 받아 갔을 무렵 양산시의 교원조직은 젊었다. 교사들의 경력이 일천한 관계로 교육연구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인사가 별로 없었다. 교사들이 연구를 수행하고 싶은 갈망이 있어도 도움을 받을 만한 인사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 무렵에 내가 서남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아 갔던 것이다.
그 당시는 열린교육이 교육현장에 처음 도입되던 때였다. 정책당국에서는 열린교육을 교육현장에 적용한 내용을 일반화 시키는 방안의 하나로 제1회 전국 열린교육 연구대회 연구 논문 공모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9월 달에 교감으로 발령받아 갔는데 이듬해 3월 교원 정기 인사이동 때에 계획서 입선한 선생님 세분이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전근해 왔다.
교육청 장학사로 부터 연구를 수행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이동해 온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지도하여 세분 모두 전국대회에서 입선했다.
경남에서 입선한 교사가 총 5명뿐이었는데 그 중에서 우리학교에서 3명이 입선을 한 것이다. 등급은 전국 1등급 1명, 전국 3등급 2명이다.
그 당시 서남초등학교 교원조직은 정말 역동적이었다. 교감 4년 동안 도시범학교 1년, 도연구학교 2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각종 연구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과도 거두었다. 내가 부임한 이듬해 교사 34명 중에서 15명의 교사가 도교육감 이상을 수상했고, 3년차에는 28명의 교사가, 4년차에는 20명의 교사가 상을 받았다.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양산시 교육청 관내의 교육연구 풍토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후일담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그때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 대부분이 승진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 함께 했던 선생님들께서 내가 교장으로 발령 받아 간 후에 회갑연도에는 회갑 잔치를 마련해 주었고, 또 정년퇴임 때는 퇴임 축하연의 자리도 별도로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그때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앨범을 만들어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첫댓글 한 생애서 자기가 살아온 분야에 함께한 분들로 부터 ( 서남 교육가족들) 존경과 찬사를 받을 만큼 인생을 휼륭하게 사신 모습 너무 아름답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친구 김상민 교장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면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스승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