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 구름과 아낙시메네스
8월 접어들며 구름도 달라졌다. 장마 지나고 오후마다 소나기가 내리던 7월 말엔 1~2킬로미터의 고도로 낮게 깔리며 흐르는 층구름이 많았다. 이른 아침 산마루에서 온 산천에 구름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물론 발아래 몇 백 미터의 낮은 층구름들도 많았다.
하지만 8월이 되자 산천에서 만들어지는 구름 양이 1/3로 줄었다. 대신 하늘이 더 맑아지고 뭉게구름으로 불리는 쌘구름이 눈부시게 피어 돌아다닌다. 고도 2~3킬로미터의 두터운 구름인지라, 해에 의해 반사되는 위쪽이 눈부시게 하얗고, 밑쪽은 회청빛으로 그늘져 있다. 손오공의 권두운이 이런 쌘구름일 것이다. 물론 실제 구름의 크기는 몇 킬로미터의 큰 구름들이다. 이런 권두운들이 동동동 떠다니는가 하면, 안으로부터 구름꽃을 쉼 없이 피우는 구름장들도 있다. 낳고 낳고 있다.
어쩌면 태초에도 저랬을 것이다. 구름의 저 모습으로 지구생명이 수 십 억 년 거듭 태어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보는 장면이 바로 태초에도 벌어졌던 장면이라는 생각을 하니 나는 다시 장엄한 감동에 젖는다. 영겁회귀의 감정을 구름의 저 생생(生生)한 모습에서 발견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창세기 혹은 생성으로 번역되는 그리스 말 제네시스(genesis)나 공자가 『계사전』에서 주역을 ‘生生之謂易(낳고 낳는 것을 역이라고 한다)’이라 한 것이나 동일한 뜻이 담겨 있다. 생성의 기원을 밝히고자 했던 최초의 자연철학자로 불리는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기원이라고 말했다. 탈레스는 만물이 공통적으로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것 때문에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말한 아낙시메네스야 말로 구름의 철학자일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기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것이 가장 고를 때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지만, 차가운 것, 뜨거운 것, 축축한 것, 그리고 움직이는 것에서는 보인다. 그것은 언제나 운동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운동하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모든 것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촘촘해지거나 희박해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그것이 흩어져서 가장 희박하게 될 때는 불이 된다. 반대로 공기가 촘촘해진 것이 바람이다. 구름은 압축에 의해 공기에서 만들어지며, 더 많이 촘촘해지면 물이 만들어지고, 그보다 더 많이 촘촘해지면 땅이 만들어지며, 가장 많이 촘촘해진 것이 돌이다. 따라서 생성의 가장 주도적인 것은 대립자들인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다.’(히폴뤼토스의 『모든 이교적 학설들에 대한 논박』에서 인용)
아낙시메네스는 지중해에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위와 같은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7월말 나는 매일같이 구름이 생기고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아낙시메네스가 변화무쌍한 구름을 관찰하고 구름의 운동과 변화에 의해 4원소(불, 공기, 물, 흙)를 묘사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구름은 생성(제네시스)와 생생(生生)의 창조를 반복하고 있다. 무한히 피어오르는 저 구름이야말로 창조 작업이고 축복이고 예배다.
내 상상은 금새 동풍의 하늘신이 되어 하늘에 깔린 권두운의 징검돌들을 껑충껑충 뛰어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