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제1절
죽산 최한규박사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中 卷之一 第一節
夫有形者生於無形 無形爲無極 有形爲太極
故易有太易有太初有太始有太素
太易者未見炁也 太初者炁之始也
太始者形之始也 太素者質之始也
形炁質雖具而猶未離 是曰渾淪
視之不見 聽之不聞 循之不得 是謂易也
易變而爲一 太初也 一變爲七 太始也
七變而爲九 太素也 九者炁變之究也
一者形變之始也 淸輕者 騰爲天 濁重者 凝爲地
天地旣分 含精絪縕 而化生萬物 故物亦有始有壯有究
皆取法天地 天地者 陰陽之根本 萬物之祖宗
物之最靈者爲人 與天地並立爲三才
然亦不越乎 陰陽五行也
奧自陰陽互交 五行錯綜時 在天地中央
濕熟相蒸處 産出一人
夫有形者生於無形
☛형체를 만들고자 하는 본체는 있으나 형체가 없다.
☛無形爲無極
무극(無極)은 태극(太極)의 위에 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무극(無極)이 태극(太極)이요, 태극이 무극이라고 했으나, 이는 틀린 것이다.
☛有形爲太極
형체가 있게 되는 것이 태극(太極)이다.
태극에서 형체가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 -1인 음을 말한다.
물체의 유형(有形)은 태초에 태극(太極)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故易有太易有太初有太始有太素~그러므로 역이 생겨나
태역(太易),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가 있게 된다.
☛太易者未見炁也
태역(太易)에는 아직 그 기(炁)를 볼 수 없다. 기(炁)가 보이지 않는다.
☛太初者炁之始也
태초(太初)라는 것은 기(炁)가 처음 나타나는 것이다
☛太始者形之始也
태시(太始)라는 것은 형체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太素者質之始也
태소(太素)라는 것은 그 물질을 구별 짓는 알갱이가 처음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形炁質雖具而猶未離
그러나 그 형체와 기질이 물질로 갖출만한 본질을 가지고는 있으나,
아직 물질이 완전한 형태를 취하지 못했다.
☛是曰渾淪
말하자면 혼돈한 상태이다.
☛視之不見 聽之不聞
보고자 해도 볼 수 없고, 듣고자 해도 들을 수 없다.
☛循之不得 是謂易也
순환하고자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氣)의 힘으로 뭔가 움직이려고 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을 역(易)이라고 한다.
☛易變而爲一 太初也
역(易)의 단계에서 하나(一)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을 태초(太初)라고 한다.
☛ 一變爲七 太始也
하나(하늘, 태극)는 일곱(七)으로 변하는데, 이것을 태시(太始)라고 한다.
☛七變而爲九 太素也
일곱(七)은 다시 아홉(九)으로 변해 가는데, 이것을 태소(太素)라 한다. 물질의 태동이 시작됨을 말한다.
☛九者炁變之究也
아홉은 기(炁)가 무궁무진하게 변한다.
☛一者形變之始也
하나(一)라는 것은 형체가 나타나 변해가는 처음이다.
☛淸輕者 騰爲天 濁重者 凝爲地
맑고 가벼운 것들은 가벼우므로 위로 올라가 하늘을 이루고, 탁하고 무거운 것들은 아래로 내려와 엉켜 땅을 이루게 된다.
☛天地旣分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비로소 나누어지게 된다.
☛含精絪縕
땅에서는 정기를 머금게 되어 지기(地氣)가 따뜻하게 된다.
☛而化生萬物
이에 만물이 화생하게 된다.
☛故物亦有始有壯有究
그리하여 물질의 시초가 있게 되고, 번성하게 되어, 영구히 존속하는 것이다.
☛皆取法天地
이 모든 것은 천지(天地)로부터 법(法)을 취했다.
☛天地者 陰陽之根本 萬物之祖宗
천지는 음양(陰陽)의 근본이요,
만물이 시발(始發)되는 근본이다.
☛物之最靈者爲人 與天地並立爲三才
만물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것은 사람이 되니,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삼재(三才:天人地)가 된다.
☛然亦不越乎 陰陽五行也
그런즉 이 모든 것은 음양오행(陰陽五行)을 벗어날 수 없다.
☛奧自陰陽互交 五行錯綜時 在天地中央
음(陰)과 양(陽)이 서로 교합하고, 오행이 이리저리 뒤섞여 천지 중앙이 있게 되었다.
☛濕熟相蒸處 産出一人
그리고 서서히 땅의 기운이 무르익게 되자 한 사람이 태어나게 되었다.
1. 空과 氣와의 관계, 律坤
제1절 氣의 형성(形成)
1. 空과 氣와의 관계
옛 성인(聖人)들은 선(禪)을 통하고 도(道)를 얻어 무한대의 空의 세계를 알아냈다. 그 결과 우주의 空은 아홉 단계임을 지혜로서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학의 기초가 되는 1, 2, 3, 4, 5, 6, 7, 8, 9를 완성하였다. 아홉이란 숫자는 우주를 아홉 층으로 본 숫자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도 구층탑(九層塔)을 세운 것은 우주의 원리를 상징한 것이다. 인체(人體)도 구규(九竅:아홉 구멍)로 되어 있다.
空의 세계는 理의 작용에 의해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理의 작용은 空의 세계를 근본(根本)으로 한 본질적 바탕이라는 점에서 氣와는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空의 본체(本體)가 理라면, 理는 본질적 바탕이다. 본질적 바탕이란 우주의 空을 형성(형성)하고 있는 근본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근본적인 요소는 空의 세계가 무한대이긴 하지만 空으로 형성되어 있는 근원적인 질(質)을 뜻함이다.
空은 아홉 층으로 되어있지만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구분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성인(聖人)의 지혜(智慧)만이 감지(感知)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空의 세계를 인간의 힘으로서는 이해 할 수 없으며 갈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의 힘으로도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면 空의 세계를 인지(認知) 할 수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원각일(圓覺一)이라고 하였다. 즉 우주가 둥글다고 보았을 때 하나라는 것이다. 둥근 우주라고 깨닫고 보니까 하나이며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우주는 둥글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결국 우주는 성인들의 가르침에 의해 둥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철학이나 과학에서도 실증(實證)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세계까지 과학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空은 얼마나 넓고 방대하고 또 무한대인가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빛은 1초동안에 3억m, 즉 30만Km나 달린다. 우리 눈에 보이는 제일 가까운 은하계까지 가려면 10만 광년(光年)을 달려도 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빛이 1년을 달리는 것을 1광년이라고 한다.
빛이 10만 년을 달려도 은하계 중심부까지 도달할 수 없다면 은하계의 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은하계까지 빛이 달린다고 한다면 200만 광년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空의 세계에서는 빛의 작용이 극히 미미하고 작은 역할밖에 할 수 없다.
空은 광활한 공간세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가득 찬 소립자(素粒子)와 프랑크상스 같은 미세한 수포(水泡)의 분자(分子)가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空의 세계는 빈 것이 아니고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허공(虛空)으로 보이며 허공은 빈 것으로 보일 뿐이다.
제일 위층의 空의 세계는 정(靜)의 세계이다. 靜의 세계란 곧 고요하고 잔잔하고 조용한 공간의 세계를 뜻한다.
이곳은 백정(白靜)의 고요함이다. 백정의 고요함이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잡히지 않고 분간할 수도 없는 신(神)의 世界이다.
神의 세계란 우주의 氣가 움직이는 영의 세계이다. 흰 힘을 지닌 세계지만 보이지 않는 무색투명한 우주의 氣를 가진 세계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이곳은 우주의 흰 힘의 본질을 갖고 있는 무한대의 공간세계가 한없이 펼쳐져있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우주의 氣가 고요 속에서 잉태하듯 움직이는 힘이 생겨나는 것을 氣라한다.
이때의 氣는 우주기(宇宙氣)라고 이름한다. 우주기에는 흰 공간의 세계가 한없이 공존(共存)하고 있다.
흰 힘은 영(0)으로 표현되며 흰 힘의 본체를 理라한다. 이곳을 백공(白空)의 세계라 하여 우주의 본바탕을 흰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흰 힘의 바탕으로 이룩되어있는 것이 우주이다. 이곳을 형이상학원(形而上學源) 속의 형이상학이라 하여 理의 자리로 보았다.
흰 힘으로 우주의 본체가 형성(形成)되어 있다는 뜻을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만물질(萬물질)에도 흰 힘을 본바탕에서 가지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수박씨는 검어도 씨 안은 흰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의 몸에 있는 호르몬도, 까마귀의 정액(精液)도 흰 것이다. 비록 바탕은 검어도 본질은 空의 본체와 같이 흰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한민족을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했던 것이다.
空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본바탕이 흰 것이지만 전술한바와 같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무색(無色)한 것과 같이 투명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물이 얼면 흰색의 얼음으로 변한다. 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기체(氣体)가 되면 물은 증발해서 무색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空의 본바탕이 理라면 理의 본체는 흰 것이다. 흰 것의 본질은 곧 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물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흰 힘의 고요함은 조용히 理의 세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空과 氣가 함께 어울러져 순환의 틀 속에서 힘차게 공생(共生)하는 과정을 낳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氣의 뿌리가 발생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空의 세계에 가득찬 수포(水泡)인 프랑크상스의 무리가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 순간부터 氣의 작용이 본격적으로 태동한다는 뜻이다.
空의 세계는 물인 소립자보다 미세한 물의 분자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氣의 분신은 물[水]과 빛[光], 소리[音]이므로 물과 빛이 소리에 의해 움직이는 상태를 기동(氣動), 즉 氣가 움직인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주에서 물, 빛, 소리에 의해 氣가 형성되어 태동하므로 인해 자연을 낳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뜻이다.
본시 空의 세계는 어둡고 혼돈(混沌)하고 캄캄한 암흑시대(暗黑時代)였다.
空은 혼돈한 가운데 빛도 없고 어둠과 암흑이 뒤범벅되어 분간할 수 없는 미증유의 세계였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맑음과 탁함이 걸러지면서 점차 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우주는 空의 세계가 형성되면서 물과 빛의 조화(造化)로움으로 소리에 의해 우주의 空의 세계는 탄생된 것이다. 이때를 우주기(宇宙氣)라 한다.
우주의 氣가 형성되는 그 순간부터 空의 세계의 구분이 시작되며 空이 있으므로 氣가 함께 공존(共存)하면서 생성(生成)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空과 氣는 절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생성되는 것이다. 우주의 空의 세계는 氣에 의해 성장(成長) 발전하면서 무한에너지원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이 우주의 본체를 이루는 근본(根本)이며 구층 세계를 뜻한다.
아홉 층의 공간(空間)세계는 너무나 광활하고 끝이 없는 무한대의 공간이므로 무한에너지원이라고 한다.
이곳을 철학적 개념으로 형이상학원(形而上學源)속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 한다.
형이상학을 理라하며 理를 본체라고도 한다. 理를 空이라 하기도 하지만 한편 우주기를 공(0)이라 표시하기도 한다.
우주기(宇宙氣)의 흐름을 타고 氣는 쉴새없이 흘러간다. 아니 흐른다기보다 돌고 돌고 선회하며 다시 다른 세계로 진행하고자 하는 우주 속의 법칙(法則)이 자연 속에서 순환되고 있는 것이다.
백정(白靜)의 세계에서 다시 진정(眞靜)의 공간세계로 연결되어 가는 것이다.
진정의 세계는 천체기(天体氣)로서 진공(眞空)을 뜻하며 형이상학원 속의 형이중학(形而中學)에 속한다.
이곳은 우주 속에서 진정한 氣의 흐름이 표출되는 곳이다. 진정의 세계는 0+0=0으로서 空(0)에서 무(無)의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無의 세계는 空의 세계와는 달리 우주의 본체가 선회하는 과정에서 아직도 물질(物質)이 보이지 않는 氣의 흐름을 뜻한다.
氣의 흐름은 우주기에서 천체(天体)의 氣로 연결되면서 다음 단계로 대기기(大氣氣)인 무극(無極)에 연결되어 간다.
이곳을 시정(時靜)이라 하여 色의 세계를 뜻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色의 세계가 아니라 공간 속에서 물질이 잉태되어 갈 수 있는 시공(時空)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시공의 세계는 0+0+=-0으로서 무극(無極)의 공간세계를 말한다.
이곳은 우주 속에서 제일 아래, 즉 하계(下界)인 色의 세계를 말하며 삼라만상의 본체가 空의 세계에서 신(神)의 조화(造化)에 의하여 물질이 氣를 타고 탄생할 것이라는 과정(過程)에 이르게 되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대기(大氣)의 氣가 하공(下空)의 세계를 선회하면서 미래(未來)에 물질(物質)의 잉태를 창조하려는 우주 본체의 손짓 속에서 기다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무한한 우주공간에서 무한한 시간 속을 넘어오는 과정은 우주에 있는 氣의 약속(約束)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氣의 약속 없이는 우주의 생성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氣의 흐름 없이는 미래의 삼라만상과 우주의 존재도 있을 수 없다. 氣는 보이지도 않고 색도 없으며 느끼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 물이 空의 세계에서 수증기처럼 기체화(氣體化) 되었을 때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감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氣가 흐르고 있으며 氣가 움직이면서 空의 세계를 생성해 간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육체(肉體)를 갖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精神)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육신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정신과 마음으로 움직이듯이 空의 세계 또한 氣가 끊임없이 충만하면서 움직이게 한다.
공기(空氣) 속에 산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 속에 산소는 엄연히 존재하면서 만물(萬物)을 육성(育成)하고 생성(生成)시키고 있다.
그와 같이 空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氣에 의해 끝없이 연결되면서 이어지고 있다.
우주의 무한 에너지원에서 점차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空間) 세계로 돌입해온다.
우주에서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까지 오는 시간은 우주가 한 바퀴 도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우주의 1주기는 일천삼백구십구억육천팔백(139,968,000,000) 년이다. 즉 사람으로 따지자면 1년이다.
우주의 한 살은 인간의 한 살과 같다는 뜻이다.
우주의 1년이 일천삼백구십구억육천팔백만 년임을 뜻한다.
이와 같은 계산법은 천(天), 인(人), 지(地)의 삼원일체(三元一体)사상에 의한 것이다.(필자의 저서《한民族 宇宙哲學思想》 후편을 참고 바람)
이상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인간의 세계에 이른다.
우주기(宇宙氣)에서 천체기(天体氣)로 천체기에서 대기기(大氣氣)로 내려와 중력(重力) 에너지원의 세계로 다가온다.
이곳은 형이중학원(形而中學源)속의 형이상학으로 천공(天空)이라 한다.
천공에는 천동(天動), 즉 하늘이 동한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태극(太極) 자리이다.
태극은 태극기(太極氣)로서 0-1=-1인 백무(白無)의 세계에 이른다.
이곳을 형이중학권 속의 理라고 한다. 태극(太極)을 현묘(玄妙)라 하며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은하계이다.
은하계는 6,000억 개 이상의 별로서 물의 보고(寶庫)이다. 그러기에 한문(漢文)이라 했다.
한자(漢字)는 은하수 한자이다. 그리고 물 많을 한, 검은 물 한이다.
은하계에 물이 많은 것은 광석 때문이다. 광석은 3분의 1이 물이기 때문이다. 6,000억 개의 광석은 모두 살아있는 별로서 3분의 1이상의 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
땅이나 사람은 3분의 2의 물을 지니고 있다. 지구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만물의 생명체는 풀잎이든 바위든 모두 3분의 2가 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광석에서 물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밤하늘의 공간세계는 어둡게 보이는 것이다.
태극(太極)을 만물의 창조주라고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태극에서 많은 물로 인하여 빛이 스며들 때 비로소 소리를 내게 되고 소리가 생기므로 인하여 물질이 창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소리가 난다는 것은 氣의 움직임이다. 태극은 많은 물질을 창조하는 보고(寶庫)의 역할과 파수꾼의 산실(産室) 역할을 하는 곳이다.
우주에서 태극(太極)을 거치지 않으면 물질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한민족은 태극을 본체로 보았던 것이다.
물과 빛과 소리의 조화(造化)로움 속 에서 물질은 창조된다.
물과 빛이 있더라도 氣의 분신(分身)인 소리가 없다면 물질은 창조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물, 빛, 소리가 氣이다. 절름발이 氣로서는 물질이 창조되지 않는다.
空을 타고 흐르는 것도 氣이다.
氣는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아니다.
氣는 분명 형이중학(形而中學)이다.
왜냐하면 우주의 본체가 있다고 하더라도 형이중학인 氣가 매개체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물질의 창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물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안된다. 또 빛이 있더라도 물이 없으면 안된다. 물과 빛이 있어도 소리가 없으면 물질로서 탄생할 수 없다.
氣의 절대 역할을 하는 것이 소리이다.
소리는 물질을 창조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空의 세계를 창조하게 하는 것 또한 소리에 의해 생성한다.
空의 세계가 존재하게 하는 것도 氣의 삼대요건(三大要件)인 물과 빛, 소리에 의해 조정된다. 그러므로 空 속에 있는 氣가 보이지도 않는다. 물도 기체(氣体)가 되어 보이지 않는다.
빛은 우리 눈에 보이지만 먼 공간 속에서는 빛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소리는 우주공간 속에서 더더욱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氣를 물질인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볼 것인가?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여기에 주자학(朱子學)은 망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空은 氣에 의해 운행(運行)되고 氣는 空의 세계를 존재하게 하므로 대자연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氣의 본체는 흰 것이다. 흰 힘이라고 볼 수 있다. 흰 힘의 본질은 물이다. 물의 본래 색은 흰 것이다. 그러나 물만으로는 물질이 창조되지 않는다.
빛과 소리에 의해 空의 세계에서 충만한 氣의 흐름을 타고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空은 空으로서 홀로 존재되지 않는다. 물론 空 속에는 흰 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空은 空만의 세계에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무한 空의 세계에서도 空이 존재 할 수 있는 힘은 역시 氣의 에너지 때문이다.
氣는 전술한 바와 같이 보이는 물질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로 본 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성리학(性理學)은 완전히 빗나간 학문이 되어 버렸다.
空 속에서 氣의 생명(生命)이 살아 움직이므로 인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空의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氣가 산(散)하여 죽으면 空의 세계는 存在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氣가 흩어져 죽는다면 空의 생명체가 죽기 때문에 空의 세계는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空과 氣의 관계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마음과 같은 일신(一身)의 관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空 속에 氣가 없거나 氣가 空의 세계에서 존재가치를 잃는다면 空도 氣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空속에 氣의 흐름이 충실하고 또 충만했을 때 비로소 우리 눈에 보이는 대자연(大自然)의 삼라만상이 눈앞에 찬란하게 나타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람에게 마음이 있어 움직이듯이 말이다. 그리고 공기가 있어 모든 생명체가 살아 숨쉬고 있듯이 空과 氣의 조화로움은 영원히 대자연 속에서 살아 숨쉬기에 생명을 잉태 창조하고 생성해 가는 것이다.
2. 우주에서 氣의 운용(運用), 律坤
空의 세계에서 氣가 운용하는 조건은 그 누구도 알기가 힘들다. 볼래야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주의 氣는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현재 삼라만상과 만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空의 세계가 엄연히 있다는 것은 氣가 끝없이 회귀(回歸)하고 있음을 뜻한다. 회기란 돌고 돌아옴을 뜻한다.
인간의 눈으로서는 空 속에서 氣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禪을 통(通)하고 道의 경지에 이르면 空의 세계는 얼마든지 氣의 흐름을 감지(感知)할 수 있다.
감지란 감각적으로 흐름의 느낌을 안다는 뜻이다. 氣의 운용(運用)은 한마디로 신(神)의 법칙이다. 다시 말해 변화를 구가하면서도 불변(不変)의 法則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실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바람은 엄연히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공기인 산소 역시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空 속에 氣의 운용은 한 치의 빈틈없는 규범과 질서에서 행하고 있다. 空은 허하고 빈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진짜 허하고 비어있다면 그것은 진공(眞空)일 것이다. 진공에는 산소가 희박하여 氣의 움직임이 대단히 빠르게 되어있다. 산소가 가득 찬 空의 세계에서는 氣의 흐름이 상당히 둔하여 氣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인간은 속도 감각이 느림을 알 수 있다. 사물이 둔할수록 생명력이 약하기 때문에 속도 감각이 둔하고 느리다.
반면에 물질이 고도화될수록 빛이 되므로 속도는 대단히 빨라진다.
본시 우주가 생길 때부터 기(炁)의 흐름과 작용에 의해 탄생한 것을 알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理가 우주의 본체라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물(事物)의 모든 본체도 理라 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주의 본체인 理와 사물의 본체인 理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물질을 만드는 행위를 근본적으로 하는 것은 氣이기 때문이다. 그럼 우주는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을까. 이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과학자나 천문학ㆍ물리학에서도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이다. 다만 옛 성인(聖人)들께서 우주의 생성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제왕운기(帝王韻記)》나 《규원사화(揆園史話)》 《신단실기(神壇實記)》 그리고 《회남자(淮南子)》의 천문(天文)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우주의 생성과정을 말하고 있다.
우주가 최초로 생길 때 암흑세계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혼돈(混沌)한 상태였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차츰 차츰 氣의 작용에 의해 우주가 탄생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리학에서도 천문(天文)편에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음을 본다. 쉽게 말해서 우주는 뒤범벅이 된 흙탕물과 같이 암흑세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어떤 과학의 힘도 우주의 생성이론(生成理論)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구하기란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탄생될 때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해답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원인이다. 다만 물리학이나 과학의 힘으로는 천체의 별을 연구하여 우주의 생성이론을 추정하고 탐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인들의 도력(道力)으로 우주의 탄생과정을 추론(推論)하는 것이 가장 쉽게 이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학문적으로 우주가 생겨나는 과정을 이론적으로 대답한《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책들보다도 깊은 학문적인 차원에서 기록한 것이므로 본문(本文)을 싣고 차근차근 해설해 보기로 한다.《역대신선통감》제1절에는 ‘태극판화생오로(太極判化生五老)’라 되어있고 따라서 ‘삼재립발육증민(三才立發育蒸民)’이란 대목이 있다.
부유형자생어무형(夫有形者生於無形). 무형위무극(無形爲無極). 유형위태극(有形爲太極). 고이유태이유태초(故易有太易有太初). 유태시(有太始). 유태소(有太素). 태이자(太易者). 미견기야(末見炁也). 태초자(太初者). 기지시야(炁之始也). 태시자(太始者). 형지시야(形之始也). 태소자(太素者). 질지시야(質之始也). 형기질수구이유미리(形炁質雖具而猶未離). 시왈혼륜(是曰渾淪). 시지불견(是之不見). 청지불문(聽之不聞). 순지불득(循之不得). 시위역야(是謂易也). 역변이위일(易變而爲一). 태초야(太初也). 일변이위칠(一變而爲七). 태시야(太始也). 칠변이위구(七變而爲九). 태소야(太素也). 구자(九者). 기변지구야(炁變之究也). 일자(一者). 형변지시야(形變之始也). 청경자등위천(淸輕者騰爲天). 탁중자응위지(濁重者凝爲地). 천지기분(天地旣分). 함정인온(含精絪縕). 이화생만물(而化生萬物). 고물역유시유장유구(故物亦有始有壯有究). 개취법천지(皆取法天地). 천지자(天地者). 음양근본(陰陽根本). 만물지조종(萬物之祖宗). 물지최령자위인(物之最靈者爲人). 여천지병립삼재(與天地並立三才). 연역불월호음양오행야(然亦不越乎陰陽五行也). 월자음양호교(粤自陰陽互交). 오행착종시(五行錯綜時). 재대지중앙(在大地中央). 습열상증처(濕熱相蒸處). 생출일인(生出一人). 방신원이(方身圓而). 지혜천성(智慧天成). 상기립사망(常起立四望). 각팔극개저(覺八極皆低). 앙관일낙월승(仰觀日落月升). 중성매수일대성선전(衆星每隨一大星旋轉). 홀대성뇌도금광타지(忽大星雷道金光墮地).
[독자들을 위해 한 단락씩의 문장을 싣고 풀어보기로 한다]
부유형자생어무형(夫有形者生於無形)이란 무릇 형체가 생겨난 것은 무형에서 생겼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해설할 것이다.
그러나 본문 앞에 있는 부(夫)자를 무릇, 또는 지아비 부, 남편 부자로 보면 안된다. 본문은 본시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으므로 夫자는 우주의 본체가 처음부터 생겨날 때 무형(無形)으로부터 태어났다고 해야 옳은 것이다.
무형위무극(無形而無極)이란 형체가 없던 곳에서 태극이 시작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유형위태극(有形爲太極)이란 형체는 태극으로부터 생겨났음을 말하고 있다.
고역유태역유태초(故易有太易有太初)란 태극에서 생겨났으므로 인하여 태역이라 하고 태초라 한다고 하였다. 태역이란 형체가 태어날 수 있는 움직임이요, 우주의 본체가 움직이므로 인하여 처음으로 생겨남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초라 하였다. 태초란 최초이며 처음의 시발점을 뜻한다.
유태시(有太始)란 처음이면서 시발이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유태소(有太素)란 처음이 시작될 때의 가장 순결하고 순수한 흰 것을 나타낸 말이다.
태역자(太易者)는 크게 그리고 아주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변화를 의미한다.
미견기야(未見炁也)란 보이지 않는 기를 말한다. 보이지 않는 기란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요소를 뜻한다.
태초자(太初者)란 우주가 최초로 생기려고 한 시점을 의미한다.
기지시야(炁之始也)란 기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음을 말한다.
태시자(太始者)란 물질이 만들어지려는 최초를 뜻한다.
형지시야(形之始也)란 형체 즉 물질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태소자(太素者)는 순결하고 순수한 최초의 흰 것을 뜻한다.
이 시작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형기질수구이유미리(形炁質雖具而猶未離)란 형체의 氣와 질(質)이 비록 갖추어져 있지만 아직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시왈혼륜(是曰渾淪)이란 말하자면 흐려지고 잠길 때를 말한다.
시지불견(視之不見)이란 비록 혼돈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청지불문(聽之不聞)은 들을 수도 없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순지부득(循之不得)이란 쫓고 쫓기고 돌고 돌지만 아직도 잡히지도 않고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위역야(是謂易也)란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듣지도 못한 상태에서 돌고 돌지만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고로 이것을 역(易)이라 한다고 했다.
역이란 있되 없고 없되 있으며 있어도 보이지 않고 돌고 돌면서 바뀌고 또다시 순환한다는 원리(原理)를 의미한다.
역변이위일(易變而爲一)이란 끊임없이 바뀌고 변화하고 돌고 돌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뜻이다.
태초야(太初也)란 그러기에 최초라고 했다.
일변이위칠(一變而爲七)이란 하나가 변하여 일곱이 된다는 뜻이다.
태시야(太始也)란 하나가 변하여 일곱이 되는 것이기에 애당초 처음이라 하였다.
칠변이위구(七變而爲九)란 일곱이 변하여 크게는 아홉이 된다고 했다.
태소야(太素也)란 이것이 처음으로 순수하고 순결함이 있는 흰 것으로 나타남을 뜻한다.
구자(九者)란 아홉 개의 氣와 질(質)을 말한다.
기변지구야(炁變之究也)란 氣가 끝까지 변하는 모습을 의미한다.
일자(一者)란 하나는, 즉 한 놈이라 함은 하나의 氣를 말한다.
형변지시야(形變之始也)란 氣의 형체가 처음 변함을 뜻한다.
청경자등위천(淸輕者騰爲天)이란 맑고 깨끗하고 가벼운 기운은 하늘에 오른다는 뜻이다.
탁중자응위지(濁重者凝爲地)란 무겁고 탁한 것은 엉켜서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천지기분(天地旣分)은 그리하여 맑은 氣는 하늘이 되고 탁한 氣는 엉켜서 땅이 되어 나누어졌다.
함정인온(含精絪縕)은 천지의 기운이 정기(精氣:정의 기운)에 부풀어지면서 점차로 사물을 잉태할 수 있도록 되어갔다는 뜻이다.
이화생만물(而化生萬物)이란 그리하여 마침내 만물이 태어나게 되었다.
고물역유시유장유구(故物亦有始有壯有究)란 물질이 만들어짐으로 인하여 처음이며 만물은 굳세고 단단하고 장하게 오래 오래 끝까지 유지될 수 있었다.
개취법천지(皆取法天地)란 천지의 모든 사물은 자연법에 따르게 되었다.
천지자(天地者)란 하늘과 땅은 음양근본(陰陽根本)이 되었다.
만물지조종(萬物之租宗)이란 음양의 근본에 따라 만물에 있어서는 조상의 뿌리와 다를 바 없었다.
물지최령자위인(物之最靈者爲人)이란 만물 가운데 최고의 영(靈)을 가진 자는 사람이다.
여천지병립삼재(與天地並立三才)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사람과 함께 천(天)ㆍ인(人)ㆍ지(地)의 삼재를 이루게 되었다.
삼재(三才)란 세 가지 우주의 근본이며 삼원(三源)이라고도 하고 또는 삼원(三元)이라고도 한다. 삼재를 합하여 삼원일체(三源一体) 또는 삼원일체(三元一体)라고도 한다.
세 가지의 근본이 한민족의 우주사상 이자 하늘사상이다.
그러기에 한민족을 천손족(天孫族)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민족은 하느님이란 별칭을 유구한 역사에서 사용해왔다. 그러한 한국인의 뿌리사상이 한민족을 계승해온 것이다.
연역불월호음양오행야(然亦不越乎陰陽五行也)란 天ㆍ人ㆍ地의 삼재(三才)가 시작된 연후에야 음양오행이다. 그러므로 음양오행이 자연사상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사물의 본체는 음양오행의 자연에서 시작됨은 두말할 여지없다.
오자음양호교(奧自陰陽互交)란 나타나지 않고 스스로 음양은 서로가 교류한다.
오행착종시(五行錯綜時)란 오행, 즉 음양은 서로 섞이면서도 섞어지지 않고 모이면서도 모여지지 않을 때를 말한다.
재대지중앙(在大地中央)이란 음양오행은 큰 땅 중앙부 안에 있으며 사물을 잉태하려는 뜻을 의미한다.
습열상증처(濕熱相蒸處)란 습함과 열이 서로 엉키면서 김 같은 증기가 같은 곳에서 함께 부딪치는 것을 뜻한다.
생출일인(生出一人)이란 습함과 열이 서로 증기와 함께 뒤엉켜 그 곳에서 한 사람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방신원이(方身圓而)란 모난 몸 같지만 둥근 형상을 말한다.
지혜천성(智慧天成)이란 지혜로움은 하늘에서 이루어 졌음을 뜻한다.
상기립사망(常起立四望)이란 언제나 일어서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각팔극개저(覺八極皆低)란 사람은 깨달음을 얻어 만물의 영장이 되었으니 어떤 일이든 모두가 다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앙관일탁월승(仰觀日落月升)이란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해지고 달뜨는 것을 볼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중성매수일대성선전(衆星每隨一大星旋轉)이란 많은 별들이 오고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큰별들도 모두 스스로 크게 쉬임없이 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홀대성뇌도금광타지(忽大星雷道金光墜地)란 홀연히 큰 별이 나타나 길을 잃고 뇌성처럼 금색의 빛을 내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에서 보면 우주가 처음 생길 때 무형(無形)에서부터 생겨났음을 나타내고 있다.
무형은 무극(無極)을 낳고 무극은 태극을 잉태한 것으로 되어있다. 태극에서 태역(太易)이란 처음임을 뜻한다.
그리하여 태초(太初)가 시작되었으며 태소(太素)가 생겼음을 뜻하고 있다.
태소란 우주의 본바탕이 처음으로 하얗게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하얗다는 것은 물의 본체이다. 물이 뭉쳐서 많을 때는 검은 색이다.
태초에 우주가 암흑시대라 한 것은 물이 뭉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간세계가 희게 되었다는 것은 물이 기체로 변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물이 뭉친 상태에서 물이 기체로 변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태역(太易)이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태역이란 처음으로 움직여지는 과정을 의미한다.
물이 뭉쳐 있다가 움직이는 것은 氣의 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미견기야(未見炁也)라 했다. 보이지 않는 氣의 현상 때문에 공간의 세계는 희게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작용하는 것은 역시 氣가 시작이라는 것을 본문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최초의 氣의 운용(運用)에 의해 형체가 나타날 조짐이 시작된다고 했다. 이 형체야말로 태소자(太素者)라는 것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태소자란 우주의 공세계에서 물질의 질(質)이 생길 수 있는 최초의 과정이 시작됨을 뜻하는 것이다.
태초에 보이지는 않지만 氣가 생기고 氣의 시작으로 인하여 형체가 나타나게 되고 형체의 질이 시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비로소 형체에 의한 氣와 질이 동시에 갖추어지면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形)과 기(炁) 질(質)이 아니다.
형체라 함은 空 속에서의 어떤 氣에 의해 물질이 이루어진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물체가 나타난 형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질도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다. 다만 氣의 형체에 의한 질을 의미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과정을 혼륜 즉 혼돈상태의 공의 세계일 뿐 눈에는 보이지 않음을 뜻한다.
그래서 시지불견(視之不見)이라 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지불문(聽之不聞)이라 했다. 들리지도 않고 들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순환하면서도 무엇을 얻는다거나 얻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돌고 돌고 또 돌아서 바뀌고 또 바뀌면서 氣는 끝없이 운용함을 뜻한다. 순환을 반복 작용하면서 변하고 또 변화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란 태극을 말한다. 태극은 최초로 마이너스 하나로 시작되는 것이다. 마이너스란 음(陰)을 뜻한다.
그러기에 현묘(玄妙)라 했다. 현묘란 어둡고 어두운 것이므로 묘하다는 뜻이다. 단지 어두워서 묘한 것이 아니라 현묘한 곳에서만이 만물이 창조될 수 있기에 창조의 능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묘하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수많은 은하수의 별들을 본다. 바로 이것이 태극의 자리이다. 태극얘기는 뒤로 미루고 본문을 계속해 풀이하기로 한다.
태초에 하나가 생겨 하나가 변하므로 인하여 일곱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는 하늘이며 하나[一]의 세계는 공이므로 우주에는 물의 보고이다.
그러기에 일(一) 육(六)은 수(水)이다. 하나와 여섯은 같은 물의 세계이므로 여섯 다음에 이화(二火)가 오는 것은 칠(七), 즉 일곱이다. 일곱의 변화에서 아홉까지 순차로 변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아홉은 공의 세계이다. 하얀 물의 세계를 뜻한다. 9는 우주의 층수를 아홉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얀 空의 세계는 아홉 층으로 되어있다는 뜻이다.
공간세계는 전술한 바와 같이 물의 수포(水泡)인 소립자(素粒子)와 프랑크상스의 입자(粒子)들이 모인 공간세계이다.
다시 말해 氣로 가득찬 공간세계는 본체가 희게 되어있다. 희다는 것은 물이 고체로 되었을 때 흰 것을 알 수 있다.
물이 기체현상으로 되었을 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수증기처럼 하얀 공간의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태소(太素)라 한 것이다.
태소란 희다는 뜻이다. 희다는 것은 단순히 흰 것이 아니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순결함을 뜻하는 것이다.
空의 세계가 아홉 층으로 가득 찼을 때 비로소 氣의 무궁무진하게 변화무쌍한 변화의 조짐이 일어남을 뜻한다.
그리하여 처음으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하고 있다. 氣가 가벼운 것은 높이 올라가 하늘이 되고 氣가 무겁고 탁한 것은 엉켜서 땅이 된다고 했다. 그
리하여 하늘[天]과 땅[地]이 나누어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 후 氣의 정(精)이 점점 더 성해지고 원기(元氣)의 기운인 정신 같은 것이 서로 뭉치고 엉키면서 비로소 만물이 태어난다고 적고 있다.
氣의 물질은 점점 형태가 나타나게 되고 물질로 태어나면서 장엄하고 영구적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天地의 법이 취해지고 자연의 순환법칙이 시작되면서 처음으로 天地는 음양의 근본으로서 만물의 조상 격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만물의 최고 영적(靈的)인 것은 사람이다. 사람은 천지와 더불어 삼재(三才)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天ㆍ人ㆍ地로서 사람은 자연의 하나로서 하늘과 땅과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자연을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은 사람이다. 자연은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이다. 음양은 서로서로 스스로 화합한다. 그러나 음양오행은 뭉쳐있을 때도 섞이지도 않는다.
음양오행의 기운은 큰 대지 중앙에서 습함과 열(熱)이 뒤섞여 찜통 같은 습함과 열 속에서 한 사람이 태어남을 나타내고 있다. 몸은 모나지만 둥글고 지혜는 하늘에서 이루어졌다.
서서 언제나 사방을 바라볼 수 있고 깨달음은 모두가 자유자재로 이룰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며 많은 별들이 매일 같이 큰 별을 따라 돌고 회전함도 볼 수 있다.
어떤 때는 홀연히 큰 별이 뇌성처럼 나타났다가 금빛을 내면서 땅에 떨어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대신선통감》 본문에서 보는바와 같이 고대(古代) 성인들은 현대 과학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우주의 空세계에서 氣의 운용을 보았다는 것은 한마디로 놀라운 일이다.
3. 氣에 의한 별들의 생성론(生成論), 律坤
고대(古代) 그리스의 대철학자이며 수학자인 피타고라스(Pythagoras:B.C. 572∼492년)는 그리스의 사도스에서 출생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아낙시메네스(Anaximenes:B.C.585∼525년)의 영향을 받아 사물(事物)의 발생과정을 실제로 증명하려 했던 철학자이다.
피타고라스는 오르페우스파(Orpheus派)의 영향을 받아 종교 개혁가로서 교단을 창설한 후 영혼(靈魂)의 윤회론(輪廻論)을 주장하여 플라톤(Platon:B.C.428?∼347?년)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는 우주는 음악의 법칙(法則)에 의해 형성되고 지배된다는 사실을 발표한바 있다.
독일의 천문학자(天文學者)인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년)는 平生의 대작인《우주의 조화(調化)》라는 작품에서 피타고라스와 같이 우주는 음악의 법칙에 지배된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특히 우주학(宇宙學)에서는 만유인력(萬有引力)이나 중력(重力)이라는 말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리학자이자 의사인 길버트(William Gilbert:1540∼1603년)씨는 영국 콜체스터 출신이다. 1600년경에《자석(磁石)에 관하여》라는 중요한 저서에서 지자기(地磁氣)설을 주장한바 있다. 이 이론은 후에 귀납적 방법에 의한 전기(電氣)현상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바 있다.
이 이론은 후에 갈릴레이, 데카르트, 케플러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바로 지자기(地磁氣)의 이론은 그후 뉴턴(Isaac Newton:1642∼1727년)의 만유인력(萬有引力)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뉴턴은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天文學者)이며 수학자(數學者)이다. 뉴턴은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광학(光學:빛의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그후 연구에 연구를 몰두하여 반사(反射:반대로 비침)망원경을 만들었다.
뉴턴은 뉴턴 환이라는 빛으로 된 고리를 발견한 후 빛의 입자설(粒子說)을 주장했으며 1966년경에는 미분법(微分法)을 발견하였다.
그후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만유인력(萬有引力)이란 원리를 역학체계로 수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만유인력의 역학체계를 이용하여《프린키피아(Principia)》란 불후의 명작을 남겨 근대 과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앞에서 보는바와 같이 케플러가 주장했듯이 우주는 음악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 졌다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뉴턴의 만유인력과 빛의 입자설(粒子說)과 과학자들의 중력설(重力說) 등도 상당히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주에 있는 별들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가 의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하나만 보더라도 신비스럽기 짝이 없다. 지구의 둘레는 40,000km라고 한다. 지구가 매 시간마다 도는 자전(自轉:스스로 회전함)은 1,600km이고 공전(公轉: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함)하는 것은 매 시간마다 100,000km라 한다. 그러니까 지구는 1초마다 0.4444km의 속력으로 자전한다. 그러나 지구의 공전속도는 1초마다 27.8km로 달린다고 한다. m로 환산하면 지구는 매초마다 27,800m로 공전하는 셈이다.
즉 지구의 자전속도는 1초당 약 440미터이고 공전속도는 약 27,800m이다. 빛은 1초당 299,800km이므로 약 3억m가 된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날짜는 365.25일이라 한다. 달의 주기를 기준하여 계산한다면 1년은 12개월하고 11일이 되는 셈이다.
은하계만 하더라도 밤하늘에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의 세계는 대략 6,000억 개가 더 넘는다고 한다. 북두칠성의 일곱 개 별 가운데 밖으로는 6,000억 개의 은하계 별세계보다 큰 은하계가 100군데가 더 넘는다고 천문학자들은 망원렌즈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 속에 있는 이 수많은 별들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실로 상상을 초월한 별들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별들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생겨났을까가 문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 하나만 보더라도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로 365.25일 동안 태양(太陽)을 한 바퀴 돈다는 것조차 상상을 초월한 얘기이다.
지구에서 태양과의 거리는 무려 1억4000만km나 된다고 한다. 이 머나먼 거리를 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그럼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과 행성, 혹성, 그리고 유성들이 있는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만유인력에 의해 태양계를 돌고 있는 행성들이 있다. 그 중에 지구도 포함된다. 태양계의 주위를 돌고 있는 별들 중에는 금성(金星), 수성(水星), 목성(木星), 화성(火星), 토성(土星)들이 있다.
그런데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은 밤하늘에 밝게 비치는 달이다. 태양은 은하계의 가장 끝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천문학자들에 의해 관측되었다. 달은 지구를 돌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렇다면 태양은 무엇을 중심하여 돌고 있을까? 그것은 은하계를 중심하여 돌고 있음을 천문학자들에 의해 관측되었다고 한다.
그럼 6,000억 개 이상의 별들이 모인 은하계는 무엇을 중심하여 돌고 있을까? 분명히 은하계도 무엇을 중심으로 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확하게 천문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이상과 같이 3, 4단계에 불과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두칠성 안쪽으로 저 멀리 은하계가 밤하늘에 보이는 6,000억 개 이상의 별무리보다도 더 큰 은하계가 100여개 이상 있다는 사실도 천문학 관측에 의해 밝혀졌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은하계가 있는 것일까?…
이 많은 별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 그 누구도 아무도 해답을 구할 수 없다. 다만 추론만이 가능할 뿐이다. 많은 성인들이 밝혔듯이 우주는 최초에 생길 무렵 암흑세계였다고 밝히고 있다.
고려(高麗) 25대 충렬왕(忠烈王:A.D.1275∼1309년) 때《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서한 이승휴(李承休)에 따르면 최초 우주는 ‘혼돈형상여계자(混沌形狀如雞子)’라 적고 있다.
이 말은 혼돈한 형상은 마치 계단과 같았다고 되어있다.《통감외기(通鑑外紀)》를 인용하면 天地는 아주 혼돈하고 마치 닭알과 같았다고 한다.
조선왕조 인조(仁祖:1675년) 때《규원사화(揆園史話)》를 저술한 북애노인(北崖老人)은 조판기(肇判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태고음양미분(太古陰陽未分). 홍몽구폐천지(洪濛久閉天地). 혼돈신괴수참(混沌神鬼愁慘). 일월성신퇴잡무륜양(日月星辰堆雜無倫壤). 해혼융군생무적(海渾瀜群生無跡). 우주지시묵암대괴(우주只是墨暗大塊). 수화상탕불유(水火相盪不留). 이나여시자기수백만년의(利那如是者己數百萬年矣).
태고 때부터 즉 아득한 먼 옛날 음과 양이 나누어 있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천지(天地)는 오래도록 닫혀져 있었다. 우주공간은 온통 넓고 넓었지만 원기가 없는 상태이다.
그때는 혼돈하여 신과 귀신도 혹독하게 근심할 정도로 깜깜한 현상이었다. 일월(日月) 성신(星辰)들은 흙덩어리처럼 아무렇게나 되어 있었다.
그 당시는 해도 달도 별도 아니고 흙무더기만 난잡하리만큼 되어 있었다. 바다도 혼돈하면서 깊게 되어 있었고, 어떤 생명도 살아난 흔적도 없었다. 우주는 지금 거대한 암흑의 덩어리였다.
물과 불은 서로 진동하고 움직이면서 머물지 아니했다. 어떤 특정한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주의 그 자체가 수백만 년 동안 그런 상태로 지속되어왔다.
《규원사화》본문에서는《역대신선통감》과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우주가 처음 생길 때의 혼돈한 상태는 한결같이 같음을 부인할 수 없다.
《회남자(淮南子)》원도훈(原道訓)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부도자(夫道者). 복천재지(覆天載地). 도무형이대야(道無形而大也). 곽사방석팔극(廓四方析八極). 고불가제(高不可際). 심불가측(深不可測). 포리천지(包裏天地). 품수무형(稟授無形). 원류천발(原流泉渤). 충이서(冲而徐). 영혼골골(盈混滑滑). 탁이서청(濁而徐淸).
부도자(夫道者)란 우주 본체는 근본이 道이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인법지(人法地), 지법천(地法天), 천법도(天法道), 도법자연(道法自然)’. 이 말은 인간의 법이 땅의 법이다. 땅의 법은 곧 사람의 법이다. 그리고 땅의 법은 하늘의 법이다. 하늘의 법은 땅의 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하늘의 법은 도법이며, 도법이 하늘의 법이다. 그리하여 도법은 곧 자연의 법이며 자연의 법 자체가 도법이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복천재지(覆天載地)란 하늘은 엎드러지고 땅은 실려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 하늘은 땅을 바라보고 땅은 실린 채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무형이대야(道無形而大也)란 道는 있되 형체는 없는 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라고 되어있다.
곽사방(廓四方)이란 엄청나게 큰 사방(四方)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사방은 엄청나게 넓고 광활하므로 끝이 없다는 뜻이다.
석팔극(析八極)이란 여덟 군데의 하늘 끝 다한 데까지 펼쳐지다라는 뜻이다.
고불가제(高不可際)란 아무리 높아도 경제가 없고 끝도 없으며 심불가측(深不可測) 아무리 깊고 깊어도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 높아도 어디가 높은지 경계가 없으며 깊어도 어디가 어떻게 깊은지 경계가 없고 측량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포리천지(包裏天地)란 겉과 속의 천지는 헤아릴 길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품수무형(稟授無形)이란 주고받는 형체도 없이 천지의 품성은 형언할 수 없이 형체 또한 없다.
원류천발(源流泉渤)이란 어디서 생긴 것인지는 모르나 물의 근본됨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물의 원천이 어디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용솟음치듯 생겨났다는 뜻이다.
충이서(冲而徐) 그리하여 서서히 물끼리 충돌하기 시작했다.
영혼골골 또는 영혼활활(盈混滑滑)이란 혼돈하고 어지러움이 넘쳐흘렀다는 뜻이다.
탁이서청(濁而徐淸)이란 그리하여 탁한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맑은 물과 기운이 흐르게 되었다.
이 말을 다시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주의 본체는 道이다. 하늘은 위로 땅은 아래에 있다. 道는 보이지 않지만 형체가 없는 자연은 무한한 것이다.
사방은 크고 넓으며 또한 끝도 한도 없다. 아무리 높아도 경계가 없고 아무리 깊어도 측량할 길 없다. 밖이나 안이나 天地를 헤아릴 길 없다. 그렇다고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품성도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물의 원천이 솟아나 많은 물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물과 그 무엇이 서서히 부딪치게 됐다. 혼돈하고 어두운 가운데 어지럽게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탁한 것은 서서히 맑아지기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회남자》원도훈에서 보는바와 같이 우주의 탄생지는 역시 암흑시대임을 말하고 있다. 그럼 왜 암흑시대였는가는 그 누구도 대답할 길이 없다. 더구나 과학에서나 천문학ㆍ물리학에서도 대답 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지의 우주본체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학(道學)에서는 성인들이 어렴풋이나마 우주의 생성이론을 풀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학문이란 끝이 없다. 답이 있는가 하면 의문이 남는다. 의문이 풀리는 듯하면 다시 의문이 남아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이 학문의 무궁무진한 길이다.
그러나 우주의 생성론과 별의 생성론에 대하여는 더 이상 대답할 길이 없다. 하지만 굳이 과학적, 물리학적 아니면 천문학적, 철학적인 답을 만족하게 구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론적인 입장에서는 해답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 학문을 하는 자세라 생각해 본다.
우주에 있는 별들은 어떻게 생성되었을까를 다시 한 번 깊이 음미해 보기로 한다.
《규원사화》조판기 편을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태고 때 음양이 갈라지지 않고 있을 때이다. 이때는 우주가 모두 넓지만 깜깜하고 오래 오래 천지가 꽉 막혀 있었다.
이 당시 귀신들도 혼돈함을 근심하고 답답해할 정도였다. 이때 해와 달, 별들도 생겨나지 못하고 흙탕 속에서 무질서하게 쌓여있었다.
바다는 있었지만 어둡고 혼돈한 상태여서 아무 생물이 살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주는 먹처럼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의 세계였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물과 불, 즉 빛이 생기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시도 머물고 있지 아니했다. 이런 상태는 어떤 자에게 이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물과 빛이 똑같은 상태에서 수백만 년 간 계속되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규원사화》조판기 본문에서 우주의 생성과 별의 생성론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질서 없이 아무렇게나 쌓인 흙무덤이며, 또 하나는 물, 그리고 불이다. 흙덩이가 쌓이고 쌓인 가운데 물과 불은 쉴새없이 머물지 않고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별이 생길 수 있는 진화과정이다.
별이란 흙과 돌, 바위덩어리다. 물론 별마다 차이는 다르지만 어떤 별이든 흙, 돌, 바위의 구성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별의 특성이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먼지가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다. 먼지가 쌓이면 흙이 되고 흙이 굳어지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 것이 자연의 원리이다.
우리가 방바닥이나 집을 하루만 쓸지 않고 닦지 않아도 어디서인지 먼지가 뽀얗게 앉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사람이 살지 않고 빈집으로 1년만 그대로 둔다면 그 집은 완전히 먼지에 쌓인 폐가가 될 것이다.
이와 같다면 우주에는 얼마나 먼지가 많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암흑시대 때 먼지와 흙더미는 범벅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차츰 차츰 맑아져 아래로 떨어져 덩어리진 것이 별의 생성이라 보아야한다.
어떤 별이던 흙과 돌, 바위의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생토(生土), 생석(生石), 생암(生岩), 즉 살아있는 흙, 돌, 바위라면 별은 살아있는 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토(死土), 사석(死石) 사암(死岩)이라면 죽은 별이다. 살아있는 별이란 생명수(生命水)인 물을 3분의 2는 함유하고 있어야한다. 함유한 물을 계속 생명의 호흡을 통해 생성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살아있는 별이라 할 수 있다.
별의 생성은《규원사화》조판기 본문에서 보다시피 물과 빛이 계속 움직이면서 머물지 않고 흙과 돌, 바위가 뭉칠 수 있도록 생성작용을 반복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살아있도록 흙과 돌, 바위 등에게 생명(生命)의 물과 빛, 그리고 소리의 리듬을 함께 고루 갖춘 상태에서만이 공간세계서 살아 움직이는 별로서 생명을 지닌 채 움직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별이란 물과 빛, 소리의 삼대(三大 ) 요건을 갖춘 氣의 작용이 완벽해질 때 비로소 별로서 생성의 의미를 지니게 되고 가치 있는 생명의 생성에서 생명이 살아 숨쉬는 별로서 존재가치가 더해갈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별의 생성은 물과 빛 그리고 소리에 의해 먼지와 흙, 그리고 바위 등이 뭉친 것이 생명을 함께 부여 받았을 때만이 진정한 별의 생성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별들의 생성은 첫째 먼지로부터 시작하여 흙이 되고, 돌이 된 후 바위가 되었을 때, 물과 빛, 그리고 소리가 함께 부여되어 비로소 별로서 생명을 부여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물ㆍ빛ㆍ소리의 삼대요건(三大要件)은 바로 氣의 작용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이상과 같이 모든 우주의 별들은 흙, 돌, 바위의 한 덩어리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물ㆍ빛ㆍ소리의 氣에 의해 비로소 별들에게 생명 있는 별로서 탄생됨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별들의 생성은 氣에 의해 탄생됨을 알 수 있다.
만약 흙, 돌, 바위가 되어도 물과 빛, 그리고 소리인 氣의 생명력 없이는 별로서 생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별로서 생명력을 완전히 갖추려면 첫째 질량의 3분의 2가 물의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열 아닌 빛과 소리, 즉 자력 같은 氣의 움직임을 몸소 갖추어야한다.
그렇지 못할 때는 만유인력과 자력의 유지력이 모자라거나 결핍되었을 때는 별의 생명력은 소멸되는 것이다.
사람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것과 같은 것이다. 건강한 사람은 체력을 유지하고 오래 살듯이 별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파묻혀 버리듯 별들도 죽으면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 죽어간다. 사람이 화장터에 들어가 재가 되어 나오듯 별들도 사라진다.
그러나 우주에는 많은 공해의 먼지가 쉴새없이 생성되어 나온다. 그것은 사람의 옷에서 먼지가 털려 나오듯 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별들은 氣에 의해 끝없이 생성하면서 죽고 다시 살아나는 순환작용을 반복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이다.
그러므로 별들의 생성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우주 속에서 氣에 의해 영구히 별들은 생성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죽으면 다시 먼지에서 無로 돌아가고, 다시 먼지에서 흙으로, 돌로, 바위로 태어나 생명을 갖추는 별로서 탄생하는 생성의 법칙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4. 氣의 용변(用變)의 법칙
우주가 생성될 때 암흑시대였다면 분명한 것은 공간 속에 있는 별들의 나타남이라 보아야한다. 공간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상태에서 별과 태양ㆍ지구ㆍ달이 생성되었다고 했다.
《역대신선통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無에서 형체가 생겨났다고 했다.《규원사화》에서는 흙탕이 엉켜서 별이 생성되었다고 되어있다. 우주는 본시 암흑세계에서 출발했다. 그때 먼지와 흙덩이가 뒤범벅이된 채 따로따로 별들은 생성되어갔음을 알 수 있다.
태초에는 우주의 생성이 흙먼지로부터 차츰차츰 분리되면서 맑은 기운은 높은 곳으로 탁한 기운은 낮은 곳으로 나누어져 점차로 공간세계에서 각각의 기능으로 뭉쳐진 것이 별이 된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태극도설(太極圖說)》에서는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태극본무극(太極本無極)’이라 기록하고 있다. 무극에서 태극이 나왔으며 태극의 근본은 무극이라 했다. 이 말은 옳은 대답일지 모르나 상당히 모호하고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논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주자(朱子)는 무극에 대하여 ‘정기무방소무형상(正以其無方所無形狀)’이라 말하였다. 아무리 바르게 보려고 해도 사방팔방 정해진 곳도 없고 또 형상도 없다 하였다. 결국 空의 세계는 사방팔방이 있을 수도 없고 또 어떤 형상도 없다는 말이다.
다시 주자가 말하기를 ‘무극(無極)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으며 냄새도 없는 묘한 것’이라 하였다. 주자(朱子)의 이 말은 이론적으로 말할 때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극(無極)은 소리와 모양, 그리고 냄새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자는 다음과 같이《태극도설》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다.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지시설무형이유리(只是說無形而有理). 추지어전이불견기시지합(推之於前而不見其始之合). 인지어후이불견기종지이(引之於後而不見其終之離).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이 생겨난다. 이러한 설은 무형(無形)의 본체는 理가 있었기 때문이다. 理를 따라 쫓고, 쫓아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분명한 것은 理가 시작하고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같이 끌어당긴 후에도 보이지 않고 결국은 떨어지는 것이다.
주자(朱子)의 이론은 우주와 사물의 본체를 理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극은 理로 음양(陰陽)을 氣로 보았던 것이다. 여기서 주자학은 빗나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주자학에서는 空의 세계와 사물의 본체를 理로 본 것에 비해 모든 사물을 氣로 보았다면 음양은 氣로 보아서는 안된다. 만약 음양을 氣로 보았다면 사물은 氣로 보아서는 더더욱 안된다. 주자학의 모순된 이론은 여기서 완전히 빗나가고 있었다. 음양(陰陽)은 볼 수도 없는 것이며 또 보이지도 않는다. 태극이 보이지않는 본체를 理로 보았다면 음양도 보이지 않으므로 마땅히 理로 보아야만 한다.
그러나 음양을 理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물론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이 태극이다. 태극이 물질의 근본이라면 태극도 주자학의 이론대로라면 氣로 보아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물질을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음양 또한 理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태극이나 음양은 모두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으며 냄새도 없다. 그러나 태극과 음양은 똑같이 물질을 창조해낼 수 있는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자학의 기론(氣論)은 잘못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기론(理氣論)은 우주의 본체론으로 성안시켰다. 다시 말해 理는 태극으로서 우주의 본체론으로 보았으며 氣는 우주의 창생원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주자학에서는 氣를 사물의 원리로 보았고 한편 우주의 창생원리로도 보았다면 모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주자는 분명히 기론(氣論)에 대하여는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같은 인상이다. 물론 주자의 학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 황도부(黃道夫)라는 사람에게 주자가 대답한 것을 적고 살펴보기로 한다.
천지지간(天地之間). 유리유기(有理有氣). 이야자(理也者). 형이상지도야(形而上之道也). 생물지본(生物之本). 기야자(氣也者). 형이하지기야(形而下之器也). 생물지구야(生物之具也). 시이인물지생(是以人物之生). 필품차리(必稟此理). 연후유성필품차기(然後有性必稟此氣). 연후유형(然後有形). 기성기형(其性其形). 수불외호일신(雖不外乎一身). 연기도기지간(然其道器之間). 분제심명(分際甚明). 불가난야(不可亂也).
천지 사이에는 理와 氣가 있다. 理는 형이상(形而上)의 길이요, 즉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도 한다. 생물의 본체이다. 그리고 氣란 형이하(形而下)의 그릇이다. 즉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도 한다. 생물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물건이 태어났음을 뜻한다. 그러기에 理란 반드시 理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이며, 氣란 반드시 氣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형체가 나타난다. 그 형체에 따라 각각 성(性)이 있으며 비록 다르다 하더라도 같은 몸이다. 그리하여 제각기 다른 그릇이라도 길이 나타나며 쓰임새는 절대로 되지 않는다.
본문에서 보면 理는 생물의 근본이라 했고 氣는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氣는 형이하학, 즉 그릇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물질을 본 것으로 되어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氣가 물질을 만들 수 있는 요건을 갖춘다고 했다. 하나는 갖춘다라는 뜻이요 하나는 그릇과 같은 물건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대단히 모순됨을 의미하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품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말과, 물건 즉 그릇이라고 하는 말의 차이는 전연 다른 의미를 갖는다. 황도부란 사람에게 대답하는 짧은 글에서도 주자학은 길을 잃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론의 부재이다.
《태극도설》에서는 많은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태극도설》에는 ‘태극동이생양(太極動而生陽) 정이생음(靜而生陰)’이라고 되어 있다. 태극이 동하여 양(陽)이 나타나고 고요한 가운데 음(陰)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여기서 주자의《태극도설》은 잘못되어 있다.
주자학에서는 엄연히 태극과 음양을 분리하고 있다. 그리고 태극에서 양의(兩儀)가 나온다고 했다. 양의란 곧 음양이다. 태극에서 음양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한 것이 주자학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태극이 동하면 양(陽)이 나오고 정(靜), 즉 고요하면 음(陰)이 나온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잘못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태극에서 음양이 동시에 나오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태극이 동할 때는 양(陽)이 나타나고 정지하거나 고요할 때는 음(陰)이 나타난다고 한 것은 주자학의 이원론(二元論)을 야기시킨 결과이다. 태극은 엄밀히 따져서 음(陰)이다. 태극 자체가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극은 자연히 본성(本性)대로 양의(兩儀), 즉 음양을 동시에 낳는 것이 아니라, 음을 먼저 잉태한다.
즉 마이너스 일[-1]이다. 음(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속에, 즉 기운 속에 양(陽)의 성질(性質)을 가지고 있다가 음의 기운이 사라질 때 비로소 양(陽)의 본성(本性)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과 양은 서로 반복하여 잉태하면서 태어난다. 그렇다고 陰陽의 기운은 보이거나 들을 수도 없으며 보지 못한다.
그러니까 태극은 순전히 陰의 기운(氣運)이며 음기(陰氣)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氣의 움직임에 의해 음(陰) 속에 양기(陽氣)를 산출한다는 법칙이다. 따지고 보면 공존(共存)한다고 보겠으나 그렇지 않다. 음(陰)과 양(陽)을 주자학에서는 태극과 같이 엄연히 분리시키고 있다. 따로따로 있는 것처럼 되어있는 것이 주자학의《태극도설》이다.
태극은 음기(陰氣)이므로 당연히 음을 먼저 잉태하여 배출시킨다. 음(陰)은 일정 시간 동안 氣의 흐름을 타고 상존(常存)하고 있다가 생명의 氣가 다 되어지면 자연히 양(陽)의 氣가 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양(陽)의 氣가 다되어지면 다시 음(陰)의 기운이 성(盛)하여 상호간 떨어지지 않고 반복 작용하면서 연관성(聯關性)의 고리를 물고 공존함을 뜻한다.
여기서 주자학(朱子學)과 필자(筆者)가 보는 학문의 큰 차이를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성리학(性理學)에서는 태극(太極)과 음(陰), 그리고 양(陽)을 따로따로 분리된 것처럼 보아왔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음양이 동시에 상존한 것처럼 되어있다.
그러나 주자학에서는 엄연히 陰은 陰으로 분리하고 陽은 陽으로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기록해왔고 그렇게 이해되어 왔다. 또 성리학에서는 氣의 활동에 의해 동(動), 즉 움직일 때 陽이요, 정(靜) 즉 조용하고 고요할 때 陰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음과 양의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음양의 동정(動靜), 즉 움직이고 고요함이 이루어지는 근본은 理라고 주자학은 말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陰과 陽의 반복 작용에 의해 순환한다고 하는 것은 陰과 陽을 따로 분리해 보았다는 데 잘못이 있다. 물론 陰과 陽, 그리고 氣와 理는 보이지 않으므로 학문적으로 매우 난해하다. 그러나 지혜없는 사람은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다.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자만이 현자(賢者)이다.
여지껏 주자학인 성리학은 태극(太極), 음(陰), 양(陽)을 구분하여 따로 따로 보았기 때문에 큰 모순이 생긴 것이다.
마라톤 선수가 처음 달리는 지점에서는 대개가 같을런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큰 격차가 생기는 것처럼, 성리학은 엄청난 잘못 때문에 조선왕조 때부터 크나큰 화근을 불러 일으켜 왔던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성리학에서는 理의 본체를 보았지만 空과 우주, 그리고 사물에 이르기까지 理의 구분이 뚜렷하지 못해 결국에는 氣와의 호발론(互發論)이 야기된 것은 웃지 못할 넌센스이다.
주자는 또한 ‘추뉴근저(樞紐根柢) 생물지본(生物之本) 만선지원(萬善之源)’이라 했다. 추뉴근저란 노끈처럼 단단한 뿌리도 운동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생물지본이란 생물의 본체이며, 만선지원은 만 가지 원인은 착한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해 하늘의 道와 인간의 道는 관통하므로 理라고 하였다.
순자(荀子)는 정명편(正名篇)에서 ‘생지소이연자위지성(生之所以然者謂之性). 생지화소생(生之和所生). 정합감응(精合感應). 불사이자연(不事而自然). 위지성(謂之性).’ 이라 말하였다.
생명이란 자연에서 연유된 순수한 성(性)이며 性이란 생명을 바르고 곧고 정당하게 자연처럼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있는 정(精)이 교감하여 감응하지 않으면 자연의 인연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의 생(生)과 정(精)은 곧 성(性)이라 하였다. 性이란 품성을 뜻한다. 平和스러운 가운데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본성(本性)이라 하였던 것이다.
순자는 자연 그대로를 性으로 보았다. 性은 생명의 원천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곧 理요 氣임을 암시하고 있다.
앞에서 보는 것처럼 성리학은 理와 氣를 나누어서 보았다. 우주의 본체나 사물의 본체, 그리고 인간의 본성까지도 모두 理로 보았던 것이다. 理란 근본의 원리를 뜻한다. 그렇다면 근본의 원리를 무조건 理로 볼 것이냐에 의문이 따른다.
천문학과 물리학에서는 우주에 대하여 아직 이렇다 할만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주의 생성론을 별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했지만 뚜렷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막연히 별의 생성을 연구하다보니 먼지와 흙, 돌, 바위들이 뭉친 별들의 세계인 근본적 창조론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주가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으로 생겨난 것인지는 과학자들도 규명이 안된 상태이다. 다만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력(道力)에 의해 판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북애노인(北崖老人)이 쓴《규원사화(揆園史話)》조판기에서나《회남자》 원도훈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주는 암흑세계일 때 흙먼지가 천지를 덮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때 어둠이 가득찬 공간에서 물이 생기면서 밝은 빛이 생겨나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때 무엇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가를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성리학에서는 理가 우주의 본체라고 했으니까 우주 본체는 본체일 뿐 어떤 작용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氣의 작용인 陰陽이 생겨 순환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그럼 음양이 氣일까? 그렇다. 음양이 氣일 수도 있다. 氣란 물과 빛, 소리의 복합체이다. 그러나 음양은 氣에 속할 뿐 완전한 氣의 작용은 불가능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태극에서 陰이 생긴 후 陰이 사라지면서 陽이 나타남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음양은 완전한 氣의 작용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陰은 물기를 머금고 있으므로 氣의 일부이다.
그리고 陽도 따뜻한 기운을 갖고 있으므로 역시 氣의 일부이다. 그러나 음양의 움직임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작용하는 과정이 매우 완만하고 느리다. 이것은 氣로서는 아주 허약함을 뜻한다. 완전한 氣의 형체는 물과 빛이 교합 되었을 때 소리에 의해서만이 氣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중력의 작용이 교감되어야만 氣로서 생명을 지닐 수 있다.
《규원사화》에서 언급되었듯이 암흑천지일 때 뒤범벅된 먼지 흙덩이가 뒤엉켰을 때 물과 빛이 서로 교합하면서 쉴새없이 머물지 않고 움직여주는 것이 바로 氣로서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럼 氣의 용변(用變)의 법칙은 어떤 것일까가 궁금해진다. 어둠이 묻힌 진흙땅에서 빛에 의해 생명이 잉태되듯이 우주가 암흑세계일 때 먼지와 흙덩어리가 뭉치면서 중력과 인력에 의해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상호 회전작용을 하면서 쉴새없이 움직여 나가는 그 순간에 물과 빛이 함께 어우러져야 비로소 氣의 작용이 시작됨을 뜻하는 것이다.
氣의 용변은 이때부터 작용하며 물과 빛이 서로 상극으로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반동의 작용에 의해 소리의 움직임이 생기게 된다.
이 세가지가 복합적으로 묘합(妙合:묘하게 합함)하면서 우주의 세계를 순환하는 가운데 맑은 곳은 맑아서 하늘이 되고 흙먼지가 엉켜서 뭉친 것은 별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 위에 하늘이 있고, 하늘 밑에도 하늘이 있으며, 별 위에도 아래도 별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도 하늘이면서 땅일 수 있고 은하계도 하늘이면서 땅이며 수억 광년 밖에 있는 별도 하늘이면서 땅인 것이다.
우주의 생성은 모두가 氣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理란 우주의 본체라고 규정한다면 생명창조의 원리는 모두 氣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보아야한다.
氣는 우주에도 있고 지구에도 있고 사람에게도 있고 없는 곳이 없다. 다만 우주에 있는 氣의 질량이 다르고 사람과 모든 사물에 있는 질량이 다를 뿐 어떤 생명에도 氣를 함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그마한 풀잎도 작은 조약돌도 모두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가 氣를 함유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그럼 氣의 용변은 어떤 사물에서, 아니면 어떤 곳에서 그 법칙이 이루어지느냐가 문제이다. 그 답은 간단하다. 보이지 않는 空의 세계에서도 물질이 생겨난다. 다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만물이 만들어지는 용변(用變)의 작용은 氣가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氣는 단지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은 있을지라도 직접 생산하거나 보태(保胎)할 수 없다.
생명을 보태할 수 있는 것은 空의 세계와 흙, 즉 땅뿐이다. 땅이라 해서 무조건 생명을 생산하거나 보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흙과 땅이 죽어있는 것은 생명을 잉태하여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는 흙이란 물과 빛과 소리가 조화되어 생기를 가져야한다는 뜻이다.
空의 세계도 한 부분이 사기(死氣)일 때는 사기에 휩싸인 별의 세계는 블랙홀 속으로 영구히 자취를 감추지 않으면 안된다.
氣의 쓰임은 우주에서부터 한낱 미물에 이르기까지 천변만화의 조화를 하게 된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가 아닌,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물에도 물과 빛, 그리고 소리가 함유되어 있다고 보아야한다.
단 생명이 있는 물질은 반드시 물질의 3분의 2가 물의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예를 들면 돌도 생명이 있는 것은 자란다. 나무나 풀잎도 마찬가지다. 3분의 2 이상의 물의 기운이 없다면 생명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토(死土), 사석(死石)은 자라지도, 생명을 잉태시키지도 못한다. 여기는 생명의 존립(存立)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氣의 쓰임새는 우주뿐만 아니라 어떤 물질이든 변화의 법칙에 따라 유용하게, 그리고 다방면으로 氣가 작용한다고 보아야 한다.
理는 단지 우주나 만물의 본체라고 한다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과 성장 그리고 변화는 모두 氣의 몫에 의해 이룩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氣를 형이하학인 물질로 보았다가 때로는 생성(生成)으로 보는 모순을 야기시키고 있으나 이것은 한마디로 잘못이다. 氣는 물질인 형이하학이 아니라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요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氣의 용변법칙(用變法則)은 실로 방대하고 위대하다. 때로는 우주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에서부터 조그마한 미물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생명의 원천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氣에도 강(强)과 약(弱)이 있고, 크고 작음이 있으며, 작용하는 용변도 모두 어떤 것에 의해 다르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지구는 3분의 2가 물이다. 지구의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氣의 용변과 풀잎의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氣의 용변이 다름을 뜻한다.
그러므로 氣의 용변의 변화법칙은 실로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氣의 척도가 다르며 氣의 감각도 氣의 작용과 변화가 다를 뿐이다. 예를 들면 우주를 창조할 때의 氣의 용변과 질량이 다를 뿐이다. 그와 같이 理 또한 다름을 알 수 있다.
理의 구분은 空의 세계에서부터 물질까지 위치에 따라 본질적인 뜻이 다르게 나타나듯이 氣의 용변법칙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나 할 것이다.
5. 氣란 무엇인가?
고대 사회는 학문의 수준이 아주 낮은 것으로 현대인들은 생각한다. 미개한 시대이므로 동물과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으로 여겨왔다. 물론 수만 년 전은 그러했을 것이다. 인류가 생겨난 것은 370만 년 전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上古時代 이전에는 사람도 짐승과 같은 생활을 했으리라는 것은 필자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