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교리 삼층석탑(辰橋里 三層石塔) /경남 유형문화재 제129호
-경남 하동군 진교면 진교리
원래 이명산(理明山)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0년 진교면사무소로 옮겼다. 2919년 11월 지금 위치로 옮겼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일반적인 모습으로, 아래층 기단이 상당히 넓어 보인다.
위층 기단의 각 면과 탑신부의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이 남았다.
아래층 기단이 넓긴 하나, 탑신의 몸돌이 지붕돌에 비해 높아 안정감보다는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화강암으로 잘 다듬어진 삼층석탑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안내문 참조)
진교리 삼층석탑은 하동 금오산 자락에 있는 금성사 경내에 있다.
진교리 삼층석탑
기단부와 삼층 몸돌은 그리 조화롭지 못하지만, 삼층 몸돌은 날씬한 몸매를 보는 것 같다. 받침돌이나 몸돌에 조각은 안 보인다.
사성각
봉학산 학방암(鳳鶴山鶴芳庵) /전통사찰
- 경남 하동군 양보면 박달리
하동 봉학산, 학이 누워 있는 모습이며 남쪽 기슭은 학의 날개로 이곳에 학방암(鶴芳庵)이 있다.
약 140여 년 전인 1860년대에 승려 서덕봉께서 창건을 하였으나, 초라한 법당도 네 차례 수해를 당했다.
승려 진조(眞照)께서 주지로 오면서 1996년부터 불사를 시작, 2003년 대웅전과 미륵전을 짓기 시작하여 2006년 완공.
대웅전은 무형문화재 최기영(대목장 제74호) 선생이 지었다.
(인터넷 찾아보기, 내용 정리)
같이 차를 마신 주지 이름을 여쭙지 않았다. 나이든 두 분 여신도와 같이 마셨다.
옛날에 절이 있었다. 옛날 누가 이곳에 처음 절을 지었는지는 모른다. 있는 절도 잦은 수해로 무너졌다.
대웅전 밑인 암반으로 경사졌다.
절을 구경하고 있으니 여신도가 들어와 커피를 마시라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주지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다.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기대할 수 없다.
하동 금오산 방향이다.
만들다가만 거북형상인지 모르겠다. 몸돌 하나에 지붕돌 셋, 언제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요사, 대웅전, 미륵전
작은 전각, 궁금해서 가니 비석이 하나있다.
미륵전
출처를 알 수 없는 불상이다. 상체만 그렸다. 밑에 받침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웅전 안
학방암에서 나와 지나는 길에 이 안내도를 봤다.
양천암에 들렸다가 시간이 남으면 마애불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왕봉 양천사(天皇峰楊川寺) /전통사찰
- 경남 하동군 북천면 화정리
절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다. 인터넷 찾아보기에 백과사전에도 없다.
언제부터 절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금 모양도 어느 승려가 만들었는지도 사적을 찾을 수 없다.
한적한 곳에 조용히 있는 절이다.
절 구경할 것도 없다. 종무소 겸 요사 청소를 하던 주지가 차를 마시자고 권한다.
대웅전 안을 들여다 보지도 못 했다. 청소 도구를 치우고 주지가 자리에 앉는다.
오후 4시에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오후 6시에 주지는 바쁘게 일어난다. 저녁 예불 시간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 글로 쓰려면 한참이다.
40대 후반으로 보인 주지는 50대 중반이라고 한다.
대웅전 글씨가 고산큰스님 솜씨라고 말을 시작하였다. 고산큰스님은 쌍계사 방장하셨던 분.
연기설, 공, 중도 등 승려가 하는 뻔(?)한 말, 듣기는 여러 번 들었지만 어려운 이야기이다.
공부한, 공부하고 있는 승려에게 어떠할는지 모르겠지만 신도는 아는 것 같아도 어렵다.
이런 도식적이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도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은 사치일까? 한적한 곳, 신도도 보이질 않는다.
주차하고 곧장 계단이며 대웅전과 실상전, 요사가 전부이다.
요사, 종무소.
버들 양, 내 천, 양천사는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한적한 이곳에 내도 없으니 버드나무도 있을 수 없다.
길상전
오후 여섯 시가 넘었다. 이야기를 끋나고 나오니 짙은 안개로 몽환적인 분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