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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수필연구반2015년5월9일5강보충자료>
6眼: 4 가지 상상적 질문과 6가지 보는 방법
모든 문학의 출발과 종점은 상상력이다. 상상력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상상력의 요체는 질문이다. 그 네 가지 질문은 동시에 대상, 우주, 인간, 공간성을 지향한다.
첫째는 대상이 지닌 근원에 대한 집요한 내향적 질문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다. 오감이 포착할 수 없는 미지(未知) 자체로서 사랑의 근원, 미움의 근원, 존재의 근원, 아름다움의 근원, 갈등의 근원, 죽음의 근원이다. 이를테면 “새(鳥)는 무엇인가”라는 정체로서 그 존재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하는가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을 말한다.
둘째는 우주 전체에 대한 외향적 질문이다. 작가가 선택한 제재가 우주 전체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외적 물음이다. 우주는 대상 하나 하나와 유기적 관련성을 맺고, 역으로 대상은 우주와 관련을 맺는다. 작가는 선택한 제재를 통해 우주의 전모를 이해하려는 꿈을 꾼다. 작가는 “새는 왜 나무에 머무는가?”라는 질문으로 새와 나무, 새와 하늘, 새와 노을, 등 모든 대상이 우주의 일부이면서 독자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셋째는 선택한 제재를 매체로 하여 인간 세계로 던지는 횡적 질문이다. 곧 “그렇다면”에 해당한다. “모든 인간이 그 제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묻다 보면, 작가는 어느새 대상과 우주와 인간이 유기적인 패러다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새의 울음은 내겐 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독특한 인식 방법과 안목을 획득하게 된다.
넷째는 시공에 관한 질문이다. 시공에 대한 질문은 작가가 처한 공간에 대한 질문으로 관점의 개성미를 구축한다. 이 푸 투안(Yi Fu Tuan)이 말한 토포필리아(Topophilia)를 가지는가, 반대로 공간혐오감인 토포포비아(Topophobia)나 공간무감각성(placelessness)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대상에 대한 스펙트럼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고향은 애착의 장소로서, 패스트푸드나 지하철역은 무감각성의 대상으로 구분된다. 느티나무를 고향에서 보았는가, 관광지에서 보았는가에 따라 반응이 다른 것은 공간자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학쓰기는 대상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강자가 아니라 적자(適者)인 이유도 적자는 주어진 환경을 적절하게 해석하고 생존에 맞는 방안을 강구하기 때문이다. 수필의 이해와 해석과 창작도 마찬가지다. 수필은 시보다 영감이 넘치며 소설보다 구성력이 뛰어나고 드라마보다 현장감이 넘치는 담론임에도 역동적인 대상 읽기에서 미흡하다. 글 쓰는 법을 배우지만 진정한 창작법은 모른다. 창작은 펜으로 쓰는 시점 이전에 이미 완료되어 있으며 펜으로 그것을 본뜰 따름이다
수필을 쓰려면 대상에게 한없는 질문을 던져 근원적인 해답을 찾는 과정이 요구된다.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이고 소설가가 허구의 이야기꾼이라면 수필가는 의미화의 문장가이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의미망을 엮어내야 하므로 육안(六眼)이 필요하다.
수필가는 禪人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六眼禪人이다
① 현미경과 같은 눈
② 망원경과 같은 눈
③ 쌍안경과 같은 눈
④ 잠망경과 같은 눈
⑤ 프리즘과 같은 눈
⑥ 심안
“새롭게 읽기”를 이루려면 다양한 안목이 균형 있게 조성되어야 한다. 사물의 미세한 특징을 살피는 현미경 같은 눈과, 소재의 근원을 찾아내는 망원경과 같은 눈, 선과 악, 미와 추 등의 이미지를 조화시키는 쌍안경과 같은 눈, 소재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살피는 잠망경과 같은 눈, 소재의 색깔, 모양, 어원, 용도 등을 다의적으로 분석하는 프리즘과 같은 눈,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심안이 합쳐질 때 그대가 진정 원하고, 시공을 초월하는 수필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예문1)
세한도 (歲寒圖)
목성균
휴전이 되던 해 음력 정월 초순께, 해가 설핏한 강 나루터에 아버지와 나는 서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세배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강만 건너면 바로 작은댁인데, 배가 강 건너편에 있었다. 아버지가 입에 두 손을 나팔처럼 모아 대고 강 건너에다 소리를 지르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건너편 강 언덕 위에 뱃사공의 오두막집이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노랗게 식은 햇살에 동그마니 드러난 외딴집, 지붕 위로 하얀 연기가 저녁 강바람에 산란하게 흩어지고 있었다. 그 오두막집 삽짝 앞에 능수버드나무가 맨 몸뚱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둥치에 비해서 가지가 부실한 것으로 보아 고목인 듯싶었다. 나루터의 세월이 느껴졌다.
강심만 남기고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해가 넘어가는 쪽 컴컴한 산기슭에는 적설이 쌓여서 하얗게 번쩍거렸다. 나루터의 마른 갈대는 ‘서걱서걱’ 아픈 소리를 내면서 언 몸을 회리바람에 부대끼고 있었다. 마침내 해는 서산으로 떨어지고 갈대는 더 아픈 소리를 신음처럼 질렀다.
나룻배는 건너오지 않았다. 나는 뱃사공이 나오나 하고 추워서 발을 동동거리며 사공네 오두막집 삽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끼고 부동의 자세로 사공 집 삽짝 앞의 버드나무 둥치처럼 꿈쩍도 않으셨다. ‘사공-,강 건너 주시오.’ 나는 아버지가 그 소리를 한 번 더 질러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버지는 두 번 다시 그 소리를 지르지 않으셨다. 그걸 아버지는 치사(恥事)로 여기신 것일까. 사공은 분명히 따뜻한 방안에서 방문의 쪽유리를 통해서 나루터에 선객이 더 모일 때를 기다렸지 싶다. 그게 사공의 도선 방침일지는 모르지만 엄동설한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옳은 처사는 아니다. 이 점이 아버지는 못마땅하셨으리라. 힘겨운 시대를 견뎌 내신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 간의 이념적 대치였다.
아버지는 주루막을 지고 계셨다. 주루막 안에는 정성들여 한지에 싼 육적(肉炙)과 술항아리에 용수를 질러서 뜬, 제주(祭酒)로 쓸 술이 한 병 들어 있었다. 작은 증조부께 올릴 세의(歲儀)다. 엄동설한 저문 강변에 세의를 지고 꿋꿋하게 서 계시던 분의 모습이 보인다.
(예문2)
흙과 불춤
김기철
도자기를 한다는 것이 불과의 전쟁이라 할지, 밀월이라 할지 아직은 어림을 잡을 수가 없다. 다만 불과의 관계가 이보다 더 숙명적으로 절대적인 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나는 무던히도 이 칼날보다 더 매서운 놈하고 손을 잡고 사이좋게 태산준령을 넘어가자고 갖은 정성 다 쏟아가며 애걸복걸하건만 뭐가 심에 안차 그럼인지 툭하면 발칵발칵 심통을 부려 눈앞을 캄캄하게 해놓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다 변덕이 나면 갓 시집온 고운 아씨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하기야 인간들도 변덕이 팔죽 끓듯 하는 세상에, 너 불길만은 사람을 닮지 말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아야 한다고 주문을 해본들 내 쪽이 너무나 모자라니 죽으나 사나 불평 한마다 못 내뱉고 달래가며 살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불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태곳적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온통 세상에 그 앞에서는 사족을 못 쓰고 야단법석을 떠는지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나에겐 어릴 적부터 만만한 게 불이었다. 아무 때나 그어대는 성냥불이며 어른들이 뻐끔대는 담뱃불이 대단할 리 없었다. 더구나 사위어가는 화롯불은 죽은 아이 콧김만도 못하지 않은가. 아궁이 불이나 모닥불이라고 해 봐야 그저 그렇고 심지어 산불이나 남의 집 불난 것을 봐도 쥐불놀이나 횃불장난을 멋대로 해대며 뛰고 놀듯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신바람이 났다. 그러기에 불이라는 것은 죽으라면 죽고 알몸으로 춤을 추라면 추는 내 입 안의 혀나 다름없이 마구 부려먹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던 불이 하룻밤 사이에 호랑이보다도 더 무서운 존재로 입을 딱 벌리고 내 앞에 버티고 앉아 있을 줄이야…. 사실 도자기에서 불은 최후의 심판자이다. 사람들은 눈만 뜨면 불을 가지고 별별 짓들을 다 하고 있지만 정작 불의 정체가 어떠하다는 것을 강 건너 불처럼 대수롭지 않게 알고 있는 것이다.
설령 세상 끝날에는 하느님의 불의 심판이 내려 못된 짓 일삼고 착하게 살지 않은 인간은 여지없이 멸망을 시킨다는 소리를,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무궁토록 그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도 나 같은 사람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니 보통 곤란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이 아닌 장작개비를 태워 도자기를 심판하는 불만 하더라도 짚둥 같은 불길이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데 하늘의 불은 오죽할 것인가. 도자기라는 것이 사람보다 못해 그런지 더 나아 그런지는 몰라도 그 무서운 불의 심판을 두 번씩이나 받고 나왔다는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것은 초벌구이라는 예비심판을 통과한 다음에 또 한 번의 결정적 심판이 내리는데 이때야말로 불의 위력이 어떻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마치 괴물이 아가리에서 내뿜은 분노의 불길이라 할까, 갈고리 같은 마귀의 혓바닥이 휘둘러대는 광풍이라 할까, 아니면 소용돌이치는 탁류처럼 온통 가마를 휩쓸어갈 듯 한 열병 걸린 암흑의 사자들이라 할까, 아무튼 기세등등하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것이다.
우리가 가마에 불을 지핀다는 것은 마치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빚어 모아두었던 피조물들을 한꺼번에 가마에 넣고 불을 때자면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가다듬은 다음 단단한 각오가 뒤따라야 한다. 오랜 기간 정성들여 만든 내 분신들이 성공적으로 훌륭히 태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와 기도하는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일곱 개의 칸막이 굴이 단 몇 개월도 아닌 순식간에 만삭이 돼서 그 거대한 몸집이 꿈틀대는 것처럼 헐떡헐떡 불길을 내뿜기 시작하면 아무리 육지 같은 용가마라도 숨이 터지는지 몸부림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정사정없는 것은 사람 쪽이다. 가마야 견디다 못해 반 쪽이 나든 말든 봉통 아구리가 터지게 나무를 우겨 넣어야 한다. 이때야말로 일대격전이 벌어진 불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요 때가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아주 지지 밟아 굴신을 못하게 해놓아야지 섣불리 사정을 봐주다간 꼼짝없는 당하고 만다. 결국 가마 칸의 불구멍마다 검붉은 피거품을 토해 내듯 검은 연기가 빠져나오며 풀이 꺾이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암흑의 장막은 서서히 걷히고 몇 칸 다음 불구멍에서도 벌겋게 불기가 내비치기 시작한다.
그래도 안심은 금물이다. 그러나 가마 속 가운데로부터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다.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던 불길은 고삐가 잡히고 연한 저녁노을 빛깔의 차분한 흐름은 수천수만 가닥의 비단실이 물결을 따라 하늘거리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불이 끝난 봉통 속은 온통 황금비늘을 깔아놓은 듯 나머지 몸을 이글이글 불사르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놀랍다. 단 일순간을 반짝하고 날아가 버리는 저 무수한 불의 정령들! 저 놈들은 다 어디로 살러 가는 것일까. 오직 최후만은 화사한 빛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가마불은 이제부터 절정에 이른다. 불길은 자욱한 안개인 양 가마 안에 가득히 고여 있다. 그러나 살아서 춤을 추는 것이다. 정지된 듯 움직이는 그 흐름은 살풀이나 승무의 곱디고운 선을 숨바꼭질하듯 둥글게 이어가고 있다. 누가 저 가마 칸을 가득 메우고 도자기를 감고 도는 희다 못해 파르스름한 물안개 같은 흐름을 불길이라고 하겠는가. 아니다. 분명 다른 세계이다. 저 빛깔! 깊은 산속 밤새 내린 눈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설경이 바로 저 불빛인 것이다. 나는 몇 번이고 저 안이 극락이 아니면 천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속에 의젓이 앉아 있는 존재들, 어찌 보면 하나하나가 다 신비스런 모습을 띠고 의연하게 때를 기다리는 것 같다. 이 세상 같으면 물고 뜯고 악다구니를 해가며 난장판을 벌이겠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조용한 것이다. 그렇기에 밤이 깊어 풀벌레 소리마저 잠들 때가 되면 죽음과 같은 적막 속에 오직 장작불 제 몸 사르는 소리만 바지직바지직 들리는 것이다. 누구라도 세상이 잠든 삼경에 저 세상 같은 가마 속을 들여야 보면 더 없이 맑고 평화로운 생각을 지니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가마 속에 앉혀놓은 갖가지 형상들도 환상적인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놈들은 흙이 녹고 유약이 흘러 말캉거리는 홍시나 다름없이 살짝만 건드려도 그대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상태이다. 그러나 무던히도 버티고 앉아 하나의 완성품이 되기 위해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기는가 하면 그렇지 못해 비극으로 끝나는 것도 허다한 것이다.
한 번은 우는 닭 두 쌍을 몰아넣었더니 처음에는 새카만 털이 푸스스하고, 다음엔 피가 돌듯 발개지는가 했더니 어느새 황금 닭이 되었다. 그리고 좀 있으니까 은백색의 아름다운 닭으로 나타났다. 그런 다음에는 어느 틈에 얼음을 깎아 빚은 것 같은 환상적인 상아빛 형체가 어른거리며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놈은 뽑아 올린 목을 더 지탱하지 못하고 앞으로 옆으로 각각 늘어뜨리고 말았다. 결국 상상도 못했던 뜻밖의 닭 두 마리가 한 놈은 부러진 목을 처박듯 처참한 몰골로, 또 한 놈은 귀엽게 애교를 부리며 꼬꼬댁거리며 나오는 것 같은데 두 팔을 벌려 껴안고 환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변이라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걸작품이, 웃음과 해학을 자아내는 희귀한 것이, 그리고 마음을 아리게 하는 못난 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을 땔 때면 어쩔 수 없이 반 무당이 되는 모양이다. 뭐라도 되려면 몽당 빗자루 귀신이라도 돌봐줘야 된다는 소리가 있는 것처럼 자칫 가마 신의 비위를 덧들이면 어쩌나 싶어 공연히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다. 어떻든 그 도자기 귀신인지 가마 터줏대감인지를 달래자면 막걸리 사발이라도 부어놓고 거기다 북어 두어 마리, 때로 형세가 좋으면 돼지머리를 높직이 올려놓고 넙죽넙죽 절을 해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별안간 먹장구름이 몰려 닥치고 천둥 번개가 치면서 장대비가 퍼부을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은 급해지고 겁이 더럭 난다. 이거 무슨 액운이 끼었길래 그런 것인지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 선무당이라도 불러다 푸닥거리를 해대야 할 것 같고 우선 급한 대로 좁쌀죽이라도 끓여다 네 길 바닥에 끼얹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기적이 일어나지 않나 목을 빼게 되고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 부는 방향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운명을 걸고 비장한 각오로 가마에 불을 달았는데 하늘에서 물벼락을 내리는 것은 분명 무슨 동티가 나도 단단히 난 것이다. 뭐가 잘못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물의 신과 불의 신이 하필이면 남 불 때는 날을 잡아 서로 점잖지 못하게 희롱을 하는 것인지 죽기 살기를 무릅쓰고 엉겨 붙어 결판을 내자는 것인지 그러지 않아도 뼈만 남은 사람을 말려죽일 작정인가. 아마도 이들 위력 앞에선 가마신 따위는 쪽도 못 펴는지 그렇게 위해 바쳤는데도 웅크리고 엎드려있다는 것은 호랑이 앞에 생쥐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들통이 난 셈이다.
그러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물 불 싸움에 가마등이 터지는지 그 속에서 요동쳐 나오는 불길의 난무는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좀 과장하면 화산이 터지는 장관이라 할까, 무당이 창과 칼을 뻗쳐 들고 잔뜩 신이 올라 뛰어대는 춤이라 할까.
무서운 불춤! 고통을 못 견디어 발광하는 듯한 불의 요동! 하기야 무수한 생명이 태어나자면 이 정도의 진통을 겪지 않고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곤죽 같은 흙물이 강철보다 더 강한 물질로, 인간이 만든 가장 단단하고 영구불변한 물체로 태어나는데 그 몸부림치는 용의 몸체가 만신창이가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가마 뱃속까지도 인과응보의 철저한 윤회가 작용했음인지 나오는 놈들마다 고르지가 못하다. 그 동안 마음 잘 쓰고 열심히 땀 흘린 놈은 잘 태어나고 못된 심보로 남을 괴롭힌 놈은 그 죗값을 치르는 모양이다. 그런 것은 제발 우리 인생을 닮지 말고 하나같이 귀하게 태어나 제 몫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대개 마지막 칸을 땔 때쯤 되면 앓는 자식을 떼어놓고 떠나 있던 어미가 헐레벌떡 달려와 죽어가는 자식을 끌어안듯 눈부신 햇살은 열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마를 어루쓰다듬는다. 그러나 참고 있던 노여움이 폭발함인지 검붉은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는다. 당장 용의 꼬리에는 불기둥이 서는 것이다. 불길은 원한의 태움인지, 제 어미의 나라를 향해 훨훨 날아감인지 끝없는 창공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저 무서운 힘! 그러나 너울너울 승천하는 비천상과 같은 고요함, 티 없는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의 춤사위는 참으로 장엄하다.
마침내 불은 끝나고 봄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아쉬운 여운으로 가마 둘레를 감돌며 아른거린다.
나는 그 옛날 흥부의 박 속에서 갖은 금은보화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듯이 이번만은 귀한 옥동자들이 줄줄이 얼굴을 내밀고 나오리라는 기대에 나의 마음 한 구석은 저 불 아지랑이처럼 잔잔히 피어오르는 것이다.
(예문3)
아버지의 작대기
김수봉
잠자리의 날개는 나를 매료시켰다. 바지랑대 끝에 살짝 몸을 낮추고 앉은 고초잠자리의 날개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가만가만 숨을 죽이고 다가가 쳐다본다. 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집게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면 호르르―, 날아가 버린다. 내 맘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들에 나가서 ‘새보기’를 하는 것은 벼이삭이 조금씩 숙여질 때부터였다.
그날도 나는 새보기를 하러 텃골 논으로 가야 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중 팡개를 들고 어머니가 싸준 단수숫대(사탕수수)와 감자 몇 알을 괴춤에 넣고는 논으로 향했다.
우리 논 위쪽으론 저수지가 있었다. 마름과 여귀풀, 그리고 부들이 들어찬 저수지 주변은 온통 잠자리들의 천국이었다. 왕잠자리 ․ 밀잠자리 ․ 된장잠자리, 배때기가 얼룩덜룩한 뱀잠자리, 그리고 떼 지어 높이 나는 고추잠자리….
나는 저수지에 이르자 눈이 팔려 버렸다. 수면에 꼬리를 찍어 대는 밀잠자리가 있고, 경륜 선수들처럼 저수지 가를 날쌔게 돌고 있는 왕잠자리도 있었다.
그때 한동네의 또래들이 긴 대싸리비를 메고 저수지 가로 나왔다. 그들은 잠자리 잡이를 하려는 것이다.
부러웠다. 나는 잠깐만 놀다갈 요령으로 어울렸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같이 놀자고 했고, 나는 곧 그들에게 감자 한 알씩을 나눠 주었다.
우리는 곧 합세하여 잠자리 사냥에 들어갔다.
왕잠자리는 매우 빨라도 잡기가 아주 쉬웠다. 암수가 흘레하느라 함께 붙어서 풀잎 위에 앉아 있을 때, 고양이발로 다가가서 대싸리비로 덮치면 된다. 이때부터 암놈으로 수놈 사냥을 하는 것이다.
암놈의 다리를 실로 묶고 한쪽 실은 막대기에 맨다. 실 끝에 매달린 잠자리를 공중에 날리며 막대기를 빙빙 돌리면, 어디선가 날아든 수놈은 암놈을 따라 돌다가 흘레를 붙는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실을 당겨 내려서는 손으로 낚아챈다. 잡은 수노믄 날개를 접어 손가락 새에 끼고 다시 암놈을 날려 수놈을 부른다.
-워응 워응, 호박암놈이다 워응.
그 시절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형들로부터 이것이 잠자리를 부르는 소리라고 배웠고, 우리도 그대로 따라 했었다.
왕잠자리의 암컷은 색깔별로 세 가지가 있었다. 배때기가 하늘색 같아서 수컷과 비슷한 건 평승암놈, 호박꽃같이 노란색은 호박암놈, 더 짙은 누런색을 띤 놈은 누렁암놈이었다. 수놈을 꾀는 데는 단연 누렁암놈이 최고라고 했다.
암놈을 보면 공격적으로 달려들다가 잡히고 마는 수컷들, 사랑 앞에서는 그 밝다는 겹눈도 멀고 마는 것인지.
이렇게 잠자리를 잡다 보면 손가락 새에 더 끼울 수 없을 만큼 많아진다. 이때 우리는 한자리에 모인다. 두 손과 입에 문 것까지 다 모으면 서른 마리도 넘는다. 이것을 한꺼번에 하늘을 향해 날려 보내는 쾌감. 아, 높이 높이 날아오르는 잠자리 떼, 우리도 높이 손을 흔들며 깔깔깔 웃고 또 웃어 댔다. 잠자리들은 태어나서 구속과 자유를 처음으로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그림자가 길어진 것을 보고서야 나는 화닥닥 놀랐다. 한달음에 논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볏논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새떼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버지 말로는 한참만 새보기를 안 해도 나락을 다 망쳐 놓는다고 했는데….
논두렁을 몇 바퀴 돌고 팡개질을 여기저기 하다 보니 산 그림자가 져싸. 산 그림자가 드리우면 새들은 숲으로 간다. 이제는 집으로 가도 된다.
집에 거의 다다르자 마음이 자꾸 켕겨 왔다. 피라미를 잡다가 튄 흙탕을 얼굴에서 닦아내고 매무새도 고쳐본다. 그리고 쭈뼛쭈뼛 집안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너 이놈으 새끼, 어디 갔다 인제사 끼대와. 논에 가서 새 보랬더니, 에이끼―.”
아버지의 작대기가 날아온 것은 이때였다. 아버지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다. 마루 한쪽 끝에 앉아서 화풀이 담배를 빨며 나를 기다렸던 모양이다. 작대기는 세차게 날아왔으나 나의 한쪽 정강이를 스쳐갔을 뿐이다. 나는 ‘아버지!’하면서 울음을 터뜨렸고 사립문 밖으로 내달았다.
아버지는 쫓아오지는 않았다. 나도 더 달아나지 않고 사립문에서 멀찍한 울타리 밑에 주저앉았다. 정강이 아래쪽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큰 소리로 울 수도 없었다. 정강이 아래쪽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큰 소리로 울 수도 없었다. 울음을 훌쩍이며 울타리 틈새로 아버지의 동장을 엿보면서 멍든 데를 문질렀다.
아버지는 반쯤 화가 풀렸는지 새 담배를 꺼내 물고는,
“아, 저놈으 새끼가 새는 안 보고 어디 가서 자빠져 있다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낮참에 바쁜 과수원 일을 잠시 놓고 논을 둘러보러 갔었다는 것이다. 참새 떼가 얼마나 들끓는가도 보고, 마침 잘 익은 홍시가 몇 개 보여서 나에게 갖다 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취도 없고 새떼는 여기저기서 볏논에 내려앉고,…, 계속 새를 쫓고 있자니 하다 둔 과수원 일이 걱정이고, 논을 떠나자니 새 떼 때문에….
이놈이 어디 가서 퍼질러 놀겠거니 하면서도 ‘무슨 일이라도?’ 하는 생각에 안절부적못하셨었던 것이다.
이날 저녁, 어둠이 내려서야 나는 어머니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내 팔을 잡아끌면서 아버지가 들으라고 더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새를 보러갔으면 논에 있어야지. 아무리 어린것이라고 어째 그리 속이 없냐. 이놈으 새끼야, 어서 씻고 밥이나 먹어” 하시는 어머니의 말끝에 이어서 아버지는 저쪽 마루에서 이렇게 말했다.
“밥은 무슨 밥, 지놈 먹을 밥쌀은 새가 다 먹어 버렸는디, 올 겨울에 지놈은 좀 굶어야 혀.”
나는 방구석에 웅크린 채 누워 버렸다. 울음은 왜 그리도 그치지 않던지. 채지기는 끝없이 이어 나왔다.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독촉도 못 들은 척, 흑흑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야속했으나 아버지의 말이 옳은 것도 같았다. ‘그래, 굶어 버리자.’이런 생각을 다지다가 언뜻 잠이 든가 했는데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놈의 새끼 다리에 된장이나 좀 붙여 줘.”
-일부 단락 생략하면서 재구성-
(예문4)
엄마의 마지막 유머
박완서
어머니는 구십 장수를 누리셨지만 한 번도 망령된 말씀이나 이상한 행동을 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돌아가시기 십여 년 전, 눈 위에 미끄러져 많이 다치신 적이 있다. 대퇴부가 크게 부서져서 두 번의 대수술 끝에 겨우 걸으실 수 있게 되었지만 한쪽 다리가 짧아져서 심하게 절룩거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걸 창피하게 여기셔서 거의 외출을 안 하시는 대신 집안에서는 틈만 나면 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마당으로 왔다 갔다 걸음연습에 힘쓰셨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날까지 화장실 출입과 목욕은 혼자 하실 수 있었다. 의식을 놓고 혼수상태에 빠진 건 사나흘밖에 안 됐는데 그 동안에도 간간히 의식이 돌아와 눈을 뜨시면 눈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내가 누구냐고 묻는 문병객이나 식구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맞히는 놀라운 정신력을 보여주셨다. 그런 어머니가 딱 한 번 이상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마 돌아가시기 하루 전쯤이었을 것이다. 우린 솔직히 이제나 저제나 그분의 임종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번쩍 눈을 뜨시더니 상체를 일으킬 듯이 고개를 드시고는, 당신의 발치를 손가락질하시면서 희미하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호뱅이, 네가 웬일이냐?” 하시는 게 아닌가. 어머니가 반기듯이 바라보시는 발치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나는 헛것을 보는 엄마의 상체를 다둑거리며 “엄마는, 호뱅이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하려고 했지만 웃음 먼저 복받쳤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조카들이 호뱅이가 누구냐고 물었다. 예전에 시골집에 있던 머슴이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그 머슴 좋아했나? 라고 이죽대면서 역시 풋-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다들 따라 웃었다. 엄숙하고 침통해야 할 임종 자리가 잠깐 웃음판이 되었다. 호뱅이라는 이름도 좀 코믹한데 어머니가 마지막 본 헛것이 호뱅이라니, 너무 엉뚱해 웃음 밖에 나올 게 없었다. 쉽게 헛것을 볼 것 같지 않은 명증한 분의 임종의 자리에 나타난 헛것이라면, 그분의 마음속에 애정이건 증오건 간에 맺혀있던 사람이어야 마땅하니까, 손자의 상상력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호뱅이를 아는 나는 짚이는 데가 있었다.
호뱅이가 우리 집 머슴이라고 했지만 실은 우리 마을의 머슴이었다. 그는 이십여 호 밖에 안 되는 작은 우리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진 고개 및 외딴 집에서 늙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호뱅이네만 땅한 뙈기 없었기 때문에 기운이 센 호뱅이가 품을 팔아서 노모를 부양했다. 시골선 아무리 늙은이라도 쉴 새가 없는데 그 노인네만은 늘 장죽이나 물고 오락가락했다. 병신자식 둔 사람이 더 효도 받는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걸로 봐서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그를 호뱅이라고 이름을 부르는 걸로 봐서나 약간은 모자라지 않았나 싶다.
기운은 장사였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삼촌들도 대처에 나가 있어 남자 일손이 달리는 집이어서 아마 호뱅이를 제일 많이 썼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호뱅이를 제일 요긴하게 쓸 적은 엄마하고 내가 시골집에서 방학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올 때였다. 서울서 힘들게 사는 우리를 위해 할머니는 뭐든지 싸주고 싶어 했고, 엄마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가져오고 싶어 했다. 쌀을 비롯한 올망졸망한 잡곡, 무, 배추, 감자, 옥수수 따위를 지게에 높다랗게 지고 앞서가는 호뱅이의 정강이는 구리 기둥처럼 단단했지만 얼굴 표정은 너무 착해서 모자라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의 노모가 마을 사람들에게 애걸복걸 중신을 부탁해서 장가도 몇 번 안 가본 건 아닌데, 여자들이 하나같이 열흘을 못 살고 도망쳤다는 소문이고 보니 똑똑해 보일 리가 없었다.
한번은 내일이 개학날이어서 오늘 안 돌아갈 수가 없는데 장대비가 계속되어 개성 역까지 가는 도중에 있는 냇물다리가 떠내려간 적이 있다. 다리만 떠내려간 게 아니라 냇물이 사나운 강물처럼 황토 빛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울먹울먹했다. 호뱅이는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키고 짐을 먼저 강 건너에다 내려놓고 되돌아와 나를 지게 위에 올라 앉혔다. 그가 지게 작대기로 얕은 데를 골라가며 탁류를 헤치는 걸 지게 위에서 내려다보며 느낀, 노한 자연에 대한 공포감과 우직하고 강건한 남자를 미더워하던 마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딸을 태운 지게 뒤를 따라 호뱅이만 믿고 강을 건너던 엄마의 마음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는 60여 년 전, 엄마의 임종 당시로부터 계산해도 50여 년 전 일이다.
철없이 한바탕 웃고 나서 이내 숙연해졌다.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저승길 가기가 아마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때 홀연 호뱅이가 떡판처럼 든든한 등을 빌려주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었을까. 착한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한다는 미카엘 천사처럼.
호뱅이한테 업혀서라면 어머니를 안심하고 떠나보내도 될 것 같았다. 호뱅이가 하늘나라 주민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일부 단락 생략하면서 재구성-
(예문5)
손톱을 깎으면서
박순범
시간과 날짜를 정해놓고 손톱이나 발톱은 깎는 사람은 없다. 일상적인 일은 거의 습관화 되어 있다.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그 때, 그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적절히 알아서 해결해 나간다. 손톱은 보통 하루에 0.1미리씩 자란다. 손톱이 길어서 불편하다 싶을 때 언제라도 깎으면 되는 일이다. 한가할 때는 좀 일찍 깎고, 바쁘면 좀 늦어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이런 별 시답잖은 손톱 깎는 일을 가지고 나는 남달리 신경을 곤두세우고, 챙기지 않으면 안 되던 때가 있었다.
10여 년 동안 선비께서 골반골절로 기동을 못하시고 병환 중에 계실 때다. 목욕이나, 머리를 감는 일 등은 집사람, 손녀, 간병인 등이 돌아가며 다 하였는데 유달리 손톱과 발톱 깎는 일 만은 내가 해야 했다. 내가 장기간 여행으로 집을 비울 때 말고는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손발톱 깎는 일은 맡기지 않으셨다.
특별히 내가 손톱 깎는 노하우를 가진 것도 아닌데 나에게 손톱을 깎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손발톱을 깎는다는 단순한 이유 외에 아마 다른 뜻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을 깎기 전에 어머니의 손발톱을 먼저 깎아드리고 그 자리에서 나도 깎곤 했다. 여러 해 동안 어머니의 손톱을 깎다보니 자연히 손톱에 관해서 남다른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손톱일가견’이라고 할까. 뭐 그런 것이다.
우리 집에는 손톱깎이가 많다. 서랍마다 한 두 개의 손톱깎이가 들어 있다. 손톱을 다듬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를 모아놓은 세트도 있다. 내가 직접 산 것도 있지마는 선물 받은 것이 더 많다.
어느 대학교 실버아카데미를 수료한 남여동기생들의 정기 친목모임에 나가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부모간병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의 손발톱을 내가 깎아드린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한 것이, 손톱깎이 선물을 받는 계기가 될 줄을 몰랐다.
70대 노인 아들이 어머니의 손톱을 깎는 일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조금은 기특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아니면 자기 어머니 간병을 못해드려서 한이 되신 분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누님 같은, 그 분이 해외여행을 다녀오실 때마다 나에게 ‘어머님 손톱 잘 깎아드리라.’고 하면서 손톱깎이를 여행선물로 사다 주었다.
손톱깎이의 종류도 다양하다. 작은 손가락 크기 정도의 앙증스럽게 생긴 것, 가운데 손가락 크기 정도의 묵직한 것, 알라스카의 여행 기념품 가게에서 산 것, 어떤 것은 돋보기가 달려 있는 것도 있다. 노인이 자칫 실수를 해서 손톱눈을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빈티지 제품이다. 고르고 골라 선물해 주신 그분의 정성이 고마워서 지금까지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손톱을 다듬는 일은 매니큐어라 하고, 발톱을 다듬는 일은 페디큐어라 해서 하나의 직업으로 정착이 되어 있다. 내가 가진 손톱깎이를 다 모으면 네일 클리닉을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나 같은 남자 노인이 네일 클리닉을 열면 할머니 손님들이 구름처럼 모일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상상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늙지도 젊지도 않은 58살의 나이에, 정년 7년을 남겨놓고 교직에서 명예퇴임을 하고, 어렸을 때 중단한 공부를 한답시고 미국에 가게 된다. 아들이 하드웨어라면 딸들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들은 든든한 맛은 있어도 딸들만큼 아기자기한 정을 나누지 못한다. 나 없어도 딸들과 함께 잘 지내실 줄 알았다.
내가 미국에 간지 일 년이 지나서다. 어머니가 집안 욕실에서 낙상을 하는 바람에 골반골절이 되었고, 해운대 성심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한 달 이상 살지 못한다고 하는 전화를 받고 즉시 귀국하였다. 병원에서는 다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해서 집에서 간병을 해 드렸다.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미국유학도 중단하고 말았다. 한 달 이상 은 못 사신다는 분이 그 후 10년을 더 사셨다.
내 손발톱 모양이 어쩌면 그렇게 어머니 손발톱을 빼다 박아놓은 것처럼 같을까. 발톱 끝이 약간 말려들어가는 것이라던가, 심지어 엄지발가락의 무좀까지도 똑 같았다. 유전이라고 하는 것, 디엔에이는 어쩔 수 없구나, 어머니가 내안에 살아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때는 손을 나에게 맡긴 체 눈을 감으시고 잠이 드신다. 아들 손톱 밑에 흙 안 묻히기 위해 당신은 정작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던 그 손발, 어머니 손톱, 발톱을 깎을 때면 만감이 교차한다.
어머니가 욕실에서 낙상을 하신 것이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까지 했다. 어쩌면 스스로 자해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나를 미국에서 불러들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감행한 연극은 아니었을까. 어머니 가신지 4년이 다 되어간다. 요즘도 내 손톱을 깎을 때마다, 어머니 손톱 깎아 드리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일부 단락 생략하면서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