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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십 년이 지났다.
우리 창고지기 두 사람 만의 성지에서 예수님께 무릎꿇고 서약하였었지.
'우리 두 사람 성 프란치스코의 기쁨에 찬 가난의 영성을 가슴에 새기고,
마더데레사의 손과 발이 되어 이 땅에서 예수님 말씀하신 그 길을 가자.
'소금과 빛'이 되라는 사랑의 명령을 거룩한 순명으로 이행하며,
성령의 감독하에 성령의 지시를 받아, 우리는 그 이끄심에 따른다.
위와 같이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해서 우리는 이 길로 접어 들었었다.
서약하고 이 길을 기쁘고 즐겁게, 때로는 박해, 모함 속에서도 묵묵히 걸어왔는데~~~
오늘 문득 뒤돌아 회상해 보니 꼭 만으로 십년이 넘었다니, 놀랍기만하다.
그 긴 세월이 시위를 떠난 화살같이 빠르게도 지나갔구나.
이미 흘러 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지만, 지나간 흔적은 지울 수 없이 또렷이 남아있다.
십 년의 영상을 되돌려 보니 신묘하고, 절묘하기 이를데 없다.
지나고 나서 늘 우리가 했던 탄성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크고 작은 모든 희비의 사건들에서 우린 성령의 이끄심을 체험하였다.
봉헌 서약을 한 그때가 2002년 8월 13일 이었는데, 지금은 2013년 아닌가. 지난 해 8월 13일이 꼭 10년!
그 날 이후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묵상하며 가난하고 병든자. 감옥에 갇혀있는이.
헐벗고 굶주린 이들 곁에 우리는 있었다. 나약하고 부족한 나를 다듬어 그들 곁에 도구로 쓰시었다.
사도 바오로 곁에 티모테오가 있듯이, 보잘 것없는 내게는 하느님께서 친구 막달레나를 견인차로 세워주셨다.
개인적으로 우리 가정의 경제적 삶은 하루치 만나를 내려 주심에 감사하는 맘으로 일관하며 하루를 누렸다.
세상에서 직업을 갖지 아니한 채 걸어온 길, 십 년!
그 하루하루가 이어져 과거의 결과를 남겼고, 오늘 현재를 숨쉬며 진행형으로 전진중이다.
그 십년동안 나는 비 맞고 바깥 잠을 잔 적없고, 옷이 없어 벗고 다닌 적 없었으며, 한끼도 굶은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의식주를 주님께서 채워주시고 마련해가며 우리를 이끌어 가셨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바오로사도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졌음을 그 십 년 흔적의 결과가 보증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가 그분 안에 온전히 죽으니[완전한 위탁]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물론 여기에 밝힐 수 없는 기기묘묘한 체험이 무수히 많기만하다.
실증을 하려면 누군가의 사생활이 드러나야만 하니 감추어 둘 수 밖에,
그러나 숨은 일도 꿰뚫어 보시는 아버지께서는 모두 알고 계시니 언제인가는 등경위에 올려 놓으시리라 믿는다.
그 해 부터 하느님은 당신의 일꾼으로 쓰기 위함인지 나를 적십자사 간호교육.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교육을
수료케하였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청담성당기도회 봉사를 하며 강사들의 성령체험 사례를 경청했었다.
우리 두 사람 그 당시[2002년]부터 3년간은 거의 매일 낮에는 강남시립병원에서 놀았다.
병원 특성상 그곳에는 버려진 이[행려환자] 노숙인, 알콜의존증 환자, 시설에 입소되었는 환우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저소득층 환자들이 대부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그곳을 놀이터 삼아 봉사하는 우리의 친구는 모두 그들일 수 밖에.
지금까지 아들삼아 결연맺어 지내는 '은혜로운 집' 성배도 그 때가 만남의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면 부자다. 무재칠시[無財七施]를 아시는가?
재물이 없어도 우리는 줄 것이 많다. 절망에 빠져 있는 환자를 따스히 잡아줄 수 있는 손.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귀, 수술들어가는 이에게 넌지시 보내는 위로의 눈길을 우리는 줄 수 있다.
위기 때마다 우리의 무기는 화살기도였다. 평상시는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를 호흡기도하듯 입에 달고 다녔다.
우리의 인적 그물망은 온통 버림받은 예수님 천지다. 가난하고 불우한 이들 곁에 있으니
그들이 모두 우리의 친구일 수 밖에. 고로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네트워크 [net work]는 예수님으로 짜여진 그물망이다. 놀라우신 성령의 이끄심은 멈춤이 없다.
봉사활동의 운동장인 강남시립병원이 어느 해 '서울의료원' 으로 개명 된 후 2005년 우린 그 병원에
호스피스봉사회를 발족시켰고, 이 년전 서울의료원은 신내동 신 사옥을 지어 이전했다.
우린 지금까지 그 병원에서 호스피스활동을 하고있다. 지난해 경사가 났다, 서울의료원 호스피스가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 으로 승격되었다. 12층에 호텔같은 병실, 옥외 정원까지 갖추어져 있다.
그곳에 보호자도 없는 환자. 돈 없어 간병인도 못쓰는 불우한 가족을 보며 안타까워 했었는데
그 동안은 보조 수단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동간병인 제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2013년 1월 17일] 대한민국 최초로 안심병동 이라 하여 보호자 없이
입원진료 가능한 제도가 새로 취임한 원장님의 열정으로 신설되었다.
서울시립 서울의료원의 '보호자 없는 환자 안심병동' 에서는 간호사가 간호뿐 아니라 간병까지 24시간 전담한다.
병수발 걱정이 없고 추가 간병비도 받지 않는다. 간병인을 두면 하루 6만 원 정도씩 내야 했지만
이런 부담이 사라지게 됐다. 이번 서비스는 여러 명이 함께 쓰는 다인병상 460여 개 가운데 180개에 제공된다.
우선 90개 병상에서 시범 실시하고 오는 3월 전면 실시할 계획이다. 의사판단에 따라 최대 22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 서비스를 위해 70여 명의 간호사가 충원돼 서울의료원에서는 간호사 1명 당 돌보는 환자수가
17명에서 7명으로 줄었다. 정말 놀라운 기적아닌가!
하느님은 우리의 안타까워하며 속으로 드리는 기도까지 모두 들어 주셨으니 말이다.
강의 때 나는 병원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얘기를 잘 했었다.
'호스피스는 선교의 그물이며, 연령회는 고기를 담는 바구니' 라고
호스피스봉사자의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을 입은 환자는 임종 전 세례를, 급할 경우는 대세를 받는다.
운명 후에는 연령회원들의 희생과 정성에 감동하여 유가족들이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데
장례미사를 통하여서는 그 거룩한 전례와 장엄한 분위기에 녹아? 유가족 뿐 아니라. 친지 중에서도
천주교 세례를 받는 이가 여러 명 나오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모 종단의 불자신도회 회장까지 지냈던 80대 할머니, 한창 때 절도 지어서 시주했을만큼 불심 깊으신 분,
그 2 인 병실에 들어갈 적 마다 나는 합장을하고 기도를 했다. 부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도 바쳐드리고는 했다.
할머니와는 장난도 잘치고 놀았다. 어느 날 인가는 내가 할머니에게 지장보살에 관한 얘기를 해드리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남의 집 원로에게 뮛 모르는 하룻강아지가 교육을 한 셈이었으니,부끄럽기 그지없다]
지금 할머니는 지장보살께 빌어야한다고 권해 드렸더니,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나. 다 알어. 이제 자기 교회식대로 기도해도 돼" 그래서 내가 천천히 성호를 그으니~~~~
아! 놀라운 일이다. 시트 속에서 힘겹게 손을 내어 올리시며 나를 따라 성호를 그으시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장성한 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할머니는 아들을 증인으로. 친구 막달레나를 대모로, 내가 집전자가 되어 대세를 드렸다.
며칠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우리는 장지까지 동행, 삼우제과정까지 알려주어 천주교식으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나중에는 아들과 며느리도 청담동성당에서 대건안드레아와 리디아라는 영세명으로 세례를 받게되었다.
물론 이 때도 창고지기인 막달레나는 대모, 나는 대부를 섰다.
세상에 이런 일이? 막달레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모인 것이다.
이런식으로 병원봉사를 통해 얻은 대자만도 이 십여명이 넘는다. 그런데 특별한 것은 우리가 세례권유를 하지 않았는데
가족이 스스로 다가 와 세례를 받겠다고 자청했던 것이다. 조건은 내가 대부가 되어주는 전제로 말이다.
한 영혼이 회개하여 돌아서도 하늘나라에서는 잔치가 열린다 했는데. 우린 이 얼마나 축복 된 일인가!
성령의 이끄심은 이러하였다. 우리는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하느님께 화살기도하며 내맡겨 놓으면
항상 마무리는 주님께서 멋지게 해 주셨다.
선교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눈높이 교육을 아시는가? 그들의 지식, 풍습. 여건, 취미, 종교에 맞춰 대화한 덕이다.
사도바오로의 말씀이 떠오른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키 위해 그는 못 배운 사람이면 자기도 못 배운 사람처럼,
상대방이 비신자이면 자기도 비신자 인듯이, 상대가 개고기를 좋아하면 자기도 좋아하는 것처럼, 이것은 배려다.
우린 경험을 통해 알게되었다. 설득과 권유는 거부를 낳고, 낮춤과 섬김은 수용을 낳는다.
물은 가장 낮은 곳부터 스며들어 온 대지를 적시고 채우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사랑도 이와같다.
비우고, 나를 낮추면 채워지고 높아진다. 이는 서약의 맹세를 굳건히 실천하면 자연히 받게되는 선물이다.
그 십 년전 서약의 행동지침이 '우리는 성령의 감독하에, 성령의 지시를 받아 이 사명을 실천한다.' 아니던가.
때문에 사람들의 평판은 우리의 영혼에 파문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단, 사제의 권고에는 순명한다.
선교의 그물인 호스피스봉사와 건져 담는 바구니인 장례과정을 더욱 확충하여 견고히 하고자 하는 그분의 뜻하심인지
2008년 성령의 이끄심으로 우리 두 사람 대전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상장례 과정을 이수했다.
몇 년 공부한 뒤 제1회 가톨릭상장례 지도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이 때 타 종교의 장례문화도 배우게 되었다.
시련과 고통은 영적성장의 디딤돌이다. 누군가에게 봉사를 권유하면 조건이 따른다.
'우리 아들 장가보내고 나서' '집 장만 하고나면' '딸 대학만 들어가고나면' '사업이 어느정도 안정되고 나면' 등등
죽음 직전에 있는 이들의 공통 된 답변은 하느님이 다시 살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남을 위해 봉사하겠다한다.
우리가 삶의 여유가 있어 세상 일 뒤로한 채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세상 재물을 가장 필요로하는 비워진 항아리의 삶이라 늘 걱정은 달고다닌다.
남과 다른 점은 그 세상 근심에 끌려다니지 않고, 그 걱정의 노예가 아니란 점이다. 걱정은 마귀의 운동장이다.
병원 봉사중 2003년 여름에 경비조달을 위해 내가 체육관을 나간 적이 있다,
그 때 운동 중 다친 손가락의 상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바오로가 천막짜는 일을 하며 선교활동을 하듯,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면 어디든 팔려간다. 노동을 마친 저녁이면 내 손에 평균 6~7만원이 쥐여진다.
이것이 봉사하는데 요긴한 거름으로 쓰여졌다.
그 당시는 걱정할까봐 숨겼는데 나중에는 친구에게 웃으며 털어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내고 헬스클럽에가서 살을 빼는데, 우리체육관은 운동하고 나오면 일당을 주더라."
영혼이 육신을 지배한다. 노동[노가다]이라 생각하면 힘들고 지치지만, 도를 닦는 운동으로 여기고
벽돌 등짐을 지고 철계단을 오르며, 속으로는 계속 묵주기도가 '은총이 가득하신~~' 하고 계속이어지니
일석삼조 아닌가. 운동도 하고, 기도도 하며, 게다가 목적한 돈도 버는데, 일당 챙겨 샤워하고 옷 갈아 입고 나온다.
손에 받아 든 7만원이 70억을 벌어들인듯 만족감에, 행복한 기운이 내 영혼을 나른하고 상쾌하게 적신다.
유혹은 이렇게 배고프고 힘겨울 때 나에게 윙크하며 다가옴을 경험으로 안다.
봉사를 통한 인적 네트워크가 넓게 펼쳐 진 나를 이용하고자 더구나 당시는 호스피스 총봉사회 회장아닌가.
돈을 앞세워 손길을 뻗친다. 특히 암퇴치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들이 주류를 이른다.
이 때마다 입으론 고마운 제의지만 할 수 없다며 점잖게 거절의 뜻을 밝히지만 속으로는 구마기도를 한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사탄아! 썩 물러가라, 유혹의 마귀야, 내 앞에서 물러 가라!'
성경 말씀대로 우리가 늘 깨어있지 않으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이러함을 먼저 체험한 친구이기에 막달레나는 나에게 늘 말씀공부를 강요했던 모양이다.
이런 시험을 통과한 후 하느님은 육체 노동이 아닌 모 기업의 영적지도자로 나를 이끌어주시어 2 년간을
구로디지탈 단지에 있는 IT회사 기도하는 고문으로 적을 두고 봉사하도록 이끄셨다. 참으로 장난꾸러기 하느님 이시다.
오롯한 내맡김은 성령을 통해 흥미진진한 그야말로 소설같은 일을 엮어주신다.
우연한 인연으로 나는 신심깊고 봉사에 열심인 부부를 소개받았다. 그 남편은 부인의 권유로 인하여
나를 대부로 삼았다. 그가 바로 성북동 '죠셉 커피나무' 의 강 요셉형제였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연결고리는 그 이어짐이 예측을 불허한다.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로 이끌어 들이신다.
우리는 대자, 정확히 표현하면 강요셉형제는 양자인 셈이다. 그가 정기적으로 하는 아프리카 기아돕기 자선바자회에
봉사하며, 때론 이벤트로 나의 지인 아코디온 강사부부를 초대하여 행사 때 연주로 바자회 흥을 돋구기도 했다.
어느 때 인가는 기아돕기 행사에 강요셉부부의 초청으로 영화평론가이자 교수인 하재봉씨가 파트너와 함께
탱고 시범공연을 펼쳤다. 그 인연으로 대자의 권유에 이끌려 나는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충무로에 있는 '아트탱고' 에서 우리는 하재봉씨[아르헨티나 탱고대사]로 부터 직접 기초부터 탱고를 배우게 되었다.
약 2 년 가까이 배웠던가보다. 어느 해, 서울의료원 자원봉사자의 날 행사에서는 출연펑크 낸 연예인을 대신하여
창고지기인 우리들이 그 무대에 올라 탱고 공연을 펼친 적도 있었다. 우리는 아트탱고 10기생 이다.
이 뿐이 아니었다. 어느 날 대자 강 요셉이 제의했다.
'대부님, 바리스타를 하시면 머리도 하얗고 멋질 것'이라며 자기가 직접 가르쳐 주겠단다. 그 바람에 우리는 지인들을
모아들여 함께 바리스타교육을 초기과정, 심화과정까지 받게 되었다. 우리는 죠셉커피나무 바리스타 3기생 이다.
그 당시에 우리 창고지기는 서강대학교 송 봉모신부 성경대학에서 성서공부를 할 때였고, 그 해 '예수회센타'가
준공되었다. 예수후원회를 담당하시는 최대제 신부님이 준공되는 센타 '이냐시오 카페' 에서 봉사할 바리스타를
모집한다 하셨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나니, 예수회에서 즉시 봉사하게 되었다.
지금도 막달레나와 나는 바리스타봉사를 지속하고있다.
지금 우리가 운영하는 나눔공동체 '소금창고' 도 이곳의 기아돕기 자선바자회가 그 밑거름이 된 셈이다.
소금창고를 통해서는 하느님께서 역동적인 일을 정신 못차리게 벌여주시며 이끌어 가시기에 신명이 났다.
비록 차 한 대 집어넣는 차고를 빌려 무허가로 중고 옷을 기증받아 판매를 한다. 6, 70년대도 아닌데
누가 남이 입던 옷을 쉽게 사 입겠는가! 요즘 아파트 단지에서도 멀쩡한 옷들이 얼마나 버려지는데~~~
그러나 그 분은 숨은 뜻이 있으셨다. 창고에 쌓이는 의류는 우리도 무상으로 기증받았으니 더 어려운 공동체와
가난한 지역에서 필요 요청이 왔을 때 조건없이 그냥 보내주기 시작했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너희는 거저 받았으니 남에게 거저주어라' 그러다보니 늘 경비가 문제였다.
창고의 회장님은 하느님, 사장은 예수님, 우리는 단지 창고지기일 뿐이다.
우린 소금창고 명함에도 당당하게 '하느님의 기업' 이라고 명시해 놓았다. 이 '하느님의 기업'이라 표기한 덕에
2009년에는 아름다운 일화도 있었다. 강남시립병원 시절 그러니까 2003년도 여름 죽어가는 어느 자매님의 소원이
내 귀에 모기소리 같지만 또렷이 들렸다. "그 신부님을 불러주세요" 내가 "누구요?" 하니 "소~~ㄴ, 과앙~~배,"
우린 죽어가는 자매의 갸날픈 애원을 꼭 들어주고 싶었다. 수소문하여 결국 인천 쪽에 계신 손 광배신부님을 찾아
연락을 드려 자매의 뜻을 간절히 부탁했다. 신부님오셔서 그 자매, 기도와 병자성사를 받았다. 며칠 뒤 자매는 운명했다.
시신을 인천의료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이 때도 우린 손신부님께 알렸더니 바로 빈소를 달려오셨던 예수님!
바로 그 신부님을 6년 뒤 본당에서 만났다. 대림특강 강사신부님으로 청담동성당에 오셨던 것이다.
우린 너무 반가운 나머지 특강을 마치시고 나오시는 신부님을 인천으로 모셔다 드리며 해후의 기쁨을 누리려 했다.
신부님 한사코 지하철타고 가신단다. 청담역에서 명함을 주고 받으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헤어질려는 찰라 그분이
가방을 여시더니 봉투를 건네 주신다. "이거, 오늘 강사비로 받은 것인데 소금창고 기금으로 봉헌할께요." 하신다.
안된다며 거절하는 우리에게 신부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나도 사제이니 하느님의 기업 직원 이잖아요. 받아요!"
어떻게 이럴 수가! 사제께서 평신도가 하는 작은 나눔창고에 받은 강사비 봉투 뜯어보시지도 않은 채 그대로 주시다니.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주신 명함을 다시 꺼내 보았다.
'인천 가톨릭 대학교 영성지도교수 손 광배[도밍고] 신부'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대림시기에 창고지기인 나는
제대로 된 영성지도를 받은 셈이었다. 하느님의 기업 직원이라는 사제를 통하여, 맞다!. 그 분은 직원, 우린 창고지기.
어려울 때에 봉착하면 우리는 항상 창고에 촛불을 밝혀놓고 기도하였다. '하느님의 기업' 회장이신 하느님께 그 아들
사장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는 만능키와 같다. 꼭 격려금을 들고오는 천사를 보내 주신다.
때문에 매출이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소금창고는 오늘에 존재한다.
소금창고 오픈 후 첫 겨울동안 매출이 없어 월세를 몇 개월 밀린 일이 있었고, 이 여파로 건물주는 가게를
9월말까지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니까 2010년도 일이다. 우린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힘이 없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은 늘 하던 방식대로 창고에 촛불 밝히고 둘이 앉아 아버지께 기도로 매달렸다.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까 비워주기로 약속한 9월 30일 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로 우린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평소 창고를 아껴주시던 어느 봉사자[한사코 당신을 드러내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에 '어느 봉사자' 로 표기한다]가
은행대출을 받아왔다며 적지도 않은 금액을 놓고가셨다. 밀린 월세를 주라며,
거기에 여분의 금액을 얹어 충분하게 준비하여 주신 사랑이 느껴졌다.
그 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파견해 주신 눈에 보이는 천사 였다. 그 은혜를 입고서도 우린 부족하기만 하다.
2 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 주신 돈의 십분의 일 밖에 갚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천사는 재촉이 없다.
지난 십년을 돌아보니 우리의 기도 응답은 항상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이루어졌었다.
그 천사의 도움 이후 한 번도 월세를 밀려 본 적이 없다. 위기의 순간에 아버지는 우리의 과정을 지켜보신다.
왜냐면, 어떤 경우든 함께 봉사를 해 오는 십여년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금전을 빌려 본 적이 없었다. 이유는 한 가지.
우리가 남에게 손을 벌리면 예수님이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내맡긴 나 이기에 나는 죽고 그분이 내 안에 사시니~~
오랜기간의 봉사활동 중 위기의 극복 방책은 머무름과 침묵이었다. 고난과 시련 앞에 허둥대면 앞이 안 보인다.
그 때, 모든 걸 잠시 내려 놓고 그냥 있는거다. 답이 없으니 생각없이 그냥 있을 수 밖에 , 한참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길이 보인다. 세상이란 병 속을 휘져어 온갖 찌꺼기로 앞이 안 보일 때, 멈추어 기다리면 가라앉아 물이 맑아진다.
이런 이치와 같지 않을까. 이럴 때 영혼의 혼돈이 질서를 잡고 고요함의 머무름 중에 그분께서 비책을 마련하신다.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는 방식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이렇듯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언제나 응답은 주시되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셨다. 인내할 힘의 원천은 침묵과 기도였다. 벼랑끝 응답의 절묘한 하느님!
우리의 회장님 기분파다. 창고지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실행에 옮겨주시어 우리의 사기를 올려주셨다.
우리가 계획하지도 않았는데. 당연히 재정이 없으니 기념행사를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저 조촐하게 소금창고 설립일인 5월 13일을 어떻게 기념할까? 궁리만 하던 차, 꼭 그 때마다 오묘하신 방법으로
회장님은 협조자이며 위로자이신 성령을 보내주시어 예측조차 할 수 없었던 커다란 축제의 장을 매년 열어주셨다.
1주년 은 압구정동 '장천아트홀' 에서 오 백여명의 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째즈콘서트' 를 열어주시었다.
이 공연이 준비되고 성황리에 마칠 수 있도록 뒤에서 수고한 이는 째즈 1세대 김 준선생님 이셨다. 축사는
당시 서울의료원 병원장이신 유 병욱원장님께서 해 주셨고, 오세훈 당시의 서울시장을 대리해서 부인이 참석했다.
2주년 은 양수리 야외 잔디 광장에서 국악 한마당 으로 펼쳐졌다. 이 때의 행사 총괄은 한양대 국악과 교수이자
'한양가야금 연주단' 단장이신 이 정희마리아님의 공로가 컸다. 전 키보이스 멤버 차도균씨가 찬조출연, 목우스님의
격려사, 축사는 기쁨나눔재단 상임이사이신 예수회 염 영섭신부님께서 해 주셨고, 우린 깜짝쇼로 마술시범을 보였었다.
3주년 은 우리 스스로 소금창고 정신에 맞도록 드러나는 행사를 지양하고 봉사자끼리만 모여 식사할 계획이었는데
이 마져도 우리 뜻대로 이끌어 주지 않으시고 하느님은 당신 뜻대로 이끌어 가셨다. 가수 보아엄마께서 남양주
조안면에 있는 집 을 내어주셨고, 우린 소금창고 후원자와 봉사자만 초대했다. 특별한 우리의 손님들로는
'은혜로운 집' 아들들과 그 친구들을 초대하여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동행하여 참석했다. 이 때도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보아엄마 성아녜스님은 모든 음식을 제공하고, 우리 아들일행[지적발달장애우들] 마음껏 별장에서 춤추고
놀도록 기도방에 노래방 기계까지 준비해 주셨다. 돌아갈 때는 참석자 모두에게 당신이 준비한 선물과 함께
당신의 저서 '황금율' 책자를 한 권씩 기증해 주셨다.
매년 5월 13일마다 뜻밖의 잔치를 마련해 주시어 소금창고 회장님과 사장님은 우리 창고지기들을 늘 놀라게 하셨다.
생각해 보자. 가장 작고 보잘것 없는 변두리의 중고 옷가게에 불과한 소금창고에서 어찌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가?
매년 겪는 기적같은 기념잔치였다. 우리 아버지 하시고자하니 아니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놀라운 이끄심 아닌가!
성령은 일치와 화합을 이루어 주신다. 마태복음의 황금율 법칙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해 주어라.'
주님께서는 우리를 작은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 같다. 인종과 종교를 떠나 지구촌 하나되기 운동의!
종교 일치화를 위해 우리는 창고에서 타 종교의 봉사자와 고객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우선으로 인정해 주며 함께했다.
우리의 일에 마음이 움직이신 목사님의 초대로 나는 지난 2000년 여름 감리교단 목사님 이 십여분과 동행하여
중국 선교여행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신기했다. 神氣은 하느님의 기운이니 고로 성령의 이끄심이었다.
선교단장이며, 인솔자이신 부천에서 맹인선교를 하시는 이 억집목사님은 가시는 곳마다 나를 별도로 소개했었다.
이번 선교여행에는 천주교신자도 한 명있다며. 때문에 연길, 하얼빈등 애국교회 예배중에 특송을 하기도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막달레나와 나는 목사님들과 월 정기모임을 갖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여타일로 바빠지는 바람에 참석치 않고 있다.
지난 해 말에는 구로동 지구촌 사랑나눔 대표이신 김 해성목사님 초대로 다문화, 이주민 아이들의 대안학교인
'지구촌 학교' 개교식에도 다녀 왔다.
부처님 오신 날은 케익을 사들고 소금창고와 인연을 맺고 지내는 스님의 법당에 찾아가기도 하였다.
우리가 그 분들의 행사에 능동적으로 앞장서 동참하였더니 하느님은 우리의 행사에도 축하객으로
개신교, 불교신자들을 보내주시어 함께 보람과 기쁨나누게 하셨다. 소금이 되어 그들 안에 녹으면 하나가 된다.
소금창고 설립 1주년 행사를 주관해 주신 김준씨[째즈 1세대] 부부는 광림교회 권사와 집사 의 직분을 갖고 계셨다.
부인 김 미자권사님은 내가 서울의료원 호스피스회장을 할 당시 부회장을 맡아 일을 도와주셨다.
아름답고 어찌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2011년 임 언기신부님 영성카페 '피앗사랑' 성지순례가 있었다.
창고지기인 우리는 이 때도 교류를 나누는 오륜교회 차도균집사님[키보이스멤버] 과 부인 장권사님 을 초대했다.
또 탁발스님인 우주사 목우스님 도 초대했었는데 모두 혼쾌히 응하여 참석해 주셨다. 순례지는 배론성지였다.
미사에도 참여해 주셨으며, 모두 신부님께 안수를 받으셨는데 이 때, 목우스님은 안수받고 레스팅 되셨었다.
꽃도 이 꽃, 저 꽃 어울려 있으면 꽃다발이 되듯, 종교도 네 종교, 내 종교 따지지 않고 사랑만 나누면 일치를 이룬다.
부처님의 자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봉사하는 우리들을 창조주 하느님은 내려다 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소금창고의 글로벌화인가. 창고를 통해 처음에는 몽골로, 지금은 필리핀, 말레이시아로 의류가 보내어진다.
캄보디아에는 옷을 팔아서가 아니라, 숨은 후원자들의 지원과 저금통이 모아져 지난 해만 해도 큰 일을 했다.
집 한 채 지어주고, 우물 한 정 파주고, 휠췌어 열대를 만들 수 있는 기금을 모아 보내 꿈을 이루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린 '기쁨나눔재단' 후원회원이며, 이 년 전 막달레나는 캄보디아를 다녀왔다.
작년에는 내가 동말레이시아를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보육시설 '하민 토고우' 후원회원이 되어 매월 소액을
기부하고 있다. 지난 해 가을에는 창고지기들을 일본으로 이끌어 들이시어 우린 동경에서 봉헌서약식을 치르고 왔다.
이렇듯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기도를 바치면 그 분께서는 감사할 일을 꼭 만들어 주셨다.
우리의 회장이신 하느님께서는 없는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다. 일본에 갈 때도 돈이 없었는데,
걱정을 뒤로한 채 화살기도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천사와 사제를 통하여 풍족히 4박5일을 누리고오게하셨다.
그 때 내 돈이 없었기에 서약반지 준비할 생각도 없이 가서 봉헌식을 치렀는데 인심이 후덕하신 신부님이 말씀
하시기를 '반지는 나중에 봉헌 갱신식할 때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동경에서 신부님이 나오셔서 1월 17일 봉헌갱신식이 미사중 있을 것이란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 이번에도 창고지기는 빈 주머니, 알거지였다. 뜻밖의 자리에서 어느 순수청년이
우리 두 사람의 반지 값을 얘기듣고 창고로 찾아와 그 돈을 우리에게 내어놓고 갔다.
멀리서 신부님 오셨는데 빈손으로 가시면 안 된다며, 어느 천사는 경사스런 자리에는 팥떡을 해 가는거란다.
그리고는 떡 한말 값을 충분한 금액으로 송금했다. 덕분에 우린 반지도 준비했고, 선물도 떡으로 마련해 갔다.
참으로 놀라우신 성령의 이끄심이다.
미사 시작 전, 서약반지를 받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반지 안 쪽에 이렇게 글씨가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12. 10. 17 '빛' Like Maria With Jesus]
숫자는 동경 한인성당에서 봉헌식 일자인데, '빛' 은 무엇인가.? 혹시해서 친구 막달레나에게 물어보니 친구 말하길
우리삶의 지향인 소금과 빛을 표기해 주도록 부탁하여 그의 반지 안 쪽에 '소금' 이라고 찍혀 있는 것을 보여준다.
영자의 의미는 자명하다. 마리아처럼 예수님과 함께 순명하며 이 길을 올곧게 가라는 주님의 메세지로 받아들였다.
십 년전 둘 만의 봉헌식에서 '우리는 이 땅의 소금과 빛으로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널리 전하자' 다짐했는데,
주님께서는 십 년이 되는 그 해에 동경으로 불러들여 의식을 치러 주시었고, 엊그제 미사중 봉헌갱신식을 통해서는
소금 과 빛 의 글자가 선명히 새겨진 뫼비우스 반지를 주님께서는 사제를 통해 우리의 손가락에 끼워주셨다.
그러는 동안의 기간인 십년 세월 가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십 년이면 고등학교 3년 대학 4년 사회생활 3년이 경과한 시간아닌가! 나는 두 아이에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보면 무능한 아빠일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공짜가 없다. 내가 당신 일을 하니까, 당신은
내 대신 우리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셨다. 둘 다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시켜주셨다.
큰 딸은 이화여대를 졸업하여 현재 중등교사로, 작은 딸도 직장생활 잘 적응하며 열심히들 잘 살고있다.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다.
아빠가 이 길을 꾸준히 갈 수 있도록 방치해? 준 것만도 사실 쉬운 일이 아닌데 엎드려 절 하고픈 정도로 고맙다.
함께 내어맡김의 길을 가는 친구는 어떤가. 그 십년 사이에 아들 딸 시집장가 보냈고, 손자까지 보았으니 백 점이다.
지난 해에는 엄마회갑이라고 아들 딸, 사위 며느리가 김준 째즈클럽에서 근사하게 회갑공연을 열어주기도 했다.
이끄심에 놀라운 체험, 결론은 내가 살아 있으면 결국 나 자신이 힘들어짐을 안다.
바싹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잘 굴러가듯 내 자아를 비워 온통 그 분께 확! 내던져 맡겨버리면 이끄심이 작동된다.
사실 지나고 나서 회고하니 글로 표현할 수 있을뿐이지. 당시에는 매 순간이 괴롭고 힘들었다.
왜냐면, 매 순간 순간이 선택이었으니까! 선택의 기로에 당면했을 때, 내 결정은 우리의 스승 예수님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본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럼 즉시 해답을 얻게 된다.
"그래, 누가 뭐라해도 난 이 길, 예수님께 내맡긴 삶의 길을 갈거야!"
그래서 신앙의 길은, 더구나 서약하고 내어맡겨 그 분의 뜻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평화를 주노라. 하신 예수님이 왜 복음 말씀을 통해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마태10.34-36]
예수님은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 했다.
맞다. 항구히 주님께 내어맡김의 길을 가려면 귀머거리 3년, 봉사(소경) 3년, 벙어리 생활 3년이 되어야 숙성된다.
세상을 의식하고 가족의 눈치를 보다보면 내 의지가 흔들려 이 길을 갈 수 없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자명한 이치다.
나는 생각했다. 예수님은 참 평화를 주시고자 우리에게 칼을 주러 오셨다.
가장 중요한 소공동체 가족, 피로 맺어진 관계아닌가? 이 구성원의 가장인 내가 가족들에게 세상적으로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 못할 때, 당연히 미움과 원망을 사게 마련이다.
이럴 때, 세상의 욕구를, 그들 판단의 잣대를, 굴욕과 수치심을 잘라버리라고 칼을 주셨다.
승리의 처방은 예수님 주신 그 칼로 내 자아를 죽이는 것이 첫 번째요, 밖의 적은 침묵과 기도를 복용하면 이길 수 있다.
고로 이 길은 백색 순교의 길이라 여긴다. 견디기 힘든 심적 고통이 늘 수반되는 가시밭 길. 그러나 영혼에는 비단 길!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퍼짐, 그로인하여 내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 것도 그 옛날 신앙선조들의 피의 순교 덕분이었다.
이와같이 나 하나의 순교[내어맡긴 삶] 행위는 종국에 온 가족 영혼구원의 동아줄이 될 것이다. 원수가 은인으로.
용기는 이웃의 체면과 가족의 눈치를 이겨내야 하기에, 사실 가장 반대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다.
1998년 세례 이 후,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세상에 등 떠밀려 옥천 땅 무료노인요양원에서 4년간 상주 봉사를 했다.
2002년 2월 상경하여 초등학교 동창인 막달레나의 권유로 시립병원 원목봉사를 시작으로 서울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성령세미나를 받은 후 그 해 8월 13일 예수님께 투신한 삶을 살겠다며 굳은 서약으로 '내맡김의 삶'에 돌입했다.
그 때로 부터가 십 년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세례 이후 부터이니, 십 오년 세월을~~~ 가족의 반대와 원망은 당연지사.
주위의 쏟아지는 비난과 원성은 항변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성과 지성으로 판단할 때 그들의 말이 사실 옳았기 때문이다
침묵으로 화살을 끌어안았고, 내면에서는 기도로 주님께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감성을 추스려 영성의 밭에 거름삼았다.
하느님의 이끄심은 섬세하고 정교하였다. 지난 해 어느 날, 주님은 큰 딸을 통하여 나에게 영예로운 작위를 부여하셨다.
"아빠의 목적한 길 우리가 막을 수 없으니 계속하시되, 앞으로는 예수님의 발바닥이 되도록 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의아해 하는 내게 딸이 덧붙이는 말 "발바닥은 어느 곳이건 주인이 가는대로 갈 뿐, 위는 볼 수 없잖아요." 난 생각했다.
비록 내 딸이지만 역시 교육자는 다르군, 홀로 곰곰히 그 말의 의미를 묵상해 보니 철저한 순명과 겸손을 이르는 말이다.
'예수님의 발바닥'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고[순명]. 낮은 땅 바닥 만을 내딛는 발바닥이니 이는 [겸손]
봉헌 된 삶 십년 만에 성령께서 큰 딸의 입에 담아주시어 내게 부여해 주신 고귀한 직분이자, 영광스러운 작위로 받았다.
내맡겨진 영혼 하나가 그 집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임을 세상에서는 입증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천상잔치가 열리는 그 날, 하늘나라에서 그들이 고백하리라! '아버지, 감사합니다.'
마태 25장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의 답안지를 보여 주셨다. 오른쪽에 분류된 양들에게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라고 46절에서 말씀하셨다.
그곳 천상잔치에 참여하도록 우리 모두는, 특히 내맡긴 영혼이라면 아래 답안지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우리가 걸어 온 십 년은 특별한 삶이 아닌 보여주신 답안지대로
살아 온 그저 평범한 여정이었다. 스승 예수의 가르침대로 부족하지만 노력하며 실천했을 뿐 이기에.
답안지를 미리 보여 주셨는데도 정답을 쓰지 않고, 틀린 답을 기록하며 생활한다면 그것이 특별한 삶이다.
성령의 감독하에 성령의 지시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도록 은총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는 동물을 좋아한다.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며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경외하고 흠숭한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4-36. 40]
지난 십 년을 회상해 보니 내가 한 것은 없다.
그 분이 친구를 앞 세워 나를 이끄셨다. 영적 철듦과 믿음은 역시 은총인 것 같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지난 2011년 10월 11일 자의 교서 「믿음의 문」(Porta Fidei)을 발표하시면서
‘신앙의 해(Year of Faith)’를 선포하셨습니다.
<신앙의해, 개막미사 교황님의 강론 요지> 2012,11,11
<하느님께서 변화시켜 주신 새 삶을 증언>하고 그 증언을 통하여,
<나아갈 길을 가리켜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매우 간단히 못박아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해 개막미사의 교황님 강론의 요지입니다.
‘신앙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하여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1년 동안 계속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주님안에서의 두분에 뜨거운 사랑을 배웁니다.
너무나 많은것을 느끼고 느낍니다. 가슴 깊은곳에서 뜨거운........
소금창고 회장님이신 하느님,사장이신 예수님
창고지기기 김경순M막
하느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어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소금창고 아자
조스티나 물결 우리모두
항상 대단하시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식으로 말로 주님을 사랑한다 하며 잘 사는 줄 알았고 잘 사는척 했는데요.
두 분의 삶은 행하는 삶이며 사랑이 가득하십니다.
그 힘은 주님께로 부터 나옴을 알지만...
늘 두 분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집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저도 주님 이끄시면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왼손이 한 일인데 오른 손이 소문을 내었네요. 죄송합니다. 행복 주부님. 이해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꾸밈없는 삶의 회상이다보니 너무 솔직하게 썼나봐요.
이 후의 삶은 겸손의 덕을 행하려 노력하며 숨겨진 삶을 주님과 함께 수 놓아가며 살겠습니다.
사랑이신 주님, 우리의 벗, 조크리스티나, 물결, 행복주부를 당신께 내어 맡기오니 오롯이 이끌어 주소서. 아멘
괜찮아요.
자기자랑이 아니라 하느님자랑이니까요. 아닌가요?
하느님 뜻에 순명하여 응답하심도 하느님 이끄심일테구요.
아버지, 눈덮인 산의 장미와 아멘을 통하여 찬미영광 받으소서.^^*
삶을 하느님 이끄시는 대로 사시는 두분, 존경합니다. 대모님과 형제님을 알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루카22.29]
행복은 어디에있을까요 물론,다 아시는예기지요 남을도와주는것도행복 위로해주는것도 아무나못하죠..장미을 통하여 영광 받으소 서....
갑자기.성가.가 생각나네요.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도다. 주님 안에 있으면 그게바르 행복이겠죠.행복주부.빵
일생을 글로 표현하다보니~~흐미~~길어서 읽다가 잠들고 또 일어나 읽고~ㅋ 암튼 그열정. 그공로!!
칭찬 드립니다. 열심히 사시는 두분~ 하느님께서 아시리라 믿으며~~~주신그길~~변함없는 사랑으로 마무리되는~~
영광보시고 ~~아빠하느님^^찬미 영광 받으소서.
지고지순의 마음으로 지극히 흠숭하올 하느님의 뜻 받들고
10년의 세월을 봉헌하신 하느님의 사랑!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요사이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시는 두분! 사랑합니다
(제 18번 성가가 낮엔 해처럼)입니다.
바늘로 찌르듯 하던 머리 통증이 님의 글을 읽는 동안에 조금 덜 하네요 고맙습니다.
방가☆♧=_=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