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연장전’ 6.1 지방선거, ‘윤심-이심’ 마케팅 치열
- 野 지선 승리로 여소야대 돌파…與 대선 후유증 극복 절실
- 국힘 경기지사 후보에 김은혜 낙점…민주 ‘李心’ 경쟁 돌입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6.1 지방선거가 40여 일 남은 가운데, 여야 대진표에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대리전 성격이 강해 3.9 대선의 연장전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평이다. 이에 여야 예비후보들은 소위 ‘윤심(尹心)’, ‘이심(李心)’ 마케팅을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시장에 출마한 자신의 최측근을 공개 지지하는 등 ‘박심(朴心)’도 광역단체장 선거판을 뒤흔들 변수로 떠올랐다. 이렇듯 지방선거를 둘러싼 ‘복심 정치’에 여야 곳곳에선 공천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특히 경기도는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여야가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지점인 만큼 공천 수 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이 때문에 일각에선 지방 자치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 이벤트가 지나치게 중앙 정치에 잠식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이 바라보는 지방선거의 무게감은 상당하다. 이번 지선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에게 각각 보수정권 연착륙, 정치 재기의 발판이 될 수 있는 만큼 양당 모두가 사활을 건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유독 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권주자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정권교체 후 ‘정국 주도권’을 노리는 여야의 이해관계와 각당의 역학구도가 맞물린 탓이다. 대선이 끝나고 3달 뒤 치러지는 6.1 지방선거에는 초박빙 승부를 펼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이재명 상임고문의 잔상이 녹아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극적 정권교체를 이룬 윤 당선인을 전면에 내세운 한편, 민주당은 대선에서 졌지만 선 굵은 존재감을 남긴 이 고문을 명패로 내건 모양새다.
예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해야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지선 승리는 윤석열 초기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윤석열 정권에서 172석 민주당이 버티고 있는 국회의 벽을 넘으려면 지방행정권 쟁취로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며 “제도권 정치와 맞닿은 서울, 경기가 아무래도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 부각을 막으려면 지선 승리는 필수”라고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그는 ‘윤심’이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윤석열 정권이 출범을 앞두고 있다. 아무래도 새 정부와 궤를 함께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른바 윤 당선인의 측근들이 지선 공천에서 힘을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라고 설명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번 지선 승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와 집권여당의 초반 기세를 꺾어야 하는 입장이다. 압도적 국회 의석수에 더해 지방행정 권력까지 거머쥐며 ‘야당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복안이다. 무엇보다 지난 대선 패배로 민주당은 리더십 공백과 그에 따른 계파 분화, 명분 상실 등으로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 모든 난맥상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지방선거 승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대선에서 패했지만 이재명이라는 ‘정치 자산’을 남겼다고 자평한다. 이렇다 보니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는 이 고문을 소환시키며 지선 국면을 돌파하려는 모습이다. 3.9 대선을 초박빙으로 이끌었던 ‘명풍(明風)’을 지방선거까지 이어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이재명 마케팅’은 당내 권력구도와도 무관치 않다. 문재인 정권에서 민주당은 친문(친문재인)과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 주류였으나,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당권 전환 기류가 거세다. 이른바 ‘친이재명계’가 신주류로 급부상하면서, 경기도 등 지방선거 주요 격전지 경선에서도 ‘이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안민석·조정식 의원 등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들은 저마다 ‘이재명 지킴이’, ‘이재명표 도정(道政) 승계자’를 자처하는 등 이 고문과의 접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낸 송영길 전 대표도 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 배제’ 결정을 “이재명의 정치복귀를 반대하는 선제타격”으로 규정하며 ‘이심’으로 컷오프 백지화를 호소했다.
민주당 비대위 관계자는 “특히 경기도는 이재명 전 지사의 정치적 기반이자 고향”이라며 “분명 이번 지선이 (민주당에게) 어려운 선거임은 분명하다. 다만 경기도만큼은 이재명 지사가 거쳐 간 자리인 만큼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윤심(尹心)’에 요동치는 국민의힘 지선 공천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은 ‘윤심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지점이다. 경기도는 2018년 지방선거와 3.9 대선에서 국민의힘에 패배를 안겨준 열세 지역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으로선 반드시 6.1 지방선거 승리로 탈환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국민의힘은 당장 경기도에 연고가 없지만 인지도와 중도 소구력을 갖춘 유승민 전 의원을 내세웠다.
이런 와중에 김은혜 의원(초선·성남 분당갑)이 지난 6일 당선인 대변인 직을 내려놓으며 급기야 경기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과 동시에 윤 당선인의 입이 됐던 김 의원은 초선 정치인임에도 6.1 지방선거의 주 무대인 경기지사 도전에 나선 것. 당내에선 이미 ‘신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등 윤심에 가장 근접한 인사로 꼽히며 경기지사 유력 후보로 하마평이 돌았다. 지난 22일 당내 경선 끝에 ‘초선’ 김 의원이 ‘4선 대권주자’ 유 전 지사를 꺾고 국민의힘 경기지사로 낙점된 대파란은 결국 ‘윤심의 승리’라는 평가다. 이날 국민의힘 경기지사 경선에서 김 의원은 52.67%(현역 의원 감산점 5% 반영)를 얻어 유 전 의원(44.56%)을 꺾고 공천을 거머쥐었다.
‘윤심’의 파장은 충남도지사 선거까지 뻗쳤다. 지난 5일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던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은 원내대표 출사표를 거둬들였다. 대신 ‘윤핵관 맏형’ 권성동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당시 윤 당선인이 직접 김 의원에게 충남지사 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지난 21일 국민의힘 충남지사 후보로 공천됐다.
윤 당선인 측은 ‘윤심’ 논란과 관련해 “언론의 해석에 불과하다”며 지방선거 출마자들 본인의 결단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으로선 가뜩이나 여소야대 국회 열세 국면에서 지선까지 참패할 경우 초기 정부의 국정 동력을 상실할 수 있는 만큼, 선거전 비공식 개입이 불가피했다는 평가다.
민주당, ‘이재명’ 깃발 걸고 선거전 돌입
민주당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복심 정치’에 몰두한 모습이다. 민주당은 대선 이후 칩거 모드에 들어간 이재명 상임고문을 여전히 ‘상징적 리더’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거물급 인사가 부재한 가운데, ‘이심(李心)’을 부각시키며 경선 흥행과 지선 승리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고문은 직·간접적으로 당내 경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시장의 경우 송영길 전 대표와 박주민 의원이 당 공관위의 컷오프 결정으로 지방선거 출마가 좌초될 뻔 했으나, 지난 21일 중앙일보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이 고문이 직접 비대위원 등 지도부에 연락을 취해 이들의 경선 참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민주당 비대위는 고심 끝에 지난 21일 송 전 대표와 박 의원에 대한 공관위의 경선 컷오프 결정을 뒤집었다. 이 고문은 공관위가 송 전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키로 결정한 직후 시점인 지난 19일 밤부터 비대위원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장문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는 게 민주당 비대위 측 전언이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0.73%P 차로 석패했지만 경기도에선 5.32%P 차로 승리를 거둔 만큼, 다가오는 지선에서도 ‘이재명 마케팅’이 유효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경기도는 이 전 지사가 지반을 탄탄히 다져둔 곳”이라며 “당원 50%, 여론조사 50%로 진행되기 때문에 이심을 얻는 후보가 공천될 공산이 크다. 특히 경기도 민심은 곧 ‘이심’으로 직결되는 측면도 있어 특히 (이 전 지사의) 영향력이 막강한 선거구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이 고문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도 광역단체장 선거에 출사표를 낸 민주당 예비후보들도 ‘이재명 후임자’를 자처하며 이심 경쟁에 나섰다.
현재 민주당 경기지사 경선은 안민석·조정식 민주당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염태영 전 수원시장 등 4파전으로 압축된 상태다. 안민석·조정식 의원은 출마선언 등을 통해 저마다 ‘이재명 지키미’, ‘이재명의 찐동지’라며 이재명표 경기 도정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들은 이 고문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8월 전당대회 출마를 권하는 등 이 고문을 향해 적극적인 구애의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민주당으로 합류한 김 전 부총리(전 새로운물결 대표)도 이 고문이 경기지사 시절 이룬 정치적 성과의 계승·발전을 약속한 한편, 지난 대선 당시 이 고문과 약속했던 정치개혁 의제도 띄우고 있다.
박심(朴心)에 ‘보수 심장’ 대구 선거판도 혼전
‘윤심·이심’과 함께 ‘박심(朴心)’도 지방선거를 뒤흔든 또 하나의 축이다.
대구시장 선거는 6.1 지방선거에서 서울·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선거구로 분류됐다. ‘보수의 심장’ 대구가 국민의힘의 전통 표밭이다 보니 보수진영 후보의 본선 압승이 예견된 까닭이다. 당초 ‘하방(下放)’을 선언한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이 당내 경선을 주도할 것이란 관측도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사면된 전직 대통령의 등장에 ‘홍준표 독주체제’로 예상됐던 대구시장 선거 판세에도 균열이 생겼다. 대구 달성군 사저로 복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근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물심양면 보좌한 유영하 변호사를 대구시장으로 뽑아달라는 정치 메시지를 냈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유 변호사의 후원회장을 맡은 것도 박 전 대통령이다. 이에 지역 정가가 술렁이면서 유 변호사가 일약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이런 가운데 홍 의원은 즉각 반발 메시지를 냈고, 친박계 출신인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박심’을 접점으로 유 변호사에게 후보 단일화를 제의했으나 결렬됐다.
정치권에선 대구시장 선거의 핵심 변수로 지목되는 ‘박심’을 주목했다. 정치인으로선 타이틀이 전무한 ‘박근혜 복심’ 유 변호사의 등판에 홍 의원의 ‘낙승’에 돌발 변수가 생겼지만, 친박 후보들의 단일화 무산에 홍 의원의 강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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