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고민 끝에 충북교육발전소에서 ‘쉬운 책 읽기 소모임’을 결성해 6월 26일(금) 오후 7시에 처음 시작하기로 했다. ‘쉬운 책’은 느린 학습자를 위해 쉬운 글로 쓰인 책을 말한다. 만화보다는 활자가 많지만 글자 크기가 커서 읽는데 불편함이 없다. 빠르게 읽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핵심적인 메시지가 잘 전달된다. 한국에서는 ‘피치마켓’이라는 출판사에서 전문적으로 쉬운 책을 제작하고 있다.
쉬운 책은 작년에 ‘청주시 경계선지능 의심아동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경계선지능 아동은 일반적으로 지능지수가 71-84 사이에 해당하며 적응능력에 일부 손상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들은 장애등급을 받지 못해 복지혜택에서 제외되지만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들어 아동복지 현장에서 경계선지능 아동에 대한 관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를 반영하여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계선지능 및 지적장애 의심아동의 비율이 9명 중 1명 정도로 결코 낮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아동이 퇴소 후 자립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지원수준은 미약했다.
연구보고서에서는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역량 강화 및 프로그램 접근성 강화, 아동 특성을 감안한 인력 배치 현실화, 정보제공 확대, 심리검사 지원 강화, 법·제도 지원체계 구축 등 여러 가지 정책 제안을 했다. 최근 중앙정부에서도 점차 관심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아동에 대한 전문가정위탁제도를 법제화했고, 아동권리보장원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을 받아 지역아동센터의 느린 학습자를 대상으로 사회적응력 향상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충북에서도 지역아동센터 40개소를 대상으로 전문가 파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무언가로 규정하고 호칭하면서 구분 짓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정부 정책에서는 지원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나, 구별이 차별과 낙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보편적인 제도의 개선일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급하게 가는 문화를 천천히 가는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글을 최대한 쉬운 글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낮은 문해율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쉬운 책 읽기 모임’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작년 피치마켓의 ‘쉬운 책’을 구입해 보면서 그 활용가치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도 어렵게만 느껴져 수십 년 동안 손도 대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고전 문학 책을 불과 1~2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아스퍼거인이 직접 쓴 쉬운 번역서를 보면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알 수 있었다. 쉬운 책은 마치 파워포인트(PPT)와 같다. 어려운 원문을 쉽게 풀어써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배려의 산물이다.
연구는 실천적 함의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충북교육발전소에 ‘쉬운 책 읽기 소모임’을 제안하게 되었다. 월1회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만나 쉬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이후에는 소모임원들과 함께 느린 학습자 아동 또는 부모들을 함께 만나고 지원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향후 여건이 가능하다면 ‘쉬운 책’을 직접 만들고,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느린 학습자 아동과 이주·다문화 아동에게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참여 문의는 충북교육발전소로 해주시면 된다.
서재욱 (청주복지재단 연구위원)
첫댓글 역시 빈곤전문가다운 서재욱 위원의
따뜻한 글 , 잘 읽었습니다!
역시 인터뷰를 하셔서 잘 아시는군요! ㅎㅎㅎㅎ 언젠가 한번 지현쌤을 인터뷰하러 갈게요~~
ㅎㅎ 말씀만으로도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