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마침내 남정에 나선 것은 건안8년(203)년 가을 8월이 되어서였다. 조조가 북쪽의 공략을 유보하고 군대를 남쪽으로 형주를 향하게 하자 과연 원담과 원상은 서로 기주를 놓고 싸웠다.
조조의 군대가 업성의 포위를 풀고 물러났을 때 원담은 원상을 설득했다.
“나의 병사들은 갑옷이 낡고 좋지 않았으므로 전에 조조에게 패한 바 되었다. 지금 조조군이 패퇴해 그의 병력이 돌아갈 뜻을 품고 있으나 아직 황하를 건너가지 못했으니 출병해 엄습하면 크게 괴멸시킬 수 있다. 이 계책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원담은 이처럼 주장하면서 원상에게 병력을 증강시켜 주고 갑주와 무기를 새것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했다. 원상은 원담의 진의를 의심했으므로 원담의 출병을 허락하지 않았다. 병력을 더해주지도 않았고 갑옷도 바꾸어주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원상이 거절하자 원담이 매우 화를 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곽도와 신평이 원담을 충동질했다.
“선공(先公을 설득해 장군을 밖에 나가게 한 후 원상에게 후사를 잇게 해 형을 동생의 아래에 서게 한 것은 다 심배가 조작한 것입니다.”
원담은 이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겼다. 마침 조조의 군대도 물러가 위협도 사라졌으니 기주의 정당한 주인을 정할 때라고 생각했다.
원담은 병사를 동원해 원상을 공격했다. 업성의 외성 문밖에서 원상의 군대와 싸웠으나 원담이 패했다. 원담은 하는 수 없이 병사를 이끌고 발해군 남피(南皮) 현으로 물러났다.
원담이 패했다는 소식을 전해지자 청주의 여러 고을들이 다 반란을 일으켰다. 원담은 외부의 지원 없이 홀로 남피에 고립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청주의 별가종사 왕수(王修)가 청주의 관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원담을 구하러 왔다. 원담이 기뻐하며 말했다.
“나의 군대를 다시 일어나게 할 사람은 바로 왕별가이다.”
왕수가 유순(劉詢)이라는 자가 평원군의 습음(濕陰)현에서 기병하자 청주의 여러 성들이 다 호응해 원담을 배반한 사실을 보고하자 원담이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온 주가 배반을 한 것을 보니 어찌 내가 부덕하다 하지 않겠는가!”
왕수가 원담을 위로하며 말했다.
“동래태수(東萊太守) 관통(管統)은 비록 바닷가에 머물고 있지만 이 사람만은 배반하지 않고 반드시 구하러 올 것입니다.”
과연 십여 일이 지나자 관통이 원담을 구하러 왔다. 관통이 자신의 본거지를 비운 사이 그의 처자식은 반란을 일으킨 적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원담은 그 후 관통을 낙안태수(樂安太守)에 임명해 그의 의리에 보답했다.
원담이 다시 원상을 공격하고자 했다. 왕수가 원담을 간했다.
“형제가 서로 공격하는 것은 바로 패망하는 길입니다.”
왕수의 대답에 원담은 기뻐하지 않았다. 원담은 그의 지조와 절개를 알았으므로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있다가 원담이 다시 왕수에게 물었다.
“뭐 좀 좋은 수가 없겠소?”
왕수가 말했다.
“무릇 형제라는 것은 왼손과 오른손과 같은 관계입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한 사람이 장차 싸움을 하고자 하면서 자기의 오른 손을 자르고는 ‘나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형제를 버리고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면 천하에 그 누가 그와 친하고자 하겠습니까! 아랫사람 중에 참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싸움이 일어나는 사이에서 일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원컨대 사군께서는 귀를 막고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만약 아첨하는 신하 몇 사람을 죽여 형제가 다서 서로 친목을 도모한다면 사방을 다스리고 천하를 주름잡을 수 있습니다.”
왕수는 자를 숙치(叔治)라 하고 북해군 영릉(營陵)현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으로 이름이 알려졌었다. 공융이 북해태수가 되었을 때 그를 초빙하여 주부(主簿)로 삼고 고밀(高密) 현령을 겸임하게 했다. 왕수는 충직하고 의리를 중시했으므로 공융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의지했다. 한 번은 군내에서 반란이 일어나 공융이 위기에 처했다. 한 밤중에 반란군이 쳐들어오자 공융은 주변을 돌아보고 말했다.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우러 올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왕수뿐일 것이다!”
과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수가 도우러 왔다.
원담이 청주를 장악했을 때 그의 명성을 듣고 별가종사로 초빙했었다.
원담은 왕수의 권고를 듣지 않고 계속해서 원상과 서로 공격하며 싸웠다. 원상이 다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와 원담을 공격하자 원담이 맞아 싸웠으나 대패해 남피로 돌아가 성을 구축하고 굳게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