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창문 또는 출입구 주변에 생긴 물 자국과 발자국은 비가 튀어서 자연적으로 들어온 것과 '나'와 경찰의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인의 체격은 평범했으며 목격 직후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는 5구 정도의 시체를 2층에서 1층, 밖을 거쳐서 운반하는 것은 무리다.”
“건물 착각은 일어나지 않았다.”
“목격했을 때 '나'가 본 것은 본문에 묘사된 그대로이며 '나'가 목격한 것 외의 물건은 신문지, 빈 컵라면 그릇 등의 쓰레기가 전부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현장에 시체나 핏자국은 없었으나 물건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창문의 크기는 사람이 통과하기에 충분하다.”
“2층의 어떤 창문도 '나'의 목격 이후 열리지 않았다. '나'의 목격 이전에 2층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2층 창문 중 깨진 것은 없으며 2층에서 밖으로 시체를 던질 수 있는 곳은 창문뿐이다.”
“이 게임은 사건을 인간의 일로 설명하면 인간의 승리, 설명하지 못하면 판타지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 마녀의 승리가 된다. 검은 인영에 오타는 없다.”
마녀가 선언한 빨강이 당신을 당혹게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9분 이내에 시체 다섯 구를 운반하고 핏자국을 없앨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녀는 당신이 머리를 쥐어 싸매는 걸 보며 즐겁게 웃는다. 어찌나 얄미운지 몇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다.
“9분 이내에 현장을 정리하는 건 무리라니까. 마법이야, 마법. 내가 마법으로 전부 정리해버린 거라고.”
“시끄러워. 아직 안 끝났어.”
당신은 빨강 선언을 잠시 그만두고 그동안의 정보를 정리해본다. 정리된 정보를 두고 생각을 거듭해나가자 당신은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당신은 느낌의 근원을 향해 생각의 방향을 돌린다. 당신은 상황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폐건물에 진입하기 전과 진입 직후부터 나가기 전까지, 경찰과 함께 현장으로 돌아온 뒤의 일들을 차근차근 떠올려 본다. 걸리는 곳은 진입 직후부터 나가기 전까지의 일이다. 그 사이의 일을 하나씩 되짚어보자 당신은 모순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당신은 진상을 깨닫는다. 허무하다 못해 지금까지 고민해왔던 것이 허탈하기만 하다. 당신은 마녀에게 묻는다.
“복창요구. ‘나’의 목격 내용에는 현장 상황과 모순되는 것이 존재한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질문이야.”
마녀가 태연하게 대답한다. 당신은 마녀를 비웃으며 평정을 무너트린다.
“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지. 복창요구. 목격 내용과 현장 상황과의 모순의 의미는 ‘나’의 착각에 의한 것이다.”
“…목격 내용과 현장 상황 사이의 모순은 존재한다. 이는 ‘나’의 착각에 의한 것으로 모순이 무엇인지에 대한 복창은 거부한다.”
마녀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당신은 마녀의 반응을 통해 추리가 들어맞음을 확신한다. 당신은 마녀재판을 선언한다.
“마녀재판. 시체의 개수는 하나다. ‘나’의 목격에서 피투성이의 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근거는?”
“현장상황의 조명이 근거야. 폐건물 근처는 가로등 대부분이 고장 나 상당히 어두웠지. 정확하게는 현장 목격 당시 범인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광경에서 ‘검은 인영이 누군가의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를 통해 알 수 있어. 그리고 다음은 ‘두 사람 옆에 피투성이의 시체 여러 구가 보였다.’는 부분. 현장의 조명 상태는 범인과 피해자가 ‘검은 인영’으로 보이는 수준이야. ‘피가 보일 리가 없지.’”
“‘나’의 건강과 정신 건강은 모두 양호하다. ‘나’가 폐건물을 들어간 뒤부터 나오기 전까지 건물에 있던 사람 수는 ‘나’와 시체를 포함하여 모두 일곱이었다. 잊은 건 아니겠지?”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더라도 공포에 질리면 충분히 환각을 볼 수 있어. ‘나는 겁이 많다.’, ‘폐건물에는 괴담이 있다.’, ‘‘나’는 현장 목격 이전과 직후 모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 사실들이 범인과 피해자 옆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고 착각을 일으킨 거다. 범인과 ‘나’, 피해자, 누워 있는 네 사람의 합은 일곱. 해당 빨강에 모순되지 않지.”
진상을 알고 나니 허무할 지경이다. “범인의 체격은 평범했으며 목격 직후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의 시간상으로 5구 정도의 시체를 2층에서 1층, 밖을 거쳐서 운반하는 것은 무리다.” 라는 마녀의 말도 진상을 방해하는데 한몫했다. 이 빨강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무리라는 이야기지만 시체가 5구라는 암시를 주고 있기 때문에 추리의 방향을 5구의 시체를 옮기는 방법에만 국한하고 말았다.
마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걸 보며 당신은 마무리를 짓는다.
“진상은 이렇게 된 거야. 범인과 피해자, 나머지 네 명의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로 폐건물의 2층 방에 있었어. 그러던 도중 범인과 피해자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범인이 피해자를 공격하기에 이르지. 이때 누워 있던 사람들은 자고 있었을 거야. 그러던 도중 ‘나’가 비를 피해왔다가 소리를 듣고 현장을 목격하지. 범인은 ‘나’를 쫓지만 포기하고 현장으로 돌아와. 이때 피해자는 이미 죽었거나 기절해 있었겠지. 이후 범인은 나머지 사람들을 깨운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노숙자나 가출 청소년 무리였을 거야. - 이 부분은 틀려도 상관없지? - 경찰이 반갑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피해자가 아프다고 속였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다들 1층의 문이나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어. 피는 ‘나’의 착각이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고, 피해자는 운반되어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어. 아마도 처리를 위해 산으로 운반되었겠지. 어때? 이래도 마법이라고 주장할 거야?”
당신은 마녀가 점차 깨져가는 것을 본다. 마녀는 당신이 대답을 요구하자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라진다.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판타지를 부정하는 데 성공했다.
목격 이후로 일주일이 흘렀다. 나는 범인이 잡혔다는 전화를 받았다. 일단은 목격자이니 와서 확인해 보라고는 했지만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꽤 민망한 이야기지만, 경찰들이 손전등을 끄고 나서야 내가 겁에 질려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현장의 조명 상태로는 피가 보일 리 없었다. 진상을 해명하고 나서야 경찰이 나를 의심한 이유 중 하나가 현장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폐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가출청소년 무리였다. 가출 전에 모여서 술과 담배를 즐기던 곳을 가출 이후 잠자리로 썼다고 한다. 범인은 피해자와 평소에 마찰을 일으켰는데 크게 싸운 뒤부터 피해자에게 살의를 품었다. 살의는 내가 방문한 날 밤 잠들고 있던 피해자를 기습했다. 내가 목격했을 당시 피해자는 이미 죽어 있었고 흥분상태에 빠져 있던 범인이 계속 목을 조르고 있었다고 한다. 범인은 나를 쫓다가 포기한 뒤 내가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생각했고, 방으로 돌아와 친구들을 깨워 피해자가 아프다고 속여 다 같이 건물을 나왔다. 하지만 병원으로 데려갈 수는 없어서 범행을 고백했고, 협조하지 않는 사람은 공범이라고 거짓 진술할 것이라고 협박하여 모두 산으로 도망갔다는 이야기였다. <fin>
첫댓글 시....시체가 아니였어......엄청 당혹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