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리고 <무한도전>과 ‘무릎 팍 도사’ 사이에는 ‘꼴찌팀을 응원하는 야구팬’과 ‘천하장사’만큼이나 다른 두 사람의 특성이 반영된다. <무한도전>은 ‘팀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아마추어들의 놀이’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아무리 서로의 방송 비중을 놓고 싸워도 결국 바나나 하나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놀이일 뿐이고, 그 놀이를 통해 캐릭터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무한도전>의 재미다. 반면 ‘무릎 팍 도사’는 씨름과 같은 ‘개인 시합’ 이자 프로 선수들의 ‘진검승부’같다. 유세윤과 올라이즈 밴드의 지원이 있지만, ‘무릎 팍 도사’는 다른 토크쇼와 달리 MC와 게스트가 거의 1:1로 토크를 진행한다. 그만큼 출연자 각각의 비중이 높아지고, 누가 웃기고 웃기지 못했는지 그 결과가 바로 드러난다. 또 강호동에게 ‘무릎 팍 도사’의 게스트들은 ‘기’를 꺾어야할 대상이다. 심지어 강호동은 ‘자기편’인 유세윤에게도 틈만 나면 “이수근을 불러왔어야 했어”라며 기를 꺾고, 세 명의 진행자가 게스트에게 신선한 질문을 하지 못하면 세 사람이 서로를 때리는 코너도 있다.
제작진 스스로 ‘버라이어티의 막장’이라 부르는 <무한도전>에서마저 유재석은 막 나가려는 출연자들의 발언을 정리하고, 발언 기회를 배분하며 모두가 즐거운 놀이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진행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강호동은 <야심만만>에서는 꼬투리만 잡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게스트의 폭탄선언을 끌어내려고 하고, 심지어는 모두가 즐겁게 노는 < X맨 >의 피구 시합중에도 춤을 안 추겠다는 현진영에게 계속 춤을 추라고 하다가 서로 무릎을 꿇니 마니 하는 신경전까지 벌인다. 유재석에게 오락 프로그램이 놀 것들이 무한하게 많은 게임이라면, 강호동에게 오락 프로그램은 둘 중 하나가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은 승부의 장이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프라임 타임을 양분하면서, 유재석과 강호동의 스타일은 곧 한국 오락프로그램의 커다란 경향이 됐다.
|
반면 유재석은 당시 ‘10년 무명세월’의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유재석은 정통 코미디에 통할만한 독특한 외모도 아니었고, 데뷔 동기인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처럼 토크 중심의 개그나 오락 프로그램 MC진출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는 KBS <코미디 세상만사>의 ‘남편은 베짱이’에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얄미운 남편 캐릭터를 연기 했으니 당시의 주류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유재석은 10년 동안 ‘마이너 코미디언’의 세계를 체험했고, 그가 무명시절에서 벗어난 것도 KBS <서세원쇼>의 ‘토크박스’에서 인기가 없어 정육점에서 초라한 사인회를 했다는 식으로 무명 코미디언의 비애를 말하면서부터다. 그가 다른 출연자들과 조화하며 즐겁게 노는 프로그램에 집중하게 된 것도 이런 경험들이 바탕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유재석이 <매거진 t>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그는 자신이 재치가 떨어지는 대신 남들 보기에 ‘그냥 노는건 잘하니까’ 계속 놀았고, 놀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하니 친구들을 만들었다. 별 볼 일 없는 개그맨들이 모여 계속 당하면서 웃음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과거 ‘외인구단’부터 현재의 <무한도전>까지 이어지는 유재석 특유의 ‘몸개그 + 자학 + 팀플레이’ 프로그램들은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버라이어티 쇼까지, 마이너에서 서서히 메이저까지 모든 과정을 거친 그의 이력 에서 나온 것이다.
|
|
|
‘공포의 쿵쿵따’의 자산을 먼저 자기 것으로 소화한 것은 강호동이었다. ‘공포의 쿵쿵따’ 이후 강호동은 MBC <천생연분>과 SBS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그리고 < X맨 >과 <야심만만>등을 진행하며 한국 오락 프로그램 전체의 경향을 주도했다. 그것은 ‘공포의 쿵쿵따’ 이후 강호동이 완성한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기인한다. 강호동은 데뷔 이후 꾸준히 정상의 자리를 지켰지만, 그것은 신동엽의 ‘정상’과 의미가 다르다. 신동엽은 말 잘하고, 똑똑하며,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반듯한 신사의 이미지를 가졌다. 하지만 강호동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몇 가지 약점을 가졌다. 그의 큰 체구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지만 동시에 그가 TV에서 여자 연예인과 로맨스를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덩치 큰 천하장사의 모습은 머리가 나쁠 것이라는 인식과도 연결됐다. 즉, 그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천하장사지만, 잘생기거나, 머리 좋은 사람에게는 약하다. 늘 주목받았고, 쌓은 경력도 화려하니 자신감은 넘치지만, 사람들은 자꾸 자신의 약점을 찌른다. ‘공포의 쿵쿵따’에서 유재석은 쉴 새 없이 강호동의 외모와 단순한 성격 등의 약점을 찔렀고, 강호동은 때론 상처받고, 때론 우악스럽게 유재석을 제압했다. 그 때부터 안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때론 오락 프로그램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오갈 정도로 ‘진지하게 들이대는’ 강호동의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연애 감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강호동의 캐릭터는 큰 장점이었다. 보통 사람은 차마 물어보지 못할 말들도 강호동은 단순하고 코믹한 성격을 핑계로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또 <야심만만>에서는 김제동이 강호동의 약점을 자극하며 톰과 제리같은 관계를 형성했고, <리얼로망스 연애편지>에서는 신정환, 천명훈 등 강호동처럼 ‘들이대는 컨셉’의 캐릭터들이 미남 연예인들과 대립구도를 이루어 프로그램에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MBC <천생연분>부터 SBS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와 <야심만만>등은 허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때로는 눈물과 감동까지 뒤섞이는 나름의 ‘리얼 로망스’를 만들었다. 무엇이든 한 번 ‘이거다!’싶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강호동 앞에서는 농담 한마디도 ‘충격발언’으로 발전했고, 강호동의 부추김을 통해 프로그램속의 가짜 커플 만들기는 때론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하는 실제 열애설로 변했다. 아직 리얼리티쇼가 없었던 상황에서 강호동은 연예인들의 감정을 가장 리얼하게 끌어내는 MC였다.
|
|
반면 유재석은 그 때도 차근차근 올라오고 있었다. ‘공포의 쿵쿵따’ 다음에는 스케일을 더욱 확장한 ‘위험한 초대’에서 쉴 새 없이 물대포를 맞으며 그는 불쌍한 자학성 캐릭터를 완성했고, <X맨>의 원형격인 MBC <목표달성 토요일>의 ‘동거동락’을 진행하며 많은 출연자들을 통제하는 법을 익혔다. 반면 <무한도전>처럼 여러 명의 캐릭터가 황당한 도전을 하는 ‘외인구단’과 ‘감개무량’ 등은 계속 실패했다. 그러나, 캐릭터가 모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즐거운 놀이판을 벌리는 유재석의 스타일은 점점 큰 힘을 발휘했다. <해피투게더 프렌즈>는 오락 프로그램의 스테디 셀러가 됐고, <놀러와>는 변화 끝에 지금의 야구시합 컨셉이 됐으며, 과거엔 추리게임의 성격이 짙었던 <진실게임>은 이제 연예인과 일반인이 한데 어울리는 야유회처럼 변했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은 처음에는 미미한 출발을 보이더라도 한 번 그 세계에 맛들인 시청자들을 붙잡으면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다.
유재석이 서서히 정상으로 올라오는 기간은 곧 강호동의 부침과 연결된다. 누군가에게 연애담을 털어놓게 하거나, 출연자들을 사귀는 것처럼 만드는 강호동의 프로그램들은 근본적으로 1회성 이벤트라는 한계를 가진다. 한 번 폭로된 이야기나 한 번 만든 관계는 반복될수록 식상해진다. 유재석의 프로그램은 캐릭터의 관계 변화를 바탕으로 조금씩 다른 스토리를 선보일 수 있지만, 게스트만 바뀔 뿐 늘 어떤 발언이나 연인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강호동의 프로그램은 이야기의 틀이 매번 반복된다. <연애편지>에서 전에 출연했던 연예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연예인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는 순간, 그나마 실제 같았던 초반의 감정은 사라지고, 장난만 남는 것이다. 오직 유재석과 함께한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만이 캐릭터의 역할과 숫자를 늘려 스토리를 다양하게 만들면서 마치 시트콤처럼 한 커플의 이야기를 길게 늘여 어느 정도 한계를 벗어났다. 그러나 ‘X맨’은 컨셉이 바뀌었고, <야심만만>은 연예인의 사생활을 너무 파헤쳤으며, 최근에는 지상렬의 가짜 열애설 고백을 사실인 것처럼 예고를 내보내면서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로운 일은 지금부터 벌어질 것이다. 유재석은 지금 최고의 전성기다. 하지만 그는 지금 수성과 완만한 하향세의 기로에 서있다. 유재석이 MC계의 최정점에 선 것은 <무한도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단지 시청률의 문제가 아니다. 고정된 캐릭터가 자신들끼리 스토리를 발전시키면서 게임을 즐기는 유재석의 프로그램들은 꾸준한 재미는 있지만 강호동의 프로그램처럼 이슈를 터뜨리는 힘은 약했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탄탄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리얼리티쇼적인 요소를 더했고, 그것은 기존의 고정팬들에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무한도전>은 2006년의 가장 ‘핫’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올라섰으며, 유재석을 ‘드디어’ 소리없는 강자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MC계의 정상으로 만들었다.
|
|
하지만 <무한도전>이 그런 화제성을 유지하려면 지금까지처럼 계속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 <무한도전>은 패션쇼와 몰래카메라 등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렸지만, 반대로 과거처럼 간단한 게임을 반복한 지난 2주간의 시청률은 하락세였다. 물론 몇 주 사이에 프로그램의 위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한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새로운 장르로까지 확장된 것은 끊임없는 변화 때문이었다. 그것이 멈추면, <무한도전>은 ‘리얼’은 사라지고 캐릭터의 이야기만 남는다. 또 <해피투게더 프렌즈>는 <헤이헤이헤이 시즌2>의 위협을 받고 있고, <놀러와>는 새로운 시간대로 편성한 뒤 시청률은 올랐지만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여전히 가장 열세다. 또 <진실게임>과 < X맨 >은 지나치게 오래됐다. 특히 유재석은 자신의 입지가 탄탄해질수록 그의 가장 큰 웃음 코드 중 하나였던 ‘불쌍한 남자’의 캐릭터를 쓰지 못한다. 과거 ‘공포의 쿵쿵따’ 시절만 해도 유재석은 강호동과 치열하게 치고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유재석은 < X맨 >에서 강호동이나 박명수를 ‘점잖게’ 타이른다. 물론 그의 진행 솜씨와 재치는 여전하다. 그러나 유재석이 점점 반듯한 진행자가 될수록, 그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강호동은 토크쇼부터 버라이어티 쇼까지 모두 소화하지만, 지금의 유재석은 캐릭터를 모아놓고 게임을 즐기는 이외의 컨셉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만약 지금의 오락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바뀐다면 유재석은 또 무엇으로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반면 강호동은 ‘무릎 팍 도사’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강호동은 ‘무릎 팍 도사’에서 드디어 ‘연애’로부터 벗어났고,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 기존 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은 아무리 ‘들이대는’ 컨셉이라 해도 결국 모든 대화를 원만하게 수습해야 했다. 그러나 ‘무릎팍 도사’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어색함조차도 하나의 컨셉이다. 덕분에 대화는 뚝뚝 끊어지고, 때론 이승환처럼 AV시스템같은 전문적인 영역을 이야기하거나, 신해철처럼 강호동도 당황할 정도의 발언도 나오지만, 그것은 그만큼 ‘무릎 팍 도사’가 ‘리얼한’ 토크를 담아냈다는 의미다. 강호동은 진지하게 들이대면서 게스트와 승부하는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한 채 사생활 폭로가 아닌 게스트의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일 수 있는 토크쇼에 도전했다.
|
프로를 제압한 아마추어 팬처럼 즐겁게 MC를 하던 유재석은 이제 더 이상 그것만으로는 안 될 때가 왔고, 계속 은근한 기싸움을 하던 강호동은 드디어 승부를 결정짓는 기술을 걸었다. 그것은 유재석과 강호동뿐만 아니라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CEO이자 <헤이헤이헤이 시즌2>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신동엽도, 여전히 KBS <상상플러스>를 지키고 있는 이휘재도, 최근까지 ‘MC형 아나운서’였다가 드디어 프리랜서 MC가 된 김성주도 마찬가지다. 유재석이 KBS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한지 16년, 강호동이 샅바대신 마이크를 잡기 시작한지 14년. 그러나, 게임은 이제야 중반이다. 그것이 야구건 씨름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