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이 얽힌 사찰
승달산(僧達山) 동남쪽 계곡은 일렁이는 파도였다.
높고 낮은 봉우리들로 깊숙하게 이루어진 계곡은
철철 넘치는 물과 휘휘 소리를 내며
자라는 듯한 온갖 나무들로 무성했다.
그래서 일렁이는 파도를 연상하게
하는 산 좋고 물 좋은 계곡일 수 밖에 없었다.
그 깊은 계곡을 감상하며 걸어 오르는 영욱 스님.
스님은 승달산의 내력을 잘 알고 있기에 한 여름의 숲이주는
선선한 바람이 신새벽에 퍼마시는 감로수 같이 즐거웠다.
이 산에는 옛적 백제 성왕 시절에 덕이(德異) 스님이
지었다고도 하고 그 보다 뒤에 서역에서 온
정명(淨明) 스님이 지었다고도 하는 절이 한 채 있었다.
고려조에 와서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 1090∼1141)
스님이 이 깊은 골짜기 아담한 절에 와서 공부를 함에
그 제자 5백여명이 모여 불법의
진수를 깨우치지 않은 스님이 없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이골짝 저 계곡에 작은 토굴이 즐비했으며
스승이 법상에 오르기 전에 산 안의 스님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산 정상 바위에 큰 북을 매달아야 했기에
그 바위를 북바위라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이 산에 대해 이야기 해 준 사람은 북바위 아래로는
두 갈래의 계곡이 있는데 하나의 계곡에는 물이 철철
넘쳐흐르지만 하나의 계곡에는 전혀 물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까닭인즉, 징엄 스님이 북바위에 올라 아래로 굽어보이는
계곡을 향해 큰 소리로 설법을 하고 주장자를
내리 그으니 산이 갈라져 하나의 계곡이 형성 됐다는 것이다.
영욱 스님은 그 사실여부에 큰 마음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 법력의 웅장함이 그런 이야기를 창출시켰으리란 것을
생각하니 옛 스승의 수행과 그 덕화가 못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영욱 스님은 그 절터를 다시 일으키고 싶었다.
좋은 가람에서 좋은 공부가 익는 것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영욱스님은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며 눈으로는 계곡의 풍광을
감상하고 마음으로는 이런저런 상념의 자락을 펼쳐
수년전에 들은 승달산의 내력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님은 바위 너설에 앉아 지난 밤 무안의
한 객방에서 생면부지의 나그네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나그네는 영욱 스님이 승달산의 옛 절터를 찾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사뭇 애잔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였다.어느 때 무안 몽탄에 이진사와
박진사가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진사의 아들과 박진사의 딸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두 선남선녀는 자신들의 사랑이 어른들의 불화로 인해
이루어 지지 못할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안타까움이 깊으면 깊을수록 두 사람은 더욱 새로운
정이 솟았고 마침내 혼례를 치르자는 언약도 굳게 하게 되었다.
"아버님, 감히 송구스러운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이진사의 아들이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말문을 열었다.
"그래, 무슨 얘기냐.""사실은 저 건너
박진사댁의 규수와 서로 연모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뭐야, 이 불효막심한 놈. 네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내가 박진사와 서로 원수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음을 아는터에
그 집 규수의 얘기를 하다니.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랑놀음에 빠져 있었단 말이냐."혼인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진사는 노발대발 하며 아들을
꾸지람 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진사는 당장 박진사를 찾아갔다.
"도대체 규방의 아이를 어떻게 간수 했길래 어린것들이
사랑 놀음에 빠졌단 말인가. 체면없이. 우리가 사돈이
된다는 걸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어거든...."
"이 사람아. 그게 왜 내 잘못인가. 아들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자네 탓이지. 나도 자네 같은 사람과 사돈의
인연을 맺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어서 돌아가게."
이렇게 두 진사는 입씨름을 하고 급기야 주먹다짐까지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진사의 딸은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이진사가 돌아가면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엄중한
꾸지람을 들어야 하고 문밖출입도
못하게 될 것이 자명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박진사의 딸은 이 도령의 늠름하고
호방한 모습을 떠올리며 좋아하는 사람과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될 것이 안타깝기만 했다.
궁리끝에 낭자는 옷가지를 챙겨 뒷문으로 집을 나오고 말았다.
<전남 무안 법천사 대웅전>
아, 어디로 갈 것인가. 낭자는 막막했다.
그들이 늘 만나던 동구나무 아래서 "승달산 절에 몸을
피하겠으니 때가 되면 저를 데리러 오세요"란 짧은 인사를
나누고 산으로 올랐다."스님. 소녀 간청이 있어 절을 찾았습니다."
박진사의 딸로부터 전후 사정을 들은 절의 주지
스님은 한참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인간에게 끊기 어려운 것이 애욕의 마음이라.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이 이성을 보고 좋은 감정을 갖는 것
또한 자연적인 이치이거늘 그 애틋한 사랑이 아비들의
불화로 인해 이뤄지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로다.
당분간 이 절에 머물며 부처님께 좋은 인연을 빌어 봇기 바랍니다.
어른들을 미워하기보다는 서로의 악연을 풀고
화해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기도하십시오.
나는 속세를 떠난 몸이로되 두 선남선녀를 위해 두 진사 양반을
만나 화해를 시켜 보도록 할 것인즉."낭자는 하늘이
무너진 곳에서 솟아오를 구멍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다.
그리고 주지 스님이 시키는대로 부처님께 기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절집에 머물게 된 낭자는 마음 한켠에는
두 집안의 어른들이 화해를 하길 바라고 다른 한켠으로는
이도령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께 나아가 기도를 올렸다. 며칠이 흐르고 났을 때
주지 스님은 두 진사를 만나겠다며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날 밤.
또 다른 악연의 구름이 낭자를 덮치고 말았다.
조용조용 걸어 법당에서 기도를 하고 매사에 조신하게 행동
하는 낭자를 첫날부터 눈여겨보아 오던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절일을 거들고 있는 총각이었는데 그 역시 어린 나이에
산에 들어와 인간의 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불운한 처지였다. 그런 사내의 눈에 비치는 낭자는 하늘에서
내려 온 선녀 그 자체였고 그 아름다운 자태를
훔쳐보며 솟구치는 욕정을 억누를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 주지 스님이 절을 비운 그날 총각은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욕정에
이끌려 낭자의 방문을 열고 들어 가고 말았다.
"낭자..."그렇게 몸을 망쳐버린 낭자는 밤새 흐느껴 울다가
신새벽 퉁퉁 부은 눈을 닦고 절 아래 저수지로 향했다.
자결. 낭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것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인가.
그 새벽 산길을 오르는 사내가 있었다.
이도령이었다.
이 도령은 낭자를 절에 보낸 후 못내 그리운 밤들을
지새워야 했다. 마침 주지 스님이 아버지를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본 도령은 어쩌면
어른들의 화해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기대는 낭자에 대한 그리움을 폭발시켰다.
그래서 새벽길을 달려 절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낭자가 흐느끼며 들려주는 지난밤의 비극.
도령은 하늘을 향해 울부짖다가 절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아직 잠깨지 않은 요사채에 불을 질러 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그 불길보다 뜨겁게 엄습해 오는 절망감.
두 남녀는 불길 앞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다가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불길로 뛰어 들어 버렸다.
"부처님. 저희가 다음 생에 반드시
다시 만나 맺힘 없이 사랑하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절은 온통 불바다가 되고 말았고 주지 스님은
며칠 동안 불타버린 절터에서 "나무관세음보살"을 외치다가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영욱 스님은 어느새 절터에 도착해 있었다.
폐허가 되어버린 땅에 선 스님은 옛적 절터를 처음 잡은
스님들과 5백의 제자를 가르치던 원명국사 그 후로 면면히
가람을 수호해 온 많은 스님들 그리고 이승의
사랑을 못다 피우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한쌍의 남녀.
그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로부터 스님은 기도하며 절을 중창하기 시작했다.
이진사와 박진사의 후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시주도 있었다.
영욱스님은 절을 다 짓고 "불가에 귀의한 자는 누구든
지극정성으로 부처님 법을 배우고 중생제도에 전념해야
하리"라는 발원의 뜻으로 절 이름을 법천사(法泉寺)라 했다.
[출처] 비련이 얽힌 사찰 (전남 무안 법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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