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간 중국 길림성 장춘에 다녀왔습니다. 중국 동북지방은 처음이었습니다. 길림대 법학원과 저희 인하대학교 로스쿨의 학술교류 문제로 다녀왔습니다.
도착하던 일요일 그 쪽 교수님의 안내로 '위만황궁(偽滿皇宮)'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 정복하여 만주국이라는 괴뢰국가를 세우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청 멸망 후 민국의 시민이 되었던 '부의(溥儀)'를 황제로 세웠습니다. 그 만주국 황제가 거주하던 곳이 바로 '위만황궁'입니다. '위만(偽滿)'이라는 이름은 '가짜 만주국'라는 뜻인데, 아마도 일제로부터 수복한 이후 신 중국이 붙인 이름인 것 같습니다.
황제 부의의 인생은 지난 중국 역사와 같이 오욕과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1908년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로 3살에 즉위하였다가 신해혁명 이후 1912년 6살에 퇴위하였고, 이후 이제 그저 유물일 뿐인 자금성에서 옛 황제로 지내다가, 1934년 일제가 설립한 만주제국의 허수아비 황제가 되었습니다.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소련의 포로가 되어 옥살이를 하였고 중국으로 이송되어, 1959년 특사로 사면되었습니다. 만년에는 만주족을 대표하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위원으로 위촉되었습니다.
부의가 거주하던 '위만황궁'은 말만 황궁이었습니다. 예전의 우리 중앙청과 비슷하였습니다. 부의 자신 역시 말만 황제였습니다. 일일이 일제 관동군사령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았습니다. 도청당하고 감시당하였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에 필담을 사용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외국대사를 접견하는 사무실은 만주국을 승인한 나라가 한 군데도 없어,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외로웠던 부의가 좋아하던 장소가 바로 화장실이었다고 합니다....
동북지방은 고대 우리 선조들이 살던 땅이었고,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까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개척한 땅이기도 합니다. 또 일제시대 엄혹한 시절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 그리고 영웅적인 독립투사들이 생명을 바쳤던 곳이기도 합니다.
'법치주의'에 대하여 간단한 발표도 할 수 있었는데, 마침 장춘 이공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조선족' 교수님 그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정에서는 장춘 재경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서울법대 86학번)이 통역을 맡아 주셨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동북 지방에서 조선족들이 점덤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에 많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조선족 자치주에 조선족의 인구가 자치주의 인구기준을 밑돌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기애애한 회식자리에서 상호 우의를 다지는 차원에서 천장지구(天長地久)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우리 일행 가운데 '天長地久有時盡,此恨綿綿無絶期'의 구절을 생각해 낸 분이 있었습니다. '가없는 하늘도, 끝없는 땅도 다할 때가 있지만, 이 정한은 이어져 이어져 다함이 없으리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은상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구절이 당나라 시대 백거이의 유명한 율시 '장한가(長恨歌)'의 마지막 구절이었습니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 연애를 그린 시였습니다. 중국 박사과정 학생이 알려주었습니다. 중국인 지식층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해방 후 우리는 미국에 가서 많이 배워 왔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배워왔습니다. 그렇게 근대화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쩌면 다시 우리의 과거를 다져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중국에도 많이 가서 중국의 인문학적 전통을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한류가 중국에서 유행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문학적 전통이 유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