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妓祠 感吟 의기사 감음
의기사(의로운 기생 논개를 기리는 사당)에서 느낀 바 있어 읊는다;
千秋紛晉義, 천추분진의 진주성의 의로움이 천추의 한으로 맺혔으니
雙廟又高樓; 쌍묘우고루 쌍충각과 촉석루로다,
羞生無事日, 수생무사일 피리불고 장구 치며 정신없이 놀면서
笳皷汗漫遊. 가고한만유 하릴없이 보내는 인생을 부끄러워하노라.
本州妓 山紅 본주기 산홍 진주성의 기녀 산홍
<참고> 촉석루 서쪽 편에 의기사가 있고, 그 아래 앞쪽으로 쌍충각(雙忠閣)이 있다. 쌍충각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하신 제말(諸沫) 장군과 그 조카 제홍록(諸弘祿) 두 분을 모신 전각이다.
*진주성의 관기인 산홍이란 기생이 봄놀이를 하면서 논개의 의로운 기상을 흠모한다. 한편으론 직업상 기생놀음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정신은 논개를 본받고 싶다는 원(願)이 있다. 의기사-의로운 기생 논개의 넋을 모신 사당은 산홍의 정신적 귀의처요, 명예의 전당이다. 누구나 본 받고 싶은 거인이 있게 마련이요, 닮고 싶은 '큰 바위 얼굴'이 있게 마련이다. 산홍에게는 논개가 큰 바위 얼굴이었으리라.
*진주 촉석루 벼랑에는 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그 중에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섰던 당시 을사오적(乙巳五賊)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1870-1928)의 이름과 함께 '山紅'이란 이름도 새겨져 있다. 山紅이란 글씨를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기개에 감복한 한 사람이 정성 들여 정을 쪼아가며 이름을 새겼을 것으로 짐작한다. '山紅'의 기개와 충정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진주 출신 작곡가 이재호(李在鎬,1919-1960)씨는 노래 가사에 산홍을 애타게 찾았다.
산홍아 너만 가고♪ 나는 혼자 버리기냐♪
너 없는 내 가슴은♪ 눈오는 벌판이다♪
달없는 사막이다♪ 불꺼진 항구다♪
1940년에 발표한 '세세년년'이란 대중가요의 일절이다. 온 산천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갔던 그 시절에 충절의 도시 晉州에서 벌어진 '山紅과 李址鎔의 사건'은 심금을 울리고도 남을 일이다. 양회갑(梁會甲,1884-1961) 또한 <기녀 산홍이 매국노의 죄를 나무라며 잠자리를 거절하고 스스로 죽다(妓山紅數賣國賊不許寢自死)>라는 시를 지어 山紅의 절개를 칭찬했다.
예부터 '北평양 南진주'라고 불릴 만큼 진주 기생은 조선 팔도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진주 기생의 가무는 조선 제일이라고 이럴 정도로 뛰어났으며, 정조가 두텁고 순박함으로 총애를 받아 왕실에서 베풀어지는 잔치에 불려 나간 名妓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진주 기녀들 중 山紅은 한말의 애국 선비 황현(黃玹)이 지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만날 수 있다. 매천야록 광무 10년(1906년) 조에 "진주 기생 山紅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잘하였다. 이때 李址鎔이 천금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山紅은 사양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5적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첩이 비록 천한 기생이라고는 하지만 사람 구실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李址鎔이 크게 노하여 山紅을 때렸다는 기록이 있다. 글도 잘 쓰고 얼굴이 예쁜 진주 기생 山紅이 李址鎔의 첩이 되기를 거부한 것은 당시로서는 큰 사건이었다. 李址鎔은 1905년 내무대신으로 을사조약에 적극 찬성하여 조인에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다. 이 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절개를 칭찬해 마지않았으며 梅泉 黃玹도 山紅의 기개를 높이 샀고, 세상에 소개하기 위하여 '매천야록'에 그때의 일을 기록해 두었다. 이 일을 전해들은 어떤 사람은 李址鎔에게 시를 지어 주면서 희롱까지 하였다고 하니 그 여파가 어떠하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온 나라 사람이 다투어 매국노에게 달려가
노복과 여비처럼 굽신거림이 날로 분분하네,
그대 집 금과 옥이 집보다 높이 쌓였어도
一點紅인 산홍은 사기가 어렵구나.
예로부터 진주 기생들은 義妓 論介의 충절을 사모하였는데 山紅 역시 그러했다. 山紅이 선배 기녀인 의기 논개의 사당인 의기사를 참배하고 시 한 수를 남긴 것이 사당의 왼쪽 처마아래에 걸려있다.
의암(義岩)에서 순사(殉死)하는 의기(義妓) 주논개(朱論介)
첫댓글 옛기생의 기개가 돋보이는 시조 입니다 !
진주에 살면서도 산홍을 기린 의기사는 처음 접합니다
봐도 잘 모르니 그냥 지나쳤을수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