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제1 공비 지휘소).
요즈음 정말 바쁘다.
속된말로 오줌누고 뭐 볼 시간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봄에는 씨앗을 심어 놓아야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가을철에 수확을
하게된다.
고추 모종도 심고 씨 나락도 묘판에 넣었다.
노탐은 하느님도 못 말린다고 하는 말이 있듯이 올해 내가
고추 모종을 650 포기나 심었다.
작년에는 내가 먹을만큼 심는다며 150포기를 심었는데 작년에
비(比)하면 몇배 더 심었다.
이달 16일 모임에서 낮에 경주 보문단지를 한바퀴 둘러보고
경주 축협에서 직접 경영하는 천년 한우집에서 점심도 먹었다.
18일은 남해 보리암을 다녀왔고, 20일(일) 고향 마을에서 등산을
가는 날이다.
어느 모임을 가도 여자분들이 많듯이 이날도 여자분 15명중 11명이고
남자는 4사람이었다.
배내골 파래소 폭포를 지나 682고지 정각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요즈음 비가 많이와서 파래소 폭포에도 물이 많이 불어나 떨어지는
물소리도 요란 스러웠다.
언제 보아도 멋있는 폭포이다.
폭포 좌측으로 다른 사람들은 682고지로 가고 나를 포함한 남자 셋이서
신불산 공비 제1지휘소 가보기로 하였다.
신불산 아래가 고향인 두사람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은 兄들이다.
상단이란 팻말을 따라 쭈~욱 가다보면 계곡에 잘 지은 집한채가 있다.
안을 들여다 보지는 않았으나 집 주변에 평상이 있는걸로 보아 아마
펜션인것 같다.
계곡을 건너 잘 다듬어진 임도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신불산과 간월산
갈림길을 나왔다
간월산 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저멀리 간월재 돌탑이 보였다.
나이가 제일많은 兄이 어느 지점에서 안내하는 우측 사잇길을 올러가니
682고지에 있는 표지석과 비슷한 표지석이 보였다.
표지석 밑단을 보니 다듬어진 그대로가 아니고 절단이 되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682고지의 반대 방향에 간월재가 훤히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우리가 가고자 했던 공비 제1지휘소에 도착했다.
내가 보아도 사방이 확트여 제2 지휘소와 연락이 잘될것 같은 위치이다.
바위의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표지석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 시멘트로
고정시킨 하단부가 보였다.
이 표지석을 만든 사람이나 단체는 누구이고 표지석을 옮긴 사람은 누구일까?
그자리에 깨여 바위 아래로 버리지 않고 100m이상 떨어진 현재의 이곳으로 옮긴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그럴사한 답을 찿지 못했다.
정반대 방향에 옮기고 밑부분도 고정시켜져 있지않고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었다.
이 표지석은 신불산 일대의 많은 공비들을 완전 토벌한 기념으로 세운 표지석인지
아니면 6.25의 비극을 후세에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표지석인지 알수는 없으나
이유야 어찌되었건 많이 훼손되어 보는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도 안되고 있었어도 안된다.
같이간 형이 아니었으면 이 표지석을 보기가 힘들을 것으로 생각된다.
등산객들의 왕래가 적은 사잇길에 있기 때문이다.
그 바위 아래로 내러오는 길은 상당히 가팔랏으며 지름길은 더 가팔랐다.
신불산 서능(西稜)이란 안내판이 있는곳을 지나 내러오니
파래소 폭포옆 나무계단과 마주쳤다.
※삼남지 초판(122p)에는 신불산 공비 완전 소탕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51년 12월 21일 신불산 작전에는 군부대 1개중대, 경찰 병력 1개중대에다
미공군의 지원을 받아 공중 폭격과 지상화력을 동원하여 남도부(南都富)
부대를 공격하는 주야 2일간의 전투를 하여 피아간의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
그후 경찰 단독전으로 마의 681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30명의 경찰관이
8개월간 고지에 주둔하면서 공비의 거점을 분쇄하였다.
東方 徐希京
파래소 폭포 앞에서......
폭포위 바위에 피어난 금낭화.
682고지의 제2 공비 지휘소 표지석.
두군데의 표지석이 깨어져 있다.
제1 공비 지휘소에 있던 표지석.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뒷면:이곳은 6.25 전쟁중 북한 남부군 예하 제5 지대장 김원팔이 위치하여
신불산 일대의 공비들을 총지휘하였던 공비 지휘소 입니다.
뒷 배경은 배내골에서 간월재로 가는 임도.
표지석이 있는 장소에서 간월재를 바라보면......
자세히 보면 간월재 돌탑이 보인다.
682고지 맞은편 바위.공비 제1 지휘소가 있던 자리.
바위가 거북이 모습을 닮았다.
제1 지휘소 부근에는 지금 진달래가 한창이다.
제1 공비 지휘소 표지석이 처음 세워진 곳으로 추정.
앞산 정상이 682고지(제2 공비 지휘소).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정각이다.
신불산 정상에서 배냇골로 내러오는 능선.
솔밭 위쪽에 있는 바위가 김대롱(도령의 사투리)바위. 일명:호식(虎食)바위라고도 불리움.
제1 공비 지휘소 바위 아래로 내러오면 임도와 마주친 곳에 있는 안내판.
신불산 서능(西稜)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