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향한 기울기만큼 누웠다 일어서는”
*마치재-남사봉-한무당재-관산-만불산-아화고개-사룡산-당고개-단석산-백운산-고헌산-정상휴게소-운문령-가지산-능동산-배내고개-간월산-신불산-영축산-지내마을(95㎞, 10.2.~10.3.)
남부지방에 쏟아지던 폭우는 주말이면 중부로 이동한다고 했다. 우리가 경주 쪽으로 내려갈 때는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다. 마치재에서 새벽 2시 20분 산행을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린 뒤라 산길은 물러져 오르막에서 미끄러져 내리기 일쑤였다.
관산은 경주시의 서면 도리와 영천시 북안면 관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금호강과 형산강 유역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새벽 6시 반쯤 영천의 만불산에 도착했다. 신라 경덕왕이 당태종에게 보낸 ‘만불산’에 1만 부처님이 모셔졌다는데, 만불산 남서쪽으로도 수많은 부처가 모셔진 만불사가 있다. 잡풀이 우거진 산마루에는 정상석이 뽑혀 나간 자리만 썰렁하게 남았다.
만불산에서 내려와 아화고개에서 간식을 먹는데 길가에 모기가 많아 오래 쉴 수가 없었다. 아화고개는 영천시와 경주시를 가르는 재로 낙동정맥은 이 고개에서 가장 낮게 떨어졌다가 사룡산에서 다시 솟아 단석산을 거친 뒤 1,000m대 높이를 회복한다.
아화고개에서 신효로로 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만불산에 커다란 부처상이 보인다. 뿌윰한 아침 안개 사이로 부처상은 멀거니 서서 어떤 세상을 내려다보고 싶은 것일까. 길가 울타리에는 탱자가 익어 가고, 산 밑에는 누런 감과 대추가 탐스럽다. 서쪽으로 도계서원이 있는데, ‘조홍시가’(早紅枾歌)의 시인 노계 박인로는 사룡산 밑자락인 이곳 영천 북안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유자 아니라도 품음 즉도 하다마는/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글로 설워 하노라'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다 숨이 턱에 차오를 무렵 갑자기 풍경이 열렸다. 북서쪽으로 길게 늘어선 산군들이 뭉실뭉실한 구름바다를 가르며 영천의 하늘을 건너고 있었다. 산들은 아침이면 저렇게 흰 구름에 멱을 감아 지난밤의 적막을 털어 내고 뽀얗게 태어났다.
삼면봉을 지나 사룡산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오봉산이 서쪽으로 구룡산이 보인다. 산봉우리가 넷이어서 사룡산이라 부른다고 했다. 사룡산에서 내려가자 곧 우라생식촌이 나왔다. 생식마을의 아침은 잡풀 우거진 집들과 길을 따라 늘어선 석물들로 인해 신비스럽고 을씨년스런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집들은 이중의 파란 쇠문에 갇혀 있었는데,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먹는 것이, 먹는 방법이 종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숨 막히는 고요 속에서 알아차렸다. 마을 입구에는 앞서가던 반딧불이님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식을 챙겨 먹고 천천히 출발했다.
청천봉 오르는 길에 야트막한 평원이 나왔다. 옅은 하늘에는 수제비 구름이 둥둥 떠 있고, 넓은 구릉에는 억새와 벌개미취가 지천으로 피어났다. 지난여름 푸른 물이 질질 흐를 것 같던 산들은 허물처럼 지쳐 가고, 시퍼렇던 하늘은 흰색 파스텔을 칠한 듯 서슬이 풀어져 내렸다. 힘을 뺀 하늘과 산은 저 가을의 끝에서 기어이 조우할 것인가.
청천봉에서 독고불재로 내려오면 글램핑장이 나온다. 여러 가족이 캠핑을 나와 있었는데, 아이들은 도로 주변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근처에 샘이 있다기에 얼굴이나 씻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그대로 산을 올랐다. 651봉까지는 꽤 가파른 오르막이다. 일행과 떨어져 당고개까지 혼자 걸었다. 당고개 근처 식당에서 두루치기 상추쌈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단석산(斷石山, 829m)은 신라 때 화랑들의 수련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김유신이 검으로 바위를 내려쳤더니 바위가 갈라졌다고 한다. 동쪽으로 선도산, 벽도산 너머 희미하게 천년의 고도 경주시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단석산에서 내려오면 바로 ok그린청소년수련원이 나온다. 골프장처럼 잘 조성된 넓은 잔디밭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수련원을 벗어나 걷다 보니 멀리 앞쪽에 높고 시커먼 산이 나타났는데 정상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백운산, 고헌산이 코앞, 밤중에 저 무시무시한 산들을 넘어가려면 간식을 충분히 먹어 둬야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 나올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트랭글을 보면 아직도 백운산은 아득하다. 몇 번의 암벽과 비탈길을 지나고, 칡넝쿨 같은 나뭇가지 터널을 통과하고서야 삼강봉, 백운산이 나왔다. 백운산으로 불리는 산들은 어디나 쉽지 않다. 이곳 백운산은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 발원지의 하나다.
백운산에서 고헌산으로는 오르막 돌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의 직선으로 1,000미터 넘는 정상까지 나 있는 돌길을 오르는데, 몸은 피곤하고 눈은 감겨 왔다. 위쪽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이제 능선이구나 싶으면 능선은 아직도 먼 길, 천상으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는 듯한 인고의 높이다. 정맥꾼들 아니면 누가 이리 멋없고 험한 산을 오를까 싶다. 밤 11시 50분쯤 정상 부근 데크에 도착해 쪽잠을 청했다.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오래 누워 있을 수가 없다. 대장님은 춥다고 금세 일어나 길을 재촉한다. 반쯤 잠긴 눈을 주워 담아 밤안개 자욱한 고헌산을 지났다. 영남알프스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고헌산은 서쪽으로 가지산, 남으로 신불산과 취서산이 이어져 있다. 밀양강은 이곳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창천, 청도천과 합류하여 밀양시 부근 삼랑진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한다. 고헌산에서 정상휴게소로 내려가는 길도 삐죽빼죽 튀어나온 돌들로 신경이 곤두섰다. 잠시 한눈을 팔면 발목을 삘 것 같아 졸지도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왔다. 낮에 걸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밤에 걷는 산 중에는 최악의 코스다.
정상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고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신원봉을 지나 운문령으로 가는데 얼마나 졸리던지 나도 모르는 염불이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웅얼거려도, 입안 가득 물을 머금어 봐도 감기는 눈은 추켜올려지지 않았다.
임도에 쭈그리고 앉아 졸다 상운산 가는 길을 놓쳤다. 정신없이 가다 보니 쌀바위 옆으로 데크가 나온다. 우의를 뒤집어쓰고 잠시 누워 있으니 후미가 따라왔다. 새벽 6시가 넘어 가지산에 도착했다. 가지산(加智山, 1,241m)은 청도군 운문면과 밀양시 산내면,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영남알프스 산 중에서 가장 높다. 새벽안개가 자욱해 정상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설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지평선 위에 가물거리는 희미한 빛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고 싶었다고 했던가. 극한에 다다르지 못한 느슨함과 허전함이 밀려왔다. 저 희부연 안개 속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면 그 빛이 보일까. 정상 바로 옆 주막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도사님 백구님이랑 막걸리 3병을 나눠 마셨다. 옆자리의 세 분은 108킬로 알프스 태극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인사를 하고 주막을 나올 때쯤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중봉, 석남고개, 격산을 지나는데 또 졸음이 찾아왔다. 졸면서 걷다 보니 영남알프스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능동산이다. 지루한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곧 배내고개에 도착한다. 휴게소 식당에서 간단히 씻고 아침 식사를 했다. 고개에는 울긋불긋 차려입은 산객들이 산행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언양땅이 내려다보이는 배내봉에서 모여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부터의 산행은 한없이 여유로울 것이었다. 간월산은 동북쪽으로 태화강의 지류인 작괘천이 발원하고, 동쪽 남천 주변에는 이 지방의 중심지인 언양이 자리한다. 정상 바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어 사진 찍기도 쉽지 않다. 백구님이 사 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느릿느릿 간월재로 향했다.
간월재에는 ‘울주오디세이’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축제객과 등산객이 빼곡히 들어차 공연을 관람한다. 공연장 옆으로는 수백 개의 방패연들이 천천히 꼬리를 흔들며 산 너머로 미끄러져 갔다. 가야금과 기타 소리가 꿈틀거리는 연줄을 따라 까마득히 허공으로 번지는 것 같았다. 억새는 지휘하듯 손을 흔들어 소리를 떠나보냈다. 산정에서의 축제가 낯선 사람들은 엄숙하거나 표정이 없다. 악기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산은 방패연과 소리 사이에서 멀뚱거렸다. 사진을 찍다 보니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신불산 오르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사철 그 풍경이 아름다워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신불산은 울주군 삼남면과 상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울주 지방의 선비들이 정자를 지어 청유하고, 시인 묵객들이 많이 찾던 곳이라 했다.
영축산 가는 능선에 광활한 억새밭이 펼쳐졌다. 아직 이른 철인가, 노릇노릇한 억새평원 사이로 뻣뻣하고 푸른 기운이 언뜻번뜻 비쳤다. 기웃기웃 내려앉은 햇살은 억새밭에서 가늘게 흔들린다. 사잇길을 따라 억새 등을 밟고 가는 바람 소리가 청량하다. 서둘러 떨어진 낙엽을 거두며 가을은 서성이는데, 마음만 한달음에 달려가 그만 붉어졌을까. 그대 향한 기울기만큼 누웠다 일어서는 억새풀이여,
가지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영남알프스는 능동산에 이르러 한 줄기는 밀양의 천황산에서 제약산으로 이어지고, 배내고개를 건너 남진하는 줄기는 간월산, 신불산을 지나 영축산에 이른다.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자는 한자사전을 보면 '취'로 읽혀져 산 이름을 영취산, 취서산이라고 하는 등 혼동이 있었는데,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 영축산으로 확정했다고 한다.
영축산에서 지내마을로 내려가는 5킬로 남짓 하산길은 듣던 대로 난코스였다. 길고 긴 급경사 내리막길과 빙빙 돌아가는 임도에 발바닥은 불이 나고 무릎은 허물어졌다. 영축산 남동쪽 자락에 있는 지내마을은 남쪽으로 양산천이 흐르고 인근에 통도사가 있다. 가을날의 길고 긴 정맥길이 그렇게 끝이 났다.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아침 공기가 쌀쌀하네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
긴~거리에 졸음땜시 쪼매 힘드셨지요~~
졸음만 떨치시면 국공감인데...ㅎ
수고 많았습니다.
낙동정맥 여섯 번째 야기~머릿속에
잘 집어넣었습니다.
낼 오후에 뵙겠습니다~~^-^
거의 방언 수준의 잠꼬대를 참아 내느라 고역이쥬? ㅋㅋ 항상 감사~~~
이번에는 먼거리를 이동하셨군요.
영남태극하면서 걸어본 고헌산이며 쌀바위의 지명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이제 다음에는 낙동도 졸업인가요?
수고많으셨습니다.
고헌산, 아이고 까칠해요. 쌀바위는 옆 데크에서 누운 기억만 나구요. ㅎ 이 가을 뽀송하게 건너시길요~~~
영축산에서 지내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낙동정맥 전체에서 가장 표고차가 큰 곳이지요. 긴 산행으로 대미지 입은 다리로 거기를 내려서시느라 참 고통스러우셨을 것 같네요. 길고 긴 낙동정맥길도 이제 끝이 보이고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ㅋ 지내마을, 이름도 쫌 징하지요? 아고, 참 내려가기 거시기하더만요. 시그널 도움 많이 받고 있습니다. 멋진 가을 되시구요~~~~
지났던그영알을 다시금 상기시켜주시네요. 저희는 거기서 처음 눈다운눈을보았지요..
햐, 눈 쌓인 겨울의 영알은 또 다른 절경이겠네요. 붉은 가을 조심히 잘 건너시길 ~~~~
저런저런 빡시게 정맥길을 타셨네요. 이제는 눈에 익은 클럽님들이 보입니다. 한달전 다녀온 영알태극길이 황금물결로 변했네요. 비박하기 딱 좋은 곳인데 축제까지 열렸으니 참 발걸음이 안떼졌을텐데ㅎ고생많으셨습니다~~
영알태극 다녀오셨군요. ㅎ 지금쯤 억새는 더 익었겠네요. 대간 끝나고 근질근질하시겠습니다? ㅋ
ㅎ네 근질은 아니고 놀면 폐물될까 걱정입니다...ㅎ
쫌 쉬었다가 뭐라도 또 시작하시겠지요~~~
사진으로 보면 좋은 풍경들인데
걷는 동안 모두 즐거운 길들은 아니었죠 ~ㅎ
낼 뵐께요 ^~^
먼 길 이끄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 길 많이 생각날 거 같네요. ㅎ 덕분에 낙동의 날머리가 보이네요.
다음번인줄 알았더만 이번에 영알 구간이었군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주말에는 가급적 피하고 싶긴 해유..
잘 보고 갑니다.
어쩌다 보니 축제 기간에 영알을 지나게 되었네요. 사람들 틈의 산행은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ㅎ
길게 걸으셨네요.
유장하게 풀어 쓰신 산행기 정독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고, 잘 계시죠? 시티재의 지원, 아직도 감사한 마음 간절합니다. 언제 또 뵐 날이 있겠지요~~~
후기와 시진을 보면서 걸음했뎐 길이
새록새록 떠올려지녀요. 지루하고 미끄러운 구간을 지나서 눈앞에 펼쳐진
억새평원 풍광은 다시 걷고싶네요.
수고 하셨읍니다.~~
졸음이 참 힘들었던 구간이었네요. 이제 낙동정맥도 끝이 보입니다. 마지막까지 화이팅입니다~~~
멋진 영알 힘든걸음 하셨네요.
이기는자가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긴구간이라 고생 많았습니다.옹
감사합니다. 이제 호남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죠? 남은 길도 즐겁게 건너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