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지역의 도움을 받으려고 요청을 하려했던 것을 차일 미루다..그냥 우선 인터넷 공간상 김해시장에게 바란다라는 공간을 통했습니다.)
수신 : 김해시장님, 김해 시의원여러분
발신 : 故) 김오랑 중령 추모회
안녕하셔요. 김해시장님, 그리고 시민 여러분!
저는 김해의 아들로 국가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한 군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선 주장부터 말씀을 드리면
김오랑 중령에 대한 김해시 차원의 추모비나 동상 제막을 검토 요청합니다.
그리고, 김중령의 생가 부근과 출신고(국민학교)인 김해 삼성초등학교 앞 도로를 "오랑街"로 명명 될 수있도록 부탁드리며
아울러 김오랑 중령에 대한 추가적인 추모사업을 검토바랍니다.
김오랑 중령은 44년 김해 활천에서 태어나 삼성초등학교, 김해중학교, 김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사 25기로 김해농고에서는 처음으로 육사 를 입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육사 4년 생도 생활을 거쳐 울진삼척무장공비 침투사건 직후에 임관하여 전방근무, 맹호부대로 월남전 파병을 거쳐 충직한 국민이자 군인으로 군생활을 복무하였고
이후 특전사 제3공수에서 중대장, 작전장교, 부대대장을 거치고 진해의 육군대학을 거쳐 다시 79년 2월 운명의 특전사령부(특전사령관 비서실장)로 명령을 받습니다.
이미 97년 대법원에서는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을 했지만
그 분의 의로운 죽음은 12.12가 군사반란이든 그렇지 아니하든 다르게 평가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단지 12.12의 소용돌이에서
군지휘체계의 수호와 종래는 반란에 대항하는 모습이 되었지만
특전사령부의 전 간부들이 군지휘체계를 무시하며 쿠데타를 기도한 신군부에 부화뇌동했을 때
홀로 권총 한자루로 적 아닌 적(불과 자신이 얼마전까지 근무했던 3공수여단 병력)과 교전을 하다 현장에서 사망합니다.
신 군부측에서는 3공수 대대장인 박 모 중령(김오랑의 육사 2년선배이자 3공수에서 같이 근무)이 10여명의 체포조를 이끌고,,그리고 특전사령부를 포위할 목적으로 40여명의 3공수여단 1개지역대 병력을 대동하여 포위되었던 상황임.
결국 사령관실까지 진입한 체포조와 김오랑 중령 홀로(앞을 보지 못하는 부인을 두고)..
그 분은 홀로.. 교전으로 하복부에 6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 사망했으며, 더욱이 불행이도 김오랑 중령(당시 소령,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의 사망과 더블어 체포조에서도 1명의 대위가 하반신 마비의 중상을 포함하여 3명이 중상을 당하였던바,
그의 국가에 대한 충성, 군지휘체계 수호의 의지, 견위수명의 군인정신, 정의를 지키려는 신념을 치열한 교전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있습니다.
이제 18대 국회에
그 지역의 국회의원인 김정권의 발의로 '김오랑중령 무공훈장추서 및 추모비 건립 건의안'이 국회 국방위에 제출되기는 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진보와 보수의 이데올로기와 여/야의 정략적인 관심에
김 중령의 의로운 죽음은 안중에 없습니다.
늘상 소수의 인원(김오랑의 고향 동문, 군 지인을 포함한 불과 10여명) 12월 12일에 그의 죽음을 기리고 있습니다.
김해시장님, 김해시의원님, 그리고 김해시민 여러분!
부디, 故)김오랑 중령의 의로운 죽음을 김해시에서는 외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故)김오랑 중령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자랑이자 김해의 아들입니다.
그 분의 정의로운 희생을 드러낼 수있는 방법을 모색해 주십니오.
(이 게시글을 접수하시는 분은 정상적인 공문 형태로 시장님과 김해시의원분들 앞으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1. 0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