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찬란한 새봄을 기다리며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찬란한 새 생명의 빛이 우리 모두에게 가득가득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번 부활주일에도 ‘메타노이아’ 두 분과 함께 찬양으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부활절이 명절의 ‘대목’ 같을 텐데 우리 공동체와 함께해 주시는 것 한 번 더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주보에 찬양 순서 보셨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정했습니다. 그중에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찬송가 550장)에는 설명을 붙였습니다. ‘생명의 부활, 민주주의 부활, 역사의 새 아침을 소망하며’. 금년 부활절에는 제발 그랬으면 하는 간절한 기도를 찬송과 함께 소리 높여 불러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1절 가사)
‘시온’이라는 가사를 ‘부활’로 바꿔보시지요. 그리고 어둡고 슬픔과 애통이 가득한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생각해보시지요. 제발 기쁨의 4월 총선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럴 것 같은 기운이 이 땅에 얼마나 충만한지 느끼고 계시겠지요. 기쁨이 되는 그 기대는 ‘오래 전 선지자 꿈꾸던 복’(2절 가사)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고 사자들이 어린 양과 함께 뛰놀고 어린이들 함께 뒹구는” 것과 같은 이사야가 꿈꾸던 그런 것,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는” 아모스가 꿈꾸던 그런 것, ‘독립의 길, 평화의 길’을 걸어갔던 장준하나,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고 휴전선을 넘었던’ 문익환의 꿈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 아니겠습니까?
부활이라는 히랍어는 ‘에게이로’ 혹은 ‘아나스타시스’라고 하는데 ‘봉기하다’, ‘대항하다’, ‘맞서다’라는 뜻입니다. 불의한 권력이나 거짓에 굴복하거나 변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킨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금년 부활과 총선이 역사의 찬란한 새봄이 되어서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기를 소망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아멘.
첫댓글 총선으로 조금 밝아졌습니다 ㅎㅎ
저희 메타노이아는 그날 '시온'을 '부활'로 바꾸어 부르면서
이 땅에 부활이 오기를 소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