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섬길 도로를 달리다 우연히 김취려 장군 이정표가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없죠!!!
언양김씨는 신라왕족의 후예인 경순왕의 일곱 번째 아들인 김선(金鐥)을 시조로 한다.
김선은 고려 태조 왕건의 외손이기도 하며 고려때 언양군에
명해져 본관을 언양으로 하게 되었다.
김취려(金就礪)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언양(彦陽).
아버지는 예부시랑을 지낸 부(富)입니다.
음서(蔭敍)로 정위(正衛)가 되어 동궁위(東宮衛)에 배속되었으며, 이후 장군이 되어 동북계를 맡아 지켰고 대장군에 발탁되었다.
몽골족의 세력확대로 금나라가 쇠퇴하자 금나라의 지배를 받던 거란인들이 반기를 들어 자립했는데, 이들 또한 몽골병에 쫓겨 1216년 고려의 북방지역으로 밀려들어왔다.
이때 그는 대장군으로 후군병마사가 되어 조양진(朝陽鎭)에서 거란군을 물리쳤으며, 연주(延州)에서는 앞장서서 적군의 포위를 돌파하여 거란군 2천4백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1217년 거란군 5천여 명이 다시 남으로 내려오자 상장군으로 전군병마사에 임명되어 거란군사를 명주(溟州, 강릉) 방면으로 패주시켰고,
1218년 거란이 또다시 침입하자 병마사가 되어 서북면 원수 조충(趙沖)과 함께 적을 강동성(江東城)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거란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고려의 동북면 지방으로 남하해 온 몽골·동진 연합군의 공동작전 제의로 이들과 힘을 합쳐 강동성을 함락시켰다.
또한 1219년 의주별장 한순(韓恂)과 낭장 다지(多智) 등의 반란을 이극서(李克偦)·이적유(李迪儒)와 함께 평정하는 등의 공적을 인정받고 계속 승진,
1228년에는 수태위 중서시랑평장사 판병부사(守太尉中書侍郞平章事判兵部事)가 되었으며 그 뒤 시중에 제수되었다.
고종(高宗)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위열(威烈)이다.
김취려(金就礪)[1172~1234]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서 태어났다.
김취려(金就礪, 1172년 ~ 1234년)는 고려중기의 무신, 장군으로, 고려의 서북면을 침략한 거란족을 격퇴하였으며 관직은 판병부사 시중에 이르렀다.
시호는 위열(威烈), 본관은 언양(彦陽)이다.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지낸 김부(金富)의 아들이며,
충렬왕과 충선왕의 후궁인 숙창원비의 할아버지이다.
김천일 장군의 부인 김씨는 김해김씨 시중공 휘 탁의 6세손 위원군수 효량의 둘째 따님
첫댓글 이 비석에도 '유명조선'이란 말이 있구먼! 有明朝鮮: 명나라가 있고 조선이 있다
옛 비석에는 거의 (유명조선:有明朝鮮)이 관용구처럼 붙어있습니다. 정조대왕이 직접 쓴 은신군 묘비에도 유명조선이라고 썼어요...
조선을 뒤 흔든 세조왕도 1424년 명나라 3대 永樂帝가 죽자 27동안 정사도 돌보지 않고 소복을 입고 식음을 전폐한채 위폐를 떠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