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11
당신은 어떠한 종입니까? / 한서노회
1,착하고 충성된 종
2,자기 영광을 취하지 않는 종
3,미친자라는 말을 듣는 종
1,착하고 충성된 종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에겐 착하고 충성된 종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에겐 엘리사라는 충성된 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사에겐 착하고 충성된 젊은 종이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들은 주님에게 어떤 존재들입니까?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생각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종은 한마디로 착하고 충성스럽지 않으면 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문의 충성 충자를 보십시요.
마음 심자 위에 가운데 중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 한 가운데 라나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면 그를 세상은 애국자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마음 한 가운데 마누라로 꽉차 있으면 그를 애처가 혹은 공처가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사랑하는 주님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을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엘리사 선지는 젊은 그의 선지 생도에게 귀중한 사명을 부여합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사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둥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여 지체치 말지니라"
((본문의 간략한 설명))
이 명령이 쉬운것 같이 여겨질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명령은 그렇게 쉬운 것이 못됩니다.
선지 생도가 그 명령을 수행하려면 여러가지로 어려운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아직 나라에 왕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예후의 부친이 왕위에 있는게 아닙니다.
또 예후가 왕의 혈손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는 한마디로 일대 혁명입니다.
둘째는 엘리사가 준 기름 병을 가지고 몰래 예후를 만나일입니다.
왕궁에 들어가야 예후를 만날 수 있는데 그냥 맨몸으로 간다면야 그런대로 가능한 일인데 왕을 세우기 위한 기름병을 들고 가는 것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세째는 예후를 향하여 기름을 부으면서 6-9절에 있는 말씀을 예후에게 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이게 쉬운 일입니까?
그러나 쉽든 어렵든 간에 종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져 복종하고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 복종의 과정에서 어떠한 희생이 치르어지더라도 주인의 명령에 목숨을 다해야하는 것이 종입니다.
그리고 종에겐 사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읍니다
그 방법이 좋든지 나쁘든지도 종이 가려야하는 것이 못됩니다.
왜 그렇게 해야하느냐의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종입니다.
종은 그 일이 자기에게 이해가 되기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의 젊은 선지 생도는 스승의 시킴을 따라서 어려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달란트와 다섯 달란트 받았던 종들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명을 목숨을 걸고 잘 감당하고 있는 선지 생도가 어떤 생도 입니까?.
4절입니다.
"그 소년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가니라..."
사명을 받은 선지 생도는 노련한 인생 경력을 가진 늙은이가 아니었습니다.
또 어떤 조건도 제시되어 있지가 아니합니다.
단지 소년 곧 소년이라는 것 뿐입니다.
소년임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생 초년병을 말합니다.
순수하게 세상의 때가 묻지 아니한 신선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누가 주님의 종이될 수 있는가하면 바로 이 소년 소년처럼 순수하고 깨끝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요.
01,베드로가 인생의 노련함만으로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02,요한도 그 젊다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종이 될 수 없었습니다.
03,안드레의 열정적인 것만으로도 주님의 제자는 될 수 없었습니다.
04,가롯 유다의 그 똑똑함만으로도 주님의 제자는 될 수 없었습니다.
05,바울의 그 많은 세상의 실력만으로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의 사람이어야한다는 것입니다.
회개함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충만함이 아니고는 결단코 주님의 종은 될 수 없습니다.
노련함으로, 젊음으로, 똑똑함으로, 열정적으로 실력으로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은 될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주님의 종은 될 수 없습니다.
날마다 성령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말씀 앞에 순수한 사람으로 변해야합니다.
2,자기의 영광을 취하지 않는 종
종이란 원래의 의미는 노예를 말합니다.
눅17;5-10절에 종에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3절을 봅니다.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앙을 삼노라 하였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지체치 말고 도망을 치라고 했습니다.
예후가 엘리사의 젊은 종을 만나서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왕이된다고 했을 때 내심 무한이 기뻤을 것입니다.
정신 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엘리사는 이 사역을 마치는 즉시 도망치라는 것입니까?
만약에 젊은 선지 생도가 도망을 치지 않았다면 예후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은 이를 거절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광은 오직 주인이신 주님께서 받으셔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미친자라는 말을 듣는 종
11절입니다.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묻되 평안이뇨 그 미친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너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 말한 것을 알리라"
엘리사의 젊은 종은 그의 사역을 잘 감당함으로 말미암아 미친 사람이라는 좋지 않은 평판을 받았습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그는 그의 사명감에 철두철미 했습니다.
미쳤다는 말은 그 사명에 진실로 미치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인 되시는 주님에게 우리가 미치지 않고서는 주님의 일을 올바르게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내 친구들중에 불신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로부터 너는 정말 예수에게 미쳤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야합니다.
또 내 가정에 만약의 경우 불신자가 있다면 역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
우리 모두는 예수에게 미친 사람들이니까요 !
사실은 세상이 우리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불신의 세계는 신앙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데 인간의 본성은 거룩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는 원시안 적이며 심오한 반면에 사람들의 지혜는 근시안적이며 피상적이기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합니다.
단지 미쳤다고만 할 뿐입니다.
우리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든지 또는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것들은 세상이 조금도 감당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불바다가 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롯을 미쳤다고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을 포기 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모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랬고 그의 제자들도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누구를 미쳤다고 기록하고 있읍니까?
누가 최후에 웃는 자가 되었습니까?
오늘의 신앙의 지도자들은 별의별 것들을 다 연구하고 있습니다.
토착화 복음을 부르짖고 있습읍니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면에서의 신앙을 지속하려합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내에서 신앙을 꾸려 가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미친 것입니다.
요지음 신자들 중에 억지로라도 안 미친체 할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 정상적인체 할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미친 사람이 미친 것처럼 사는 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미친 사람이 안 미친 것처럼 사는게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에게 미쳐야합니다.
그리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합니다.
미친 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말해야합니다. 행동해야합니다.
엘리사의 젊은 선지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로만 돌렸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의 사명을 다 감당했습니다. 아 멘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