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청주는 자연재해와 거리가 먼 도시라 생각했는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이렇게 많은 비는 처음입니다"
16일 오전 청주에는 290㎜의 폭우가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린 것은 1995년 8월(293㎜) 이후 22년 만이다.
시간당 최고 90㎜가 넘는 폭우에 시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청주시 도심의 석남천이 범람하면서 인근 흥덕구 복대동과 비하동 일대는 일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오후 1시께 빗줄기가 잦아들자 석남천 주변 곳곳에서 수마가 휩쓸고 간 흔적이 드러났다.
범람한 하천수가 일순간에 쏠린 서청주다리 옆 둑에는 전에 없던 흙 절벽이 생겨났다.
또 반대편에는 무너져 내린 하천 둑에 굴삭기 1대가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다행히 비가 그치고 석남천 수위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다리 아래로 여전히 굉음을 내며 빠르게 흘러가는 흙탕물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토사가 잔뜩 쌓인 도로 위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집중호우가 작동을 멈춘 신호등에 도로 위 배수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도로가 물에 잠겼을 때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멈춰선 차량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직장인 김모(38)씨는 "출근을 위해 오전 8시 30분께 서청주교 사거리로 나섰다가 차량 바퀴가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올라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 건물들은 침수 피해가 컸다.
서청주교 사거리에 있는 대형마트는 1층 매장이 침수돼 이날 영업을 접고, 매장 직원 상당수가 배수 작업에 진땀을 뺐다.
이 대형마트에 입점한 한 매장 관계자는 "아침에 영업 준비를 하다 말고 매장 안으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와 깜짝 놀랐다"며 "침수 때문에 제품 훼손은 물론 휴일 매출 손실도 상당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의 한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은 물론 엘리베이터까지 물이 차올라 입주민들이 한때 고립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주부 박모(32)씨는 "감기에 걸린 애가 열이 나는데 병원도 못 가고 오전 내내 해열제로 버텨야 했다"며 "만약 위급한 상황이라도 생겼으면 어쩔 뻔했느냐"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침수는 정전과 단수 피해로도 이어졌다.
하천 주변 상수도관이 파손되면서 복대동 일대 일부가 단수됐는데, 이날 오후 5시께나 복구가 이뤄질 것이라는 청주시 관계자의 말에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또 일부 아파트는 일시적인 정전으로 상수도 펌프가 고장 나 단수가 발생, 큰 불편을 겪었다.
청주의 이번 집중호우 피해가 복대동 일대에 집중된 이유는 지형적 이유가 가장 크다.
지방하천인 석남천은 미호천으로 이어진다.
석남천의 중상류 유역은 유속이 빠른 반면 미호천과 합류하는 곳은 유로가 넓어 유속이 늦다.
이 때문에 석남천은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모양을 만들게 되는데, 하류 지역의 수위에 따라 범람이 잦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이번 집중호우 때도 홍수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미호천 수위가 올라가자 석남천의 배수로가 꽉 막혀 지대가 낮은 복대동 일대에서 결국 하천수가 범람했다는 게 청주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주민들은 더 큰 피해가 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수해 방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복대동 주민 이모(45)씨는 "이날 하루 받은 재난 문자메시지가 14통이나 되는데, 말 그대로 공포의 휴일 아침이었다"며 "이번에는 다행히 큰 인명피해가 없었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가 잦아진 만큼 시민 안전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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