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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악산 등산, 청와대 관람.
(건아산행회 86차 행사)
날짜: 2022년 10월 20일 07:00~ 10월 21일 21:00.
행선지: 서울 북악산, 청와대.→ 수원 성곽→금산 출렁다리.
같이간 참가자들: 건아산행회원- 옥치관, 옥숙표(2), 권혁포, 김동락(2), 신수덕(2), 옥평련,
정일명, 신원상(서울에서 합류), 김보금, 윤영희, 원용선.
연육회 회원- 김경연, 옥덕악, 박명선, 옥둘선, 옥영숙, 윤옥수, 김순년,
옥복선(?).
거제고교 친구- 백순녀, 윤정순, 정정연, 최송자,
재경 육삼회원- 김상문, 유철현, 여상용. (26명, 서울회원 제외)
수단: (주)동부여행사 (경남76바2989) 관광버스.
출발~ 도착까지 경유지: 10월20일 07:00거제 고현 출발→ 07:30 연초 삼거리→ 하청 실전→ 08:30부산 교육대학 건너편 한양프라자 앞(부산회원 합류)→ 경부고속도로 경유→ 13:40경 청와대 춘추관 앞 도착, 서울 회원과 합류→ 14:00~ 16:30북악산 둘레길(청와대 춘추관 출발→ 본관 뒤편 백악정→ 萬世東方→ 법흥사 터→ 삼청 안내소→ 삼청공원 삼거리)탐방→ 서울 삼청동, 청계천을 지나 마포대교를 통과→ 18:05 영등포“강경 불고기집” 도착→ 저녁식사 후 서울 회원들과 작별→ 19:20경 숙소(하이 서울유스호스텔) 도착.
10월 21일 06:00 기상→ 07:30경 청와대로 출발,차 안에서 이동 중 빵으로 아침 식사→ 08:10경 청와대 정문 도착→ 안내자의 안내를 받아 09:00까지 대기→ 09:00청와대 입장, 10:40까지 관람(정문→ 수궁터→ 관저→ 오운정→ 석조여래좌상→ 본관앞을 지나 상춘제→ 녹지원→ 청와대 본관 내부)→ 11:05 청와대 출발 →11;40경 수원 성곽(유네스코 세계 遺産 華城) 도착→ 12:20까지 성곽 산책 하고→ 14:50경 금산 도착 점심식사(쇠고기 샤브샤브)→ 금산 출렁다리를 건너 걷고→ 16:40경 부산으로 향발→ 20:00경 부산 하단 삼거리 도착, 부산회원 하차→ 21:00경 거제 도착. 바이 바이.
여행 動機- 全 人類가 코로나19 대 유행으로 인한 행동거리 제한을 2년여 동안 받아왔고
2022년 3월10일 大選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청와대의 주인이 용산으로 집무장소를 옮겨가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왔던 청와대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라의 왕이 근무하고 거처 하던 곳이 어떠했던가 궁금했던 차 건아산행회의 년차 나들이 행사로 정하게 되었다.
북악산(北岳山) (한양 도성)- 방어와 경계의 성곽에서 국민과 시민들의 쉼터로 돌아온 북악산.
북악산은 높이 342m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서울의 주산(主山)이다. 서쪽의 인왕산(仁王山, 338m), 남쪽의 남산(南山, 262m), 동쪽의 낙산(駱山, 125m)과 함께 서울의 사산(四山) 중 하나로, 북쪽의 산으로 일컬어졌다.
북악산은 수려한 山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이처럼 빼어난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서울시민의 축복이다. 맑은 날,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정상에서 광화문 거리를 바라보면 首都 서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오른쪽으로 이어진 仁王山에 올라서 동쪽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북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와대와 경복궁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만한 터가 또 어디에 있다고 흠을 잡고 터를 탓하는 걸까. 한국인들이 지나치리만큼 기대치가 높아서가 아닐까. 한국의 문화 상징 ‘風水’를 소설화한 작가 입장에서 청와대 터가 나빠 대통령들이 불행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北岳山의 명칭 유래- 남산에 대칭하여 북악이라 칭했다. 조선시대까지 백악산(白岳山), 면악산(面岳山), 공극산(拱極山), 북악산(北岳山) 등으로 불렸고, 특히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렸으며 일부 북악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 북악산의 동쪽 계곡 중턱에 만세동방 성수남극이란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 이곳을 “만세동방”이라고 부른다. 이 글에는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바위틈에서 나온 석간수(石間水)가 많은 량은 아니지만 홈통처럼 생긴 곳으로 모였다가 아래쪽으로 넘쳐흐르고 있다.
청와대(靑瓦臺)- 54년여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심장부이자 수뇌부다. 이곳을 거쳐 간 역대 대통령들의 드라마 같은 榮辱의 세월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대변한다.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을 치르고서도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스스로 이뤄낸 그 업적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 그렇다. 역대 대통령들의 허물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청와대 터다. 청와대 터가 좋지 않아서 國運이 사납고 대통령들의 末路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하와이 망명,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비극적인 죽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구속,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아들 구속,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이 청와대 터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러 했을까.
청와대 터가 나빠서 대통령들이 불행했다면 그들이 이끈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할 수 있었던 걸까. 결과론적으로 터에 관해 흠잡기에 나섰던 사람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사항이다. 대통령들은 불행하지만 나라는 잘 되는 터라는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風水地理學상으로 들여다보면 북악산은
물론 理論書를 기준으로 삼자면 흠이 없는 건 아니라고 한다.
북악산 정상이 독불장군처럼 치켜든 머리를 동쪽으로 살짝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산(主山)집이나 궁궐 등의 뒷산의 형국은 그 터가 품은 뜻이자 땅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쌀쌀맞고 무정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보다는 온유하고 유정하게 똑바로 보는 형세가 좋다. 북서쪽(자하문 터널)이 함몰된 것도 흠이다. 북서풍을 타기 때문이다. 굳이 황천살(黃泉殺) 같은 풍수 용어를 들먹이고픈 마음은 없지만 도로를 뚫어 현실적인 편리를 추구해온 마당에 새삼 풍수를 들먹이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가뜩이나 함몰된 지점에 터널을 뚫어서 북서풍을 더 끌어들인 건 천연의 지세가 아니라 인간이다. 북악터널, 남산터널에 어디 풍수논리가 있었던가.
용도에 따라 적합한 터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머물고 일하는 공간은 환경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국민 의식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국민들 또한 그 공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말도 많은 곳 청와대, 하필이면 왜 경복궁 후원 깊숙이 급하게 떨어지는 북악산 바로 밑에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세웠던 걸까.
★부속건물들을 둘러보면
☞본관- 본관은 대통령의 집무와 외빈 접견 등에 사용되는 건물이며, 1989년 22명의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많은 의견을 수렴한 뒤 1991년 9월 4일 신축되었다. 이 본관 건물 신축으로 외국의 국가원수나 외교사절이 방문했을 때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을 통해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건물은 정부와 국가를 대표하는 우리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전통 목조 구조와 궁궐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내부 구조는 현대적인 감각과 시설을 갖추도록 하였으며, 우리나라 건축양식 중 가장 격조가 높고 아름답다는 팔작(八作)지붕을 올리고 한식 청기와를 이었다.
약 30만 장이나 되는 청기와는 일반 도자기를 굽듯이 한 개 한 개 구워 내어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녔다고 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통령부인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 식당이 있으며, 2층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 회의실이 있다. 그리고 건물 앞의 넓은 잔디마당은 국빈환영행사와 육·해·공군 의장대, 전통복식을 입은 전통의장대의 사열 등이 행해지는 곳이다.
☞춘추관(春秋館)- 춘추관은 1990년에 완공되었으며,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리도록 맞배지붕에 토기와를 올려 전통적인 우아한 멋을 살린 건물이다. 춘추관이란 청와대 부속건물로서 한국 언론사 기자들이 상주하는 청와대 내의 프레스센터이다. 1층은 공보비서실과 기자들이 사용하는 기자실 및 담화발표 등을 하는 소회견실로 구성되어 있고, 2층에는 대통령 기자회견 및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다목적실이 있다. 한편, 춘추관이란 조선시대에 정치를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에서 유래되었다. 춘추관 관직은 모두 다른 관직을 갖고 있는 관원들이 겸직으로 담당했다.
☞대통령의 관저(거주채)-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대통령 관저는, 대통령의 공적인 업무공간과 사적인 업무공간을 구분할 필요성을 느껴 1990년 10월 25일 완공되었는데 형태는 전통한식(본채는 八作지붕의 겹처마에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이며 구성은 본채, 별채, 대문채, 사랑채, 회랑으로 되어 있다.
☞상춘제- 國內外 귀빈에게 우리나라의 전통가옥 양식을 소개 하거나 의전행사 비공식 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
☞석조여래좌상- 높이 1.16m.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호. 본래 경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이 서울 총독관저로 옮겼다. 1927년 총독관저를 현 청와대 자리로 이전하며 불상도 함께 옮겨졌다. 현재 청와대 경내에 있다.
전형적인 신라 하대인 9세기 비로자나불상 계열을 따르고 있는 이 단독불상은 섬려한 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춘 완전한 것으로 당시의 주류적인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즉, 안상(眼象)무늬가 새겨진 8각과 복련(覆蓮)의 하대(下臺), 8각간석의 중대(中臺), 앙련(仰蓮)의 상대(上臺) 등 3단대좌와 그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등신대(等身大)의 불상, 주형거신광배(舟形擧身光背)가 한 조(組)를 이루며 조화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둥근 편으로 박력 있는 부피감이나 긴장감이 배제된 단아하고 조용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체구 또한 평범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형태를 나타내었는데, 어깨는 좁아지고 가슴은 박력이 없지만 팔 등은 부피감을 표현해서 사실미를 느끼게 한다.
가슴에 모아 지권인(智拳印)을 짓고 있는 손은 작으나 발은 큼직한 편이다. 통견(通肩)의 불의(佛衣)는 평행계단식의 규칙적인 옷주름이 표현되었는데, 기하학적인 형태미를 나타내는 당시 석조비로자나불상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대좌나 광배의 다양한 무늬에서 나타나는 섬세한 선묘라든가 기하학적인 선이 사용된 옷주름선 등 전체적으로 활기찬 이상미가 사라진 현실적인 형식미는 물론, 비로자나불이라는 명칭에 이르기까지 9세기 불상의 전형적인 예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 좌상- 2018년 국가 보물로 지정. 9세기에 조성된 통일신라 석좌불상. 석굴암의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영빈관(迎賓館)- 외국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빈 방문 시 공연이나 만찬 등의 공식 행사 또는 100명 이상 대규모 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
☞오운정(五雲亭)-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따서“오색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곳과 같다”는 의미.
☞녹지원(綠地園)- 녹지원은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12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역대 대통령들의 紀念植樹가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원래 경복궁의 후원으로 농사를 장려하는 채소밭이 있었고 일제 총독관저가 들어서면서 가축사육장과 온실 등이 조성되었는데 1968년에 약 1,000여 평의 평지에 잔디를 심어 야외 행사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매년 봄 어린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어버이날, 장애인의 날 등 각종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지고 있으며, 1995년 5월 28일에는 인근 주민 약 3,000여 명을 초청하여 KBS 열린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또 주변에는 녹지원을 상징하는 소나무인 한국산 盤松이 있는데 수령은 약 310년에 이르며 높이는 16m이다. 연혁을 보면 옛 경복궁의 후원으로 채소밭·가축사육장·온실 등의 부지였으며 과거시험을 보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는데 국내외 귀빈 및 외교사절단을 위한 야외 행사장,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원 성곽(유네스코 세계 유산 華城)- 사적 제3호. 수원화성은 1796년에 축성된 읍성의 하나이다. 그러나 다른 지방 읍성들과의 차이점은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 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건릉)으로 옮겨 명칭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쳤으며 능행을 위한 행궁을 화성 안에 건축하였다는 점이다.
정조는 1789년(정조 13)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을 수백 년간 수원도호부가 있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개명(改名)하고 수원 도읍을 새 장소인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원부로 부르던 고을 명칭을 화성(華城)으로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줄곧 수원은 화성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 지방 관제개편 과정에서 다시 수원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水原市로 불리고 있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 반대 남쪽이 팔달문이다.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남북문은 중층문루로서 도성문루에 버금가는 규모와 형태를 갖고 있다.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서 사람이나 가축이 통행하고 양식을 나르는 통로이다.
금산 月影山 출렁다리- 서울 북악산 산행과 청와대 관람을 마치고 일찌감치 귀향길에 관광버스 기사님의 안내로 충남 금산과 충북 영동의 경계에 위치한 금산의 月影山 출렁다리를 다녀왔다. 출렁다리는 2022. 4. 28. 개통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고 한다. 월영산 출렁다리는 월영산과 부엉산 사이에 흐르는 금강을 연결한 출렁다리로 금강 상류의 아름다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폭 1.5미터, 길이 275미터의 무주탑 출렁다리라 공중에서 흔들림을 좀 더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서울 나들이를 마치고- 五穀百果가 결실을 맺어가는 가을. 금수강산의 산천경계를 실컷 느끼고 즐기면서 남녘 땅 거제에서 수도 서울까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누렇게 영근 들판의 벼들이 우리의 마음을 더 풍요롭게 느끼게 했다. 우리의 건아 산행회가 결성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은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젊음이 끝나가고 노년기에 접어드는 육십대 중반부터 년 년이 이어져 오고 있는 산행회 행사가 쉼 없이 이어져가기를 바랄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만남이 적조했던 탓인지 몇몇 회원은 건강상태가 좀 퇴보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작성: 2022년 11월 초순.
작성자: 신 원 상(건아산행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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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 산역사가 또 한페이지를 장식합니다. 살아 있을 때, 흉허물없이 모여 산천경계를 구경함도 이
아니 좋을손가! 수고 많았습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