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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주만에 돌아온 자리,
한뼘쯤은 족히 자란 가을..
냉기마저 감지되는 싸늘함이 그간의 공백을 말해준다.
십여년쯤 이어져온 해외답사.. 어느덧 연례행사처럼 익숙해져 가는탓에
행여
그 의미를 줍는 일에 소홀해질까~
오감이 무뎌져가는 나를 애써
경계해가며 장도에 오른 길..
1년전,
유럽에 첫발을 내딛었던 이태리행이 포르테의 강렬한 울림이었다면,
이번 스페인길은 메조포르테의 잔잔함..
대지진후의 여진과도 같은 만남은
원색이 주는 선명함 대신
파스텔톤으로 채워진 오래된 소박함이었다..
다만,
짝퉁 신자로서 살아가는 내게
테레사로서의 나를 다시금 일깨워준, 마치
성지순례길과도 같은 은총이
길목마다 예비되어 있을 줄...
어둠이 가시지않은 새벽녘 성지의
텅빈 광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은총의 세례를 나는
오롯이 받고 또 받았다..
세개의 나라를 섭렵한 길..
그 여정은 끝이 났지만 난 또다른 시작을 도모하리라..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이동중에 본,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재로한 영화.. "The way"의 그들처럼
삶이 이어지는 한..
그래서
오늘의 귀환은 잠시간의 쉼표,또다른
도움닫기를 위한 착지일뿐..
떠나야만 비로서 잉태되는 꿈..
길위에서만 보이는 그길..
나는 꿈을 꾸듯 나서리라
또다시...
~~~ ~~~ ~~~ ~~~ ~~~
박쥐처럼 야간비행끝에 도착한 경유지,두바이 공항은 시차로
여전히 어둠속..
착륙을 알리는 안내맨트에 반갑게 내다본 창밖으로 이색적인 풍경이 목격된다..
보석밸트를 사방에 두른듯한
이국적인 풍경인데..
자세히 내려다보니 차가 다니는게.. 도로였다.. 촘촘하게 박혀진듯한 그것은 바로 도로변 가로등이 아니던가.. 불모의 땅 거대사막에 물질적 풍요를 일군,
저들의 힘, 오일 파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환승을 위한 세시간의 체류끝에 오른 카사블랑카행 비행기..
유난히 친절한 핸섬가이 승무원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프랑스국적의 남자)이
주도한 폴라로이드 사진촬영 이벤트..
게다가
즉석에서 깜찍한 액자에까지 무료로 끼워주는 완벽함... 무료함을 달래줄 금상첨화의 기회였다 ..ㅎ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얼마쯤지나
난 넌즈시 제안하나를 건넸는데
바로 5쌍의 부부를 위한 기념촬영순서.. 3쌍이 이에 응하므로써 기내에서 벌어진 이 대박사건은 막을 내렸는데
어느새 비행기는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이 보다 더 좋을수없다 식의 특별보너스가 아니었던가...
입국장을 빠져나와 드디어
처음 밟아보는 땅,
아프리카북부의 모로코... 묘한 감흥이 스쳐 지나는데 한낮의 태양이 어찌나 강렬한지...
낯선 이방인에 대한 첫인사치고는
매우 뜨겁다..
예정된 남자가이드가 아닌 참한 외모의 여자가이드가 우릴 안내한다나~
잠시 혼선이 일었지만
"인샬라.." 알라신의 뜻으로 알고 흔쾌히 접수.. 이틀간의 모로코 일정이 시작된다.
거리는 남루한 티가 역력한데 여기저기 보랏빛의 꽃들이 이국적인 자태로 시선을 끄는데 몇년전 인도네시아에서 나를 매료시켰던 녀석들과 아주 흡사한 닮은꼴...얼마를 달려도 아프리카임을 끄덕일만한 일말의 단서도 포착되지않은체 현지에서의 첫번째
식사시간 당도...
시내에 위치한 한국식당에서 고등어조림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자그마치 기내식에 이은 네번째 식사.. 하지만, 그날아침 대서양에서 갓잡은 생선이 일품요리로서 손색없는 맛이었다..
식후에 접한 한국의 기록적인 폭우소식에 여기저기서 탄식어린 염려가 터져나오고..
다시한번, 인샬라..
자연재해 앞에 인간의 미약함이라니~
우린 저마다 피해유무를 확인해본후 산책 겸 대서양으로 향했다..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마주한
지구 반대편의 바다는
철이 지나서일까~ 잊혀진 자의 뒷모습만큼이나 쓸쓸했다.
하얀집들이 즐비한 도시라하여 붙혀진 이름, "카사블랑카"
하지만,
영화속의 그 모든것들은 그 어데도 없었고 다만 영화속 주인공 릭이 운영하던 세트장 카페가 공전의 힛트를 기록한후 역으로 이 도시에
돈벌이 목적으로 문을 열고 성업중이라는데 예약하지 않으면 그나마 들어갈수도 없단다..
첫단추부터 역락없는 사기를 당한셈..
모로코 제 2의 도시, 카사블랑카는 무죄.. 무지한 나만이 유죄일뿐~
누구를 탓하랴~ㅎ
다시한번 인샬라..
1990년대에 세워진 현대식 모스크와
시내의 비둘기광장을 둘러본후 우리일행은 첫번째 호텔에 체크 인..여장을 푼후 다소 엉성한 식단의 부페로 저녁을 먹고는 이른 잠을 청했다.
일체 밤 외출을 불허했지만
공식카메라맨 필사님과 몇몇의 용감한 전사들이~ㅎ 모스크의 야경을 담기위해 나가는것만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전날 저녁보다는 한결 업그레이드된듯한 호텔 조식후 향한곳은 모로코 왕궁..
새벽출발을 위해 하나 둘 버스에 오르는데 마치 거사를 위해 출정하는 전사들처럼 두터운 차림의 완전무장한 모습들이 다소 비장하게까지 느껴지는게..
여행지에서 느끼는 야릇한 흥분이 엄습, 아침을 달군다..
한켠의 모스크인듯한 건물안으로 새벽 기도를 위해 모인 회중들이 목격된후 얼마나 달렸을까~
환하게 열린 하루.
별다른 제지없이 입장한 왕궁은 우리가 전부.. 자유롭기 짝이 없었는데, 다만 몇몇의 경호원들이
어린 왕자가 지나간다는 이유로 동선을 제한하니 이색경험에 흔쾌히 협조할밖에....ㅎ
가봉정부에서 선물했다는 아프리카 튜립이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정원에서 우리들은 싱그러운 아침을 만끽했는데, 문득 이곳이 아프리카일까~? 나도 모르게 묻는건..
몇년전 방문한 콜롬비아에서 느낀 남아메리카의 부재가 떠올랐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핫산탑과 무함마드5세의 능..
술탄이 원래 모스크를 만드려고 했으나 왕이 죽으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첨탑과 300여개의 거대돌기둥만 남아있다는데 미완성의 건축물이 오히려 완성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으로 압도한다..
한국의 여백미가 부드러운 여성의 그것이라면 이곳은 보다 더 직설적이고 역동적인 아름다움으로 사진을 절로 부르는 무대...
한편의 비데오를 찍듯 여기저기서
샷터세례...국장님이 가져온 비장의 무기, 셀카앞에서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꾸스꾸스라는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향한곳은 모로코 일정의 하이라이트, 페스지역의 "메디나"이다
구시가지라는 뜻의 <메디나>..
변화를 거부하며 과거로 남아있기를
고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14세기 스페인
코르도바의 무너져가는 왕조를 탈출한 사람들이 건설한 이 도시는
9,000여개의 실핏줄처럼 이어진 미로로 구성된체 성곽에 둘러쌓여 그들만의 왕국을 세웠다.
1989년 도시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 가장 오래된 주택가,이곳에는
사원부터 대학은 물론, 좁은 골목마다 빼곡하게 늘어선 가게들과 집들이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따금 무거운 짐들을 실어나르고 있는 당나귀들은 이곳에서는 적어도 관광객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의 존재로 한몫을 단단히 거들고 있었다.
숨은그림찾기 같은,
이 구경이 다할즈음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는곳은 천연가죽염색현장, 천여년전의 옛방식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는데
악취를 의식한듯 민트잎을 하나씩 건넨다..
3년전
뭄바이에서 목격한 빨래터와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
다른건,
코끝으로 전해오는 진한 악취일뿐..
몇몇의 젊은이들이 노동으로 정직한 돈을 벌고 있었고 나는 구두한켤레와 핸드백 하나를 사들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숨조차도 쉴수없을것 같은 이곳에서도 신성한 삶은 이어지고
평생동안 이곳을 낙원처럼 여기며 살다간 이들도 있겠지~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인들
이곳을 비껴나갔을까~
어설픈 삶의 고통쯤은
차라리 바람처럼 날려버려야지..
우울도 흐릿해질것만 같은 이곳은
내게 아주 나직한 음성으로 삶의 조건들을 되묻고 있었다.
다음날 지브롤터로의 항해를 위해
항구도시, "탕헤르"로 이동할 차례
5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호텔 식당에는 여행객들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이미 행복한 저녁을 즐기고 있었는데 우리일행들은 생선가스를 메인으로 하는 식사를 들며 낮에 주문해둔 대추야자와
아르간 오일등을 수령하느라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식사를 마쳤고
풀장이 있는 정원을 거쳐 저마다의 객실로 이동,내일을 준비했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스페인으로 이동할 차례..
필요한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기위한 단 1시간이 전부...
바다길이 갈라놓은 건
대륙이 지닌 명암의 차이뿐일까~
물길은 하나뿐인데
그 물길의 등기는 엉뚱한 자의 몫이고..(영국령)
평생을 털어도 이를수 없는 유토피아와 가볍게 닿을수있는 주말데이트 코스쯤으로 두 대륙의 운명을 갈라놓고 있었다..
한눈에보아도 깨끗하게 단장된
항구도시, 탕헤르는 언덕위로 수많은 하얀집들이 자리한게
그렇다면, 제 2의 카사블랑카인 셈 ..
흥겨운 선상 와인파티에 한차례
즉석 저지 해프닝끝에 마치
놀이하듯 다다른곳,
드디어,스페인이다..
부둣가 한켠엔 오래된 성벽인듯한 석조물이 보이고, 바다에는 서너명의 젊은이들이 보트에 올라 스포츠를 즐기는듯 했는데, 그러고보니
어느새 금요일 .. 주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말라가 산맥을 곁에 끼고
협곡인듯한 산악지대를 아슬아슬하게 두시간여동안 달리는데
차창밖 풍경은 물론, 모로코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진화된 것으로
순식간에 모로코의 아쉬움을 잊으란다..
얼마쯤 도보로 이동해 다다른
아담한 광장 한켠에 있는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향한 곳은 누에보 다리와
스페인 최초의 투우장이다.
안다루시아지방의 작은 도시,론다로
관광객을 유인하는 두 주범인데,
신고전주의 양식의 투우장을 우리는
외형만 보기로 하고, 굳이 돈을 별도로 지불하면서까지 내부를 봐야할 이윤 털끝만큼도 없었으니,
사람들의 무차별적 동물적인 욕망을 위해 죽어가는 저 가엾은 소들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결정이었으리라..
강렬한 태양속을 뚫고
언덕인듯한길을 돌아서니 눈앞으로
아스라히 장관이 펼쳐지는데..
건너편 언덕위로 하얗게 보이는 집한채가 바로,
헤밍웨이가 머물던 집이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배경이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이 용감한 행동주의 문학의 거장은 우울증이란 덫에 걸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는데,
저마다의 종을 울리며 사는 삶..
구원에로 이르는
마침내의 종소리를
들었더라면.. 비극적인 총성은 울리지 않았을것을~
부질없는 상념이 먼지처럼 스쳐지나간다..
몇발자욱을 옮기자 실체를 드러내는
노구, 요새화된 이 마을의 협곡으로 나뉜, 신.구 시가지를 연결해주는
<누레보 다리>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이어진체
오랜 역사를 과시하는듯 했는데
다리 아래에서 올려다봐야만 그 진수를 느낄수 있거늘
눈높이에서 바라본 다리는 그저 육중한 덩치의 그것일뿐~
별다른 맛이 없다..
시간상 내려가는걸 포기하고 버스로 돌아와야 했는데..
이유인즉,
다음날 가기로한 세비아 대성당이 갑자기 휴관을 예고하는 바람에 일정을 앞당겨 대성당을 보기로 한 것이다..
두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도시, <세비아>
1492년 여름
제노바 출신의 선원이었던 한사내가
인생을 건 모험, 신대륙을 향한 첫 항해의 닻을 올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대 항해시대를 연 무역항이자,
1519년, 첫 세계일주를 떠난 마젤란도 이곳에서 역사를 썼다.
식민지로부터의 모든 산물들이 이곳으로 집결, 부의 원천을
낳은 이 도시에는 자연스레 세속적인 권력과 밀착된 성당들이 들어섰을테고,세계 3번째의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양식의 대성당도 그중 하나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입구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이슬람세력이 세운 미나랫을 개조해 만든 기독교양식의 첨탑은 고스란히 지나간 역사를 증언하듯, 정상에 신앙의 승리를 상징하는 청동여신상을 둔체 위용을 자랑하고있었다.
마치 등산하듯 첨탑꼭대기까지 올라 사방을 둘러본후 오렌지나무가 조경수로 빼곡히 자리한 정원에서 기념 단체촬영을 한후,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콜럼부스의 유해가 4명의 왕들에 의해 들어 올려진체로 안치되어 있었고 특이한것은 그의 아들 유해도 뒷편 한쪽에 모셔져 있었는데 아버지가 탐독했던 책 1만여권을 기증하는 등 아버지를 재조명하는데 기여한 공로의 댓가로서 일반인의 신분으로 성당에 묻히게 된 영광을 잘난 아버지덕에 누린 셈이리라.
하지만,
전리품들을 모아 만들었다는 황금과 보석들로 만들어진 화려하기 짝이없는 성구들이 전시된
보물실은 나로 하여금 "이건 분명 잘못이야... 죄악일뿐~
전도라는 명목하에 저지른 약탈의 엄연한 증거를 고백하는 꼴이군.."
씁쓸했다.
세비아성당을 나와 향한곳은
<그라나다>.. 이른바,
무어인들이 세운 그라나다왕조가 1492년 기독교 세력인 아라곤왕국에 항복하기까지 마지막으로 버텼던 이슬람왕국의 도시로서 저 유명한
알함브라궁전의 도시다..
호텔식사로 저녁을 마치고
20명이 넘는 맴버들이 그라나다야경투어에 나섰는데,
결과적인 얘기지만
아뿔사,
자칫 이 선택기회를 외면했던들...
자정 12시, 날을 넘기고서야 돌아온
이날의 야간행은 지워지지않는 화인처럼 내가슴 한켠에 오롯이 새겨져 있음에....
전망대에서 우리일행은 마치 웅장한 할리웃세트장의 요새인듯한 알함브라를 배경으로 뭉클한 추억을
나홀로...또는 여럿이서 지치도록 담은 후에 중세때로 돌아간듯한 고즈넉한 골목길을 마치 악숙한 동네골목을 산책하듯 걸었는데
마냥 헤매여도 좋을 아름다운 밤..
교교한 달빛아래 하얀 담장위로 보석처럼 피어있던 꽃, 부켄베리아는 또 얼마나 우리를 흔들어댔던가..
달빛샤워에 발바닥마사지까지..
이미 40유로의 지불은 맨잎이어도 부족함이 없거늘 약간의 안주를 곁들인 맥주파티까지 벌리고
그라나다 대성당앞에서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컴백 홈...잠못드는 밤은 새벽 1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중 한곳,
알함브라 궁전 친견일이다..
언덕 군데군데 구멍처럼 파여진,집시들의 거처를 지나 삼십여분쯤 지났을까..
한켠에는 긴행렬들이 이른아침부터
줄을 잇고 있었다.
세계적인 관광명소다운 풍경..티켓팅을 위한 행렬이다..
한명씩 가방검사를 한후에 제일먼저 향한곳은 군사시설이 있던곳..
그라나다 왕국의 별궁으로 요새화된 알카사바 성채와 벨라탑에 올라 그라나다시 전체를 내려다본후 향한곳은 카를로스 5세의 궁전..
기존의 사라센양식의 건물에 마구잡이식으로 르네상스양식의 건물을 더해 지었는데 특별히 포르투칼에서 맞이한 왕비를 위해 예배실까지 지었다는데 스페인역사의 황금기 정점을 찍은 이 왕은 정작 한번도 이곳에 와보질 못하고 죽었다고 하니, 버는 놈 따로, 쓰는 놈 따로가 아니던가~ㅎ
잠시 휴식시간을 이용,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궁전내부를 둘러본후 화장실로 갔는데 온통 대리석으로 지어진게 응접실인지..화장실인지.. 창문으로 보이는 정원수를 배경으로 한컷..
찍으니.. 도무지 화장실이라고 누가 믿을까~근사한 작품하나 탄생의 순간..ㅎ
적당한 휴식에 해우까지 마친후 향한곳은 알함브라가 자랑하는 정원을 접수할 차례...
코란에서 알라가 약속한 천국을 상징한다는 이슬람 정원이다..
영원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나무며
온갖 알록달록한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이 중앙으로난 긴 수로와 어울려 환상적인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었는데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눈녹은 물을 끌여들여 이룩한 저들의 집념이 놀라웠다.
광적인 정원사이길 자처했던
역대 술탄들..
어쩌면
황량한 사막의 악조건을 딛고 거둔 승리.. 저들의 근원적인 콤플랙스에 기인한 것일까~
분수와 자로잰듯한 기하학적 구조를 지닌 저들의 정원은 분명 지상에서 누릴수 있는 낙원이었으리라..
정신없이 샷터세례를 퍼부으며
정원관람을 마친후 마지막 출구로 향하는 유도화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일행은 저 유명한 <타래가>의 기타음악,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들었는데 실연의 아픔을 영감으로 해서 태어난 이 명곡이 최고의 빛을 발하는 안성맞춤의 한수였지만..
왕이 거했던 방이나 자매의 방등을
볼수없었던건 옥의 티..
아마도 티켓을 못구했는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알함브라 관람후 인근 현지식당에서
해산물 스프와 닭다리 스테이크로 점심을 먹었는데
식후에 뒤늦게 나온 빵이 압권..ㅎ
갓 구워나온 빵이 어찌나 맛나던지..
제대로 식사중에 제공되었더라면
영영 몰랐을 기찬 맛이었다.
어제에 이은 두번째 세비아행 순서,
대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리틀 알함브라로 불리우는
<알카사르>행이다.
국토 회복운동이 한창이던때 그리스도교 왕국의
정복자들은 이슬람세력을 몰아냈지만 그들이 이루어놓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허물어버릴 용기대신
실익을 택했다..
이슬람 양식을 그대로 도용,우리도 할수 있다는 식의 시도를 했는데
이른바 짝퉁인 셈..
하지만,
동양인의 어설픈 시선만으로도 드러나보이는 진품과의 차이는 여기저기서 어렵지않게 목격되던 시간이었다.
유대인의 거리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무대가 된 거리를 지나 이른곳은
<스페인탑>
콜럼버스 와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두왕국의 왕, 페르난드와 이사벨이
앞뒤로 새겨진 기념탑인데
이 위대한 정복의 시발지인
세르비아에 저들의 동상을 세움은
지당한 일이지만,실은 이 도시뿐만이 아닌 여러도시에서 난 그들을 보고 또 봐야했다.
오페라 <카르멘>의 여주인공,
카르멘이 실제로 일했다는 담배공장(현재는 법대건물)을 지나 다다른곳은 <스페인광장>..
1923년
중남미 엑스포를 열기위해 완공되었다는데 도자기로 일일이 도시별로 역사적인 장면들을 그린 벽화와 의자, 4개의 왕국을 상징하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4개의 다리등이 실로 어찌나 화려한지 동화속 세상 같기도한게 지금은 관공서로 쓴다고하니 이런곳에서 차분하게 업무를 볼수있을지 의구심이 일었다.
또한,
영화 "로마의 휴일"촬영지로 유명세를 탔고,김태희가 CF 촬영을 위해 이곳에 들렸다는데 광장 서쪽끝에 위치한
첨탑인듯한 건물을 대상으로 이교수님의 즉석강의가 곁들여졌는데
그리스양식에서부터 시대별로 건축양식을 총동원한, 이른바
완결판이라는 결론도출 대목에서
그것을 읽어낸 봉촌샘도
몽땅 접목시키고자 했던 저들의 의도도 놀랍긴 매한가지~ㅎ
오징어먹물밥에 스파게티를 곁들인
다소 력셔리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향한곳은 플라맹고 공연 관람순서...
늦게 나온 저녁탓에 5분정도 지각의 도착이었는데 한 귀족의 저택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데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공연장 2층에서 관람한 이 공연은
그 명성에 비해 만족도는 기대이하..
다만,
짚시의 노래인듯한 한 무용수의 애절한 보이스가 인상적이었고, 여성무용수들의 그것에 비해 남성무용수들의 춤사위가 훨씬 격정적이고 정열적으로 느껴졌을뿐..
내 이해도가 부족한 탓인지~?
그라나다 야경에 비해 돈은 비쌌지만
만족도는 훨 낮았다..
다음날,
국경을 넘는 이동순서
포르투칼의 리스본이 첫번째 목적지..
이동을 하는동안 버스에서 본 영화
<콜럼버스>
"역사는 결코 만장일치를 요하지 않는다."는 명대사가 떠오른다.
석양이 지고 또다시 해가 뜨는 바다..
그 바다를 정복할 엄두를 아무도 내지못했을때 칼을 뽑아든 자..
세계사에 길이 남을 뜨거운 생애를 살다간 이야기가 다소 미화된체 그려져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긴 현수교를 지나
여섯시간만에 도착한곳은 로시오광장이다.
1755년 대지진후 도망간 죄수들을 동원해 타일로 조성했다는데 바닥이 마치 물결모양 같다하여 물결광장이라 부른다나~ 정중앙에 여지없이 동상 하나가 서있다.
몇장의 사진을 찍고 늦은 점심,
현지식인데 현지인들도 꽤 많은게 나름 맛집인 모양..ㅎ
점심후 들른곳은 벨렝탑과 발견의 탑이다..
테주강과 대서양의 경계를 표하는 기준이 되는 이 건축물은 본래 강 한가운데 있는 섬에 위치해 있었는데
대지진후 강물의 흐름을 바꾸어놓아
현재의 강가로 밀려났다고 하니,
지진, 말만으로도 그 위력앞에 새삼 쫄아들밖에~ㅠ
<발견의 탑>은
포르투칼의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케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졌다는데 희망봉을 발견한 바스코다가마, 세계일주의 마젤란등이 조각되어 있다하나 보수공사중이어서 보이는건 nothing..
포르투칼이 정복해나가던 세계지도가
광장앞 바닥에 새겨져 있었는데
열혈 애국자들이 자꾸 일본과의 사이에 독도를 표기하는 바람에 애를 먹는단다..
다음 순서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이른바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진 16세기 건물인데 포르투칼이 전성기를 구가할때 해양문화적인 요소..이를테면 항해도구나 닷줄 부표등의 문양을 건축에 도용한 예란다..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성당
내부에는 바스코다가마의 유해와 포르투칼의 세익스피어라 불리우는 시인의 유해등이 안장되어 있었는데
성당밖 수도원 내부의 광장의 기둥이나 외벽등에는 수많은 마누엘적 요소들이 표현되어 있었는데 호국불교의 신라나 이곳이나 종교가 국가가 처한 현세적이득을 위해 노골적으로 팔을 걷어부치긴 매 한가지인 모양..
첫댓글 첫 여행에 정신없이 따라다니다 보니 비슷한곳도 순서도 마구 엉켜 거기가 거긴가 싶은데 어쩜 저리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도 느낌도. 잘적어 놓으셨는지 읽으면서 아!여기가 거기였지~ 그래~ 여기네~ 다시한번 되짚으며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역시 원장님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