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인생 공부론 에세이】
‘의문이망(倚門而望)’과 인생 ‘공부론(工夫論)’
― 부모님 가없는 사랑과 무언의 가르침이 ‘최고의 인생 교과서’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들 차가 주차장에 안 보이네.”
4층 건물에서 창밖의 1층 주차장을 시시각각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다.
직장에 다니는 아들의 퇴근 시간은 저녁 6시부터 7시까지다. 이 시간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창밖을 수시로 내다본다.
7시가 넘으면 왠지 초조해진다. 다 큰 자식인데도 눈에 보일 때까지 기다린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다. 나는 어째서 그 옛날 어머니처럼 자식을 기다리는가?
학창 시절, 20여 리가 넘는 먼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어머니는 자식의 등교를 위해 새벽밥을 지어 주셨다.
▲ 필자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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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밥을 먹고 대문을 나서는 자식을 위해 어머니는 바로 뒤따라 나오셨다. 뒤따라 오시면서 책가방을 들어주셨다.
이른 새벽 시골 논둑길엔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있었다. 어머니는 치마가 다 젖도록 풀숲 이슬을 스치면서 앞서가셨다.
자식의 책가방을 들고 앞서 가시는 어머니의 치마는 여성 외출복이 아니었다. 자식을 바래다주는 ‘이슬 털이개’였다.
“엄니, 이젠 그만 들어가셔요.”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중추리 가래울 논둑길. 어머니는 이 길을 지나 장터거리에 이르러서야 무거운 책가방을 자식에게 건네주고 손을 흔드셨다.
“잘 다녀와라, 응?”
등굣길만 그러신 게 아니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자식을 어머니는 때맞춰 동구 밖까지 나오셔서 그렇게 또 기다리셨다.
그 옛날 어머니가 자식 기다리던 방식을 조금은 닮아서일까? 칠십 고개를 훌쩍 넘어선 노년의 자식이 또 ‘기다림을 대물림’하고 있다.
차를 운전하는 아들이니 건물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부모는 비로소 안심한다.
◆ 대문에 기대어 자식 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 『의문이망(倚門而望)』
부모의 이 같은 자식 기다림을 ‘의문이망(倚門而望)’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대문에 기대어 서서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적절히 표현한 사자성어다.
이 말에는 자식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겨있다. 출전을 찾아보았더니 기원전 1세기 《전국책(戰國策)》에 실린 고사에서 유래했다.
제나라 왕손가의 어머니가 아들이 늦게 돌아오면 대문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입구에 기대어 기다렸다는 일화가 원본이다.
같은 의미의 ‘의문지망(倚門之望)’이나 ‘의려지망(倚閭之望)’, 또는 ‘의문의려(倚門倚閭)’ 등으로 쓰인다.
‘의려(倚閭)’는 마을 어귀에 기대어 기다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최근에 고향 선배가 누리 소통망(SNS)에서 ‘친(親) 자에 담긴 뜻’을 언급했다. ‘친(親)’ 자를 파자(破字) 해 보면 공교롭게도 ‘의문이망(倚門而望)’과 맥을 같이 한다.
‘친(親)’자에 담긴 뜻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인터넷에서 여러 형태의 설문해자(說文解字)가 회자하고 있다.
‘친(親)’자를 살펴보면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 [立],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 [見]있다’가 된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 오기를 바라다보는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이 담긴 글자. 그래서 어머니를 모친(母親), 아버지를 부친(父親)이라 한다.
또 연관하여 친구(親舊), 친절(親切), 친밀(親密), 친목(親睦), 친화(親和), 친애(親愛), 친숙(親熟), 친근(親近)이란 낱말도 생겼다.
누리 소통망에서 의미 있는 좋은 글귀를 옮기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렇게 메시지를 덧붙인다.
“친(親) 자 밑에 붙은 말 중에 나쁜 말이 하나도 없으니, 따뜻하게 잘 소통하면서 친하게, 아름답게 살아갑시다.”
◆ 존경하는 원로 학자가 부탁하신 『공부론』
인생 공부란 제도적인 교육기관을 통해서만 이뤄지고 습득하는 것이 아니다.
마침 존경하는 원로 역사학자 정구복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가 뜻하지 않게 이런 글 청탁을 하였다.
“윤 선생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공부론’을 한 편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팔순을 훌쩍 넘긴 원로 학자. 천재 두뇌로 최고 명문 대학에서 장학금으로 공부하신 석학. 한평생 국가 교육기관에서 깊은 학문 연구와 후학을 가르쳐온 원로 교수.
높은 학문과 고매한 인품으로 크게 존경받아온 원로 학자가 ‘공부론’을 부탁하시다니, 분에 넘치는 가당찮은 말씀이 아닌가.
가벼운 일상적인 이야기를 수필로 써온 사람에게 ‘공부론’을 부탁하시니, 그 깊은 뜻이 어디 있을까?
헤아려보건대, 많이 부족한 사람이 이런저런 글을 각종 지면에 쓰고 있으니,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주문하는 뜻이 아닐까?
격동의 세월, 거칠고 살벌한 치안 일선에서 공직을 수행하면서 남모르는 고뇌를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다듬고 싶었다.
자신을 가다듬는 삶의 방식, 그 돌파구는 시와 수필을 쓰는 일이었다. 수필은 단순히 수필(隨筆)이 아니라 ‘수필(修筆)’이란 개념의 글쓰기였다.
◆ 책이란 스승을 통해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는 『인생 공부』
많은 책을 가까이하면서 길을 찾았다. 정규 교육기관에서 한평생 배우고 익힌 공부의 양(量)보다 책방과 도서관에서 구해 읽은 책의 양이 더 많을 것이다.
책방에 가면 문사철(文史哲)이나 대중문화 잡지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문단에 등단한 이후로는 관련 문학 전문 서적을 탐독했다. 친동기간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도 용기를 주었다.
등단 무렵, 장형과 넷째 형은 내가 평소 구해 보고 싶었던 종류가 각기 다른 두 질(秩)의 《한국수필 문학 전집》을 보내주면서 동생의 글쓰기를 통한 ‘인생 공부’를 독려해 주었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만 명의 스승을 가까이 모시는 것과 같다.”
단골 서점 벽에 붙어 있었던 이 문구를 나는 평생 스승의 가르침으로 가슴에 품고 살았다.
▲ 필자의 단골 서점이었던 《계룡문고》 - 이 서점의 벽에 걸렸던 “책을 가까이하는 것은 만 명의 스승을 가까이 모시는 것과 같다.”라는 문구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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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살아가면서 내 안의 스승은 따로 계셨다. 책 보다 더 ‘훌륭한 공부’가 내 가슴속에서 느슨한 의식을 바늘처럼 일깨우곤 하였다.
어머니가 생시에 몸으로 보여주셨던 지고(至高)한 사랑의 가르침, 아버지가 생시에 정신적으로 일깨워주셨던 죽비(竹扉) 같은 가르침이다.
학창 시절 새벽마다 어머니의 치마를 적신 ‘아침 이슬’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군대 시절, 휴가 오면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렇게 전했다.
◆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무언의 가르침』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기원을 드리시는 어머니에게 그만 따뜻한 방에 들어가 주무시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자식은 엄동설한에 총대 메고 눈밭에 서 있는데 어미가 어찌 따뜻한 방에서 단잠을 자겠어요?”
▲ 시골집 장독대와 어머니가 기원드리신 정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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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이러했다면 아버지의 가르침은 또 어떠하였던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방 벽장 속을 뒤져보니 《가족 비망록》에서 이런 친필 글씨가 나왔다.
▲ 아버지와 명심보감 한 구절(그림=서양화 작가인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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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書起家之本 循理保家之本
勤儉治家之本 和順齊家之本
(글을 읽는 것은 집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이치에 따름은 집을 잘 보존하는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함은 집을 다스리는 근본이요, 화목과 유순은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근본이다.)
수 세기 동안 많은 이들에게 수신(修身) 교과서로 사랑받고 있는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한 구절이다.
◆ 정신적 스승이었던 아버지의 『비망록 가르침』
아버지가 생시에 비망록에 적어 놓으셨던 이 글귀를 오늘날 나는 붓으로 써서 벽에 걸어놓고 성찰하고 있으나, 부족함이 많다.
아버지 가르침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더 많은 ‘인생 공부’가 요구된다. 아니, ‘수필(修筆)’ 차원의 공부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다.
부모님이 보여주신 가없는 사랑과 무언의 가르침을 대물림하기 위해선 매일같이 진실한 삶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으로 그쳐선 안 된다.
체험을 통한 진실한 삶의 기록인 수필은 인생에 대한 재해석이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손자가 읽어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 ♣
2026. 1. 23.
윤승원, 수필을 통한 인생 공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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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네이버 ‘청촌수필’ 블로그 독자 댓글
◆ 박경순 작가(전 경찰서장, 해경 총경) 2026.1.23. 16:03
새벽에 아들의 가방을 들어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선하네요.
부모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으셨으니,
고스란히 그 사랑이 아드님과 손주에게
가셨네요.
저도 아들 내외, 딸 내외
같이 살지는 않지만
늘, 걱정이 되네요.
우리 모두
그들의 안전을 빌어봅니다.
날씨가 정말 춥습니다.
건강 유의 하십시오.^^
▲ 답글 / 필자 윤승원 2026.1.23. 16:13
뜻하지 않게 존경하는 원로 학자님께서 오늘 아침 제게
‘공부론’을 한 편 써달라는 부탁을 하셨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부모님 생시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어서 단골 서점에서 본 명언이 머리를 스쳤어요.
수필 한 편이 즉석에서 완성됐어요.
제가 쓰는 글은 자식 손자가 첫 번째 독자이거든요.
손자가 읽어도 좋은 글을 써야한다는 다짐을 늘 하지만
과연 손자에게 유익한 글이냐는 확신이 없어요.
확신은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는
할아버지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무엇보다 손주를 두신 박 작가님께서
따뜻한 공감과 응원 보내주시니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댓글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1.23.17:20
귀한 공부론 잘 읽고 전적으로 동감하며 우수작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공부라고 하면 일반인은 학교 공부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공부는 죽는날까지 한 순간도 쉼이 없습니다.
책을 통한 공부만이 아니라 대화, 여행, 자연을 통한 정서적 공부도 있습니다.
노인에게는 죽음의 공부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 2. 3 공부론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교수님이 공개적으로 던져주신 화두가 마치 백일장의 글제처럼 설렘을 주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부의 영역은 학생에게만 국한하지는 않습니다.
만약에 백일장에서 '인생 공부론'이라는 글제를 받았다면 어느 특정 전문 분야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술술 합당한 답을 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무궁무진한 얘깃거리를 담고 있는 글제를 주셔서 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백일장 답안지를 올려드렸습니다.
후한 점수를 주시고 우수작으로 추천까지 해주셔서 가문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