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빛깔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는 흔히 "푸른" 하늘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이 세상 모든 사물은 보는 관점에 따라, 표현 방법에 따라 색깔이 바뀝니다.거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 정답을 찾고자 하는데서 우리의 고행이 시작됩니다. 그 답을 고정된 하나의 "죽은" 결론으로만 생각할 때 우리의 불행이 시작되는 겁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그 여러 가지 맛을 한 번 나누어 살펴볼까요? 손끝으로 찍어 장맛을 볼까요?
푸르른 비취마음 담긴 청자이던가
시뻘건 저녁노을 뿌린 선혈이던가
눈부신 아침햇살 비친 거울이던가
시커먼 먹장구름 덮인 먹지이던가
현란한 일곱색깔 스민 무지개라네
우선 형식은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적어보았습니다.
우리의 한복을 수줍은듯 곱게 차림한 여인네의 모습. 그것이 옛 시의 형식미입니다.
우리의 옛시는 한시(漢詩)의 영향을 받아 글자수와 운율이 중요시 되었지요.(시조가 그 대표적인 예) 하늘빛의 변화도 동양의 기본사상인 오행의 기본색, 청(좌청룡)-적(남주작)-백(우백호)-흑(북현무) (노랑색인 황은 중앙에 위치한 황제의 색으로서 제외하였음) 에 따라 표현하였습니다. 즉 위의 시는 하늘의 변화를 오행에 따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귀도 5줄입니다. 그리고 결구(結句)는 이 모든 빛깔이 어우러져 현란한, 아름다운 자연과 인생을 빚어낸다는, 무심하게 관조하는듯 하면서도 낙관적인 인생관을 내비치고 있지요. 소설로 이야기 하면 해피 엔딩(happy ending)입니다.
다음으로는 똑 같은 주제를 격언조의 짤막한 근대시 형식을 빌어 표현합니다.
운율은 약간 둔탁한 형태로 살려 두었습니다. 앞에서 다소 울리는 듯한 느낌의 각운 "~던가"를 썼지만 여기에서는 약간 메마른 느낌의 "~고?"와 "~네"로 되었고 희미하게 두운 "하늘~"을 추가하였지요. 자, 살펴 볼까요?
하늘이 푸르다고?
하늘은 붉다네.
해지는 저녁노을.
하늘이 붉다고?
하늘은 희다네.
눈부신 아침햇살.
하늘이 희다고?
하늘은 검다네.
시커먼 먹장구름.
하늘이 검다고?
하늘은 보여주네.
일곱색깔 무지개.
어때요? 위의 시와 주제도 같고 형식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감흥을 주지 않습니까? 톡톡 튀는 듯한 어조. 짧은 단발머리의 여학생 모습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내용은 위와 대동소이하니 구구한 설명 생략합니다.
다음으로 늘어지고 답답한(?) 형식을 벗어나는 현대시 체(體). 형식보다는 담긴 내용을 중시하는 현대시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웬지 치렁치렁한 치마를 입은 여인네보다는 홀가분하게 캐주얼 웨어를 걸친 여성같은 느낌을 주네요. 우선 내용부터 감상하시지요.
하늘은 푸르지만 저녁노을 따라 붉어진다네.
하늘은 붉었다가 아침햇살로 환하게 빛난다네.
하늘은 흰빛이지만 일곱빛깔 무지개로 부서진다네.
그러나 부서진 하늘은 결국 검게 그을리고 말았다네.
푸르던 하늘도, 발그레하던 하늘도, 말갛던 하늘도, 고왔던 하늘도
결국은 시커멓게 무너졌나니.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르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외우고 또 외워,
골수에 뼛속에, 깊이 깊이 새겨놓아,
과거를 치르고 출세를 하였다네.
아, 하늘의 마음은 빛나는 어둠이었건만,
아, 하늘의 색깔은 현묘한 도를 보이려고 했건만,
인간의 욕심은 하늘을
시커먼 숯검댕이로 만들었다네.
끝내 하늘은 눈을 감았다네.
위의 두 시와는 사뭇 다른 결론입니다. 그 아름답던 하늘의 가슴이 꺼멓게 타버렸습니다. 그 아름답던 온갖 빛깔이 검정 하나로 사그라 들었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다지도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시 중에서도 자연과학적인 메마름(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머금고 있는)을 섞어 버무린 형식을 만나보지요. 바로 위의 시가 인간다운 정조(情調)를 잡고자하는데 대하여 다음의 형식은 서늘한 이지(理知)를 간결하게 정돈하여 보여줍니다. 깨끗한 눈길 같다고나 할까요?
태초부터 있었건만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덩어리와 물결이 모여서 춤추는 무도회.
아무리 쪼개어도 빛깔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다.
푸른 하늘에는 은하수가 있을 수 없듯이
달에도 토끼와 계수나무는 없다.
영겁을 지켜온 컴컴한 허적(虛寂).
애오라지 별의 탄생과 그들의 죽음인 블랙홀을 믿을 뿐이다.
저녁노을 긴 파장의 붉은 유혹에 묻혀 잠이 든다.
꿈속의 한 마리 흰 나비가 되어 한 세상을 산다.
하늘 빛에 얼마나 사무쳤으면 죽을 때도 보여달라고 하는가.
다소의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그래야 어느 정도 서로 통할 것 같습니다.
첫 줄은 우선 성경의 표현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의 어조를 따라 빛이 창조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현대과학의 기초를 이룩한 불세출의 천재 아이작 뉴턴의 이론을 비유한 것입니다. 바로 입자설과 파동설의 대립. 그리고 서로 모순되는 두 이론을 합친 아인슈타인의 파동입자설. 그러나 확실한 결론은 아직 안 났지요. 아마 영원히 안나겠지요.
다음 줄은 입자(덩어리)와 파동(물결)을 함께 인정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우주를 유영하는 빛(하늘 색깔)은 광자와 양자의 성질을 동시에 함유합니다. 바로 광량자설. 함께 공존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다음 줄은 뉴턴이 그렇게도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던 광학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빛의 궁극적인 원리는 미지수입니다. 이 원리를 비유하는 하늘의 빛깔도 알 수 없지요. 아무리 연구해도 진리는 모래를 움켜쥐면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것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음 줄은 우리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에서 주장하는 말은 감성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 의미입니다. 푸른 하늘(한 낮)에는 은하수가 보일 수 없습니다. 하늘이 푸른 것 같지만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다음 줄도 달에는 동화처럼 토끼나 계수나무가 있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 줄은 짧게 말합니다. 대기권이 없어 바람도 없는 죽음의 위성 달에는 수억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폴로호에서 내린 암스트롱이 본 것은 그것 뿐입니다. 영원한 허무와 적막. 검은 침묵. 그것이 하늘의 빛깔일까요?
뒤를 이어 다음 줄에는 현대 우주물리학의 줄거리, 성간물질이 모여 별이 생성되고, 초신성으로 성장하고 그들이 폭발하여 블랙홀을 남기고 사라지는 과정을 압축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볼 만한 장관이요, 파노라마입니다. 우주의 거대한 무지개입니다. 초끈이론(super string theory)입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찌꺼기가 남는군요. 다음 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화두. 성(性)에 관한 내용입니다. 붉은 색은 유혹의 색. 생존과 연명을 위한 수단. 주로 밤에 이루어지는 역사. 그래서 하늘의 색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그래도 성(性)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요. 다음 줄은 장자의 호접몽(나비꿈) 이야기입니다. 흰색을, 깨끗하고 순수한 느낌의 비유로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 잘은 모르지만 그런게 조금은 있어야 인생이 의미있을 것 같아서요.
드디어 마지막 줄, 괴테의 임종을 빌어서 결구를 맺습니다.
"좀 더 빛을...(Mehr Licht...)" 하고 죽었다지요.
빛의 색깔은 하늘의 빛깔은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기고...
우리도 괴테를 따라서 (좀 더 우아하게) 말해 볼까요?
뭔지 모르지만 멋지지 않아요?
(그러나 괴테처럼 속물도 없었답니다. 나중 기회에...)
휴~ 드디어 끝났군요.
"여러 각도의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 한 마디 하려던 것이 이다지도 길어졌네요.
시라는 형식을 빌어서 생생하게 설명한다는 것이 이렇게 늘어졌네요.
(욕심부리면 뭐가 잘 안된다니까..)
실상 위의 시들은 따로따로 쓰려고 했지만,
서로 비교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여기에 하나로 묶어서 보여드렸습니다.
이왕에 쓴 글 즐겁게 감상하시고 무엇인가 건져 가시기를...
풍성하고 넉넉한 인생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