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상하 메시야왕국의 대망 -
(79) 능히 더 많은 것을 주실 수 있나이다 역대하 25장 1-12절
지난 시간 요아스왕의 마지막을 살펴보셨습니다. 아무리 진실하고 바르고 정확한 말씀의 홍수에 살아도, 그 말씀이 내것이 되질 않으면, 우리는 그 교훈이 끊어짐과 동시에 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나에게 절하는 방백들의 말을 듣고, 아세라와 목상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선지자와 선지자들을 보내셔도 듣지 않고, 이제는 자기의 영적지도자였던 여호아하스의 아들 스가랴까지 보내주셨지만, 오히려 그를 여호와의 전뜰에서 돌로 쳐죽여버렸던 왕, 스가랴의 말대로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이 아람에게 유다를 넘기셨습니다. 소수의 군대가 와서, 유다의 거대한 군대를 박살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요. 하나님께 기도하며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할 왕이 은금과 약조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을 약탈당하고, 방백들이 다 죽고, 오히려 전투에서 중상한 자신도, 치료받기는커녕 신복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이것이 우리가 살펴본,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전 수리도 미루시며 지켜낸 유다의 등불, 요아스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교훈을 들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교훈이 끊어져도, 이미 내 손에 내 귀에 들린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견고하게 지키고 세워가는 사람, 아니, 아무 말이 들리지 않고, 온통 이방신들과 우상이 가득해도, 아버지로부터 배운 믿음을 잘 지켜내었던 요셉처럼, 우리 모두 참 신앙인이 되시잔 말씀 드렸었습니다. 다 생각나시지요? 자, 그렇게 요아스가 죽고, 남유다에 한 사람의 왕이 다시 세워집니다.
새로운 왕이 된 아마샤,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음에도, 다행히 그는 아버지 요아스가 복을 받던 시절과 복을 잃어버리던 시절의 차이를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그는 왕이 되고 통치초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출발이 좋았던 것입니다. 읽어볼까요?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대하25:1-2)
사랑하는 성도님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모습이 끝까지 이어질 수 있으시길 축복합니다. 그 나중의 평가가 온전하게 하지는 않았다는 평가가 덧붙여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뒷부분을 메세지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더라고요.
“But he wasn't wholeheartedly devoted to God.”(MSG)
그러나 그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았다.
아닌게 아니라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거룩함을 온전함을 요구하십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창세기 17장 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마태복음 5장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무슨 뜻이라고 말씀드렸지요? 하나님 100점이시니, 너도 100점맞아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이실테니, 너도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거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본문과 마음, 정체성과 태도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안에서 말입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잊지 않아서, 언제 어디서나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실 수 있는 귀한 종들이길 축원합니다.
아마샤가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모습은 오늘 읽지 않은 14절 이후에 소개되는 내용인데, 오늘은 일단 앞부분,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가 보였던 첫 번째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던 것입니다. 감정에 기분에 어떤 인륜이나 도리에 흔들리지 않고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3-4절입니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중상당한 아버지를 죽였던 아버지의 신복들, 오늘 자신의 정적이기도 했을 저들을 징계, 징벌하는 모습이 기록되고 있는데, 그래요.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징계를 내렸던 것입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처벌했지만 그의 자녀들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용된 구절의 원본 말씀 신명기의 말씀 24장 16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아마샤도 사람입니다. 게다가 젊습니다. 판단을 원숙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인간적인 복수심이나 괴로움이 없었겠습니까? 게다가 힘도 있고 권력도 있고 주어진 권한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정확한 말씀, 그 율례와 법도 안에서, 그는 정확하게 명령하고 행동했던 것이지요.
다윗이 떠오르지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생각을 추스르고, 감정을 억누르고, 자기의 행동을 통제해 내었던 다윗 말입니다. 예수님이 떠오르시지요?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비우시고 순종하셨던 모습 말입니다. 그래요. 이럴수록 법대로 해야한다. 절차를 지켜서 해야한다. 이것은 국회의장 우원식의장의 말만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바이고, 오늘 저 갈멜사람 나발의 집을 박살내려 달려가던 다윗을 멈춰 세우고,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한번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 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삼상25:28, 30-31)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모든 지도자들이 세워질 때, 율법을 손에 주고, 율법책을 등사해 곁에 두어 읽도록 하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오직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왜? 우리네 인간은 정말 너무나도 쉽게 법을 어기고, 권한 밖의 행동을 하고, 후회하고 나를 끌어내릴 일들을 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질 못하면 주의 백성들 앞에 겸손하질 못하고, 오만하고 악한 군림하고 지배하고 섬김받으려는 왕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이자 명령,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3)
신명기에 기록해 주신, 왕에게 하신 명령 중 마지막 명령입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신17:18-20)
그쵸? 말씀을 지켜 행해야,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그 명령을 떠나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을 계속해서 자자손손 해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길이기에, 새벽의 말씀을 빌리면 you rabble로 실수하지 않고, Your people로 바르게 섬기고 복을 빌며 사랑할 수 있는 길이기에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택하신 족속, 우리 모두 이 길을 걷길 축복합니다.
이렇게 아마샤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며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자 유다는 국력을 서서히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의 결론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대하 25:11-12)
그래요. 감정보다 분위기보다 그 어떤 말들과 이유들보다 하나님 허락해주신 말씀에 청종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 본문에서 아마샤가 보인 두 번째의 모습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순종했던 것입니다. 어떤 순종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대하25:5-6)
아마샤, 아버지를 죽인 자신의 정적에 대하여 말씀대로 행한 아마샤는 이제 세일산에 사는 에돔족속과의 전쟁을 계획합니다. 왜요? 에돔과 유다와의 갈등,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지요? 역대하 21장, 여호람왕이 아버지 여호사밧의 기대와 달리, 견고한 성읍을 차지하고 있던 동생들과 방백들을 죽이고, 자기 부인 아달랴의 말을 들으며 우상을 섬기기 시작할 때, 때에 에돔이 유다로부터 왕을 세워 독립을 했거든요. 여호람 왕이 저 에돔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도망왔던 것입니다. 거기만 조금 읽어볼까요?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우므로 여호람이 지휘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지휘관들을 쳤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지배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지배 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대하21:8-10)
그랬던 에돔을 왕이 된 아마샤가 다시금 에돔을 수복하고, 속국으로 삼기 위해 전쟁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들을 모아보니 몇 명이예요? 삼십만 명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것 같았거든요? 아버지 요아스가 저 아람의 쪽수도 안되는 작은 군대에게 패배했던 기억이 남아서였을까요?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에 계약금 은 백달란트를 주고 용병 십만명을 고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전쟁을 치르려고 남유다로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렇게 숫자로 전쟁을 시작하려던 바로 그때 한 사람, 이름도 없는 무명의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25장 7-8절입니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뭐라고 했다구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와 연합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함께 가시면 힘써 싸워도 왕은 적군의 손에 죽고 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돕기도 하시고 패하게도 하시는 데 지금 왕이 가시는 길은 패하여 죽는 길입니다.”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샤는 이스라엘에게 요청한 용병 지원을 철회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서? 은 백달란트를 포기하면서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 아마샤가 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미 벌써 은 백 달란트를 주었고 저들은 이미 여기에 와 있는데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엄청난 손해가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때 이 하나님의 사람이 한 말, 함께 읽어볼까요? 9절입니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은 백 달란트요? 아뇨, 아까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세요. 하나님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저는 이 선지자의 믿음을 보고 한번 또 놀라는 것입니다. 와, 저도 저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목사가 속히 되고 싶습니다.
은 백달란트가 얼만데요? 은 한 달란트가 6,000드라크마입니다. 그리고 1드라크마가 1 데나리온 1일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을 5만원 치면 3억이고, 10만원 치면 6억입니다. 요즘 15만원으로치면 은 한달란트는 9억입니다. 현재 원화가치가 바닥이니 10억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은 백달란트면 300억이고, 600억이요, 1000억입니다. 그 돈을 하나님의 말씀, 무명의 선지자의 한 마디에 포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거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교회를 안다니고 말지 그거 300억, 600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의 가장 큰 아킬레스 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래서 오늘 10절 이 아마샤는 이스라엘의 군대를 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유다의 군대만을 가지고 전쟁에 나갔던 것이지요? 어떻게 되었다구요? 이겼댜~
그게 11-12절입니다. 유다사람이 에돔 사람 만 명을 죽이고, 또 그 세일 자손 만 명을 붙잡아서 바위꼭대기에서 떨어뜨려서 죽였던 것이지요.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대하 25:11-12)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번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잠시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을 꾀하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한 번의 잘못 판단으로 자그마치 은 백달란트, 그것이 아까워서 끝까지 인간적인 생각을 고집하고 멈추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될지라도, 은 백달란트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구요? 따라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여러분, 이 복을 우리가 알지 못해서 오늘도 본전 생각이 나서 잠도 못자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고 그것을 붙들고 놓지 못해서, 오늘 우리는 열심히 싸우지만 적들 앞에서 엎드러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늘 패배하고 넘어지고 쓰러졌던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받아 형통하고 승리해야할 사람들이 말입니다.
아까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여쭙지 못하고 인간적인 결정을 내려 손해보게 된 것, 아까워하지 마세요. 이제라도 하나님 앞에 서시면, 잃어버린 그 돈, 다 가지고도, 아니 그 몇 곱절을 가지고도 못할 일을 하나님은 능히 해주시는 것입니다. 에돔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엎드러지고 죽을 수밖에 없던 내가 승전고를 울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의 모든 계획과 투자를,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접으실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투자를 아마샤처럼 포기하실 수 있으십니까?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분노와 복수심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며 통제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모든 힘과 권한과 혈기를, 내 모든 손해와 이익을, 내가 가진 물질에 대한 권리를, 그분의 말씀 아래 두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아멘.
The LORD can give you much more than that(NIV)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데 그치게 하고 교만에 가득차서 고집스레 나아가면, 다음 수요일에 보실 아마샤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일교회 모든 성도님들, 인간적인 마음 인간적인 생각 품지 마시고,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아무 것도 투자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여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 뵙기에 거리낌이 없는 일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온 마음을 다해 투자하시는 그리하여 언제나 잃어버린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도 넘치는 그리하여 어디서나 정말 힘있고 능력있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받는 우리 하일교회 식구들 모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 오늘 이 저녁에도 본전 생각나는 것 있으십니까?
예배 때문에 말씀 때문에 포기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과감히 잊으세요. 야곱이 우물을 파서 저 블레셋 사람들에게 다 양보한 것처럼 양보하세요. 다투지 마세요. 대적하지 마세요. 주세요. 르호봇의 축복, 브엘세바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좌우를 양보하여 내어준 우리에게 동서남북을 주실 것입니다. 보복하지 않고, 저들의 손에 죽으니, 다시 살게 하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 저녁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얼굴빛을 구하시고 그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리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