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간다면 뚜렷한 목적과 세밀한 계획을 세워 떠나야 하나 항상 발길닿는대로 시간이 허락하는대로만 다니니 큰 부담이 없긴하나 엉성한 여행을 다니며 후회를 한다.
선교장에서도 이것저것 이뿐 것만 눈에 보이면 모두 찍을려고 덤비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목적은 흐려진다.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하여 등산도 취소 되었건만 비는 오지않고 엄청 무덥기만하여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 내기에 바쁘고 옷은 험뻑 젖고 말았다.
먹물버섯을 만났다.
버섯이 솟아 나오고 몇시간 지나지 않아 먹물을 흘리고 추하게 사그라지고 소멸해 간다.
우리 생도 이 버섯같이 금방 이렇게 사라지고마는 것 같다.
짙은 색을 자랑하는 애기주홍나비 한마리가 예쁜 자태를 뽐내며 멋진 쇼를 벌이다 날아갔다.
이 녀석이 아무리 예쁘다 한들 몇일이나 살다가 갈 것인가.
자기네 여왕개미가 죽음을 맞이했는지 아니면 종류가 다른 개미인지 작은 녀석들이 힘들게 끌고 가고 있다.
자기네 여왕개미면 멀리에 내다 버릴 것 같고 종류가 다른 녀석들이라면 먹이로 삼을 것 같다.
언제나 사람의 잣대로만 평가를 하여 해석하고 호불호와 선악을 가리며 구분지어 결론을 내리지만 이런 녀석들도 나름 즐거움과 규율과 생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친구가 배고파 죽겠다니 죽기전에 빨리 점심을 해결하러...
친구의 단골이 있다는 주문진 시장안으로 들어왔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가 제격일테고 언제나 경치가 좋은 곳이면 비싼 게 다반사니 시장안으로 들어와서 푸짐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놀부네 아부지 심보가 발동하여 사진 찍기 싫다는 것도 억지로 찍고 음식을 주문하고 나니 긴장이 풀어지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며 곡차 생각이 간절해진다.
운전사는 절대 금주니 한잔만 맛배기로 주고 싱싱한 회와 매운탕까지 곁드려 곡차 두병을 혼자서 후딱 해치우고 나니 포만감이 들고 세상이 모두 내 것이 되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고 갈길이 바쁘지만 고급 운전사가 있으니 운전은 나와는 상관이 없고 걱정도 없다.ㅋㅋㅋ
차안에 들어오니 엄청 시원하고 좋다. 강릉 지방은 몹시 가물었는지 개울은 말라서 바닥이 드러났고 갈라져 있으니 비가 시원스럽게 내렸으면 좋겠다.
달리는 차안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멀리 비탈이 심한 밭에서 고냉지 배추를 심고 있다.
강원도가 대단히 넓은지 이곳에는 비가 많이 온 모양이고 황토밭이 너무 질퍽거리고 발이 빠지며 흙이 신발이 달라붙고 걷기가 힘들다.
이밭 한뙈기가 삼만제곱미터가 넘는다하고 경사가 심한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하루종일 배추를 심을려면 얼마나 많은 고통이 따를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 두어시간만 배추 모종을 심고 나면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고 무릎 관절이 잘 펴지지도 않으며 밤이 되면 온 만신이 욱신거리며 통증이 심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이렇게 청춘을 보내고 나면 늙어서 다리가 모두 휘어져서 팔자 걸음을 걷게 되며 종국에는 허리까지 휘어지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한낮의 무더위와는 달리 바람이 심하게 불어 우의가 날아갈듯이 펄럭이며 비까지 후둑후둑 떨어지니 시원해서 좋기는 하다만 허리를 굽혀 모종을 내는 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꼬.
이곳의 주인인듯해서 다가가 물어 보았더니 요즘은 농사를 짓는 방법과 풍습과 많이 달라졌단다.
이 밭의 주인은 따로 있으며 자신은 도회지에서 인력을 수급하여 미니버스에 태우고 와서 심어주는 일을 하고 배추의 주인은 농산물상이며 다른 곳에 있다고 한다.
배추한포기를 생산하자면 분업이 되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다.
우선 종묘를 생산하는 분들이 있을테고 밭의 주인이 있고 이걸 밭뙈기로 불하받는 상인이 있고 이분같이 인력을 수급하여 밭에 비닐을 씌우고 모종을 내는 분과 때맞추어 농약을 치고 비료를 주어 가꾸는 분과 나중에 수확을 하며 상하차를 돕는 일과 큰 카고트럭으로 운반하는 일로 분업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농수산물 직거래를 위하여 농민 한사람이 직접 모종도 가꾸고 그 모종을 밭에다 내다 심고 농약과 비료를 주고 배추가 커가면 알이 차게 묶어주고 수확시기가 되면 농민 혼자서 배추를 뽑아다가 큰 대형카고 트럭을 싣고 손수 운전까지 해서 도회지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배추사라고 외처서 직거래를 한다면 도시의 서민들이 시세의 반값 이하로 사먹을 수가 있고 농민도 이득이 클 것 같지만 농사를 반도 못짓고 과로로 숨을 거두고 말겠다.
더 나아가서 농민들이 도회지에 가서 가가호호 다니며 사람들의 입맛까지 정확히 체크하여 김치까지 담구어 판매하면 더 많은 이익이 창출될텐데...
공무원과 언론인은 이런 것은 모르나 보다.
이런 과정중에서 상인들만이 가만히 앉아서 큰 이득을 챙기는 나쁜 부류로 여기는 공무원과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지켜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다.
상인들도 틈틈이 자신이 사놓은 밭에 나와서 감독을 하며 배추가 과잉 생산되었다면 가격이 폭락하여 고스란히 손해를 보고 밭을 갈아 엎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지게는 어디에서나 참으로 유용한 것 같다.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이런 고달픈 멍애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누군가 지속해야 할 수밖에 없다.
모종과 사람을 싣고 온차가 길가에 서있다.
왜? 버스가 이런 곳에 서있나 했었는데 이제야 도시의 서민들이 하루벌이를 위해서 고생하러 온 것임을 알았다.
모두가 힘들고 고달픈 생활이다.
대파밭이 잘 가꾸어져 있으니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은 소도시 서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피땀이 우리들의 먹거리가 되는 걸 의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