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국제 소수력 발전 전시회. 젊
은 동양인 한 사람이 회사 소개 카탈로그와 자신의 명함을 일일이
나눠주고 있었다. 그가 바로 유일기연 이재혁 대표였다. 국제 전
시회 참석 경비 300만 원을 아끼기 위해 세미나실 앞에 커피 테이
블을 놓고 홍보를 한 것이었다.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발품을 판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캐나다
밴쿠버 지역 소수력 발전 프로젝트 매니저가 그에게 견적을 의뢰
해왔다. 매니저는 서부 로키산맥의 소수력 발전용 담수보에 쓰일
고무보를 찾던 중이었다.
이 대표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견적을 제출했고, 서면 입찰 끝
에 수주에 성공했다. 1기당 35만 달러(약 4억 원)에 달하는 고무
보를 캐나다 기업에 직접 공급하게 된 것. 유일기연으로서도 농
업용수 보급용으로 주로 사용되던 고무보를 해외의 소수력 발전
용으로 납품한 첫 사례였다.
23년간 한 우물을 파 온 기업
하천이나 강, 저수지의 물을 가두는 용도가 필요한 곳에는 보(댐)
가 있어야 한다. 보의 종류는 돌담보, 나무판자보, 콘크리트보 등
움직이지 않는 고정보와 고무, 철판 등 움직이는 가동보로 나뉜
다. 유일기연은 이 가운데서도 ‘고무보(Rubber Dam)’라는 한 우
물을 23년간 파 왔다. 이 대표는 “초음파 센서로 실시간 수위를
계측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수위가 상승하면 고무보의 공기를 채
우거나 빼는 식으로 필요에 따라 수위 조절을 할 수 있다”고 설명
했다.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유일기연은 경기도 안양천, 강
원도 불광천 등 전국 170곳에 고무보를 설치했고, 해외에는 현재
가동 중인 6기를 포함해 총 24기의 고무보를 운영 중이다.
회사 설립 후 20년 가까이 국내에서만 시장의 맹주 자리를 차지
하고 있던 유일기연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이 대표가 CEO에
취임한 이후부터다. 유일기연의 뿌리는 이 대표의 부친인 이창복
회장이 창업한 유일건영의 고무보사업부에서 시작됐다. 부서 단
위로 시작한 고무보의 매출이 차츰 늘어나자 1989년에 별도 회
사로 독립한 것.
2006년 유일기연 대표가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사업을 내놓으면
서 자연스럽게 지분을 보유한 유일건영이 인수하게 됐다. 이 대
표는 유일건영에서 경영 수업을 받던 중 2006년 5월 유일기연 경
영을 맡게 됐다.
그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캘리포니아대 경영학과를 졸업했
다.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와 육군 통역장교를 지낸 후 유일건영
의 공무부장을 거쳤다. 경영을 맡은 이후 그는 곧바로 수출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내수로는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기
에 ‘수출만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유일기
연의 영문 홈페이지를 만든 것이 수출 전략 1단계였다.
다행히 몇 달 후에 필리핀 알바이주 리가오시의 한 업체에서 연락이 왔
다. 농업용수용 고무보 2기의 제어시스템을 제작, 시공까지 완료해달
라는 요청이었다. 유일기연은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동원해 성공적으로
작업을 마무리했다.
캐나다 대형 프로젝트 등 계약 잇따라
필리핀 수출을 시작으로 이 대표는 캐나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 포르
투갈 등 해외 고무보 시장에 대한 파악에 나섰다. 북미는 소수력 발전이
활성화되어 있어 고무보가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
“캐나다와 미국의 소수력 관련 전시회 등 해외 전시회에 연 4회 참석하
고, 전문 잡지에 광고도 게재하는 등 해외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섰습
니다.” 2008년 소수력 전시회에서 연결된 캐나다 밴쿠버 지역의 경쟁
입찰에서 수주를 따낸 이후 꾸준하게 계약이 이어졌다. 2010년에는 캐
나다 온타리오주의 대형 소수력 발전 프로젝트를 수주, 280만 달러어
치(약 30억 원)의 공사 계약을 성사시켰다. “저희 회사로서는 한 단계
도약이 가능한 큰 입찰 건이었습니다. 서류를 제출해놓고 매일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최종적으로 상의할 것이 있으니 4
일 안에 캐나다로 와 달라’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현지로 날아갔
지요.” 캐나다 현지에서 하루 종일 10여 명의 엔지니어와 고무보의 설
치와 운영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들어가니 캐
나다 업체 사장이 이 대표에게 “우리 회사와 일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면서 손을 내밀었다. 가슴이 무척 벅찼지만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혼자
호텔 방에서 자축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터키에서 190만 유로(약 30억 원)짜리 공사를 수주했을 때의 일화도 들
려줬다. 높이 4.5m의 초대형 고무보 4기를 제작,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발주 업체가 공사 기간을 3개월 단축해달라고 요구하기에 승낙을 하고
보니 문제가 많았다. 운송과 통관에 걸리는 시간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부품을 생산해서는 도저히 납기에 맞출 수 없
다고 판단, 고심 끝에 금속 부품을 현지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부품 생산 업체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 대표는 직원과 단둘이
서 일주일간 15개 현지 공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적당한 업체를 찾아냈
다. 약속한 납기 안에 고무보를 납품했음은 물론이다.
10년간 무상 보증으로 신뢰 높여
수출 경험이 없는 중소기업이 새로 수출 시장에 도전하면서 겪은 어려
웠던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상대 회사에서 요구하는 실적증명서시험성적서, 도면 등이 국내 사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았다.
“밤새워 영문 도면을 만든 후 다음 날 검토해보면 또다시 실수가 나와
서 수정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해외 입찰에 2~3번 참여한 이후에
는 그나마 다소 수월해졌지요.”
현재 유일기연의 해외 현장은 진행 중인 6곳을 합쳐 총 24곳에 달한다.
품질에 대한 피드백이 계속되면서 자신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유일기
연이 자랑하는 경쟁력은 깐깐한 품질과 철저한 사후 관리다. 업계 평
균 2~3년인 보증 기간을 10년 무상 보증으로 늘려 빠르게 신뢰를 얻
고 있다.
이 대표는 요즘도 수시로 해외 전시회에 참석한다. 캐나다, 미국은 물
론 오는 10월에는 오스트리아 소수력 국제 전시회를 통해 유럽 시장 공
략에 나설 계획이다. 유일기연의 매출은 2010년까지만 해도 50억 원에
못 미쳤지만 올해는 100억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출
은 물론 내수에서도 큰 성과를 거둔 2011년에는 매출이 180억 원에 이
르렀었다. 향후 전망도 수자원 관리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
는 만큼 밝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이나 독일 제품과 품질이 맞먹는 고무보를 만들어 실력과 경제성
으로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고 싶습니다. 또한 소수력 발전과 가동보를
연계, 시스템화해서 4D 통합 물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발전
시켜 나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