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재(宋光材)
[생졸년] 1636년(인조 14)~1705년(숙종 31) / 향년 6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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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송후 묘갈명(郡守宋矦墓碣銘)
사또의 휘는 광재(光材), 자는 자수(子秀)이며 은진(恩津) 사람으로 대대로 회천(懷川,회덕)에 살았다. 부친 흥길(興吉)은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를 지냈고, 조부 윤창(胤昌)은 군수 휘 응서(應瑞)의 서자이다. 군수공은 동춘(同春, 송준길) 선생의 조부이다.
윤창은 족부 첨지중추부사 황생(黃生)의 후사로 출계하였다. 첨지중추부사의 부친은 세경(世勁), 조부는 여림(汝霖)으로 모두 군수를 지냈다. 두 집안은 모두 쌍청당(雙淸堂) 유(愉)의 후손이다. 외조는 진주(晉州) 유흥룡(柳興龍)이니, 학문과 행실로 고을에 이름났으며 감찰에 추증되었다.
사또는 젊어서 글을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병진년(丙辰年,1676, 숙종 2) 무과에 급제하였다. 어영청 장관을 거쳐 발포 만호(鉢浦萬戶)에 임명되고, 뒤에 어유간 첨사(魚游澗僉使)가 되었다. 병으로 체직되었다가 절충장군에 올라 두 차례 충익위장을 지내고 첨지중추부사로 옮겼다.
기장 현감(機張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기 전에 또 희천 군수(煕川郡守)에 임명되어 한 해 남짓 있다가 파직되어 돌아왔다. 나이 70세 되던 을유년(1705) 4월 13일 집에서 세상을 떠나 같은 현 통정공 묘소 아래 해좌(亥坐)의 언덕에 장사 지냈다.
부인 부안 김씨(扶安金氏)는 별장 후열(後說)의 딸로, 이웃과 친척이 어질다고 칭찬했다. 13년 먼저 세상을 떠나 사또와 함께 부장하였다. 3남을 두었으니 병우(炳宇), 병주(炳宙), 병한(炳翰)이고, 딸은 김명우(金命祐), 박성(朴檉), 조경하(趙擎廈), 나재륜(羅再倫), 조귀하(趙龜河)의 아내가 되었다.
첨추공에게는 빼어난 원림이 있어 질탕하게 거문고와 술을 즐겨 호탕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통정공의 풍모 역시 남달랐기에 동계(桐溪) 정온(鄭蘊) 공이 한 번 보고서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 일컬었다. 사또는 옛 못과 대를 다시 수선하여 어버이가 말년에 즐겁게 지내도록 하니, 통정공이 몹시 편안히 여겼다.
사또는 비록 무예를 일삼았으나 어려서부터 선생의 문하에서 훈도를 받아 집안에서의 행실에 볼 만한 점이 많았다. 일을 할 적에는 꾸밈이 적었으며 분수를 넘지도 않았다. 관직을 맡아서는 권세에 굴복하거나 이익에 유혹되지 않았다. 또 도를 어기며 명예를 구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았기에 관직이 현달하지 못했다.
나는 사또가 노년이 되어서야 만나보았는데 호탕한 기운이 쇠하지 않았으니 강직하고 의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병한의 아들 요제(堯濟)가 부친과 백부의 말 때문에 찾아와 명을 청하기에 내가 사양하지 못하고 명을 짓는다.
아, 송 사또여 / 嗟宋矦兮
이곳에서 나고 늙어 / 生老於是
이곳에서 죽고 묻혔네 / 死葬於是
명을 지은 자 누구인가 / 誰其銘者
동춘 선생의 / 同春先生
외손의 아들이라네 / 外孫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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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군수 송후 묘갈 :
이 글은 송광재(宋光材)의 묘갈명이다. 송광재의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수(子秀)이다. 1636년(인조 14) 태어나 1705년(숙종
31) 4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주02] 동춘 …… 아들이라네 :
저자의 모친 여흥 민씨(驪興閔氏)가 송준길의 외손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권진옥 이승용 (공역) |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