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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滅後(여래멸후) :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異執紛然(이집분연) : 각기 다른 집착(異執)으로 들끓어,
各謂己是(각위기시) : 저마다 제가 옳다고 하고
莫知他非(막지타비) : 상대방 허물(他非)을 알아주지 못하였다.
或稱有(혹칭유) : 혹자는 '유(有)'라 하고,
或稱無(혹칭무) : 혹자는 '무(無)'라 하고,
或謂三(혹위삼) : 혹자는 '셋(三)'이라 말고,
或謂一(혹위일) : 혹자는 '하나(一)'라 한다.
或言我是(혹언나는) : 혹자는 자기가 옳고(是)
言他不是(언타불시) : 남은 옳지않다(不是) 하며,
或說我然(혹설아연) : 혹자는 자기가 그러하고(然)
說他不然(설타불연) : 남은 그렇지 않다(不然) 하니,
遂成漢矣(수성한의) : 결국 (서로 자기 울타리만 고집하는) 한나라 사람(漢, 배타적 집단)이 되고 만다.
憎有愛空(증유애공) : '있음(有)'을 질시하고 '비어있음(空)'을 선호함은,
猶捨樹以(유사수이) : 마치 한 그루의 나무(樹)는 외면하면서
赴長林(부장림) : 깊은 숲(長林)을 찾아헤메는 것과 같다.
譬如靑藍 共體 (비여청람 공체) : 비유컨대, 푸른빛(靑)과 쪽빛(藍)이 그 바탕(體)에서 같고,
氷水同源(빙수동원) : 얼음(氷)과 물(水)이 그 근원(源)에서 같은 것과 같음에도 말이다.
至使 聖道微妙(지사 성도미묘) : 결국 성인의 도(聖道)는 아득히 멀어지고(微妙)
邪說競興(사설경흥) : 그릇된 말들(邪說)이 난무하니(競興),
異端交亂(이단교란) : 치우친 흐름들(異端)이 뒤섞여 어지러워지고(交亂)
正法將墜(정법장추) : 바른 가르침(正法)이 무너지기에 이르는 것이라.
今作此論(금작차론) : 지금 이 글의 논거는
欲和百家之爭論(욕화백가지쟁론) :여러 학파의 다툼(百家之爭論)을 조화롭게 하고(和爭)
彙諸部之異執(휘제부지의집) : 여러 부파의 서로 다른 집착(諸部之異執)을 하나로 어우러잡고자(통섭, 統涉) 함이라.
統涉(지식의 대융합, Consilience)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오윌슨의 Consilience를 번역하며 채택한 현대적 개념으로,
서로 다른 학문(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통하게 한다는 뜻
使千途異軌 同歸一源(사천도이궤 동귀일원) : 천 갈래 다른 길과 그 수레자국(千途異軌)을 하나의 근원(一源)으로 돌아가게 하고,
萬流紛糾 咸入大海(만류분규 함입대해) : 어지럽게 얽혀 흐르는 만 갈래 개울물(萬流紛糾)을 넓은 바다(大海)로 들어서게 함이다.
通融 聊爲序術(통융 요위서술) : 좁은 식견이지만, ‘소통과 융합(通融)’으로 머리말의 서술을 갈무리하고자 하며,
名曰 十門和諍論(명왈 십문화쟁론) : 이 책의 이름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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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門和爭論 序文(복원문) - 元曉大師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적에는
하나의 완벽한 설법(圓音)을 펼쳤고,
중생들은 제 나름의 각성(異解)을 거쳐
깨닮음에 이르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자
각기 다른 집착(異執)으로 들끓어,
저마다 제가 옳다고 하고
상대방 허물(他非)을 알아주지 못하였다.
혹자는 '유(有)'라 하고,
혹자는 '무(無)'라 하고,
혹자는 '셋(三)'이라 말고,
혹자는 '하나(一)'라 한다.
혹자는 자기가 옳고(是)
남은 옳지않다(不是) 하며,
혹자는 자기가 그러하고(然)
남은 그렇지 않다(不然) 하니,
결국 (서로 자기 울타리만 고집하는) 한나라 사람(漢, 배타적 집단)이 되고 만다.
'있음(有)'을 질시하고 '비어있음(空)'을 선호함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樹)는 외면하면서
깊은 숲(長林)을 찾아헤메는 것과 같다.
비유컨대, 푸른빛(靑)과 쪽빛(藍)이 그 바탕(體)에서 같고,
얼음(氷)과 물(水)이 그 근원(源)에서 같은 것과 같음에도 말이다.
결국 성인의 도(聖道)는 아득히 멀어지고(微妙)
그릇된 말들(邪說)이 난무하니(競興),
치우친 흐름들(異端)이 뒤섞여 어지러워지고(交亂)
바른 가르침(正法)이 무너지기에 이르는 것이라.
지금 이 글의 논거는
여러 학파의 다툼(百家之爭論)을 조화롭게 하고(和爭)
여러 부파의 서로 다른 집착(諸部之異執)을 하나로 어우러잡고자(통섭, 統涉) 함이라.
統涉(지식의 대융합, Consilience)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오윌슨의 Consilience를 번역하며 채택한 현대적 개념으로,
서로 다른 학문(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통하게 한다는 뜻
천 갈래 다른 길과 그 수레자국(千途異軌)을 하나의 근원(一源)으로 돌아가게 하고,
어지럽게 얽혀 흐르는 만 갈래 개울물(萬流紛糾)을 넓은 바다(大海)로 들어서게 함이다.
좁은 식견이지만, ‘소통과 융합(通融)’으로 머리말의 서술을 갈무리하고자 하며,
이 책의 이름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 부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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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초기불교(Early Buddhism) 학계나 묵상 수행 현장에서 새롭게 밝혀내고 있는 실천적 해석
1. 국내외 초기불교 연구의 선구자들
각묵 스님 (초기불교연구원 지도법사)
초기불교 원전(빠알리 니까야)을 국내에 가장 엄밀하게 번역하고 소개한 주역
전통적인 '설일체유부의 분위연기(삼생양중인과설)'가 대세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경전 본연의 맥락에서 12연기가 어떻게 '조건발생의 원리'로 작용하는지 원어 그대로 밀착해 들어가는 번역과 해설을 제공. (상윳따 니까야 번역 및 관련 강론들에서 12연기를 실존적 괴로움의 발생/소멸 구조로 철저히 재정립.)
이중표 교수 (전 전남대 철학과 교수, 붓다사상연구원장)
한국 학계에서 12연기와 오온을 '윤회론'이 아닌 '현실의 삶과 마음의 구조'로 해석하는 데 방점을 찍은 대표적인 학자.
저서 《붓다의 철학》, 《알아차림과 연기》 등을 통해, 12연기 속의 '유(Bhava)'나 '생(Jāti)' 같은 개념이 먼 미래의 내생을 뜻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안에서 '자아(나)'라는 존재성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부서지는지 그 실시간 과정을 보여주는 현미경이라고 설파
.
2. 해외 초기불교 및 명상 지도자들의 '심리학적/현상학적' 복원
와폴라 라훌라 (Walpola Rahula) 스님
스리랑카의 세계적인 석학이자 승려로, 저서 《붓다가 가르친 법 (What the Buddha Taught)》은 서구 세계에 초기불교를 알린 가장 고전적인 명저.
이 책에서 12연기를 결코 전생과 내생을 잇는 숙명론적 윤회 메커니즘으로 설명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마음 안에서 고통이 생겨나는 찰나의 인과적 조건(Conditionality)으로 명쾌하게 해체.
Bhikkhu Bodhi (빅쿠 보디) & 냐아난타라 (Ñāṇananda) 스님
빠알리 니까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빅쿠 보디의 주해나, 스리랑카의 사상가인 아잔 냐아난타라 스님(저서 Concept and Reality in Early Buddhist Thought 등)의 연구는 전통 아비달마의 거대한 주석적 성채에서 벗어나, 붓다가 설했던 초기 언어(Viññāṇa, Nāmarūpa, Phassa 등)가 가졌던 원래의 인식론적·현상학적 의미를 철저하게 발굴.
이들은 Saṅkhārā를 '전생의 업'이 아니라 "마음이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가공하는 정신적 형성력(Mental Formations)"으로 정의하며 번역어의 한계를 바로잡는 데 결정적인 기여.