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글의 모양, ‘글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리 말하자면,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한글 글꼴을
설계한 사람은 최정순, 뒤이어 최정호가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와 함께
이들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이 2016년 10월에 열렸었다
원도가 글자가 되기까지
글꼴 제작의 필요성이 대두하기 시작한 건 일제 강점기와 6.25 동란이 끝난 1950년대 들어서다.
당시엔 글꼴을 만들려면 원도 설계가 필수였다. ‘원도(Typeface Original Drawing)’는 활자를
만들기 위해 그린 글자꼴의 씨그림으로,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 원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활자를 원도 활자라고
한다.
원도 활자가 도입되고 나서부터 활자 제작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실제 크기의
씨글자를 활자 조각가가 도장을 파듯 새겨서 만들었다면, 이제는 원도 설계자가 자, 컴퍼스, 붓,
잉크 등과 같은 레터링 도구를 이용해 한 글자씩 원도를 설계하면 이 설계된 원도를 바탕으로
자모 조각기가 활자를 깎았다. 이때부터 활자의 완성도는 활자를 조각하는 사람이 아닌 원도
설계자의 능력에 따라 달라졌다. 그리고 이들이 바로 한글 글꼴의 아버지, 글꼴 디자이너 1세대인
최정순이다.
교과서와 신문 활자를 개발한 최정순
최정순은 교과서 활자와 신문 활자의 근간을 이룬 원도 설계자이다. 일본에서 활자 제작 기술을
연수한 최정순은 국정교과서를 위한 활자 제작에 참여하였다.
최정순이 당시 문교부 편수국장 최현배를 만나 국정교과서용 활자 설계를 맡으면서부터이다.
국정교과서는 1952년 설립된 국영기업체로, 1955년 유엔 한국 재건단 운크라(UNKRA, United
Nations Korean Reconstruction Agency )와 유네스코가 원조한 10만 달러로 영등포 대방동에
인쇄공장을 건설해서 교과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교과서의 내용은 문교부에서 편찬하여
저작권을 갖고 제작 및 인쇄는 국정교과서에서 맡는 방식이었다.
이후 최정순은 신문용 본문 활자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965년 중앙일보 창간에 맞춰 3년에
걸쳐 신문용 활자를 제작하여 전량 납품했다. 이를 계기로 최정순은 한국일보, 서울신문, 동아일보
경향신문, 내외경제신문 등 여러 신문사의 활자 개량을 도맡았다.
최정순은 일흔이 넘어서도 글꼴 다듬기를 쉬지 않았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교과서용
문화체육부 글꼴 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문화체육부 바탕체는 부드러운 느낌이 들며, 기존
교과서체에 비해 가독성이 크게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2년에는 2,500개의 원도를 그려
총 11,172개의 문화체육부 돋움체를 개발했다.
돌기가 없는 돋움체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줄기 시작과 끝의 굵기를 조절하고 부드러운 곡선을
가미해, 아름다우면서도 가독성이 높다. 이후 1995년 10월9일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최정순은 6.25 동란 이후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사명감으로 한글 글꼴을 설계했다.
국립한글박물관 전시를 통해 우리가 편히 사용하는 글꼴을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