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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늘 새로운 교회
욥기 42장 1-6절, 고린도후서 5장 14-17절
한 문 덕 목사
[2016년 한 해를 보내며]
2016년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2016년은 어떤 해였나요? 한국 사회는 매일 매일의 새로운 사건과 소식으로 어수선하고, 경제 또한 매우 어려워서 연말연시에도 내수활성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1위의 조선업과 해운업이 몰락하고,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 7 파문, 현대자동차 실적 악화와 그랜저 엔진 결함 등의 영향으로 지금 한국경제는 총체적인 정체기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가계부채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1300조에 육박하는데,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가계 대출을 받은 가정의 불안감과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서 발생할 국제의 역학관계 변화와 사드배치로 인한 한국,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변화가 앞으로 또 한국의 경제에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인구 고령화 속도 1위, 성장 잠재력 악화, 일자리, 성장동력 약화, 북한과의 관계 문제 등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우리는 올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내년의 희망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저는 우리나라가 희망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지난 10월부터 계속된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시민의 성숙한 의식 때문입니다. 200만이 넘는 사람이 운집하였는데도, 유혈사태는 물론 어떤 불상사 없이 평화적으로 시위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거의 두 달 째 진행되면서도 끝나고 나면 쓰레기 하나 남지 않으며, 이러한 시위를 통해 국민이 국회와 언론, 검찰을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최고 권력인 청와대와 재벌을 법 앞에 세워 놓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정도의 시민이라면 앞으로의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의 1년을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방금 전에 여러분은 2016년 생명사랑교회 10대 뉴스로 뽑힐 만한 것들에 표시를 하셨을 것입니다. 지난 1년간 우리는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제가 그 것들 중에 뽑아서 33개의 항목을 드렸고, 거기에서 온 교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0대 뉴스를 선정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생명사랑교회의 1년을 돌아보면 내적으로는 장로님 두 분을 선출한 것, 정관과 시행세칙을 교회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개정한 것, 주보를 바꾸고 예배의 순서를 조정하고, 다음 카페의 항목들을 새롭게 바꾼 것 등은 교회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중요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안에서 약동하는 생명”이라는 표어답게 주일예배 설교, 오후 특강, 수요기도회 마태복음 성서강해, 사순절, 대림절, 매주 월요일 아침 묵상, 그리고 “젊은이를 위한 청년 예수의 삶과 가르침” 성서공부를 진행한 것 또한 우리들의 내실을 다지는데 중요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각 신도회의 나들이, 전교인 야외예배와 수련회를 통해 친교를 다지고, 심방과 구역예배를 통해 각 가정을 돌아본 일, 이사예배와 결혼 예식 등은 생명사랑가족의 하나됨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난 주간에 금식하고 헌금하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정의와 기억재단>에 기부하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하고, 선체의 올바른 인양을 위한 홍보활동에 나서며, 선교 기금 모금에 밤에 참여한 일, 지속적으로 마다가스카르의 선교와 촛불교회, 평화연구소, 동부시립병원 등에 지원한 일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활동에 동참한 자랑스런 모습입니다.
[등 뒤를 돌아보자]
여러분 가정은 1년간 어떠셨나요? 주님 안에서 화목한 가정이셨나요?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가정인가요? 바쁜 하루 지친 몸이 편히 쉴 수 있는 가정이었나요? 또 여러분 개인은 어떠셨나요? 새해에 자신이 목표했던 것들을 달성하셨나요? 2016년 자신의 삶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주실 수 있나요? 직장의 삶에는 만족하신가요? 다른 동료들과 잘 지내셨나요? 생명사랑교회의 일원으로 주님의 몸 되신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수선한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하여 애쓰셨나요? 어디에서든지 하나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소금과 빛이 되셨나요?
오늘은 2016년 12월 31일 마지막 날입니다. 1년을 되돌아보면 잘 한 것도 있고, 아쉬운 지점도 있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것들도 있습니다. 제가 시 한편을 읽어 드릴 테니 이 시를 들으면서 여러분 자신의 1년을 한 번 더 되돌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등 뒤를 돌아보자
박노해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동안
등 뒤의 슬픔에 등 뒤의 사랑에
무심했던 시간들을 돌아보자
눈 내리는 12월의 겨울나무는
벌거벗은 힘으로 깊은 숨을 쉬며
숨 가쁘게 달려온 해와 달의 시간을
고개 숙여 묵묵히 돌아보고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온 것은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기 위한 것
내 그립고 눈물 나고 사랑하는 것들은
다 등 뒤에 서성이고 있으니
그것들이 내 등을 밀어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니
12월에는 등 뒤를 돌아보자
시인은 말합니다. 등 뒤를 잠시 돌아보자고 말합니다.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 오는 동안 혹시 무심했던 것들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자고 우리를 초청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여기까지 달려 온 것은, 두고 온 것들을 돌아보기 위함이라고요.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내 등을 밀어 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지도 모른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욥의 자기성찰]
오로지 세상이 말하는 성공만을 위해서 달려오면서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이, 사실은 나를 뒤에서 밀어주며 등불 같은 첫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게 한다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 등장하는 욥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욕망, 편하고 안락한 삶만을 쫓다가 더 귀중한 가치를 미처 발견하지도, 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지도 못했는데, 오늘 욥은 모든 인간이 피하려고 하는 고통 속에서 고통의 의미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욥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 욥은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습니다(욥 1:1-3).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 이런 욥에게 이런 엄청난 재앙을 허락하신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주를 퍼붓는 아내, 네가 잘못한 것이니 빨리 회개하라는 친구들의 말보다 욥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고통 그 자체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오늘 욥은 그러한 모든 고통을 다 겪은 후에 주님의 전능하심을 진정으로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의 유한함을 절절히 느낍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님의 뜻을 흐리고,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욥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통해서 전혀 다른 삶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하여 귀로만 소문으로만 들었다가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빙자한 일종의 폭력입니다. 그것은 깊은 상처의 말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을 600만이나 학살한 히틀러를 세운 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한 때 총리 후보였던 문창극 씨처럼 일제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어느 목사처럼 일본의 대지진에 의한 쓰나미와 원전사고가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럼 하나님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무책임한 하나님이 됩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는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즉 고난을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는 양식으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어려움을 성숙의 기회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도 있고, 자기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추하고 더러운 그래서 쓰레기 같아 보이는 것을 가지고서도 선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고통은 사람의 죄악으로부터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욕심과 자기중심주의, 권력을 지향하고 남을 지배하려는 성향, 자기보존본능,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내뱉는 말들과 행위 등 이런 모든 것이 쌓여 고통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오늘 욥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쁜 건 나쁜 거고, 좋은 건 좋은 것이라는 단선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원인 모를 고통의 경험을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도 않고, 직접 하나님과 대면하여 정직하게 끝까지 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격 선수인 진종오 선수는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6.6을 쏘며 탈락 위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역전 우승하게 됩니다. 그 때 진종오 선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6점을 쏘고 정신 차렸다. 인생을 깨워준 한 발이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언제나 10점 만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최악의 순간이 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자신을 되돌아보며 정신 차리는 순간으로 삼는다면 역전 우승도 맛보게 됩니다.
팬싱 국가대표인 박상영 선수 또한 8월 리우올림픽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10-14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었고, 마음은 계속 흔들렸습니다. 그 때 그는 마음 속으로 계속 생각했습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실수하고 무너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되고, 모든 것이 허무해 질 때, 그럴 때에야 말로 어쩌면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이 나서실 때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그 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교회든 사회든 긴 역사의 시간에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원하지 않고 뜻하지 않는 고난과 어려움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닥친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은 우리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우리의 인격과 사람됨을 한껏 끌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고통에 정직하게 대면하여 진실하게 묻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전능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교수신문의 사자성어]
오리무중(五里霧中), 이합집산(離合集散), 우왕좌왕(右往左往), 매년 년 말이 되면 이 땅의 최고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대학교수가 한 해를 평가하며 그 해의 사자성어를 뽑습니다. 오리무중은 2001년의 교수신문이 뽑은 사자성어로 우리나라와 이 사회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뽑힌 단어입니다. 김대중 정부 말기 대선을 앞두고 권력을 좇아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철새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2002년에는 이합집산이라는 사자성어를 뽑았고, 노무현 정권 초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하며 우왕좌왕이라는 사자성어를 교수들이 선택했습니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들은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절망적인 모습들을 보여 줍니다. 노무현 정권 마지막인 2007년은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었습니다. “1년 내내 한국 사회를 뒤흔든 학력 위조와 논문표절, 정치인과 대기업의 도덕 불감증 행위 등 자기분수를 모르는 탐욕”을 비판하며 내놓은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거세개탁(擧世皆濁)이라는 평가로 마무리 됩니다.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라는 뜻으로 한국 사회의 모든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매년 뽑힌 사자성어들 또한 절망적입니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과 용군을 합쳐 세상이 암흑으로 가득 차 길이 보이 않는다는 ‘혼용무도(昏庸無道)’에 이르기까지, 이런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 오고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올해 대학교수들이 뽑은 2016년의 사자성어는 ‘군주민수(君舟民水)’입니다.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라는 뜻으로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뒤집어엎기도 하는데, 민심의 향배에 따라 군주의 운명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뜻을 지닙니다. 저는 15년 만에 나온 이 긍정적인 사자성어를 보면서 한 줄기의 희망을 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국민들의 성숙을 위해서 지난 15년의 세월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역경을 거쳐서 이제야말로 국민이 주인 되고 정부가 그 국민을 섬기는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싹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구성된 참된 교회가 되려면 교인들 모두가 교회의 주인이 되어 책임과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몇 몇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교인으로서 누릴 권리를 찾으려면 교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 또한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평신도 중심의 사역을 할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교인들이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 후서의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더 이상 육신의 잣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혼자만을 위한 삶에서 모두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본받아 모든 이들을 위한 삶으로 변화합니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다.” 이제 2016년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게 되는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여러분 각자는 오랜 세월 신앙인으로 사셨지만 어쩌면 우리는 매년 새로운 신앙으로 거듭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은 매번 새롭게 됩니다. 따라서 질문도 달라집니다. 어떤 교인은 “내가 어떻게 하여야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어거스틴, 루터)를 물을 수 있고, 또 다른 교인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이 불의한 세계의 현실을 변혁하여 하나님 나라를 만들 것인가?”(몰트만, 구티에레즈)를, 또 다른 교인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모든 생명을 살려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녹색 지구를 구할 것인가?”(셀레 멕페이그, 토마스 베리)를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묻고 구하는 그 모든 것이 우리 생명사랑교회를 새롭게 하는 것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생각, 여러분의 모든 계획, 여러분의 모든 능력이 늘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방법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대로 그것은 바로 우리를 휘어잡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우리를 맡기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오늘 새롭고,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롭게 거듭나는(日新, 日日新, 又日新) 여러분 되시길 기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은혜의 하나님! 지난 한 해 우리 생명사랑가족들을 보살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비춰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진리 안에서 즐거웠던 기억들이 우리의 삶을 수놓을 수 있게 하시고, 지난 날의 허물은 기억하지 말아 주소서. 다만 우리가 당신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노력들을 어여쁘게 보시고, 몸과 마음을 드려 주의 제단을 사모했던 일들을 주의 인자하신 품속에 간직해 주소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함에 있어 더욱 순결한 마음 되게 하시고, 늘 새로운 변화와 열매들을 맺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십시오. 과거를 잘 흘려보내고 오는 새해를 잘 맞이하십시오.
*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새해를 맞이하는 생명사랑 교우들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