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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어록
장거 지음
큰나무 / 2010년 10월 / 256쪽 / 12,000원
▣ 저자 장거
역사학 석사. 오랫동안 중국 근현대사 연구에 매진했으며, 예민한 관찰력과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마오쩌둥의 사상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탐구하고 해석했다. 신문과 잡지에 마오쩌둥 사상과 관련해 칼럼을 연재했고, 중국의 여러 전문기관과 대학에서 수많은 강연을 했다.
▣ 역자 박지민
1969년생, 동덕여자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중국에서 3년간 유학. 중국 대외경무역대학 대학원 과정. 중국어 저작권 에이전시 일을 하다가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 및 여행 작가로 일하고 있다. 역서로는 『집으로 가는 길 1, 2』, 『흑백을 추억하다』, 『사랑하는 싱싱』, 『즐거움은 지혜보다 똑똑합니다』, 『대륙의 찬란한 기억』, 『당신은 왜 가난한가』, 『그는 왜 부자인가』, 『풍경』, 『지도자의 시야』, 『협상의 예술』 등이 있다. 저서로는 중국 서남부 여행 가이드북 『중국 서남부(공저)』가 있다.
▣ Short Summary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해마다 초고속 성장을 해왔다. 현재는 전 세계의 이목을 한몸에 받는 경제 대국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 각국에서 엄청난 자금이 몰려들고, 성공을 꿈꾸며 문을 두드리는 이가 넘쳐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되돌아갔다. 중국 역사에서 마오쩌둥만큼 이슈와 토론거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가 남긴 공과 실에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마오쩌둥의 독특한 사상이 중국의 운명을 바꾼 것은 물론 세계 역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마오쩌둥의 사상은 넓고 깊으며 지혜가 가득하다. 이는 중국 인민 개개인의 삶에 큰 지표가 되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고 중국사회는 급변했지만, 마오쩌둥의 사상과 지혜는 여전히 되돌아볼 가치가 있다. 당시에 비하면 영향력은 다소 약하지만 중국 사회에 깊숙이 녹아든 마오쩌둥 사상은 현재에도 빛을 발한다. 『마오쩌둥 어록』은 중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붉은색 책자를 펼치면 마오쩌둥의 사상과 지혜가 짧게는 몇 자, 길게는 수십 자의 짧은 문장 하나하나에 묻어나온다. 그의 사상과 지혜는 어두운 밤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이 어려움에 처한 수난의 앞길에 환한 빛을 비춰 인생의 방향을 인도할 것이다. 삶에 지주로 삼을 사상이 없다면, 그 인생은 날개 잃은 새와 같이 추구하는 목표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마오쩌둥 어록 가운데 21개를 엄선하고, 그의 사상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끔 다양한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인생의 방향을 잡길 바란다.
▣ 차례
1장 도약
01 배움, 배우고 또 배워 앞으로 나아가라
02 시야, 아무리 큰 우물이라도 하늘보다는 작다
03 관찰, 한번 더 생각해라. 고민하고 예측할수록 지혜가 나온다
04 목표, 전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일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05 준비, 다리가 없고 배가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다
06 열정,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진지함이다
07 시도, 정녕 할 수 없는 일은 억지로 하려고 들지 마라
2장 분투
08 좌절, 실수와 좌절을 겪고 지혜를 얻는다
09 장애, 빛나는 날로 나아가는 길은 굽이굽이 사연도 많다
10 의지, 결심을 했으면 희생을 두려워하지 마라
11 담력, 힘든 일은 눈앞에 놓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것과 같다
12 가능, 무슨 일이든 움켜쥐고 내 것으로 만들어라
13 노력, 행운에 기대고, 남의 도움으로 이기려는 마음을 버려라
14 실행, 말만 늘어놓지 말고 실천가가 되어라
15 전력, 일이란 투쟁이다
3장 화합
16 친구, 분열하지 말고 단결하라
17 사랑, 세상에는 이유 없는 사랑 없고, 이유 없는 미움 없다
18 겸손, 아무리 많은 공을 세웠더라도 절대 교만해서는 안 된다
19 중용,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정과 냉정, 긴장감과 원칙이다
20 사고, 사상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바뀌고 적응해야 한다
21 이상, 제대로 가려면 멀리 보라
마오쩌둥 어록
1장 도약
배움 - 배우고 또 배워 앞으로 나아가라
1958년 5월 28일, 쑤저우의 8세 초등학생에게
“많은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쓸모없다. 책이 주는 지식 못지 않게 이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턱대고 읽는 건 죽은 독서다.” 마오쩌둥은 책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이를 어떻게 중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끊임없이 현실을 걱정하고 책을 통해 학습했기에 마오쩌둥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중국의 상황과 결합시켜 이를 바탕으로 혁명 과정에 일어난 수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배우는 학생이 되어라: 인생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다. 무엇을 하든 지식이란 기반을 다지지 않고는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연한 행운을 얻을지는 몰라도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급격히 변화하는 사회에 맞서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다. 이름난 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더라도 계속 새로운 지식을 익혀야 한다. 전기가 없으면 등이 빛을 발할 수 없듯 지식이 들어가지 않은 빈 머릿속은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캄캄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다음은 미국의 한 유명 세일즈맨의 말이다. “뭇사람은 내게 묻는다. ‘이미 수십 년 전에 성공하신 분이 왜 아직도 세일즈 관련 책을 읽으시죠?’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채우지 모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도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나는 배우는 학생이 되겠다!’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하라. 학생이 되는 목적은 강자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먼저 관심 분야를 정리하고, 재능을 파악한 뒤 체계를 갖춘 완전한 계획을 세워라.
지식은 무한하다. 새로운 지식과 관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국 앞질러가는 수많은 사람에 치여 속수무책으로 방치된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호흡을 멈추지 마라. 호흡을 멈추면 결국 죽게 된다. 사람은 현재에 미래를 선택한다. 기회는 무한대로 주어지지만 아둔한 사람은 가시밭길을 자처한다. 반면,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는 자는 좋은 기회를 골라잡는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은 성공한 사람에게 묻고 또 물어 그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그 어떤 책을 읽는 것보다 유효하다.
지식을 충전하라! 눈부시게 빛나는 인생이 될 것이다: 사회에서 빛나는 성공을 이룬 사람은 자기 분야는 물론 다른 영역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깊은 이해와 상식을 가지고 있다. 중국인이라면 삼척동자도 위스즈를 안다. 그는 빼어난 연기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중국 연극 역사에 금자탑을 세운 인물이다.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 폭넓은 지식으로 땀 흘려 얻어낸 귀한 성과다. 그는 모든 일에 배우는 자세로 성실히 임했다. 전설 같은 일화를 살펴보자.
1951년 베이징, 위스즈는 연극 <장정>에서 마오쩌둥 역을 맡았다. 그의 대사는 단 한마디뿐이었다. “동지들, 성공을 빌겠소!” 짧은 대사라 신인 배우가 해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베테랑 연기자인 위스즈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오쩌둥 어록』은 물론 여러 저서를 읽고 연구하며, 심지어 마오쩌둥의 서체를 익히기 위해 서예를 배웠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인 루쉰역을 할 때는 저작과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고 연구했다. 얼마나 공부했는지 루쉰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을 정도였다. 위스즈는 대학교를 반년 다니고 중도에 그만두었지만 배움에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지식을 갈망했다. 그는 “배우기 위해 공부하고, 배웠으면 반드시 활용한다”고 하며, 언제나 책을 가지고 다니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었다. 위스즈는 책을 통해 폭넓은 지식을 갖춰, 연기는 물론 인생에 단단한 기반을 다졌다.
지식이 지혜가 되기까지는 고통의 대가가 따른다: 북송시대 왕안석의 글 중에는 ‘상중영’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상중영은 6세에 시문을 암송하고, 문답에 거침이 없어 신동이라 불리었다. 그의 아비는 아들을 앞세워 전국을 돌며 자식 자랑을 했다. 가는 곳마다 찬탄이 이어졌지만, 상중영은 새로운 것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아비에게 끌려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로부터 10년 뒤, 결국 신동 상중영은 평범한 청년이 되어버렸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어제의 새로운 지식은 오늘이 되면 도태된다. 그러므로 평생 익히고 배워야 한다. 아무리 상상력이 대단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면 실용적인 가치를 창출해낼 수 없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리스트를 보면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없다. 하나같이 매울 지식을 쌓으며 성공을 길로 나아갔다.
열정 -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진지함이다
1957년 11월 17일, 모스크바 회의 중 중국 유학생을 만난 자리에서
사범학교에 다니던 시절 마오쩌둥은 철학, 중국어, 역사와 지리 등을 집중으로 공부했고 미술이나 수학 등은 소홀히 했다. 당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예전에 잘못된 생각으로 공부는 무조건 하면 되고, 과학 같은 실용적 학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네. 오늘 여러 선생님과 친구들의 생각을 들으니 식견이 넓어지고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게 되었네. 그래서 나름대로 학습의 길을 정했다네. 먼저 넓게 나중에 깊게, 먼저 중국 것을 후에 서양 것을, 먼저 일반적인 것을 나중에 전문적인 것을. 이것이 이제부터 내 학습 방침이라네.” 마오쩌둥은 그렇게 길을 정한 후로는 매일 새벽닭이 울기 전에 일어났고, 밤에는 달빛을 등불 삼아 1분 1초도 낭비하지 않고 공부했다. 그 습관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그는 『이십사사』, 『자치통감』, 『소명문선』, 『한창여전집』 등 중국 사상가의 저작뿐 아니라 성과 현에서 발행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각종 사료도 빠짐없이 읽었다. 친한 친구인 수쯔셩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마오쩌둥은 77종의 중국 고대 경經, 사史, 자子, 집集의 저작을 읽었다고 적혀 있다. 중국 고전은 청년 마오쩌둥이 인격을 수양하고 지혜를 기르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지금 행동하라: 인생의 목표를 실현하려면 무슨 일이든 생각에만 머무를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인생에 추구하는 목표와 꿈에 대해 그저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구구절절 옳고, 계획도 있고, 포부도 거창한데 그들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다. 매 순간 진지하고 치열하게 임하지 않고 그저 말로 모든 걸 다하는 탓이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말을 조리 있게 해 자신의 꿈을 멋지게 포장하지만 실제 행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성공은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몽상으로 남을 뿐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입으로만 멋진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꿈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고 착실하게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다. 언제나 진지한 태도로 끝까지 일을 완성한다.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매일 17시간을 일했다. 그 시간 동안 10명의 비서도 그와 함께 정신없이 일했다. 처칠은 정부 기구의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간단명료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는 행동이 느리고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몇몇 관료를 눈여겨보고 그들이 들고 다니는 지팡이에 ‘지금 바로 행동해라’라고 써 붙였다. 오늘만이 가장 잠재력 있고 가장 가치 있다. 오늘만이 인생의 의미를 알 수 있고, 오늘이 있어야 ‘내일’이라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지금부터 당장 노력하라.” 이 단순한 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행동 격언이다. 이 말은 성공만을 위한 게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든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건이다. 지혜를 이용해 오늘의 보물을 캐고, 땀을 흘려 오늘의 생활을 발전시켜야 한다.
인생의 무대를 찾아라: 이상을 이루고 싶으면 꿈을 펼칠 무대를 찾아라. 자신의 이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지 않고 뜬구름 잡듯 막연히 무엇을 좇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실현하지 못한다. 헛되게 시간을 낭비하고,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고, 화를 자초하는 선택을 하는 이유는 진지하게 이상을 고민하지 않은 탓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기계공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떠밀려 10세 때부터 공장일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음악 공부를 시켰다. 소년의 노래를 들은 음악 선생은 그가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성악가가 되기에는 성량이 부족하고, 목소리가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믿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인지라 어머니는 아들의 음악 공부를 위해 매일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다. 음악 선생에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여전히 노래를 사랑했고, 어머니의 격려가 있었기에 힘을 내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연습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다. 그 소년은 바로 엔리코 카루소다.
2장 분투
좌절 - 실수와 좌절을 겪고 지혜를 얻는다
1949년 6월 30일 ‘인민 민주 전제정치’에서
1927년 중국 공산당 87차 회의에서 가을 수확 기간에 무장 기의를 하기로 결의했다. 마오쩌둥은 후난성 동북부와 장시성 북부의 농민, 노동자와 북벌군 일부를 연합한 공농혁명군을 이끌게 되었다. 9월 9일 후난성 4곳에서 동시에 무장 기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국민군의 포위 공격으로 징강산으로 피해 들어갔다. 10월 마오쩌둥이 인솔한 부대는 징강산 지역에 중국 최초의 농촌 혁명 근거지를 설립함으로써 이후 혁명에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좌절을 반갑게 맞아라: 인생의 모든 길이 장애물 하나 없이 평탄하고 순조로울 수 없다. 좋든 싫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좌절은 무차별적으로 다가온다. 좌절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된다. 좌절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국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궁형을 당한 분노와 좌절감을 역사서를 쓰는 것으로 승화시켰다. 『사기』는 명저로 칭송받고 있다.
음악가 루트비히 반 베토벤 역시 일생 수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17세 때 어머니를 잃고, 32세에 청력을 상실하고 이어서 실연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침몰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당시 그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운명의 목덜미를 틀어잡을 것이네. 운명이 나를 굴복시키려는 망상을 품는지 몰라도 그것은 절대 불가능할걸세.” 그는 시종 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아 역사에 길이 남을 음악가가 되었다. 좌절 자체가 인재를 만드는 건 아니다. 좌절을 겪은 이가 모두 인재로 거듭나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는 이렇게 말했다. “좌절은 마치 돌과 같다. 약자에게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고, 강자에게는 높이 날 수 있는 디딤돌이다.” 삶에 확고한 목표가 있는 사람에게 좌절은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좌절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만이 삶의 강자가 될 수 있다.
좌절은 제멋대로인 친구와 같다. 언제든 외면하고 배신할 테지만 어쨌든 친구다. 좌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 버릇을 고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든 간에 함께 하다 보면 좌절이 아주 충실한 친구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좌절은 좋은 약과 같다. 어려움이 닥치면 힘들고 괴롭지만 좌절이 있기에 삶에 대한 투지가 일어난다. 고개를 들고 삶을 향해 도전한다면 좌절이 별것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꿈이 좌절되면 어떤 이는 두려움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소극적으로 사고하고, 모험을 꺼린다. 반면 어떤 이는 실패를 겁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좌절에 정면으로 부딪쳐 극복해낸다.
좌절이 인생을 만든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좌절이 내 인생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호킹은 왜소하고 허약했지만 개성이 강한 소년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모욕하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반격했다. 그는 마음대로 옷을 입었고, 여러 가지 색깔을 잉크를 얼룩덜룩 묻히고 다녔다. 또, 토론을 즐겼는데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빨라 다른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학교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똑똑한 편이었다. 12세 때는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종일 복잡한 게임을 만들었다. 그가 30분 만에 이해하는 게임을 다른 친구들은 몇 시간 심지어 일주일이 지나야 이해했다.
17세에 호킹은 옥스퍼드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여전히 그다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은 세계대전이 막 끝난 뒤라 전쟁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호킹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대학 4학년 때 호킹은 자신의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걸음이 굼뜨고, 종종 아무 이유 없이 계단에서 넘어지거나 길을 가다 쓰러졌다. 검진 결과, 루게릭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1세의 호킹은 슬픔이나 절망을 느끼기보다 외려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는 질병과 싸우면서 세상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그에게 질병보다 무서운 건 그로 인한 실망과 공허감이었다. 동시에 그는 지식이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지식을 탐구하며 그 안에서 인생의 의의를 찾았다. 1965년 호킹은 우수한 성적으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 시기에 지니를 만나 결혼했다. 그 후, 강한 의지로 학술 연구를 하던 그는 1975년 첫 번째 저작을 완성했다. 다음 해에는 ‘블랙홀 이론’을 발표하고 영국와실학회의 회원이 되었고, 케임브리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978년 우주학회에 참가해 무경계 구상을 발표했고, 같은 해 영국 여왕에게 대영제국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1988년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가 발표되자마자 장장 100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으로 울프 물리학상을 받고, 1989년 대영제국 명예 훈작을 받았다. 호킹은 누구보다 의지가 강했기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위대한 이론 물리학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성공은 명확한 판단과 불굴의 노력, 완강한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성공하고 싶다면 좌절을 담담하게 받아들여라. 잘못과 좌절은 경험이 되고 교훈이 되어 당신을 성공의 길로 이끈다.
실행 - 말만 늘어놓지 말고 실천가가 되어라
마오쩌둥이 청년 시절 다녔던 후난 사범학교의 규정 <학생 교육에 관한 요지>에 보면 다음의 조항이 있다. ‘국민교육에 있어 실제 상황을 중시해, 학생들이 현재의 큰일과 사회 상황을 명확히 알 수 있게 한다.’ 마오쩌둥은 전통 사상의 빼어난 부분은 흡수하고, 현실 상황을 중시하며 공부에 임했다. 마오쩌둥은 청나라 시대 유물주의 사상가인 고염무의 ‘실학을 미학으로 대신하자’는 주장, 왕부지의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알자’는 학설, 안원의 ‘마음속에는 사상이 입으로는 토론을, 천만 가지 뜻이 있어도 한 번 스스로 행동해 아는 것보다 못하다’는 관점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강당록』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실질적 의의에 따라 진심으로 학문을 구하라.” “선인의 학습은 행동을 중시했다.” “문을 닫고 배움을 구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천하에서 만물에서 배움을 구해야 한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마오쩌둥은 사회의 현실에 있어 주요한 인식을 키워나갔다. 그는 친구에게도, 글자가 있는 책도 좋지만 글자가 없는 책 즉 현실을 읽으라고 충고했다.
위대한 사람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위대하다: 19세기 스웨덴의 작은 도시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매 끼니를 걱정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소년은 가난에 위축되거나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소년은 일하는 틈틈이 건축 관련 서적을 읽으며 혼자 공부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학문을 배우고 익힌 덕에 점차 건축에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소년은 자라서 한 건설 회사 사장의 비서로 취직했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건축에 지식이 있음을 드러내며 실력을 내보였다. 신임을 얻은 그는 사장의 추천으로 한 유명 건축가의 보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열심히 배우고, 학습한 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귀한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러면서 점차 건축 분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학력과 배경이 없는 탓에 아무리 노력해도 높은 자리에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거리 행진을 구경하던 중 스웨덴 국왕의 모습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왕과 아는 사이라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국왕의 주의를 끌 수 있을까?’ 그때 갑자기 정신이 반짝하며 불꽃이 튀었다. ‘국왕은 프랑스 사람이지! 만약 프랑스에 있는 개선문 같은 건축물을 스웨덴에 짓는다면 분명 기뻐할 거야!’ 그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여기저기에서 지원을 받아 시내에 개선문과 비슷한 건축물을 지었다. 그의 예상대로, 이를 발견한 국왕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건축물을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왕은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에 대한 기사가 각종 매체에 실리며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 후 그는 스웨덴 상류사회에 진출하고, 스웨덴 건축계의 거물급으로 거듭났다.
누구나 다양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산다. 다만, 지혜로운 사람만이 자신의 생각을 실천해 성공의 무대로 뛰어오른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입만 나불거리고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위대한 사람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위대하다. 미약한 사람은 행동하지 않고 공허한 말에 그쳤기 때문에 미약하다.
때를 기다려라!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를 가져라: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해하지 마라. 역전의 기회는 수시로 찾아온다. 다만, 일에는 항시 때가 있어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성급히 움직이다가는 도리어 위기를 맞았다. 중국 고의 유명한 전략가 여상은 뛰어난 수재였지만 돛을 펼칠 기회가 없어 인생의 반을 허송세월했다. 그가 처음으로 받든 주군은 상나라의 주왕이었다. 주왕은 향락을 좋아하고 여색을 밝히는 폭군이라 직언을 올리는 대신을 가차 없이 죽였다. 이를 곁에서 지켜본 여상은 별수 없이 가슴이 품은 뜻을 감춘 채 인내를 가지고 때를 기다렸다.
여상이 판단하기에, 상나라의 국운이 이미 쇠했고 주왕은 어쩌지 못할 정도로 난폭했기에 아무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보다는 새로운 주군을 찾는 편을 택했다. 그는 우선 주왕을 제거할 방법을 찾았다. 당시 서백 희창이 주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주왕을 없앨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에, 여상은 희창을 이용하기 마음먹었다. 여상은 웨이수이 강가에 은거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날, 희창이 근처로 사냥을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낚싯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미끼도 꿰지 않고, 곧은 낚시 바늘을 수면 위에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마침 지나가던 희창이 그 모습을 기이하게 여기고 여상에게 다가와 물었다. “귀공께서는 어찌 미끼도 없이 낚시를 하고 있소?” “낚시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때를 기다릴 뿐이지요. 주왕의 극왕무도한 만행이 나날이 심해지니 이때 희창 같은 이가 나타난다면 나는 기꺼이 그가 주는 미끼를 물겠습니다.”
희창은 여상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즉각 알아보고 얼른 예의를 갖추었다. “현자이십니다. 노공의 존함이 어찌 되는지요?” “현자라니요, 아닙니다. 저는 여상이라 하옵니다. 공은 뉘신지요?” “좀 전에 노공께서 말한 희창입니다.” 여상은 깜짝 놀라는 척하며 황급히 사과했다. “소인이 무례했습니다. 경거망동을 용서해 주시지요.” “아닙니다. 주왕의 무도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노공, 나와 함께 상나라를 멸하고 나라를 구합시다. 여상은 예의를 갖춰 희창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도성으로 돌아왔다. 여상은 희창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천하의 대세에 대한 견해를 거침없이 술술 풀어냈고, 희창은 이제야 여상을 만난 것을 안타까워하며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희창은 주나라의 문왕이고 여상은 바로 그 유명한 강태공이다. 원래는 태공망으로, 문왕의 아들인 무왕이 아버지 태공이 바라던 인재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3장 화합
친구 - 분열하지 말고 단결하라! 음모와 계략을 피우지 말고 정정당당하라!
1971년, 중국 남방 순시 기간 중 각 지역 책임자와의 대화에서
1917년 24세의 마오쩌둥 주위에는 중구그이 진보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대부분 마오쩌둥과 후난성 사범학교 동창이었고 그 외에 장군 중학교에 다니던 뤄장롱처럼 마오가 쓴 『미우개사』를 보고 찾아온 창사 지역의 중등학교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라 보통 사람들의 고초를 잘 알고 있었다. 부잣집 도련님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품기보다, 세상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사회적 책임감과 현실을 바꾸겠다는 기개가 충만했다. 주로 창사의 유명한 경승지에 모여 현실과 정세 및 사람과 생활에 대해 토론하고, 산을 오르며 호연지기를 기르고, 개인의 고민은 뒤로하고 중국의 미래를 걱정했다.
1918년 마오쩌둥은 처음 베이징에 도착해 양창지 선생 집에 머물렀다. 그때 다른 친구들은 근처 후난성 회관에 묵었는데 거의 매일 만나야 하는 관계로 서로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 그들은 근처에 좁디좁은 쪽방을 마련했다. 마오쩌둥과 뤄장롱, 차이허썬, 수쯔셩 등 8명의 친구는 서로 몸을 바짝 붙이고 옆으로 돌려 누워 큰 이불 한 장을 같이 덮고 잤다. 후에 마오쩌둥은 이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높은 구들에 옆으로 나란히 누워 큰 이불 한 장을 덮고 자는 사이로, 생활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 시기에 8명의 친구는 깊은 우정을 쌓았다.”
친구를 사귈 때 필요한 것은 솔직하고 열린 마음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된다. 친구는 소리 없는 동반자이며 또 다른 자신이기도 하다. 친구는 나의 성공을 돕고,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곁에서 격려와 환호를 보낸다. 이 세상에서 우정보다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 있을까.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비범한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친구들, 특히 하버드대학교 시절 사귄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과연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가 뉴욕 시장 후보였을 때, 대통령 경선에 나섰을 때 친구들은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미국 전역을 누비며 도움을 주었다. 이 같은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 마지막 대통령 선거 때는 서부와 남부에서 1만 표 이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친구를 돕는 것보다 성스러운 일이 있을까.
때로 친구의 위로는 인생을 바꾸는 힘이 있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친구의 한마디 격려에 절망에서 일어나고, 서로 응원하며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이는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친구를 떠올리고 마음을 바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건드리는 친구의 진심 어린 말에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고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를 맞기도 한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로에서 책망과 냉소를 감수하고 끝까지 승리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도록 붙잡는 힘은 나를 신뢰하고 사랑해주는 친구로부터 나온다. 친구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나의 장점을 찾아주고 응원한다. 만약 친구가 없다면 작은 시련에도 쉽게 포기하고 무너질지 모른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폄하하더라도 친구가 진심으로 믿어준다면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친구란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매일 때 앞길을 비춰주는 등불같은 존재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쪽배와 같은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이끄는 고마운 존재다.
이상 - 제대로 가려면 멀리 보라
1937년 10월 ‘중국 공산당의 민족 전쟁 중에서의 지위’에서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 해방전쟁을 이끄는 동시에 시국이 심각한 변화를 맞고 있음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중국을 건설할지 고민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1947년 10월 인민 해방군이 진공을 결정하고 얼마 후,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해방군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노동자, 농민, 군인, 학생, 상인 등 각계에서 핍박받는 계층과 여러 인민 단체, 민주당파, 소수민족, 화교와 애국자가 연합해 민족통일전선을 조직해 국민당 정부를 무너뜨리고 민주 연합정부를 수립한다.”
1948년 4월 30일, 중국 공산당 중앙은 5·1노동절을 기념해 정치 협상을 열어 ‘민주 연합정부 수립’을 토론했다. 5월 1일, 마오쩌둥은 중국 국민당 혁명 위원회 주석 리지선과 중국 민주 동맹 중앙 상무위원에게 서신을 보내 중국 공산당 중앙, 민주혁명 중앙, 민주 동맹 중앙이 연합해 정치 협상을 열어 정한 ‘민주 연합정부’의 시정 강령을 알렸다. 후에 이 협상과 여기에서 나온 구체적 방안 및 강령은 중국 내의 많은 인사에게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이후 해방 전쟁의 승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위를 향해라: “높은 산을 향해 나는 독수리만이 태양의 첫 번째 빛을 볼 수 있다.”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말이다. 한 비행기 조종사가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 혼자 비행을 하는데 바다 위를 날 때였습니다. 갑자기 멀리서 암흑보다 더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어요. 순식간에 사방이 검은 구름에 뒤덮였죠. 곧 폭풍이 불어닥칠 게 분명했습니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대피해야 했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바다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파도가 거세게 넘실거려 수면 위로 낮게 나는 것도 무리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구름을 뚫고 높게 나는 것뿐이었죠. 1,000 2,000 3,000 3,500피트…… 조종간을 붙잡고 고도를 높였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칠흑같이 어두웠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천둥번개가 내리쳤습니다. 이를 악물고 더 높이높이 올라갔습니다. 6,500피트에 다다랐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생애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경치였어요. 어느새 검은 구름은 발아래 머물고 머리 위로 찬란한 태양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지요.”
이상은 어디쯤에 존재할까. 낮음과 보통, 이상의 경계는 어떤 기준에 의해 나눌 수 있을까. 문제의 답을 알지 못하기에 결국 이상에 도달하지 못할 거라 여기고 한곳에 머물며 방황하는 것일까. 평지에서 걷기만 배웠지 하늘을 높이 나는 법을 몰라 위로 향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뭇가지에 앉아 소일하는 참새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래를 향해 바닥을 기어다닐지, 위를 향해 하늘을 날아오를지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아래를 꿈꾸면 단조로운 삶을 구할 것이고, 위를 꿈꾸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선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인생 전반의 목적을 위한 선택을 해라: “정확한 선택에 의해 재능이 멋지게 드러난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인생의 목표를 정확하게 선택했기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 1953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파바로티는 오페라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지원으로 노래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노래를 좋아했지만 아이들을 더 사랑했기에 사범학교에 진학해 교사의 꿈을 키웠다.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노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성악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 파바로티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교사가 될까요, 성악가가 될까요?” “2개의 의자에 동시에 앉으려면 팔걸이를 떼고 의자를 붙인 다음 중간에 걸터앉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 파바로티는 교직을 택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교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험 부족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성악가의 길을 갔다.
17세 때, 파바로티는 아버지의 소개로 합창단에 입단해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펼칠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7년이 지나고, 주위 친구들은 모두 자리를 잡았지만 파바로티는 여전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다 성대결절이 생겨 제대로 노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걸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가 곁에서 그를 독려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파바로티는 성악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1961년 4월 29일 오페라 <보헤미안>의 주연으로 선발되었다. 이는 오페라 데뷔작이었는데, 그는 공연을 마치고 수많은 관중과 평론가의 환호를 받았다. 그날 이후 파바로티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여러 국제무대에 오르고, 현존하는 최고의 테너로 칭송받았다. 한 기자가 그에게 성공 비결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내 재능을 드러낼 수 있는 방향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헛된 망상과도 같은 꿈을 이루려면 먼저 인생 전반의 목표를 세워 굳혀야 한다. 하나의 꿈을 이루고 끝이 아니라 삶의 전반에 걸쳐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해라. 결론이 나면 그것은 곧 신념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비출 것이다. 쉽게 이룰 수 있는 꿈보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쪽으로 목표를 정해라. 스스로 반문을 거듭할수록 자기 행위의 목적이 뚜렷이 자각되어 힘이 솟고 용기가 생긴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마음을 추슬러도 반은 성공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