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1]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수일 후에 - 이는 정확한 날들의 수를 지시하는 말이기 보다 오히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셨을 때와 돌아오셨을 때 사이의 빈 기간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다시 가버나움에...소문이 들린지라 - 예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신 뒤에 갈릴리의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셨다. 앞서 이야기된 바에 따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은 갈릴리에서의 선교 활동을 위해서였으나 치유받은 문둥병자의 인간적인 열성에 의해 잠시 그곳을 떠나셨다가
다시 팔레스틴 북쪽 지역, 특히 갈릴리 사역의 활동 중심지였던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것이다..한편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간혹 '다시',-이미 보도한 상황과 지금부터 전개될 상황과의 긴밀한 연관성을 보여주려는데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타난 '집'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예수께서 마을에 들어 오시자 그 소문은 곧 인근 각처에 퍼지게 되었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소문으로 퍼진다는 것은 마가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막 2: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많은 사람이 모여서...도를 말씀하시더니 - 예수의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한번 만나보기 위해 베드로의 집 앞에 인산 인해를 이뤘던 것이다. 이러한 장면에 대해 특별히 마가는 그집 문 주변이 거의 통행 불능 상태에 이르렀음을 기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더욱 현장감있게 묘사했다.
한편 예수는 이런 상황에 처하여 그들이 기대하는 바 이적을 행치 않으시고 오직 천국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하셨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께서 말을 전하심에 관해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도를 말씀하시더니'라고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다시 한 번 구체적인 설명 없이 '말씀'을 전하신 것을 담백한 어조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도'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
성경에서는 흔히 이 말이 '구원의 메시지', '복된 소식', '복음'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실로 예수께서는 자신의 인기에 영합한 일시적 문제 해결로서의 이적을 행치 않으시고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참생명의 진리를 가르치셨던 것이다....[막 2: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쌔.."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 중풍은 뇌일혈등으로 인해 신체의 일부나 반신 또는 몸 전체가 마비되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병이다. 그래서 중풍 환자는 말하는 것을 물론 걸을 수도 없고 몸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도 없었기에 타인의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여기 등장하는 '네사람'에 대해 그 환자의 친구인 상전의 명령을 받은 종들로 보는 견해도 있고, 또 그 환자의 가족이나 친구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쨋든 이 네 사람은 그 환자를 위해 아낌 없는 헌신을 다하는 참된 의미의 동료요 형제요 친구였다. 누가의 보고에 따르면 이때 네 사람은 환자를 침상에 뉘고 그 침상의 네 모퉁이를 네 사람이 메고 왔음을 곧 알 수 있다. 실로 침상을 운반하는 일에 적극 동참한 자들의 예수께 대한 절대적 신뢰와 협력과 진취적 노력및 아름다운 협동은 그리스도께 넉넉히 인정받을 만한 것이었다.
[막 2:4]"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병자가 예수께서 계신 집에 당도했으나 수많은 군중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그 문 앞에 둘러서 있었기 때문에 정작 만나 뵈어야 할 예수께는무리를 인하여...데레갈 수 없으므로 - 헌신적인 4명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도무지 다다를 수가 없었다.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달아내리니 - 4명의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모든 최선을 다했다. 결국 그들은 우회하는 방법이지만 가장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 즉 바깥 계단을 통해서 지붕 위로 환자를 메고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가 있는 곳으로 환자를 달아내렸다. 한편 팔레스틴의 전형적인 서민 주택은 보통 흙벽돌로 된 단층 슬라브형으로 지붕이 평평하며, 방은 하나로 되어 있는 조그마한 형태이다.
그리고 바깥은 지붕으로 계단이 놓여 있어 지붕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붕은 보통 나무로 들보를 놓은 후, 짚으로 엮어 그 위에 놓고 그 사이를 흙으로 채워 비를 막도록 되어 있다. 가끔 들보 위에 기와를 놓고 다시 그 위에 짚과 흙으로 덮기도 했다 따라서 중풍병자를 지붕 위로 올려 온 사람들은 지붕을 덮고 있는 흙과 짚, 석회, 판자, 기와 등을 떼어내고(이때 분명히 먼지가 집 안으로 쏟아졌을 것이다)
막 드러난 들보안으로 그 환자를 달아내렸을 것이다. 한편 본문의 '상'은 일반 서민들의 짚으로 만든 자리나 담요 같은 누울 것을 가리킨다.....[막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 '죄 사함을 받게 하는 기적'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현명함과 또 열심있는 믿음을 보셨다.
'저희'란 단지 침구를 메고 온 4명의 동료만이 아니라 중풍병자까지를 포함한 5명을 함께 지칭하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본 사건을 통해 중풍병자의 믿음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예수께서 바로 그 환자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예수는 환자의 병을 고쳐 주는 대신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우리는 여기서 그 환자가 필요로 했던 바가 죄의 용서가 아니라 바로 중풍병의 치료였다고 피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환자가 어떤 특별한 죄를 지었던 것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환자의 경우에서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또한 모든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떠남으로 기인되었다는 구약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진리가 예증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병을 고쳐 증거할지라도 이는 또 하나의 뚜렷한 이적에 관한 내용으로 머물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치러 온 자에게 영혼의 죄까지 사해 주신 사실을 통해 (1) 육신의 병고침은 한시적인 것이지만 영혼의 죄사함은 영원하며, (2) 육신의 질병이 직접적인 죄의 결과는 아니지만 인류 최초 범죄 이후 병과 죽음이 시작되었다는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육신의 질병보다 그 본질적인 원인인 죄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며, (3) 전자는 부분적이요 조건적이고 후자는 전체적이요 절대적이고,
(4) 전자는 인간의 방법으로도 가능할지 모르나 후자는 오직 예수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임을 보여 준다. 한편 본문의 '소자야'란 말은 흔히 랍비들이 제자들을 향해 쓰는 호칭인 동시에 친근한 손아래 사람에게 칭하던 매우 부드럽고 따사로운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