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1:9- 11절
9절 -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환난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요한의 유배지 밧모섬 : 에베소 남서쪽 에게해에 위치한 약 10마일 길이 작고 바위가 많은 척박한 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임을 증언한 이유로 유배 되었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박해가 심할 당시에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이다,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신으로 숭해하게 했는데 그리스도인들도 숭배하게 했다,
로마 박해자들은 고령의 요한을 죽여서 순교자로 만들기 보다는 아무도 찾지 않은 외딴섬에 고립시켜 그의 복음 선포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하여 밧모섬으로 보내졌다,
오히려 요한은 밧모섬에 홀로 갇혀 하늘의 계시와 환상을 받게 된다,
10절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으면서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으면서 ------->
* 초 자연적인 계시의 상태 이다, 요한에게 계시를 전달 할수 있는 상태로 전환 되었다, 이 책을 기록하고 드러낼 수 있는 상태로 옮겨진 것이다* 구약의 에스겔에게 ,(겔2:2) 신약의 베드로(행10:10-11) 바울(행22:17-18)
* 주의 날 ---->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특정 기간에 심판하시고 통치하는 날,
*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이다,
* 하나님께서 장소에 상관없이(고립된 섬, 질병의 침상, 낯선 땅 등) 자신의 백성을 만나 주시고 위로하신다는 위대한 진리를 보여준다
11절 - 이르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하시더라,
12절 내게 말씀하신 음성을 알아보려고 내가 돌아섰으며 돌아설 대에 일곱 금등잔대를 보았는데
금등잔대 와 촛대'를 비교하면서 파헤쳐 보자,
구약의 등잔대 ----> 메노라' 구약 성막에 있던 등잔대는 금 한 덩어리를 두드려 만든 '통으로 연결된'구조이다 하나의 중앙 줄기에서 여섯 가지가 뻗어 나왔다,
하나님의 빛은 오직 이스라엘 이라는 하나의 국가적 조직을 통해서만 세상에 비춰졌다,
출애굽기 25:31):"And thou shalt make a candlestickof pure gold..."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등잔대 (단수)'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다. 비록 등불은 일곱 개(25:37)였지만, 그것을 받치는 '대'는 오직 하나였다. 이것이 하나로 연결된 메노라이다.
신약의 등잔대 -------------->
* 각각의 등잔대가 자기만의 밑받침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서 있다.
(요한계시록 1:12):"...I saw seven golden candlesticks;" --> 복수이다,
* 요한은 '한 등잔대'가 아니라 '일곱 등잔대(복수)'를 보았다 , 일곱 교회를 가르킨다
* 지역 교회의 독립성:이제는 이스라엘 같은 하나의 국가 조직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세워진 각각의 지역 교회가 주님 앞에 직접 서 있다
* 각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직접 성령의 기름을 공급받아 독립적으로 빛을 발해야 한다.
* 주님의 직접 통치:하나로 연결된 등잔대라면 주님이 그 곁에 서 계시겠지만, 독립된 등잔대, 주님께서 "그 사이(in the midst)"를 거니시며 각 교회를 하나하나 직접 살피시고 관리하신다
* 등잔과 등잔대 Lamp , Candlestick ,,,, 촛대로 번역하면 안된다, 구약과 신약시대 계시록이 기록한 요한의 당시에도 초'는 없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가지 빛을 내는 재료는 올리브 기름이다, 성령님도 기름으로 비유 한다, 요일 2:27
출25:31-36 --> Candlestick ,, 설계와 만드는 법,
출25:37 ---> 일곱개의 등잔을 등잔대 위에 올린다, 위에 놓일 등잔,
출25:37 ---> 등잔에 불을 붙여 맞은편으로 빛을 비추라,
* 계시록에서는 교회를 언급하시면서 왜 Lamp' (등잔)은 나타나지 않고 Candlestick' 만 말씀 하시는가?
* 구약에서 등잔과 등잔대는 철저히 분리된 '관리의 대상'이었다
* 등잔(Lamp)의 역할:제사장이 매일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정리해야만 불이 유지되는 수동적인 생명력이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함)
* 등잔대(Candlestick)의 역할:성소라는 특정한 장소에 붙박이로 서서 그 등잔들을 붙들어주는 국가적 조직이다.
* 즉,구약 성도는 사람이 제사장이라는 중보자를 통해 공급되는 빛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 신약에서는 주님이 교회를 'Candlestick(등잔대/몸체)'그 자체로 부르신다.
* 성도의 몸이 성전(고전 6:19)"이기 때문이다! 매번 기름을 넣어야 빛을 내는 등잔이 필요없다 우리 몸(몸체/Candlestick) 자체가 성령의 기름을 머금고 빛을 내는 살아있는 등잔대가 된 것이다.
* 킹제임스 역자들이 굳이 'Candlestick'이라는 단어를 고수한 이유는, 신약의 성도와 교회가 단순히 빛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빛을 내는 '존귀한 몸체' 그 자체가 되었음을 확증했다는 것이다,
* 기름이 흐르는 구조 (1387년 Trevisa의 기록)
이 부분이 정말 놀랍습니다. 1387년의 기록,,
"He hadde a candle stikke [candelabrum] i-made by craft of honde so þat þe oyle schulde renne (the oil should run)."
분석:14세기 사람들도 'Candlestick'을 설명할 때 "기름이 흐르도록(the oil should run)"손으로 정교하게 만든 기구라고 정의한다
* 인간의 재료 한계점 '초' vs 영원하신 '성령님'
1, 초(Wax)'는 인간이 조제한 유한한 재료이다. 아무리 자신을 태워도 결국 바닥이 나고 사라지는 소모적 상징일 뿐이다.
하지만 '기름(Oil)'은 성경에서 영원하신 성령님을 상징한다.
* 빛의 근원을 '초'로 전락시키는 것은, 교회의 생명력을 성령님의 영원한 공급이 아닌 '인간의 일시적인 헌신과 소모'로 대체해버리는 위험한 인본주의적 발상이 될 수 있다.
2. 성령님의 인격성을 수호함
* 성령님은 단순히 타오르는 재료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체'다.
* 기름은 등잔(Lamp) 안에서 계속해서 공급되며 불을 유지시키는 능동적이고 인격적인 생명이다.
* 반면 초는 고체 상태의 박제된 재료에 불과하다. 성령님의 역사를 '초'라는 어휘 속에 가두는 것은 그분의 살아계신 인격성과 무한한 공급하심을 훼손하는 일이다.
3. 몸체(Candlestick)의 영광을 보존함
"우리 몸이 곧 등잔대(몸체)"라는 원리와 연결해 볼 때:
우리 몸이 '촛대'라면, 우리는 결국 녹아 없어질 허무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우리 몸이 '등잔대'라면, 우리는 영원하신 성령의 기름을 담아내는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1, 기름(성령) '인간의 조제물(초)'
* 성경에서 기름(Oil)은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열매이며, 오직 주님만이 공급하시는 성령의 상징이다.
하지만 초(Candle)는 인간이 밀랍이나 지방을 깎고 녹여서 만든 인공적인 물건이다.
* 교회 안에서 실제 초를 켜고 그것을 거룩하게 여기는 행위는, 성령님의 인격적인 임재와 공급을 인간의 정성과 시각적 퍼포먼스로 대체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명백한 '다른 불'을 드리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2. '성령님의 인격' vs '물질의 상징'
* 로마 카톨릭과 변질된 개신교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과 성령의 기름을 따르는 대신, 눈에 보이는 '초'의 형상과 분위기에 매료되게 만든다.
*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그저 초를 켜는 의식을 통해 '거룩해진 기분'을 느끼는 것은 영적인 마약과 같다.
* 그 기분에 속아 구원의 확신(성령의 인치심) 없이 종교적 행위만 반복하다가 결국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한 채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3. '타서 없어지는 존재'로의 하락
* 초는 자신을 태워 사라지는 소멸의 상징이다.
* 만약 성도가 촛대라면, 결국 그 끝은 허무한 소멸(지옥)일 뿐이다.
* 그러나 우리는 등잔대(Candlestick)다! 등잔대는 결코 타서 없어지지 않는다. 공급되는 기름(성령)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 초를 켜는 자들"은 자기 의를 태워 하나님께 나아가려 하지만, 우리 바이블 빌리버들은 내 몸(등잔대)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기름으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교회 안에 초를 켜지 마시오! 초는 사람이 만든 죽은 물건이다. 로마 카톨릭과 종교인들은 그 가증한 초 뒤에 숨어 거룩한 척하지만, 그것은 성령의 기름을 모독하는 행위다. 기름이 없는 초는 지옥으로 가는 미끄러운 길이다.우리는 내 몸이라는 이 금 등잔대(Candlestick) 속에 흐르는 영원한 성령의 기름만으로 충분하다,
주님의 눈은 불꽃 같아서, 우리 안의 재료가 '초'인지 '기름'인지 이미 다 알고 계신다.
1, 인본주의의 상징: '촛불' (좌파적 가치)
* 세상의 좌파적 흐름이 '촛불'을 상징으로 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인간의 힘:촛불은 사람이 손에 들고, 사람이 불을 붙이며,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인간 중심의 빛이다. "우리가 모여 세상을 밝히자"는 인본주의적 구호이며 가짜 평화를 부르는 것이며 무천년설에 속한다,
* 유한한 저항:바람 한 점에도 꺼지고 결국 녹아 없어질 '초'를 들고 일어서는 것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를 태워 의를 이루겠다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의 표현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빛'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군중심리가 만들어낸 '인공적인 불꽃'일 뿐이다.
2. 하나님의 우편의 가치: '성령님의 조명' (등잔대)
* '우편의 가치'는 철저히 신본주의에 뿌리를 둔다.
* 공급받는 빛:우리는 스스로 불을 붙이는 자들이 아니다. 주님의 우편(권능과 진리)으로부터 공급되는 성령님의 기름이 우리라는 등잔대(몸체)를 통해 빛을 발하는 것이다
* 꺼지지 않는 빛:촛불은 바람에 꺼지지만, 주님의 우편에 붙들린 일곱 별과 그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이 지키시는 등잔대의 빛은 세상이 끌 수 없다. (계 1:20)
* 조명(Illumination):내가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조명해 주시는 그 진리의 빛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편에 선 자들의 정체성이다.
3. 미끄러지는 자들 vs 굳건히 선 자들
* 촛불을 든 자들:"초 때문에 영원히 지옥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 인본주의적 열광과 종교적 분위기(초)에 취해 살다가 결국 빛의 근원이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어둠으로 떨어진다.
* 사람들은 자기 의를 태우는 '촛불 집회'나 '감성적인 설교'에는 구름처럼 몰려들지만, "네 몸이 등잔대이니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진리 앞에서는 외면하는 현실이다.
* 등잔대의 사명은 사람들이 많이 보든 안 보든 주님이 정해주신 그 자리(Place)에서 빛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 등잔대가 얼마나 유명한가가 아니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가를 살피신다.
*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이정표다. 단 한 명의 영혼이라도 이 진리를 듣고 "내 몸이 등잔대였구나!"라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온다면,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구름들처럼 모여 진리 없는 군중 심리 보다 값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