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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라지나이트 입니다.
4월도 후딱 지나가버리고 어느새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이 되었습니다. 올 한해도 이제 반토막이 얼마안남았군요… 요새는 낮에는 좀 덥긴해도 아침 저녁으로는 꽤 선선한게 모형만들기에 적합한 계절인듯 합니다.
바쁜 말일도 지나고 저도 밀린 리뷰나 올려야겠습니다. 지난달 말일쯤 아카데미에서 또하나의 신제품을 출시하였습니다. 바로 2차대전중 ‘날으는 전차’ 라 불리던 IL-2 슈투르모빅이 바로 그것입니다. 최근 아카데미의 분발이 장난 아니네요~~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우선 늘 있어온 미라지나이트의 리뷰만의 묘미 실기체 연구 시간입니다. 이번에는 국내에서 항공
전사 싸이트로 가장 잘 정리된 곳으로 유명한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frame2.htm) 중에서 인용했습니다.
◇ Ilyushin Il-2 Shturmovik ◇
♠ Part 1 - 고난의 시절 ♠
♠ Part 2 - 대반격의 선봉에서 ♠
l 이 글은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frame2.htm) 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중 1부 일부만 인용했습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으시면 해당 싸이트를 방문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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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ocument was updated at 2007. 10. 24
독일 지상군에게 슈투카라는 든든한 우군기가 있었다면 소련 지상군 병사들이 가장 사랑했던 기체는 바로 일류신이 만들어낸 강철의 날개 Il-2 슈트르모빅 (소련식 표기 : Ил-2 Штурмовик) 일 것이다. 물론 이 슈트르모빅은 독일 지상군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였으며, 이 기체로부터 끔찍한 경험을 했던 독일병사들은 '흑사병 (Schwarz Tod - Black Death)'이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붙이게 된다.
소련공군의 Il-2는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지상공격기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체중 하나였으며 지상공격 능력만을 놓고 보면 독일공군의 Ju 87 슈투카를 확실하게 능가하는 성능을 가졌던 위대한 항공기였다. 이 항공기는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이 국가존망의 위기에 몰렸을 때부터 최후의 승리를 거둔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할 때까지 전 소련군과 생사를 함께했던 존재였던 것이다. 불타는 하늘의 Great War Planes... 이번에는 하늘의 흑사병 슈트르모빅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 흑사병의 탄생
1930년대 들어서면서 소련군은 적의 지상군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항공기의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소련군은 공군을 독립적인 부대로 작전하도록 하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지상군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과거의 적백내전에서의 전투경험으로 볼 때 저공으로 날아들어 지상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항공기의 가능성에 많은 점수를 준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국내의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개발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1938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인 개발과정이 시작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지상에 대한 강습, 폭격, 정찰, 근접지원등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다목적 항공기의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소련공군은 이 항공기 개발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각 항공기 설계국에게 새롭게 생산되는 기체가 대지상 공격을 전문으로 하게되는 만큼 튼튼한 방호력과 강력한 화력을 필수적으로 요구했다.
[ 슈트로모빅의 아버지 - 세르게이 일류신 ]
이 차기 지상공격기 개발사업에는 2종의 신형기들이 경쟁하게 되는데 세르게이 일류신이 이끄는 설계국이 만들어낸 2인승 항공기인 TsKB-55가 먼저 선보였으며 2기의 원형기가 제작되어 1939년 10월에 처녀비행을 실시했다. 어렸을 때부터 항공기술에 관심이 있었던 세르게이 일류신은 적백내전당시 적군의 항공기 조종사, 기술자로 종사했으며 이후에도 많은 항공기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공로를 소련공산당으로부터 높이 인정받아 그가 42세가 되던 1936년 8월 17일에 그의 이름을 딴 일류신 설계국을 설립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일류신은 '날개가 달린 탱크'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으며 이미 머리속에서 새로운 지상공격기의 개념을 완성시키고 설계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이 신형기 프로젝트의 승자가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뒤를 이어 파벨 수호이 설계국이 Su-6 라는 경쟁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수호이의 기체는 몇 가지 이유로 개발이 지연되어 이미 활발한 성능테스트가 시작된 일류신의 기체에 밀리게 되었고, 슈트로모빅의 양산이 결정된 이후에는 결국 제대로 성능 테스트도 받지 못한채 경쟁에서 탈락했다.
일류신은 자신의 설계국이 만들어낸 기체가 소련공군의 정식 지상공격기로 선정된 것에 크게 고무되었으며 이를 기념하여 자체적으로 Bsh-2라고 명칭을 바꾸게 된다. 여기서 Bsh는 Bronirovannyi Shturmovik의 약자로 '장갑을 가진 강습 공격기 (Armored Assault Aricraft)'라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 비록 이 명칭은 소련공군에 의해 제식 명칭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훗날 유명한 별명인 슈트르모빅의 근원이 된다.
이 원형기의 테스트가 끝나자 몇 가지 단점이 발견되는데 그중 하나는 기체가 급상승할 때 냉각계통이 쉽게 과열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냉각기를 보다 대형화 시키고 오일쿨러의 위치를 동체하면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기체의 고정무장도 4정의 기관총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이 지적된후 2정의 기관총을 2문의 23mm PTB-23기관포로 교체하도록 했다. 따라서 2문의 23mm 기관포와 2정의 7.62mm 기관총을 고정무장으로 채택하여 당시의 기준으로서는 상당히 강력한 고정무장을 갖추게 되었으며 주익 중앙부에 4발의 100kg 폭탄 수납이 가능한 폭탄고 (Bomb-bay)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최고속도가 지면고도에서 시속 362km밖에 되지 않는 느린 속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느린속도의 원인을 분석해보니 동력원이던 1370마력의 미쿨린 AM-35 수냉식 엔진에 문제가 있었다. (사실 지상공격기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지상포화에 의한 피탄시 손상을 더 잘 견딜 수 있는 공냉식 성형엔진을 채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었지만 일류신은 소련에는 이 신형기를 날릴 수 있는 강력한 출력을 가진 공냉식 성형엔진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수냉식인 AM-35를 채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엔진은 미그-3와 같은 고고도 요격기에 필수적인 슈퍼차저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지상공격기의 특성상 고공에 올라갈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공에서는 쓸데없이 중량만 늘리는 것으로 판단한 일류신은 새로운 엔진의 개발을 요구했고, 결국 슈퍼차저를 제거하고 엔진출력을 향상시킨 1600마력의 AM-38 엔진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소련수뇌부로부터 쓸데없는 간섭이 내려오는데, 그것은 스탈린과 군 수뇌부가 이 항공기를 1인승으로 개량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들은 1인승 폐쇄식 조종석을 채용하고 후방석에 연료를 더 탑재하면 이 항공기는 항속거리가 길어지며 보다 빠른 속도로 적진에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류신은 후방석의 방어용 기관총좌를 폐지하면 이 기체가 적전투기의 공격에 매우 취약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스탈린의 결정이 내려진 상태였으므로 이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후방석은 폐지되었으며 여기에 41갤런 (약 155리터)의 보조 연료탱크를 탑재하는 것으로 개량이 완료되었다.
[ 두번째 원형기 TsKB-57, Il-2의 양산으로 이어지는 기체이다. ]
이 기체는 '날개가 달린 탱크'라는 일류신의 설계개념에 의해 엔진과 조종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전방동체에 무려 700kg 가까운 양의 강철판 (두께 4~8mm)을 폭넓게 사용해서 중장갑을 둘러쳤는데 특히 수냉식 엔진의 특성상 손상에 취약한 냉각장치는 가장 중장갑으로 보호를 받았다. 조종석에는 55~65mm 두께의 K-4 방탄유리가 사용되었으며 주익의 랜딩기어는 인입시에 바퀴가 약간 돌출되도록 설계되어 전투손상에 의해 랜딩기어가 손상되더라도 강행 착륙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주익에 장비된 PTB-23 23mm 기관포에 문제가 있었다. 이 기관포는 신뢰성에 문제가 있어 자주 급탄이 정지되었으며 반동이 심해 주익의 구조에 심각한 결함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일류신은 보다 신뢰성이 높은 ShKAS 20mm 기관포로 교체하고 주익의 구조적인 강도를 재설계했다. 이렇게 무장이 변경된후 이 기체는 20mm 기관포탄 420발과 7.62mm 기관총탄 500발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두 번째 원형기는 TskB-57로 명명되었고, 영국본토항공전이 그 고비를 넘겼던 1940년 10월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고도 6600피트에서 시속 470km의 최고속도를 보였으며 무엇보다 조종성이 매우 뛰어나 대부분의 테스트 파일럿들은 이 기체의 비행성능에 매우 높은 평가를 내렸다.
소련공군 테스트파일럿들이 이 기체의 성능이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일인지 군수뇌부에서는 이 기체의 생산을 허가하지 않았으며 이에 초조해진 일류신은 1940년 6월 이 기체의 양산을 허락해달라는 우편을 보냈으나 몇 개월을 기다려도 답변이 없었다. 1940년 11월 7일 기다리다 못한 일류신은 스탈린에게 직접 기체의 생산을 허락해 줄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피의 대숙청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탈린은 이 편지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결국 12월말이 되서야 양산을 허락한다는 공문과 함께 모스크바 근교의 포로네즈에 위치한 GAZ-18 공장이 기체의 생산을 맡게될 공장으로 배정되었다. 공장을 배정받은 일류신은 곧장 포로네즈로 이동하여 이 공장의 설비를 신형기의 생산에 맞도록 전면적인 공사작업을 했고 서둘러 양산작업에 들어갔는데 결국 GAZ-18 공장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 100일도 안되는 1941년 3월 10일에 양산 1호기의 첫 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결국 양산이 시작되자 소련공군은 이 기체에 Il-2 슈트로모빅이라는 제식 명칭을 부여했다.
[ TsBK-57과 양산형 Il-2의 차이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양산형은 보다 세련된 외형을 보여준다. ]
양산형에서는 TskB-57의 반복적인 테스트 과정에서 지적된 마지막 문제점이 개선되는데, 그것은 AM-38 엔진의 탑재에 따라 기수가 너무 직선으로 길 게 설계되어 조종석에서 볼 때 전방 아래쪽의 시야가 매우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지상공격을 주특기로하는 기체로서는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일류신의 설계팀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엔진을 17.5cm 아래쪽으로 이동시킨후 기수를 유선형으로 재설계하고 조종석의 크기를 축소하고 높이를 5cm 높여서 조종사의 전방시야를 좋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슈트르모빅의 특징적인 돌출형 캐노피가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개선된 기수의 형태는 전체적인 비행성능의 향상효과도 나타냈다. 여기에 TsKB-57의 동체에 일부 사용된 목재재료들은 양산형에서는 경금속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기체 설계의 변경과 함께 무장 탑재량도 약간 증가되어 20mm 기관포탄 500발과 7.62mm 기관총탄 720발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 지상공격기 답게 주익 하면에는 82mm RS-82 로켓탄을 발사할 수 있는 레일을 총 8개 부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전차와 같은 장갑차량에 대한 파괴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
[초기(후기)형과 후기형(2M)의 차이를 잘 나타내주는 일러스트 후기형인 2M형에 이르면 주익의 각도가 꺽이고 후방사수가 탑승하여 2인용 기체가 된다.]
* 고난의 시절
이런 저런 이유로 슈트르모빅은 다른 소련의 신예기들처럼 그 등장시기가 너무 늦었다. 양산 1호기가 첫 비행을 실시한후 불과 3개월도 안되는 시점인 1941년 6월 22일에 독일군이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기 때문에 Il-2가 실전에서 활약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부족했다. 독일이 침공할 때까지 총 249기정도의 슈트르모빅이 생산되었는데 이중에서 실전부대에 배치된 기체는 고작 18기에 불과했다고 하며 독일의 침공이 시작되자 부랴부랴 잔여기체들이 전선으로 보내지지만 이 인도분량 조차도 제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조종사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독일공군의 맹공으로 소련공군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전선의 전면적인 붕괴상황이 계속되자 전선에 투입되는 Il-2는 대부분의 소련기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독일 전투기들의 사냥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 무렵 거의 와해상태에 빠진 소련공군은 Il-2를 출격시킬 때 호위 전투기를 딸려보낼 만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슈트로모빅은 무작정 이륙한 후 홀로 적진으로 돌격해야 했으며, 후방석의 기총수마저 없었기 때문에 독일 전투기들이 후방으로 돌아들어 공격해오면 속수무책으로 격추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Il-2 스트로모빅의 초기형인 1인승의 탑승기로 날렵한 외형을 가진것이 특징이다]
사실 슈트르모빅의 비행성능은 매우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우수한 조종사가 탑승하는 경우 독일전투기의 공격으로부터 충분히 벗어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운동성을 과시하기도 했으며, 어떤 경우는 독일전투기와 1:1의 공중전을 벌여 승리를 기록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이중에서도 랴보스코 상사는 1942년 3월에 투입된 몇차례의 공격작전에서 일군의 독일전투기들이 요격해왔을 때 희피하지 않고 즉시 공중전에 돌입하여 싸웠으며, 슈트로모빅으로 총 4기의 Bf 109를 격추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이 전과는 동료조종사들의 증언으로 확인되어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Il-2는 출격한후 돌아오지 못했으며 불과 몇 달만에 전선에 투입된 슈트로모빅의 3/4에 달하는 숫자가 손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독소전이 발발했을 당시에 소련의 주요 군수공장들은 모스크바 주위에 있었는데, 독일군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곧 소련의 수도인 모스크바가 위협받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스탈린은 모스크바 주위의 주요 군수공장들을 독일 폭격기들의 항속거리가 미치지 않는 우랄산맥의 동쪽으로 이동시키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1500여개가 넘는 군수공장들과 여기서 일하는 1000만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1000km이상이나 떨어진 거리로 옮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국가존망의 위기가 닥쳐오자 소련국민들은 1941년 가을이 지나갈 때 까지 90%가까운 공장들을 이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Il-2를 생산하고 있던 GAZ-18 공장은 전선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계속 생산을해야 했기 때문에 이전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로네즈에도 1941년 9월 19일 독일공군의 하인켈 He 111 폭격기들이 최초로 나타나 폭격을 가했으며, 이에놀란 스탈린은 GAZ-18도 가능한 빨리 이전작업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
GAZ-18이 이전하게될 지역은 볼가강 근처의 퀴비쉐프라는 곳이었는데 여기까지 공장설비와 노동자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1941년 10월 26일 철수작업이 시작된후 35일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이전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물론 이기간동안에는 Il-2의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너무도 혼란한 상황속에 이전작업이 이루어지다보니 퀴비쉐프에 새롭게 건설된 공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과 절망, 그자체였다. 급조된 공장건물은 지붕도 얹지 못한채로 기계들을 가동해야 했으며 노동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허름하게 지어진 오두막집에서 돌처럼 딱딱한 빵으로 연명하면서 일해야 했던 것이다. 이전과정에서 생산설비가 손상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속출했으며, 지원물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에서 가능한 많은 Il-2를 생산하라는 독려가 계속 내려오다보니 생산되는 기체들의 품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불량품들의 발생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번 아카데미가 개발에 참고했을 러시아 무기박물관의 기체]
더욱이 겨울이 찾아오면서 퀴비쉐프의 지붕이 없는 공장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강추위와 눈보라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악재속에서 날아든 한 장의 우편엽서가 엄청난 충격을 몰고온다. 이 우편엽서는 바로 그들에게 있어서 독일군보다도 훨씬 무서운 독재자 스탈린이 보낸 것이었다.
'지금 우리의 붉은군대는 더욱 많은 일류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전선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에게 일류신은 빵과 공기처럼 소중한 것이다. 현재의 생산속도는 매우 실망스럽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나는 그대들이 더욱 많은 일류신을 생산해줄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바이다.'
이것은 만일 더 많은 일류신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일류신과 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숙청될 수도 있다는 스탈린의 최후통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충격요법은 큰효과를 발휘하여 일류신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과 전 노동자들이 불철주야 항공기의 생산작업에 전력을 다하게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장의 운영이 안정기로 접어들고 생산량도 점점 많아졌다.
[ 드디어 겨울이다! 얼어붙은 동부전선의 하늘을 비행중인 Il-2 ]
1941년 첫해동안 총 1134기의 Il-2가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전쟁전에 생산된 기체를 제외하면 독소전의 개전이후에 885기의 Il-2가 생산되어 소련군에 인도되었다. 당시의 혼란스럽던 상황으로 볼 때 이 수치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었다.
Ilyushyn Il-2 초기 양산형 스펙
엔진: 미쿨린 AM-38 수냉식엔진 (1600 마력)
전폭: 14.6m
전장: 11.6m
전고: 4.11m
기체중량: 4200kg
최대중량: 5788kg
최대속도: 420km/h
최대고도: 13120피트 (4000m)
항속거리: 740km
무장: 20mm 기관포 2문, 7.62mm 기관총 2정
82mm RS-82 로켓탄 8발 & 총 400kg 일반폭탄 탑재가능
출처 불타는 하늘 (http://airwar.hihome.com/frame2.htm) 중에서
Il-2 스트로모빅은 2차대전중 독일의 수투카 급강하 폭격기와 쌍벽을 이루는 소련의 대지(대전차)공격기로 보병을 공중에서 근접지원하는 ‘CAS (close air support)’ 임무의 기초를 완성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기체 입니다.
스토로모빅은 두터운 장갑으로 조종석을 비롯한 주요 부위를 감싼 설계로 웬만한 총격에도 까닥않는 강력한 방어력과 20~37mm 에 달하는 중기관포의 탑재로 대지공격 특히 전차에 대한 공격에 있어 장갑이 취약한 전차의 상면을 공격하는 전술로 많은 전과를 올립니다. 이런 전차의 상면공격은 당시의 중장갑을 자랑하던 판터나 티이거 조차도 단 몇발에 제압될 정도로 위력적이였으며 특히 중장갑에 비행성능 역시 우수했던 기체로 간간히 독일공군의 주력기 BF-109 등과도 공중전을 벌여 이를 격추하는등 놀라운 비행성능을 가진 가체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중장갑 중무장의 설계개념은 훗날 근접지원전용기체로 이름을 날리는 A-10 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갈길 바쁜 아카데미…또 하나의 역작 씨리즈를 예고하는 킷!!
2008년 들어 아카데미의 발길이 아주 바쁩니다. 다름아닌 엔가인상과 달러인상으로 인해 수출에 절대적으로 유리해졌기 때문이죠 간만에 맞는 수출기회인지라 기를 쓰고 한참 신제품 발매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번 4월만해도 그 영향으로 KF-16C 에 이어 커티샥 그리고 이번에 il-2 스토르모빅이 동시에 출시되었습니다.
IL-2 스트로모빅은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수투카에 필적하는 소련의 지상공격기로 “ 땅위의 T-34 와 더불어 공중에는 바로 ‘스토르모빅’ “이란 말도 있듯 소련군 무기중 가장 유명하며 또한 가장 위력적인 무기중 하나 였습니다. 오죽하면 대전후반기에 이르면 소련군이 가진 전투기중 1/3 이 스트로모빅일 정도로 그 인기와 신뢰는 대단했다고 합니다.
스트로모빅은 그 인기만큼 이미 10여년 전에 ‘ACCURATE MINIATURES’ 에서 거의 결정판격인 제품이 출시되기도 하였으나 회사가 도산한 뒤로는 구하기가 힘든지라 거의 제품이 없다시피 했는데 이번에 아카데미에서 과감하게 제품화 하였습니다.
아카데미가 제품화 한 것은 초기형인 Il-2 형으로 대전 초반까지 약 249기 정도가 생산되어 대전초반에 독일군을 대상으로 활동하던 기체 입니다.
하지만 역시 초기생산형은 문제점이 많아서 별다른 활약은 하질 못햇는데 특히 후방부분이 취약하여 이곳을 노린 독일공군기에 많은 피해를 당합니다. 이후 이점을 개량하여 후방좌석에 포수를 태운 2인용의 IL-2M 이나 무장과 장갑을 더욱더 개량한 IL-2M3 등이 등장하면서 많은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1. 박스 및 외형
[ 이제는 어딜 내놓아도 결코 꿀릴게 없는 자랑스런 아카데미의 박스아트!]
박스는 약 43X33X5 정도로 생각보다 큰 박스 입니다. 스케일이 1/72 인지라 이렇게 까지 과포장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다행히 두께가 ?아 보관에 큰 어려움은 없어 보입니다. 박스아트는 역시 최근 절정기의 박스아트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아카데미 답게 매우 섬세하고 보기 좋습니다.
박스아트 뿐 아니라 박스품질 역시 상당히 우수하며 역시나 외부에는 반짝이는 라미네이팅 코팅처리가 되어있어 아주 고급스럽습니다.
2. 내용 및 특징
[ 내용물은 2차대전 더구나 프롭기 치고는 상당히 푸짐한 편이다]
박스를 열어보면 이외로 푸짐한 구성에 놀라게 됩니다. 1/72 스케일이라는 작은 크기와 더구나 프롭기라는 특성상 많은 부품이 필요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에 열어본 박스안 내용물은 생각외의 느낌을 갖게 합니다.
(1) 콕핏
[ 1/72 스케일 이지만 내용이나 디테일및 볼륨은 1/48 스케일 급이다]
전투기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콕핏은 1/72 스케일의 프롭기 답지 않은 섬세함이 아주 돋보입니다. 요즈음의 대세는 과거의 얼렁뚱땅 넘어가는듯한 1/72 스케일의 조종석은 보기 힘들고 1/48 스케일 이상의 섬세한 디테일을 자랑하는 제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킷 역시 그런 현재의 유행을 잘 따르고 있습니다.
1/48 스케일을 보는듯한 바스터브의 섬세한 구성과 특히 조종핸들과 뒷부분의 연료탱크 등의 재현이 아주 우수합니다.
특히 계기판의 경우 투명부품으로 사출되어 있어 계기판의 유리재질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배려한 점이 돋보입니다. 이런 투명부품은 조준기에 이르면 거의 절정에 다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처음 도전하는듯한 투명계기판... 이미 트럼페터 같은 회사에서는 몇년전부터 써먹던 방법중 하나이다]
그외 조종석 주위를 두러싸고 있는 장갑판의 재현도 빠짐없이 잘 하고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조종석에 실리는 연료탱크와 조종간 및 페다의 재현은 역시 아카데미 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캐노피의 경우 특히 투명도가 발군으로 맑고 선명한 사출로 보기가 아주 좋습니다.
[ 투명부품의 사출이 더욱더 투명하고 자세하게 나온듯 하다.]
(2) 동체
[ 전장 30센티에 가까운 동체.. 웬만한 폭격기 크기이다.]
프롭기 치고는 다소 대형 기체인 스토로모빅의 특징을 잘 살린 동체는 길이만 해도 30센티에 윽박하는 굉장한 크기 입니다. 전체를 감사고 있는 샤프한 마이너스 라인들과 적절하게 찍혀있는 리벳팅의 표현이 역시 아카데미답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 동체의 패널라인은 역시 샤프하다!!]
특이한 것은 스트로모빅 하면 후기형 기체인 2M 과 2M3 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둘은 조종석 뒷부분에 후방사수좌석이 있습니다. 초기형에는 이런 후방 사수석이 없는 1인승 동체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분명 가장 인기 있는 기체인 2M 이나 2M3 형이 출시될 것이 뻔한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체를 재현하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 별도로 동체부분을 새롭게 만들 생각인 듯 합니다.
[동체 후방의 목제재질로 된 재현도 일품!!]
디테일외에 동체의 라인 및 실루엣이 아주 잘나온 편 입니다. 특히 곳곳을 덮은 장갑판과 특히 후방의 목재재질의 동체 재현은 아주 일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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