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전전컴 강길구 -
EX, EXIST?
MBC 대학 가요제.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메니지먼트나 오디션과 같은 신인 발굴의 기회가 부족했던 시절에 대학 가요제는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자 문화 향유의 매개체였다. 실제로 수많은 가수를 배출했으며, 그 역사와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학생들의 젊음과 패기, 창의성이 돋보였고 문화 전파의 커다란 구심체였던 대학 가요제. 그러나 이제는 수요자의 다양한 기호와 취향에 따라 만들어지고 포장되어지는 음반시장의 생리 때문에 화려했던 옛 명성을 차츰 잃어가고 있다.
여기서 잠깐 2005년도를 회상해 보자. 늘 입에 오르내리는 실업 문제, 내수 경기 불황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음반시장 역시 경기 부진과 MP3 활성화와 소비심리 위축에 따라 불황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또, 국내 굴지의 방송업체인 MBC는 경제와는 별개의 요인으로 회사 안밖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과 대안 제시가 가요계와 방송국에 요구 되었으며 이때 등장한 이들이 바로 'EX'이다. MBC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그룹 'EX'는 단번에 가요계의 핫이슈로 떠올랐으며,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소개되는 보기드문 신고식을 치루게 되었다. 귀여운 외모, 독특한 노랫말, 개성있는 곡조로 실력을 발휘한 'EX'는 분명 매력적인 그룹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국내 가요계에 발을 디딘, 그것도 아마추어 가요제에서 입상한 그들을 침체된 가요계의 대안으로 부상시킨 언론매체의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가요계에는 그들보다 뛰어난 가창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실력 있는 가수들이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이전 가수들은 이미 진부해진 존재였다. 이때 한 방송국과 가요시장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부합하여 'EX'라는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킨다. 우리는 여기서 구술 문화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로 인해 MBC는 회사 문제에 집중된 이목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으며, 가요계 역시 현실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분석에 따라 문제 해결방안을 마련이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을 이슈화함으로써 원래 문제에 대하여 대중의 참여를 소원하게 만들었다. 'EX'에 대한 관심은 메인보컬 '이상미'로 좁혀지면서 그들의 영웅 만들기는 점차 구체화 되었다. 언론에서 시작된 띄워주기 작업은 누리꾼들로 확산하여 '이상미' 신드롬을 만들게 되고, 가수 'EX'에서 시작한 대중의 관심은 '이상미'라는 개인으로 집중된다. 영웅 만들기를 통하여 MBC와 가요계는 사태를 진정 시킬 수 있었다. 대중들은 'EX'와 '이상미'라는 영웅화된 대상을 통해서 기대감과 희망을 갖게 되고 현실 문제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지만 정서적 만족감과 이에 대한 대리충족은 현실 상황을 잠시 잊게해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될 수는 없었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이상미 신드롬은 사그라 들었으며 지금은 우리 기억에서 조차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러한 임시방편적 구술 문화의 요소를 아직까지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존재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논리적 분석적인 면도 중요시 하지만 감성적인 부분에 의존하는 면도 많다. 특정 대상의 신격화에 따른 의지 대상의 창조는 종교에 대한 믿음과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목표 실현의 극대화를 위한 의지 대상의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구술 문화적 요소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는 문제 해결의 시간이 급박 할수록 더 빈번히 나타난다.
우리 사회의 구술 문화적 요소는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이전의 수많은 신드롬처럼 이상미 열풍도 일시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구술 문화에 바탕을 둔 사회 문화적 열풍들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문제 해결의 방책으로 이용되고 자리매김 하고 있는 데에는 분명히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구술 문화적인 이용도 개인이나 집단의 허물 감추기나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논리적이고 객곽전인 판단에 바탕을 둔 문자 문화와 감정과 인격화에 의지하는 구술 문화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인간 문화 창조와 발달에 기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