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44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하신 후,
어머니는 사 남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 직장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섬기던 교회에서 사모가 아닌 ‘권사’로 부름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름 없는 사모’로서 기도로 교회를 섬겨야겠다는 결심을 하시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직장이 끝나면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고 집으로 오셨습니다.
눈이 와서 버스가 끊어지면 직장이 있던 서울역에서 교회가 있는 세종로까지 걸어가 기도하기도 하셨고, 어떤 날에는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회 문이 잠겨 나오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희 내외가 목회하는 동안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의 이름을 다 부르며 기도해주셨고, 기도 약속을 한 이들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그 기도를 신실하게 지켜오고 계십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혼자 예수를 믿기 시작한 이들은 이런 믿음의 조상들을 가진 저희 가문을 굉장히 부러워하십니다. 물론 저도 철이 들고 보니 얼마나 귀중한 유산인지를 더욱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해주시는 부모님이 안 계셔도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어머니가 되어주시고, 우리 모두의 중보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중보 사역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체가 되어 기도하시는 기도가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그러면 나를 위한 기도도 중보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성경적인 모든 기도는 중보기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중보기도’와 ‘기도’라는 단어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중보자가 되셔서 나를 위한 기도를 해주시니 나를 위한 기도도 중보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주체가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고 계신 예수님(성령님)께서 친히 우리의 기도를 이끄십니다. 기도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로마서 8:27
이 진리를 나누고 성도들에게 한 주간 동안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기도에 내 기도를 실어보라고 숙제를 드리고 그다음 시간에 만났습니다. 놀랍게도 기도가 바뀐 간증들을 해주셨습니다.
어떤 권사님은 알코올중독인 남편이 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내가 내 기도를 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하나님, 언제까지예요? 언제 이 남편이 돌아올까요?” 이렇게 한탄의 기도를 하였는데, 예수님이 내 기도를 해주신다고 생각하니 남편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뻐하시는 기도이니 언제 이루어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쁨과 감사로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