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 광해 2년, 봉훈랑군자감판관자 종5품 下>
吏曹萬曆三十七年
七月十二日奉
敎承訓郞守軍資監判
官魏山寶爲奉訓郞
軍資監判官者
萬曆三十七年七月 日[印]
●내용 및 특징
1609년(광해 2)7월 12일 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承訓郞守軍資監判官 魏山寶에게 奉訓郞軍資監判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승훈랑은 정6품 동반(東班) 문관에게 주던 하계(下階) 품계이고, 판관은 여러 관서의 종5품 관직이다. 관직이 품계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守’자를 붙였다.
봉훈랑은 종5품 동반(東班) 문관에게 주던 하계(下階) 품계이고, 군자감판관은 군수품의 저장과 출납을 맡은 군자감에 소속된 종5품 관원이다.
☞ 봉훈랑(奉訓郞) : 조선시대 종오품(從五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종오품의 하계(下階)로서 봉직랑(奉直郞)보다 아래 자리이다. 1392년 문산계가 제정된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1894년 7월 갑오개혁 때, 종5품은 정5품과 함께 5품으로 단일화 되고, 봉직랑과 봉훈랑은 통선랑(通善郞)으로 개칭되었다. 봉훈랑 처(妻의) 직명은 공인(恭人)이라 하였다.
☞ 판관(判官) : 조선시대 소속 관아의 종5품관으로 행정실무를 지휘, 담당하거나, 지방관을 도와 행정·군정에 참여하였다. 조선 초에 판관이 설치된 관아로 중앙에 상서원·사옹원·내자시·
내섬시·군자감·제용감·봉상시·내의원·예빈시·관상감·전의감·사복시·군기시·상의원·선공감·전함사 등이 있고, 지방에는 도·유수부· 대도호부·목·도호부 등이 있으며,
그 뒤에한성부·사역원·훈련원·
돈녕부 등 중앙관아에 증치 되었다. 이것은 1746년(영조 22) 이전에 훈련원은 증치되나 내의원과 외관을 제외한 모든 관아는 감원 또는 폐지되는 변화를 거쳐 조선말까지 계승 되었다. 조선 후기에 판관이 폐지된 관아로는 상서원·사옹원· 내자시·사섬시·예빈시·상의원·선공감·전함사 등이 있다.
※ 문화현령공(諱 山寶 23世, 1593~1656)은 軍資監正 弘宙의 子이며, 號는 망미당(望美堂)이다. 公은 1609년(광해 2) 봉훈랑군자감판관 역임 후 1620년(광해 13) 투필(投筆) 무과에 급제, 예빈시(禮賓寺) 주부(主簿)등을 역임하고, 호란(胡亂)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왕을 호가(扈駕)하였다. 또한 동궁(東宮)이 심양에 불모로 갈 때도 호종하며 호위의 임무를 수행했다. 公은 난리 후 호성정사일등훈(扈聖靖社一等勳)에 록(錄)되고 이듬해인 1640년에 문화현령(文化縣令)에 임명됐으나 취임하지 않고 귀향해서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配는 淑人 영광丁氏이며, 묘소는 府南浦谷左麓艮座로 雙兆이다. 1822(壬午)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됐다.
문화라는 지역이 있었나요?
생소한 지명입니다.
碧泉 위윤기
文化柳氏가 있는데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이 본관이지요!!
碧泉 위윤기 문화현령 교지 게재시 언급함이 타당하겠습니다.~~
梧堂 위운량 님
어디인지요~~?
저도 왠만하면 지명은 잘 아는 편입니다. 그런데 처음입니다
碧泉 위윤기 오당대부님이 언급하신 황해도가 맞습니다...
梧堂 위운량님 벌써 공개해버리면 넘 싱겁습니다.
梧堂 위운량 栢江 위성록 (34세, 장흥 방촌) 재치(財痴) 위현동 님
감사합니다
황해도에 있군요
휼륭하신 문중 조상님의 옛발자취와 조선시대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백강아재의 교지편이 흥미를 더해 갑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다른 문중에서도 이번 기회에 적극 참여하여 유물을 공개하면 좋겠습니다
碧泉 위윤기 선조의 교지, 고문서가 장흥위문 내에 현존 소장하는 곳은 본향 방촌•행원이라 사료됩니다. 이중 방촌의 교지 등은 현재 방촌유물전시관에 소장 되어 있으나, 행원문중 내 각 종중 소유 교지가 현재 어디에서, 누가 소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소장 후손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아울러 여타 지역 종원들께서도 혹 가내에서 소장하는 교지, 고문서가 있으면 연락, 공개 등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栢江 위성록 (34세, 장흥 방촌) 님
아재의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되어 알알이 맺히리라 사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