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맨
The Greatest Showman (2017)
이 영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다가 추천을 받고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통통 튀는 넘버들과 화려한 영상의 향연을 만끽하며 타인의 생각은 어떨까? 하며 리뷰를 여러 개 봤는데 상당히 비판적인 글들이 눈에 띄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느끼면서도 필자는 조금 다른 리뷰를 써 보려고 한다.
우선 '위대한 쇼맨'은 뮤지컬 영화 이전에 실존인물 P.T 바넘(휴 잭맨 분)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즉 '실존인물 모티브'를 통해 '시대극' 요소를 포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극중 바넘은 인종차별, 장애인 차별 등을 비롯해 수많은 차별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이는 '현 시대에 맞지 않으며 충분히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비판할 만한' 가치관이다.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현 시대' 에서 라는 포인트. 바넘은 1810년에 출생했으며 그가 처음 서커스를 무대에 올린 것은 1835년이다. 노예 해방 슬로건을 표면적으로 내세운 미국 남북전쟁이 1861년에 발발했음을 생각하면 당시 '인권' 개념이 얼마나 부재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시에는 흑인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시대' 라는 것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했을 때 바넘의 차별적 행동은 -잘못되었고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죽은 것이 아닌 살아있는 것'을 전시하기 위해 '신기한' - '정상이 아닌'이라 바꿔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을 모집하는 물질만능주의적 가치관 까지도. 당시 그가 찾아 다녔던 '신기한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사극을 보며 '시대에 맞지 않는 대사다'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시대의 가치관을 두고 '구시대적이다'라고 비판한다. 필자는 이 영화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바넘을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다. 본 영화의 바넘에 대한 미화가 '영화임을 감안하고 볼 정도' 그 이상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휴 잭맨의 젠틀한 이미지와 영화의 시청각적 화려함에 가려서 그렇지, 영화는 바넘의 '물질 만능주의적'이고 '차별적'인 가치관을 러닝타임 내내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쫄딱 망한 이후 단원들이 찾아와도 그들에게 '차별적 언행'에 대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바넘이 단원들에게 사과한다면, 오히려 그것이 바넘에 대한 미화가 될 것이다. 스물 여섯 당시 P.T 바넘에게 그 정도의 인권 개념이 있었다면 그는 '흥행의 왕자'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선구적인 인권 운동가'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바넘은 자신의 노예였던 흑인이자 시각장애인 여성 조이스 헤스가 사망한 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 사체를 해부하는 전시를 벌였다고 한다. 이런 바넘이 단원들에게 '차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다? 이것보다 심한 미화가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항간의 비판과 달리 오히려 이 영화가 굉장히 '진보적이다' 라고 느꼈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잭 에프론이 연기한 '필립 칼라일'이라는 캐릭터이다. 필립은 잘나가는 백인 남성이자 상류 문화에 속해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랑하게 된 사람은? 바로 '흑인' 여성 앤.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부끄러워했지만 결국 이를 극복해낸다. 상류층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을 사랑하고, 인정하고, 또 이를 비난하는 부모님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당시 이런 행동이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는 칼라일의 가치관의 변화를 앤의 손을 잡았다 놓고 - 앤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불길에 뛰어드는 등 다양한 장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칼라일은 앤을 사랑하게 되면서 '평등적 가치관'을 가지게 되고 단원들에게도 인정받게 된다. 영화 말미에서 바넘이 칼라일에게 봉을 넘겨주는 장면은 바넘이 '욕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단원들을 자신보다 더 잘 이해하는 칼라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넘버 'This is me'에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의 등장으로 서커스 단원들은 바넘에게 조차 직접적인 '차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에 단원들은 직접 파티장으로 들어가고, 공연장 밖에서 시위하는 무리와 정면으로 맞서며 'This is me'를 열창한다.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면서. 이는 단순히 '나는 나를 사랑할거야'가 아닌 '차별적 프레임을 가진 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이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인 것. 되돌아 생각해보면 칼라일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차별에 맞서는 목소리들이 쌓여 현재가 만들어진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이를 돌려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토리상 답답한 부분이 몇가지 있다. 스캔들에 휘말린 바넘이 몇 마디 용서를 구하자 이를 이해하는 채러티 라던가.. 특히 모든 것을 잃은 바넘에게 '당신 덕분에 우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라고 위로하는 단원들의 행동은 시대를 고려해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스토리 진행에 캐릭터 모두가 역할을 가지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는 특히 제니 린드의 감정선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넘버가 정말 잘 뽑혔다고 생각하며 영화 자체가 워낙 화려해서 볼 거리가 많았다. 필자가 오랜만에 매우 인상 깊게 본 작품이다. '시대극'임을 고려한다면 갑갑하게 느꼈던 몇몇 부분들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상영시간: 10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