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비밀(후속편)
2026.8.16. 주일오전예배
가물었던 이 땅에 지난밤 천금과 같은 단비가 내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보슬비가 내리고 있지만 오늘, 내일 사이에 더 온다고 하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렇지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는 지난번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나눴던 말씀을 잠깐 되새겨 보면 임마누엘, 인자의 머리 둘 곳, 겨자씨 믿음, 오후 다섯 시에 온 품꾼 마지막으로 작은 일에 충성된 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은 그 후속편으로 마태복음에서 네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가까운 천국
사람들 눈에는 세상이 보이고 천국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3장과 4장에 보면 세례요한 그리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의 첫 번째 주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회개는 소극적으로는 죄악 된 생활에서 돌이키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는 사랑하는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께 속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 사랑하는 삶이라고 말씀할 수 있겠지요. 우리 몸도 그렇지만 영혼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은 주님께 돌아와서 회복하는 속도도 빠른 것 같습니다. 주님께 돌아오면 가까운 천국인 것을... 주님을 가까이 하면 천국도 가깝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대해서 무딘 마음, 주님을 멀리하다 보면 세상이 가깝고 내 존재가 가깝고 천국은 아련하게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전투를 치를 때 하나님이 설정하신 그들의 근거지는 요단 건너 길갈이었습니다. 전투 과정에서 승리할 때도 있었지만 패배할 때도 있었지요. 우리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이기는 삶도 있지만 어떨 때는 주님께 죄송한 삶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취할 자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길갈로 속히 돌아오는 것입니다. 거기서 내 마음을 씻고, 새롭게 주님을 붙잡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또 새롭게 산 길로 출발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의 천국을 맛보는 길이라 말씀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누가복음 15장에 둘째 아들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으로 작정했을 때 그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은 먼 마음이었을까요? 그에게는 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지만 아버지의 그 자비하심이 더 크게 보였습니다. 아버지 집이 마음으로부터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아버지도 알아주셨습니다. 주님을 마음으로부터 가까이하시면서 천국이 늘 가깝기를 바랍니다.
둘째, 밭에 감추인 보화
마태복음 13장 44절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전 재산을 팔아서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천국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이시지요. 지난 주간에 안ㅇㅇ 권사님의 사모님 되시는 성ㅇㅇ 집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장례 예배가 참 은혜로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고해 주신 목사님과 식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아드님으로부터 부모님의 신앙 간증을 전해 들었습니다. 안ㅇㅇ 권사님이 선친으로부터 유산으로 이어 받은 생활의 근거가 되는 이발소를 가지고 있었는데 잘 아는 시골교회의 건축 헌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 이발소를 팔고 전체 금액을 시골교회의 헌금으로 드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ㅇㅇ 사모님은 자신과 의논하지 않고 그 일을 처리하신 권사님께 화가 났겠지요. 얼마 후에 그 시골교회 목사님이 이분들의 형편을 잘 아시는 고로 건축헌금을 되돌려 주려고 찾아오셨답니다. 그때 사모님이 하신 말씀이 “하나님께 드렸으니 받을 수가 없습니다” 권사님과 뜻을 같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서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 재산을 팔아 천국을 산 것이지요.
사무엘하 24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이 시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면서 왕권을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그 잘못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칠만 명이나 하나님의 심판 속에 죽어갔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바늘 방석에 앉은 심정이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갓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아라우나 집에 찾아갔습니다. 사정을 들은 아라우나는 기쁨으로 타작마당과 함께 자기 집에 있는 소 한 마리 그리고 마당질에 쓰는 제구와 멍에를 땔감으로 다 드렸습니다. “왕이여 이것을 받으소서 그리고 제사를 드리소서” 다윗은 그냥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값을 치르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다윗을 보냈을까요? ‘다윗 너는 왕으로서 서 있지만 내 백성의 자세는 0점이다. 그러나 이 아라우나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그 삶의 전체를 내게 바친 내 백성이고 내 나라다’ 이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나라로 서 있는 아라우나죠. 오늘 우리의 삶도 철저히 나를 팔고 주님을 사는 주의 백성, 주의 나라 되시기를 권합니다.
셋째, 내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진토리 교회는 ‘내 주님과의 관계’만 이야기한다고. 그렇습니다. 내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그것을 점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의 말씀을 기억해 보면 그분은 어느 집회에서 초청을 받았을 때에도 항상 주님께 허락을 구하고, 허락 속에 나아가는 길이 열렸더라도 과연 그곳에 가서 내 주님과의 사귐을 이어갈 수 있을까? 조바심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성도의 자세입니까? 그리고 말씀의 중심을 내 주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마음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 구절, 성경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생명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이 모양으로, 저 이름으로 평가하지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객관적인 표현이겠습니까? 아니요! 주님은 나의 그리스도시요. 내 아버지의 아들이십니다. 나와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가 진짜 믿음입니다. 복음을 지식으로만 알면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 그 사귐 속에서의 동행! 그 영광까지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살아 있는 주님과의 관계가 천국 열쇠입니다. 관계가 죽어버리면 열쇠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죠. 관계가 살아 있을 때 열쇠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자동차 전자키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열쇠가 살아 있어야 되지요. 내 주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가 천국 열쇠라고 주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넷째, 신앙생활의 꽃은 형제사랑
지난 브솔기도회 때 우리 곽권사님께서 짧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가운데 감동이 되었습니다. ‘형제 사랑이 천국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예수님은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그것이 기본이라는 것이지요.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 합당하다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형제 사랑을 생각할 때 요나단과 다윗을 연상합니다. 사무엘상 23장에 사울 왕의 핍박을 피해 수풀에 숨어있는 다윗에게 요나단이 찾아가 만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사울은 삼천 정예를 이끌고 수 년 동안 찾아도 만나지 못한 그 길을 주님은 요나단에게 손쉽게 만날 수 있도록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세자가 아닌 형제의 길에 선 요나단은 다윗에게 힘을 북돋아 주면서 “두려워 말라! 내 부친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이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이다.” 참으로 영감이 있는 혜안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는 요나단의 말이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이성과의 사랑보다 더 뛰어난 천국적인 형제 사랑을 나누는 사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뒷부분을 이런 말씀으로 마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이와 같이 하시리라” 사랑과 공의를 가지고 말씀하신 주님의 엄중한 말씀이지요. ‘각각 서로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용서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이 자리에 올 수 없습니다.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저는 창세기 요셉이 형들에게 했던 형제 사랑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기 아버지 야곱이 죽고 나서 그 형들이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아버지 생전에는 요셉이 아버지의 체면 때문에 우리를 봐줬겠지만 이제는 그를 애굽에 팔았던 우리의 죄 값을 치르게 될 테니 큰일 났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인 착각이었죠. 요셉은 울면서 그 중심을 드러냅니다. 큰 나라 애굽의 총리로서가 아니라 형제의 길에서 말합니다. ‘형님들 안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저를 먼저 이곳에 보내놓고 형님들과 조카들을 만나게 하셨으니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중심으로 용서하고 끌어안는 형제 사랑 그것이 창세기 마지막 50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것이 천국입니다.
화성의 어느 조용한 마을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식구님들의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을 가르켜서 천국 가신 목사님은 천국이 보이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 매일 엎드려서 기도하고, 주님 사랑하고, 형제 사랑하는, 주님을 섬기는 그 집! 그 집뿐만 아니라 우리 몸된 교회 식구님들의 모든 집과 우리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집으로 천국이 가까이 보이는 집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