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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기도해야 할 현 시대적 상황
요한복음 15장 1절~6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저는 w의 후발주자입니다.
저는 사실 w의 역사와 지내온 과정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제가 w를 만난 것은 2017년에 신대원에서 임재웅 전도사님과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청년들을 데리고 갈만한 수련회 추천을 물었는데
w캠프를 소개해 주었고 2017년 7월에 처음으로 김영철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그 수련회가 너무 좋아서 2018년 1월에 청년회 주도로 교회에 예배학교를 하게 되었고
그때 마침 신학교를 휴학하게 되면서 김영철 목사님과 본격적인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제를 하면서 전혀 예상을 못했는데
김영철 목사님과 북한 사역과 다음세대라는 공통 분모를 찾게 되었고
지금 현재 수원에 차로 5분거리에
저는 수학과 영어와 독서 테필린을 하는 학원을
목사님은 실용음악학원을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목사님은 제게 있어서 북한을 위해 헌신하고 만난 첫 번째 동역자이고,
시대와 나라, 그리고 다음세대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w. 리트릿을 위해 모였습니다.
리트릿이란 전장에서 막 진격을 하다가 잠시 뒤로 물러서서 재정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앞에서 나름대로 소명을 가지고
정신없이 진격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기에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사실은 자신이 가진 몸이라도 내어 놓아야 교제할 수 있는 이 w의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w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각기 다른 사역의 영역과 상황을 가지고 있는 이 공동체를 재정비하고,
지금의 현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기도해야 하는 제목이 무엇인가를 나누려니 엄청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이 본문은 제가 11월 12월 기간동안 계속 묵상해 오던 본문입니다.
너무 잘 알고 있는 본문이고 여기 모인 사역자들이라면
본문을 보고 즉석해서라도 여러편의 설교를 뽑아낼 정도로
깊이 파악되어 있는 본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 본문을 선택한 것은
이 본문만큼 깊이 있게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본문도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장 서두에 보면
마치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에 배역을 정하듯 누가 무슨 역할을 맡았는지를 알려 줍니다.
1절에 보면 예수님의 역할은 뭐죠? 하나님의 역할은요? 5절로 내려가면 우리의 역할은 뭐죠?
요즘에 진짜를 표현할 때 찐을 붙이던데 예수님은 참포도나무 찐포도입니다.
가짜 아니라는 거죠. 진짜 포도 나무입니다.
왜 하필 포도 나무 일까요?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포도나무에 대하 알아 보았습니다.
포도나무는 보통 포도나무 가지를 꺾어서 땅에 꽂아 번식하는 삽목(꺾꽂이) 방식입니다.
제가 이걸보고 첫 번째 무릎을 쳤습니다.
누가 포도나무라 그랬죠?
예수님이 포도 나무라고 했죠?
예수님이 꺾여서 심겨진 포도나무라는 겁니다.
그것도 가짜 아니고 진짜 포도 나무요.
누가 심었을까요?
농부가 심었겠죠?
그런데 농부가 누구입니까?
네 바로 하나님이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꺾어서 땅에다 내리 꽂은 겁니다.
꺾은 분도 심은 분도 다 하나님이신 거죠.
그러니 하나님이 농부이신 겁니다.
왜 꺾고 왜 심었을까요?
세상에 그 어떤 걸로도 포도나무를 만들 수가 없어서입니다.
예수님 말고는 이 땅 위에 포도나무가 될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신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로 내리시고 꺾어 버리신 거죠.
그리곤 땅에 심으신 거죠.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인거죠.
그런데 포도 나무 심기에 많이 쓰이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바로 접목입니다.
뿌리가 잘 발달된 나무에 열매를 잘 맺는 가지를 접목시켜 자라게 하는 방법인데
제가 이걸보고 두 번째 무릎을 쳤습니다.
바로 로마서 11장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에 보면 유대인의 가지가 꺾이고
원가지에 이방인의 가지가 접붙여진 감람나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뿌리가 잘 발달되어 굳건히 선 예수 그리스도란 원목에 이방 교회가 접붙여져
인류 구원의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는 놀라운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누가 가지를 접붙였겠습니까?
바로 농부입니다
농부가 하는 역할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가지고 왔는데
보통 포도 나무는 조금만 자라면 지지대를 세워 땅에서 설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안그러면 넝쿨처럼 자라 땅을 기려고 합니다.
땅에서 일정 높이로 떨어뜨리지 않으면
포도 나무는 땅에 있는 잡초와 세균에 잠식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농부의 일은 싹이 트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싹이 트면 지지대를 세우고 이때부터 가지치기를 하는데
순을 거의 한두개를 빼놓고 다 가지치기를 합니다.
영양소가 가서열매를 맺을 놈만 빼놓고는 가지를 다쳐버립니다.
이것이 포도 나무키우기의 핵심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누구입니까?
네 우리는 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지 앞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바로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원래는 복음을 들을 자격도 없고, 들을 기회 조차도 없던 가지입니다.
11장의 표현에 의하면 원래는 돌감람나무 가지인데
하나님이 꺾으셔서 참 진액을 받을 수 있게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목숨걸고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이 없었다면
영원히 복음을 들을 수 없는 죽었다 깨어나도포도나무는 될수 없는 가지였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입니까?
가지에 생명력이 있습니까?
가지가 열매를 맺습니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뿌리로부터 영향력을 공급 받아야, 진액을 받아야 포도나무이고, 공급 받아야 생명력이 있고 공급 받아야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 본문을
바로 죽기 직전에 마지막 만찬을 행하신 후에
어쩌면 유언이 될 수도 있는 말로써 하신 것일까요?
요한복음 14장과 15장을 연결해서 읽다보면
사실 에수님께서 내안에 거하라는 이 간단한 말을
얼마나 많이 반복하며 힘주어 말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가 가지이면서
얼마나 뿌리를 떠나기 쉬운 존재라는 걸, 생명력을 쉽게 버리는 존재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가지로서의 저의 이야기를 할건데
이 이야기는 지금의 나라의 상황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라
각자의 과거와 비교해 가면서 들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고, 유년기때 청소년기때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아주 즐겁게 교회 안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 성령세례를 받았고 기도 생활도 엄청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등학교때 극심하게 사춘기를 겪으며 제 삶이
한쪽은 하나님 한쪽은 세상에 철저하게 양다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가장 많이 하던 놀이가 왕따 놀입니다.
제가 막 일진이 되어서 폭력을 행사하고 왕따를 시킨 게 아니고
저 혼자 가족 전부를 왕따 시키고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어느부분에서는 하나님을 왕따 시키는 그런 놀이였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책을 열심히 읽고
10키로 가방을 메고 일부러 두시간 걸려 집에 걸어 가거나
불꺼진 교실에 앉아 있는 등등
나홀로 지랄발광의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러다 고1때 윤리 시간에 성균관대 철학과를 나온 윤리샘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이런걸 배우면서 주제를 정해 발표를 시키는 시간이 잇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선배 두명이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니가 독서토론 지하써클의 멤버 자격이 있으니 지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20명정도가 자격 대상이었고
모두 윤리시간에 발표를 통해 선생님이 뽑은 후보였고
선배들의 면접을 통해 최종 8명이 선발이 되었습니다.
독서 토론회는 한달에 두 번 정도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독서토론도 하고
가끔은 술도 먹었습니다.
책은 지금 기억해 보면 주로 사회를 비판하는 책들이 많았고
사회의 문제꺼리나 토론 이슈를 대화의 주제로 많이 삼았습니다.
저희 학교는 사립기독교학교인데 이사장이 박정희 대통령때 장군을 했던 분으로
제가 다닐때도 군부 출신 교장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제가 입학하기 한해 전 전교조 사건으로 교사 몇분이 잘리고
그 잘리신 교사의 친구분이 바로 윤리 선생님이었고
그해 선생님은 우리 독서토론 써클을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잘리지 않은 걸로 보아 전교조는 아니셨지만
제가 졸업하고 얼마 뒤 학교에서 잘리셔서 서울 대광고 교사로 계시다가
거기서도 쫓겨나서 현재는 강화도의 대안학교 교장으로 계십니다.
어쨌든 저는 그 선생님께 술을 배우고 다도를 배웠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수원시 학원 연합회라는 기독교 단체에서 소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가 경배 찬양이 한참 붐인 시절에 수원의 각 고등학교가 연합이 되어
일년에 한두번 준비 기간을 거친 뒤 1000명 2000명 집회를 했었습니다.
학교에서 신앙 반장이었고 점심시간에는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철저하게 한쪽으로는 하나님을 한쪽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고2때까지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다 고3이 되었는데
그때가 1994년을 유독 가뭄이 심하고 더웠을 때입니다.
그때 북한의 핵개발 이슈가 처음으로 난리가 나서 5분이면 서울 7분이면 수원이 불바다가 된다는 뉴스가 날마다 나왔습니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잠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정말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라가 전쟁으로 망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이 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친 듯이 일기를 썼습니다. 그게 쓰다 보니 3장이나 되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전쟁나면 어차피 죽을 목숨 한번만 살려 주시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빛과 소금이 되겠습니다라는 것인데 사실 이런 약속을 했다는 것도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나중에 회심하고 헌신하고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생각나시게 하셨습니다. 이 일기 내용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지랄 발광인 내 사춘기가 내적 갈등에 못이겨 고3 내내 쓴 일기를 병원 쓰레기통에 버린게 생각이 났습니다.
이 일이 좀 웃기게 보일 수도 있는데 제가 역사를 유독 좋아해서 역사책 끌어 안고 울기 이런걸 하던 시기가 그때였습니다.
제 안에는 구한말에 병신같이 나라 팔아 먹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
4.19에 대한 분노
이승만에 대한 분노
5.18에 대한 분노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제가 끌어 안고 운 책 중에 유독 기억나는 것이 유시민이 슨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일기를 3장 쓴 날부터
막연하게 정치외교학과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 때 제가 가진 생각이 몇가지 있는데
1. 데모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2. 높은 지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로 가야 한다.
3.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지랄발광의 시절로 인해 정치외교가 아닌 사회학과를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입학했더니 사회학과 학과장이 처음 해준 말이 우리는 PD계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PD:민중민주 평등파 계급투쟁
NL:민족 해방 자주파 종북주의
1학년때 우리과에서는 최초 여자 과대를 했고 민중사랑이라는 철학 소모임을 했었다.
데모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신념 때문에 뉴스위크 해석 동아리에 들어갔다.
총학에 있는 친구들 NL계열 친구들에게는 이것 때문에 욕도 먹었습니다. 반미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은혜중에 은헤인데
집에 돈이 너무 없고 가난했습니다.
휴학을 했고 그로인해 총학일을 하는 것도 막히고, 민중사랑 그만두게 되고, 외교관 시험 공부는커녕 대학원도 못가고 계속 일벌레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듯 딱 10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살다가 2012년 1월 10년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양다리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다시금 주께 돌아온 지 한 3년 쯤 된 2014년도였습니다.
그 당시는 시도때도 없이 이어폰을 꽂고 말씀을 듣던 시기여서
그날도 말씀을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들은 말씀이 35년간 예수 전도단 활동을 하셨다가
최근 NCMN이란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는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막 임팩트 있는 설교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냥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분이었는데
그날 우연히 NCMN의 비전 중에 북한에 대한 부분을 듣게 되었습니다.
남한의 교회가 5만개 정도 되는데 남한 교회가 북한의 각 지역을 정해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재정도 준비하고 사람도 만들어
통일되면 바로 교회를 세우고 그 지역을 섬겨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 사실 그때까지 설교를 그렇게 많이 들어도 북한 관련 설교난 영상 한편 보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가 21살대 독일에 간적이 있었는데
독일의 기차 안에서 독일인 대학원생이 내가 남한 사람이라니까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대답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통일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가 독일이 통일되고 5년 정도 지났을 때인데
베를린 역은 동독 노숙자들도 넘쳐 나서 아주 살벌했었습니다.
거기서 우연히 교환교수로 일하고 계신 교수님 댁에서 밥을 얻어먹었는데
통일비용에 대해 세금이 너무 과하다는 것을 알려 주셔서
통일은 불편하고 힘겨운 것이라는 생각을 줄곧 해 왔습니다.
그런 제가 홍성건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어느 순간 설거지하던 고무장갑을 낀체로 거품도 못 걷어 내고
무릎을 꿇고 막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그런 일이라면 저를 시켜 주세요 제가 하겠습니다.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제 인생에서 가장 기이한 일이 바로 이때의 일입니다.
애가 셋이나 되고 결코 삶이 녹록치 않던 제가 북한선교?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때는 북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탈북자 한명 만나보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헌신을 하고 나니까 북한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품고 나니까
갑자기 북한 관련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그때부터 골방에서 기도하고 신문과 뉴스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과 남한 사이에 있었던 무수한 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동안 북한을 위해 교회는 무엇을 했나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시각과 사업이나 사역이
희한하게 두 가지 길로 확실하게 나누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도 극명하게 갈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이상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북한에는 보이는 교회가 존재한다. 그럼 지하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북한에 가면 봉수 교회와 칠골 교회라는 보이는 교회가 존재합니다.
1989년 봉수 교회는 세교선교협의회 WCC가입을 원했는데 산하교회 없이는 불가능하다 해서
원래 계획했는데 한해 땡겨 만든 예배당이 봉수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때도 국가가 부지를 제공하고 교인의 헌금과 해외교회 지원금으로 지어졌지만
2005년 600평 재건축을 할 때는 남측 교회의 적극적 지원 하에 교회가 지어지고
헌당예배를 남북 공동으로 드립니다.
칠골 교회는 김일성 어머니 기념교회라 김일성이 엄청 공을 들인 교회로
이 교회도 2007년 3월27일 기독교대한 감리교회 서부 연회 사무실에서
재건축 계획안을 발표할 정도로 남한 지원으로 재건축이 진행됩니다.
전 세계가 아는 북한 해커 양성의 본거지인 북한 과기대는 2010년 개교 되었는데
교수진이 미국과 유럽의 크리스챤들이고
지원도 해외동표와 주로 기독교 단체의 지원을 받아 온 학교입니다.
요즘 북한 성도를 40만 50만 정도로 보는데
봉수 교회 300명 칠골 교회100명 400명을 뺀 나머지 성도가 다 지하교인이고
그중 10%의 성도가 지금 현재 교화소에 수감되어 있다도 합니다.
교회 지원으로 선교가 이렇게 활발히 진행되는데 왜 성도들은 다 지하에 있는 것이고
남한 성도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북한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인지....
그 활발히 진행된 선교가 저를 엄청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2. 북한과 남한이 사이가 좋을 때 벌어지는 일들
-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하는 비율이 커집니다.
- 유엔이나 국제 사회에서 북한 인권에 대하 입을 다문다는 것입니다.
- 남북한 협력 사업은 적극적으로 남한 내 탈북자에 대한 지원은 줄인다는 것입니다.
3. 한쪽은 적극적인 남북 경제협력을 한쪽은 정부지원 중단을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북한 구원을 위해 결단했지만
어떤 길도 선택을 할 수가 없었고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겨 버렸습니다.
우리 교회 출신 제 동기 중에 총신대 나와서 북한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간 친구가 한명 있는데
그 친구가 북한에 대한 마음을 품고 첫 번째로 한 일이 모든 SNS활동을 중단한 일이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면 어쨌든 제대로 된 북한 사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친구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는 북한을 오고간 수많은 남한 사역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단체도 쉽게 들어 가지 못했고 탐색만 4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 후 제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북한 주민이 아니라 북한 정권을 돕는 일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도대상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이다.
북한 문제라는 것이 사실은 구조상 엄청 정치적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구조적으로
북한 주체사상으로 세워진 나라와 자유민주주의로 세원진 나라의 근간때문이지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북한 문제는 순수하고 철저하게 인권적 인도적 차원으로 북한을 도울때도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 당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아이들 분유 가져다주고 보는 자리에서 뚜껑 따고 우유병에 넣고 입에 물리는 걸 보고 나와도
그 분유는 군량이 됩니다.
개성공단의 북한 주민의 월급은 150달러중 6000원이 지급되고 배급표를 줍니다.
이산가족 상봉 때 내 혈육이기에 건낸 돈들은 행사가 끝나면 충성자금으로 당에 회수가 됩니다.
실제로 중국에서 북한 선교를 20년 가까이 하신 온누리 교회 파송 한 선교사님은
북한 정권과의 경제협력을 엄청 강조하셨는데 그 이유가 그래야 북한에 새바람이 분다는 것입니다. 10중에 1만 가도 사람은 변한다.
북한의 행복지수가 남한보다 훨씬 좋다.
북한의 김정은이란 지도자는 남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약 제 여동생이 결혼을 잘못해 남편이 깡폐, 계속 때리는 게 70년 째, 남편이 좀 변한거 같으니 남편에게 선물도 주고 돈도 주고 하는 게 맞냐 아니면 동생을 그집에서
빼오는 게 맞냐? 동생의 비명소리를 듣고 산지가 70년이다. 30만이 북한을 탈출하고 3만이 남한으로 와서 증언하는데 아직도 증거가 부족하냐?
2016년 북한에 홍수가 심하게 나서 마을 한곳의 26채의 집이 3집만 빼고 다 쓸려 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3채가 예수님 믿는 집이었습니다.
집이 다 쓸려가 잘 곳도 없고 배급도 없는 상확에 이르러도
북한 당국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남한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탈북자들의 돈으로 살아가는 이 3집은
그때부터 평소 먹던 쌀밥을 옥수수로 바꾸고 26집을 먹여 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의 생존의 안정성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북한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은 단순히 북한 주민의 행복한 삶이 아닌 영혼 구원과 회복을 위해 일하신다.
이건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원래 계획이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 하면 먹을 거, 입을 거, 고통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복음을 접하고 회복된 북한 주민들이 가장 애통해 하는 것은
북한 주체 사상교에 찌들어 죄 투성이인 자신들의 내면입니다.
북한 선교사님, 조선족, 중국인 할것없이 북한사람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북한 사람은 살기 위해선 거짓말도 도둑질도 살인도 어쩔수 없는 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감당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이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듯 북한에선 일주일에 한번 씩 생활 총화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하지만 생활 총화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자아비판으로 고백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의무적으로 비판해야 하는 것입니다.
살기 위해선 생존을 위한 적정선을 찾기 위해선 눈치 100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도덕적 관념이나 양심의 소리가 아닌 살아남는 것에 중심을 잡고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빛에 서면 그런 삶에 찌든 자신을 회개하고
온갖 범죄 가운데 놓인 북한 땅을 위해 눈물로 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국에 가서 실제로 예배드리던 성도들이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가운데의 죄의 실태를 가슴 아파하며 기도하는 북한 성도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3.북한을 똑바로 바라보고 옳은 판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
우리교단을 소위 웨슬리안이라 하고 우리 교단의 부리에 해당하는 웨슬리는
죽기 6일전 영국의 국회의원 윌버포스란 사람에게 편지를 씁니다.
윌버포스는 노예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결심을 10대 때 하고
그 결심을 평생의 노력으로 관철시킨 사람입니다.
윌버포스가 수많은 반대와 위협가운데 있을 때
죽기 직전인 웨슬리는 편지를 보내어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뜻에 힘 입어 미국의 노예들이 한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나아가라”라고
편지를 씁니다.
미국도 노예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200년 가까이 지내옵니다.
하지만 3차 대각성 운동후 미국 기독교인들의 양심이 깨어나고
하나님 앞에서 노예제도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게된 일이 남북전쟁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노예문제로 남북이 심지어 기독교계가 양분되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링컨 대통령을 선두로 남북전쟁이 시작됩니다.
이때 3자 각성운동의 주역이었던 전도자 무디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바로 전쟁터에 북부군의 군종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미국에서 노예제도는 폐지가 됩니다.
법을 폐지하는 문제로 기독교인이 국회에서 싸우는 일 국가적 전쟁을 치루는 일이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일이기도 한 단적인 예입니다.
그런데 2019년 저는 다시 회심하고 최대 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상황을 날마다 살피다 보니 저는 어느새 뉴스 중독이 되어 있고
하도 여론이 찬반으로 나뉘어져 극심하게 대립하니 제가 잘못 아는 것은 아닌지
공부도 나름 열심해 해왔는데 자꾸 제가 메말라 가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국제 정세, 나라 상황 파면 팔수록 계속 제가 우울해져 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2019년은 제가 원치 않는데도 제가 선택하지 않은 어려움들까지 닥치면서
정말 어려웠습니다.
사역자의 길만 포기한다면, 북한에 대한 뜻만 거두면
이 어려운 상황이 다 긑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 때가 되면 되겠지.
북한 사역을 위해 약속된 일들 너 아니어도 헌신된자 너도 많이 목격했잖아
너 아니어도 되
너는 애도 셋이지, 돈도 없지, 지혜도 없지 성질도 더럽지,
더욱이 너에게 지금 절실한 온전한 헌신이 있냐?
정말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소명이 있고 사명이 있고 여러 가지에 대한 식견이 있어도
제가 어느새 뿌리의 진액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가 깨달아 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지 끝에 온 힘을 주고 열매가 없어요, 열매가 없어요, 나는 왜 매번 이모양인가요?
외치면서 절망가운데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말씀 준비하면서 교회 기도하면서 앉아 있는데
제가 열매가 없음을 한탄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어떤 생각들이 막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너 나 아니면 이혼하지 않았겠니?
너 나 아니면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라도 했겠니?
너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니가 알고 있는 그 수많은 죄악의 접근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니?
생각들이 막 스쳐 지나가는데 감당이 안 되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주님 때문에 내가 포도나무인데
저는 원래 포도 나무인 것처럼 굴고 있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북한을 바라보고, 나라를 보고 세상을 본거지
10년 전만해도 돈에 미쳐 살던 나를 그세 까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일은
예수그리스도의 진액을 받은 내 안에서 솟아난 결과이지
결코 나로부터 시작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힘을 가지 끝이 아닌 뿌리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의 나라의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보시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라 상황을 상황별로 대처하면 답이 없습니다.
역사는 역사의 시작 이후로 줄곧 하나님을 따르는 무리와 따르지 않는 세력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 싸음은 한번도 단순한 이원론적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 전쟁은 선이 이기면 정의로워지면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늘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소수가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단순이 이겼다 졌다로 이야기해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으로 불같이 일어난 믿음의 성도 앞에 일어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나라를 잃은 것입니다.
엄청나게 은혜 받은 그들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나라의 건국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이 단순히 독립이고 건국이었다면
공산당 앞에서 믿음을 지킨 신앙인은 없었을 것이고
무수히 많은 헌신자가 세계로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북한의 복음통일을 위해 지금도 발로 뛰는 자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부산 출신이라 김영삼 대통령을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지만
좀 특이한 성장을 통해 어릴 때부터 감성 좌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과거에 자민련 선거운동 한 적도 있고
선거에서 민주당 쪽을 뽑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 헌신하고, 북한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다 보니
공산주의나 좌파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사회학과 출신이라 그런 사상의 배경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의도인지가 알게 되는 상황이라
저절로 보수주의로 전향이 되어버렷습니다.
하지만 보수주의나 우파의 개념을 주장하고자 이 자리에 선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라 상황이 너무 위중하다보니 열매에 치중하느라
지금의 승리를 우파의 승리를 위한 싸움으로 여기거나 좌우진영 싸움에 너무 매몰되는 것과
그 반대로 에이 복잡해 신경끌래 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싶습니다.
저 어둠의 공격은 절대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믿음을 따르는 바로 그 소수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격은 아주 전방위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두 개의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하나는 성경공부와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모임이고
하나는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모임입니다.
다각적인 공격들
세일가스 개발에 성공해 몇백년을 쓸 석유를 가진 미국이 아메리칸 펄스트를 외치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만의 특징이 아니라 지금 전세계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영국이 이유를 탈퇴하고 일본이 시시때때로 군사력 증강에 힘쓰고 있다. 21세기의 독재국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의 앞으로의 행보 2020년은 이미 에고된 종교 통합의 해 과연 이스라엘은 성경의 예언대로 제 3성전을 건립 전염병 AI
그래서 지금의 때는 진정 뿌리에 집중해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다 알 수도 없는 존재이고
우리가 모든 일을 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믿음을 신실히 따르는 참 포도나무의 가지는 적어도 가지의 일은 확실히 할 수가 있습니다.
가지의 일은 바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를 맺어야 될지 고민하지마시고 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1.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고 반드시 답을 내자.
포도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심지어 그 어떤 것도 나라를 사랑하는 열심도
포도나무이신 예수님보다 우선시되면 안됩니다.
잘못하다가는 가지 끝에 온힘을 주다 말라 버릴 수 있습니다.
2.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뿌리에 집중해야 합니다.
모임에 집중하거나 무리에 집중하자가 본질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 소명을 주셨는지 그 왜를 주님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뿌리가 주었기에 그 소명이 내 소명입니다.
뿌리가 준 마음대로 안하면 어느새 여러 주장과 행사에 집중하다가 메말라갑니다.
메마르면 가지치기 당합니다.
3. 포도 나무의 열매는 알갱이의 집합체입니다.
절대 수박 덩어리이가 아닙니다.
열매의 시작부터가 작은 알갱이의 집합체입니다.
지금의 역사적 상황에서 수박이 안나온다고 실패한 소명이 아닌 것입니다.
4. 포도나무 열매는 상상이상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로마서 11장13절에서24절 읽어 봅시다.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엡2:12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요4:22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민14:19, 수23:15, 고전15:2, 히3:6, 마22:13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요한복음 15장 1절~6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