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역사모임에서 김종윤 선생님께 질문한 것이 있다.
그 대답을 확실하게 들어서 여기에 남깁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배웠던 시조는 지금도 몇 가지는 외우고 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외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의 글을 보다가 봉래 양사언의 시조가 나오고,
우리가 순우리말이라고 하는 어체로 써 있고 이어서 괄호로 한자로 표기한 것이 있다.
그 내용을 출력하여 준비해가서 김종윤 선생님께 보이면서
"시조도 한시가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
선생님 말씀이 "그럼 당연하지. 漢詩야,"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世人不肯勞身力(세인불긍노신력)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
우리가 옜시조를 배울 때 운율이 있어서
3 4 3 4
3 4 3 4
3 5 4 3 의 글자수로 운율을 따지는 것을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순우리말로 지은 것은 사실일 수도 있으나,
그것을 기록한 것은 반드시 漢詩 그 자체다.
어째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역시 일본의 역사왜곡정책에 의해 배운 것이 문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한가지 더하면, 왜 대륙에 있는 태산을 시에서 다뤘을까하는 의문이다.
양사언이 그 당시에 대륙의 태산에 가서 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해도
한반도에는 시를 읊을만한 큰 산이 없었을까?
그 당시 한반도(청구반도)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란 것의 논리가 성립되면 맞는 말이다.
양사언 : (1517~1584년)은 조선 전기의 문인이며 서예가이다.
명종 1년(1546) 문과에 급제한 후 함흥, 평창, 강릉, 회양, 안변, 철원 등
강원 지방의 여덟 고을에서 수령을 지냈다.(naver 사전내용 중. 생략)
☞ 강원도는 지금의 대륙 산동성에 해당한다.
양사언의 호가 蓬萊 ☞ 산동성의 '봉래시'가 있는데, 한자명이 같다. 역시 대륙사람이네.
조선이 대륙이란 증거...
첫댓글 우리에 문화이니 배우는 것이조 모화사상은으로 치부하면 오류로 사대사상이 아니조 우리에 문화로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普通 平仄을 따지는 걸 唐詩라고 하는데, 이 또한 朝鮮의 詩이며, 唐詩 以前에 쓰여진 詩는 古(體)詩라 부르는데 이 또한 朝鮮의 詩입니다. 唐詩에선 代表的으로 杜甫가 有名하고, 古詩에선 陶淵明이 有名합니다. 平仄이 고르지 못하고 自由롭게 쓰여졋다면 古詩, 平仄에 맞게 썻다면 唐詩라고도 합니다. 古詩는 押韻을 平仄聲을 다 쓰고 換韻(韻이 通하는 글자로 韻을 다는 方式으로 通韻이라고도 하며 冬을 東으로 바꿔 쓴다면 換韻입니다)을 하기도 하며, 近體詩는 平聲으로만 다는 걸 原則으로 합니다. 또 唐詩는 七言과 五言으로 構成된 것에 比해, 古體詩는 基本的으로 五言과 七言을 많이 하지만 三言부터 六八九十言까지 多樣합니다.
제가 直接 쓴 詩로 古詩와 唐詩의 一例를 들겟습니다.
結恨有身無靈
自笑吾生限 仄仄平平仄
相親定別人 平平仄仄平(韻)
我生浮去得 仄平平仄仄
誰識自無身 平仄仄平平(韻)
平仄이 고르고 孤平仄(詩 句節 中 仄平仄이면 孤平이라 하고 平仄平이면 孤仄)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唐詩의 代表的인 特徵이라 할 수 잇으며 技法도 無數합니다.
慰靈
古今死不希 仄平仄仄平
有故死人多 仄仄仄平平(韻)
種種病因死 仄仄仄平仄
種種死於戈 仄仄仄平平(韻)
乃焚香慰勞 仄平平仄仄
不如生時善 仄平平平仄(韻)
奈其何靈生 仄平平平平
死後不安戰 仄仄仄平仄(韻)
과 같이 平仄이 고르지 몯하고 技巧를 부리지 않게 되면 古體詩에 屬한다 할 수 잇겟습니다.
까막눈도 유심히 보니 대충 읽어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