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국면 못지않은 위기
김선일씨의 피랍-살해 사건은 여러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의혹들은 미국의 요청(강압)에 따른 한국의 이라크 파병(간접적으로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북핵문제)이라는 국가의 중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인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견해, 그리고 타자와 민족에 대한 입장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기로에 선 한미동맹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어쩌면 파병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태는 얼마 전의 탄핵국면 못지않은 위기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태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우고 그 위기 국면에 지혜롭게 대처하면 한미동맹의 일방적 예속관계를 상당히 교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두 번 죽임을 당한 김선일씨에 대한 국민적 애도
김선일씨 피랍-살해 사건이 한국인들에게 왜 이렇게 큰 충격과 비감을 안겨주었는지 한번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죽음의 경위가 어떻든 김선일씨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고 처참하기 때문에 동포로서 측은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원에 진학할 학비를 벌기 위해 전쟁터나 다름없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도급업체인 가나무역 직원으로 일하다가 불행하게도 이라크 저항세력들 가운데 가장 과격한 알 자르카위(Al-Zarkawi) 그룹에 납치되어 20일 이상 감금되었다가 참수당했으니 그 안타까운 사연에 어찌 비통하지 않으랴.
하지만 김선일씨의 죽음에 국민들이 애도의 감정과 더불어 엄청난 울분을 쏟아낸 것은 무엇보다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노무현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대응 때문이다. 추가파병 결정을 선언한 정부로서는 이 사건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하는 바이지만, 24시간의 말미를 받아놓고 대통령,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그리고 외교통상부 장관이 연달아 추가파병 결정 재확인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김씨를 얼른 죽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추가파병 결정을 철회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알 자르카위의 반감을 촉발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응했어야 하는데, 정부 당국자들은 협상 전에 이미 김씨를 포기한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김선일씨를 죽인 것은 알 카르자위 집단이지만 노무현 정부 역시 김씨의 죽음을 방관하다시피함으로써 그 죽음에 동조했다. 김씨는 두 번 죽임을 당한 격이다. 국민들의 절절한 애도는 두 번 죽은 김씨의 억울한 사연 때문이며,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일 것이다.
김선일씨 사건은 한국의 9ㆍ11
어떤 면에서 김선일씨 사건은 한국의 9ㆍ11이다. 비록 소규모이지만 하나의 국민적 비극을 통해 타자와 타민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시험받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국의 경우 부시 행정부의 매파세력은 9ㆍ11로 말미암은 국민적 애도감을 편협한 애국심으로 전화하여 타민족을 침략하는 받침대로 사용했다.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 국민들의 애도와 분노가 편협한 애국심으로 전화될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싸이버 공간에서 국군의 전투력을 증강하여 김선일씨를 죽인 테러리스트 집단을 응징ㆍ보복하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었고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일부 있는 듯하다. 또 노무현 정부의 일각에서도 한국군의 안전을 위해 전투력을 보강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의 반응은 미국의 9ㆍ11의 경우와 달리 이라크인들한테 보복하자는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번의 국민적 애도와 분노가 타자와 타민족에 대한 포용으로 나아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 김선일씨의 잔혹한 피살에 흥분하여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하고 보복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김선일씨의 비극과 같은 것을 매일 당하고 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김선일씨의 죽음에만 광분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반응이 균형잡힌 것인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규탄하듯 알 자르카위의 납치 및 살해가 천인공노할 '반인륜적'인 행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의해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들이 하루에도 몇번이나 일어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미국을,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교도소의 이라크 포로에게 온갖 고문과 수치를 안겨주고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을 대수롭지 않게 죽이는 미군을 돕기 위해 미국, 영국 다음으로 큰 규모의 병력(3000명)을 증파할 예정인 것이다.
미국의 반인륜적 행위들
미국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행위를 일삼는지 예를 들어보자. 김선일씨뿐 아니라 미국인도 참수한 알 자르카위를 살해하기 위해 미국은 두 차례에 걸쳐 표적공격을 감행했다. 자르카위가 이라크의 민가에 숨어있다는 첩보에 의거해 전투기로 무자비한 공격을 단행했는데, 두 번 다 알 자르카위를 잡는 데는 실패하고 무고한 이라크 민간인들만 10명 이상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
이런 표적공격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지도자를 죽이는 방식에서 배워온 것인데, 당하는 민간인들 입장에서 이것은 정말 테러 중에서도 테러인 것이다. 이 민간인 피해자들은 미국의 군사용어에 따르면 'collateral damage'(부수적인 피해)에 불과하다. 공격을 명령한 사람들은 이라크인들의 이런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라크 민간인의 목숨은 별 것 아니니까 표적공격이 자르카위를 잡지 못하고 애꿎은 민간인들만 죽여도 손해볼 거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인이 살해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런 공격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인의 이런 표적공격은 인종주의적 발상에 의거한 테러이며, 그 잔인함이 알 자르카위의 테러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강자(점령군)가 약자(피점령국 시민)에게 가하는 것인 만큼 더욱 가증스럽다.
김선일씨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상한 애도는 정부의 잘못된 파병정책과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하지만 김선일씨의 죽음을 파병과 관련된 한국의 정치적 문맥에서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비극이라는 문맥 속에서 바라볼 때 우리의 애도는 좀더 뜻깊은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2002 월드컵과 촛불시위를 통해 '열린 광장의 민족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사태는 우리의 태도가 타자나 타민족에 진정으로 열려있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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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에 전쟁이 없고 평화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루는것 보다는 이락에 파병하여 이락 건설을 돕는것도 국익에 도움이 된다.
오늘,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님이 그러더군요. 손자가 이번에 지원을 해서 가게 됐는데, 나라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나라의 일이라니...' 그냥 한숨만 나오던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