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Albania 09 벙커의 나라, 알바니아 티라나(1)
알바니아 공화국은 유럽 동남부 발칸 반도 서북부에 있으며, 수도는 티라나이다. 언어는 알바니아어와 그리스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고 종교는 이슬람교, 그리스 정교 그리고 가톨릭이다. 알바니아인 외에 소수 민족으로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이 있다.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나라 알바니아, 유럽의 빈국, 발칸의 숨은 진주, 마피아의 나라, 마더 테레사의 나라 혹은 시간이 멈추어진 나라라고 불리운다.
아침에 짐을 챙겨 로비로 나오자 엘레나는 이미 내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엘레나에게 식당에서 커피 한 잔과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가자고 하였다.
나는 요구르트가 있어 콘플레이크를 섞어 먹었다. 엘레나는 주스와 빵을 먹고 말이다.
엘레나와 나는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가지고 차를 탔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오늘은 알바니아 티라나를 거쳐 몬테네그로의 부드바와 코토르까지 갈 예정입니다. 아마도 거리가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 알바니아 국경까지는 16킬로미터 정도인데 걸리는 시간은 30-40분 정도, 그리고 알바니아로 넘어가면 휴게소가 거의 없습니다. 수도인 티라나까지는 145킬로미터 정도이고 몬테네그로 부드바까지는 175킬로미터 정도 될 겁니다.”
차가 도로를 따라 달렸다. 국경까지는 예상했던 대로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알바니아 국경을 지나면서 여권과 국제 운전면허증을 보여 주었다. 국경을 지나고 얼마나 달렸을까, 아마도 티라나까지 중간 정도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엘바산(Elbasan)을 지났다. 엘레나가 나에게 물어보았다.
“엘바산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아세요?”
나는 그녀를 힐끗 쳐다본 다음 대답했다.
“엘바산은 1832년 요새 성벽을 파괴한 오스만 투르크에 대항하여 반란을 주도한 레지스탕스 도시로 유명하죠. 인구는 8만 명이 넘고 마을을 둘러싼 성벽은 4세기에 만들어졌죠. 그리고 세 개의 문과 스물 여섯개의 탑이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니 모르시는 게 없어요. 그럼 나머지 부분은 제가 말씀드리죠. 1909년 오스만 투르크 지배 말기에 민족주의자들이 모여 연 엘바산 회의는 알바니아 독립 운동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사건이랍니다.”
“그런데, 엘레나 씨는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하고 내가 불쑥 물었다.
그녀는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더니
“글쎄요.” 하였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벙커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유난히 많은 벙커였다. 엘레나와 나는 “와”하는 탄성과 함께 언덕 위에 있는 벙커를 보고 소리쳤다.
내가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엔베르 호자라고 아시는 지요?”
“알죠, 약 40년 가까이 알바니아를 통치한 독재자입니다. 방금 본 75만 개의 벙커를 만든 장본인이죠. 국민 네 명당 한 개의 벙커라고 합니다. 벙커에 무장한 알바니아인들을 즉시 배치 가능하도록 했답니다. 해안가의 벙커들은 이탈리아를 견제하고 내륙의 것들은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를 마주보고 있지요.”
“그럼, 왜 엔베르 호자가 이 벙커를 만들었는지 아세요?”
“글쎄요, 아마 자기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니었을까요?”
엘레나는 잠깐 생각하는 듯하였다. 그러더니 말을 계속해 나갔다.
“1956년 헝가리 봉기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태 당시에 있었던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해서입니다. 믿을 것은 오로지 스스로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보이지 않는 유령과도 같은 적을 막기 위한 것이었던 셈이지요. 독재 정권이 물러난 후 이 벙커는 쓰레기장, 가축우리, 유흥 장소로 사용되었고, 한때는 벙커 해체 작업과 관련해서 철근 구조물 해체업도 유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이러한 벙커가 자신들의 자산임을 인정하고 개발하려 한다는 군요. 페쇄되었던 이들에게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몇 분이나 시간이 흘렀을까? 티라나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이 도시의 반대편에는 두러스라는 알바니아 제2의 도시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3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겁니다. 이 도시는 알바니아 서부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고 알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독립적인 도시가 되었고 기원전 229년에는 로마가 이곳을 차지하였습니다. 시인인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카툴루스(Gaius Valerius Catullus)는 이곳을 ‘아드리아해의 술집’이라고도 이야기하였는데 로마 제국 분열 후 비잔틴제국의 영토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도시는 1501년에 오스만 투르크의침략, 그리고 1914년부터 1920년까지 알바니아의 수도, 1916년에는 세르비아의 일시적 점령, 1937년에는 이탈리아가 점령,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에 점령을 당하였습니다. 고난의 역사라고 해야 되나요?”
“국경에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우리 잠깐 이곳에서 커피 한잔하고 가죠?”
“네, 그래요.”
커피를 가지고 나왔다. 국경이 위치한 이 도시는 슈코더르(Shkoder)이다. 나는 엘레나에게 커피 한 잔 건네주었다.
“이곳은 국경 도시인 슈코더르입니다. 알바니아 북쪽에 있는 도시죠. 알바니아의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알바니아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무장 군대를 조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 도시를 알바니아 호국과 민주화의 도시라고 이야기한다는군요. 1990년과 1991년에는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국경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